소설리스트

104화 (104/177)

Hindrance (6)

하루하루가 그렇게 초초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견딜 수 없는 초초함 속에서도 내 할 일을 묵묵히.....아니, 꾸역꾸역 하나씩 해내가고 있었다.

어렵사리 인터넷을 검색하여 GPS 추적 장치를 아내의 차 깊숙한 곳에 매립해 놓았고,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소형 카메라도 달아 놓았다.

아내가 깊게 잠든 밤. 몰래 침실을 빠져나와 주차장에 세워진 아내의 차에 낑낑대며 그것을 설치하는 내 마음은 참혹했다.

다행히 처제는 별 말없이 매일 나와 함께 카페로 출근을 했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처럼 그렇게 나를 도왔다.

미나는 그날 이후 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날 침대에 걸터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큰 소리로 울던 미나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잊어지지가 않았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일상에서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아내에게 자주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카페에 출근을 해서도...

처제와 미나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도...

그리고, 아내가 퇴근할 때 까지...

마치 무엇인가 매일 확인을 하듯이...

아내의 일상에도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최 진욱.

그와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했다. 

우리의 계획은 지겨울 만큼 반복되어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어갔다.

세희는 점점 상태가 호전되어 간다고 그가 알려왔지만, 카페에 출근하기는 아직 무리였다. 내가 원하지 않았다.

손님이 한동안 카페를 휩쓸고 떠난 목요일 오후 3시...

처제는 아내가 항상 앉아 있던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아내가 앉아 있는 것 만 같았다.

미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스마트폰만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카페 문이 활짝 열리자 처제, 미나 그리고 나의 시선이 그곳으로 일제히 향했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카페에 들어와 다소 분주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내가 그 여자에게 시선이 간 것은 동행한 네 명의 다른 젊은 여자들보다 나이가 들어보였고, 풍겨지는 분위기 자체가 무엇인가 모르게 달라보였다. 

그 여자의 나이가 얼마 즈음인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외모는 30대 초중반 같아 보이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그렇게 어린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옷차림 또한 눈에 띄었다. 

함께 온 다른 젊은 여자들의 잘 차려입은 정장과는 다르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의 옷차림은 알 수 없는 어떤 규칙 속에 철저하게 절제되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그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 여자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미나가 주문을 받고 시간이 지나 처제가 그들이 주문한 커피와 케익 몇 조각을 전해주었다.

처제의 얼굴을 웃으며 빤히 보던 나이 그 여자가 처제에게 뭐라고 말을 하자 처제가 활짝 웃으며 고개 몇 번 끄덕이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

함께 있던 젊은 여자들이 그 여자에게 “선생님” 이라고 부르며 대화를 하는 게 얼핏 들려왔다. 

‘그가 언제 돌아오는 것인가....’

이번 주.....

그가 말한 이번 주도 이제 3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테이블에 앉아 [까르르] 웃어대는 여자들의 소리에 이내 마음이 흐트러져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지기가 반복되었다. 

갈 곳을 잃은 채 무심결에 돌아간 내 시선이 갑자기 한곳에 고정되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 여자의 얼굴은 맞은편에 앉아 쉴 새 없이 말을 하던 여자 쪽을 향해 있었지만,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나에게 머물렀다.

여자의 검고 또렷한 눈동자 아래에 흰색이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삼백안....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 묘한 눈빛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자 나는 무엇인가 들킨 것 같은 초초함과 알 수 없는 약간의 불쾌한 마음까지 들었다. 

‘불편하다......’

나는 저기 문 앞에 자리 잡은 여자들이 빨리 카페를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20분 후 도착!!!]

Bar 구석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반짝거렸다. 승호의 메시지였다.

카페 밖은 조금씩 어둠이 드리워져 가고 있었다.

“선생님! 잘 마셨어요!!!”

시종일간 카페에 작은 소음들을 생산해내던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젊은 여자들이 선생님이라던 그 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이제야 나가는구나......’

긴장해 있던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려는 찰라.... 

나와 몇 번을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가 카페 안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내게 머물러 있었다.

“잘 마셨어요. 여기 커피 맛있네요?”

“네? 아.....네...감사합니다.”

가늘고 길게 이어져 있는 짙은 갈색 아이블루우를 한 여자의 눈썹과, 흔치않은 삼백안의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음.....저기요.....사장님.”

여자가 무엇인가 망설이듯이 몇 번 립스틱이 발려있는 붉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네?”

“음.....이걸.....어떻게 말해야하나?”

불편한 내 표정 때문인지, 테이블을 정리하던 미나와 처제의 얼굴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잠깐만요. 이리로 잠깐만.......”

여자의 얼굴이 내 얼굴로 다가왔다. 그러자 여자의 몸에서 풍기는 향이 느껴졌다.

무슨 향수 인지 생전 처음 맡아보는 짙은 우드계열 향 같았다.

여자가 다른 사람이 절대 들어서는 안 될, 무슨 비밀스런 말을 내게 하려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여자 쪽으로 조금씩 향했다.

여자의 입술이 내 뺨에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의 떨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타고 들었다.

잠시 후,

여자가 내 귓가에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인가를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여자의 얼굴에서 뿜어져 내게 전해지던 온기가 곧 사라졌다.

“한번 오세요.....그럼 다음에 꼭 봐요.”

여자가 카페를 빠져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일행이 그 여자의 팔짱을 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Bar 위에는 여자가 남겨 놓고 간, 종이 조각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형부? 형부?”

처제가 나를 여러 번 불렀다. 

“무슨 일이예요? 그리고 저분.....아시는 분이에요?”

“아니...아니......”

“형부. 얼굴이.....”

처제의 손이 내 뺨에 닫자, 달아오른 내 얼굴의 열기가 처제의 차가운 손을 타고 빠르게 흘러나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승호가 보였다. 

“어이. 김 치우. 어! 은설 씨. 일본에 어머니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왔어요.”

“이야....은설 씨는 점점 예뻐진다......”

“호호호....고맙습니다.”

“김 치우.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또 아프냐?”

승호와 카페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지만 한동안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좀 전 그 여자가 내 귓가에 속삭인 그 말만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댔다. 

“치우야. 괜찮아? 정말 어디 아파?”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승호가 물었다.

“아니......머리가 좀 아프네.”

“임마. 좀 제대로 챙겨먹어. 얼굴 꼴이 그게 뭐냐?”

승호의 얼굴은 좋아 보였다. 예전과는 다르게 생기가 돌았다. 

그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하하하.....치우야,,,,나.....수연 씨하고 결혼 할란다.”

그의 말이 뜻밖이었지만 놀라진 않았다.

“어...뭐야? 놀라지도 않아?”

“며칠 전에 어머님 오셨었어.”

“뭐? 그래? 엄마는 별말안하던데....엄마가 뭐라시든데?”

“니가 매일 새벽에 2층에 내려가서 수연이 집에서 자고 올라온다고......”

“뭐? 엄마가 그런 말까지해? 아이참....엄마는...쪽팔리게....”

“그래. 수연이 한테 말했어?”

“하하하....아니.....오늘 말하려고.....”

“미친넘. 결혼은 니 맘대로 하냐?”

승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고급스런 까만 가죽케이스가 열리자 은색의 반지위에 달린 보석이 찬란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때? 예뻐? 니가 은비 씨 한테 준거하고 디자인은 비슷한데.....알은 더 커....하하하.....”

행복해 보였다.

승호의 얼굴은 이미 세상을 다 가진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승호의 이런 얼굴을 예전에 딱 한번 본적이 있었다.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아슬아슬한 성적에 맘을 졸이던 그가, 합격자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나를 바라보던 그때의 그 얼굴...... 

승호는 활짝 웃으며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반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승호 오빠 이거 뭐예요?”

언제 왔는지 미나가 테이블 옆에 서서는 시선이 반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나가 반지 케이스를 들어 카페 조명을 통해 들여다봤다. 그러자 미나의 눈빛도 그 반지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뭐긴 뭐야. 프로포즈 반지지....하하하....”

“그니깐요. 왜 프로포즈를 치우 오빠한테 해요? 둘이 사겨요? 크크큭.....”

며칠 동안 내 시선을 피한 채 우울하기만 하던 미나의 얼굴에 예전의 환한 그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승호의 그 보기 좋은 얼굴과.....

오랜만에 보는 미나의 환환 미소는..... 

내 마음 속에 들어올 조그마한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승호는 카페 안쪽 방에 들어가 한동안 치장을 했다. 그의 머리는 내가 가끔 쓰던 왁스로 깔끔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카페를 떠나던 그의 의기양양한 뒷모습에 비해 지금 내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스마트폰 진동이 소란스럽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스마트폰 속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보세요]

[오빠]

[응...마쳤어?]

[네....근데 오늘 조금 늦을 거 같아요]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오빠? 여보세요?]

[어 그래....말해...]

[선생님들하고 갑자기 저녁 약속이 잡혔어요]

[그래? 많이 늦어?]

[아니요. 저녁만 먹고 들어갈 거예요]

[내가 태우러 갈게]

[아니요. 아니요. 그러지 마요. 피곤할 텐데....오빠 번거로워요....]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힘주어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태우러 갈게]

[아....괜찮은데.....그럼요. 장소 잡히면 다시 메시지 보낼게요]

아내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긴장감도 비밀스런 것도 숨겨져있지 않았다. 

Bar 테이블 위. 한구석에 구겨진 명함이 보였다.

그리고 너무나 소름끼치게 차가왔던, 여자의 그 속삼임이 다시 들려왔다.

[사장님....아내 분........죽어요......꼭 한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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