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77)

Hindrance (5)

나를 향해 있던 아내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처제에게로 넘어갔다. 

“당신 왔어? 좀 늦었네?”

당황해하는 처제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 아내의 시선을 내게 다시 돌리기 위해 서둘러 말을 내뱉었다.

“아...네...오빠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아니....오늘 좀 피곤해서 카페 일찍 닫고 오랜만에 처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있었지....”

아내의 경쾌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한걸음씩 내딛어 나에게 다가올 때마다 아내의 탄력 있는 허벅지가 스커트위에 또렷이 드러나 보였다.

“이 은설! 너 형부 바쁜데 자꾸 이럴래?”

자리를 잡은 아내가 뽀로통한 표정으로 처제를 쏘아붙였다. 하지만 처제를 향한 아내의 목소리는 진심이 담긴 그런 날카로움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처제 또한 그런 아내에게 반격을 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조금 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그 말 때문일 것이다. 

“내가 피곤해서 가게 빨리 닫았어. 처제한테 그러지마....그냥 재미있는 이야기하고 있었어.”

“네? 무슨 이야기요?”

“당신 어릴 때....학교 다닐 때...어땠는지....남자는 몇 명이나 만났는지....”

“네? 후훗....”

아내의 얼굴에 갑자기 너무나 환한 미소가 꽃피었다. 

“호호....오빠는 그런 게 궁금해요?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그래서 은설이가 뭐래요?”

“뭐....남자애들이 당신 많이 따라다녔다고 하던데?”

처제는 어색한 표정으로 아내를 보고 있었고, 아내는 그런 나와 처제가 재미있는지 소리 없이 환하게 웃기만 했다.

처제가 들려주었던 아내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늘은 머리를 올리고 왔는데. 너무 예뻤어. 

다음에는 집에서 맛있는 거 요리해 줄게.

은비야.....사랑해]

한참 감수성이 풍부하고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뜬, 여고생들이 남자 선생들을 짝사랑하는 레퍼토리는 너무나 흔하디흔한 스토리지만, 

처제가 보았던 그 편지가 사실이라면, 남자 선생이 제자인 여고생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너무나 부적적할 말들이었다.

순간.

아내가 편지를 쓴 저 남자 선생 집에 찾아가서 침대에서 둘이 엉켜 뒹구는 장면이 떠올랐지만,

나는 아내를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미나가 깊게 잠들어 있는 저 방.....침대에서 오래전 그날. 나는 아내가 내게 주었던 처녀를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저 방에서 첫 관계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당연히 여러 번의 연애경험이 있고, 섹스 또한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미나는 안보이네요? 벌써 퇴근했어요?”

“아니.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보여서 방에서 쉬라고 했어.”

“미나 아픈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아내와 둘이 대화를 이어가도 처제는 조용히 와인만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몰래본 아내의 그 편지 내용을 무심결에 내게 말한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너 다음 주 출발하는 티켓 알아봤어?”

“언니.....”

“기왕 온 김에 이번 주까지 친구들 만나고 좀 쉬다가 빨리 돌아가.....엄마 혼자 계시잖아...”

아내의 말에 처제의 얼굴이 한없이 슬프게 변해 버렸다.

그런 처제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가 개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자 와인이 거의 비워졌다.

“당신 피곤하겠다. 처제 데리고 먼저 들어가.”

“오빠는요?”

“정리 좀 하고....미나도 깨워서 보내고...”

“아니요. 같이 가요. 기다릴게요.”

“아냐...아냐...먼저 들어가....”

“언니 형부 차 좋던데?”

갑작스런 처제의 말에 아차 싶었다. 오늘 처제를 태우고 올 때 차에 대해 물어보던 처제에게 언니에겐 비밀로 하자는 말을 깜빡했다. 

“어? 무슨 차? 무슨 말이에요?”

“어머. 형부! 언니는 몰라요?”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그게. 선배가 타던 찬데.......갑자기 해외 발령받아서 필요하면 타라고 해서 며칠 전에 받아 왔어.”

아마 내 얼굴에는 당황함이 역력했을 것인데 아내는 궁금한 듯 나를 볼뿐 다행히 더 이상 차에 대해 묻진 않았다.

아내와 처제가 카페를 떠나고 홀을 정리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마 침대에 누워있는 미나 로부터 뿜어져 나온 열기 같았다.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은 채 작은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있는 미나의 얼굴 보였다.

잠들어 있는 얼굴 또한 오늘 홀에서 보았던 미나의 얼굴처럼 창백해 보였다. 

미나의 이마를 짚어보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노근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를 깨우기 뭐해 책상으로가 노트북을 열었다.

뭘 해야 될지 몰라 한동안 노트북 바탕화면만을 멍하니 보다 나도 모르게 카페 CCTV 프로그램을 클릭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지난 토요일, DB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을 실행했다.

미나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속을 조금씩 높였다.

세희가 카페에 들어오고 미나와 인사를 하고......잠시 후 손님들이 빠르게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카페입구 통유리가 서서히 어둠에 물들어갔다.

미나와 세희가 웃으며 카페를 빠져나가자 카페 내부가 검게 변했다. 

일요일 아침....

평상시 보다 조금 늦은 시간 미나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저 시간이면 두어 시간 밖에 자지 못했을 건데...’

평상시와는 다르게 굳어 있는 미나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미나는 나와 세희가 없는 이 카페를 혼자 그렇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일 때문에 잠도 몇 시간 못자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 있는 미나를 바라봤다. 

미나는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더욱 짠했다. 

동영상 속에서 미나가 출입구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 채,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동영상 창을 닫으려는 순간. 

내려져 있던 블라인드가 밀리고 카페 문이 열렸다.

나는 동영상 다시 배속을 천천히 줄였다.

카페에 들어온 사람은 진욱 형이었다.

아마도 연락이 안 되는 나를 찾으러 카페에 온 듯 보였다.

진욱 형이 미나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아보였고, 미나 또한 그에게 무슨 말을 계속 하고 있었다.

동영상에 표시된 시간은 밤 9시 43분...

또다시 동영상의 배속이 빨라졌다.

진욱 형과 미나는 한참동안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진욱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나가 앉아 있는 옆으로 가 앉았다.

갑자기 진욱 형의 얼굴이 미나의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몇 차례 미나의 얼굴이 뒤로 빠지며 진욱 형에게 가려졌던 얼굴이 얼핏 보였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도통파악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배속이 느려지자.....

진욱 형과 미나가 키스를 하고 있었다. 

미나는 눈을 꼭 감고 있었고, 진욱 형은 미나의 목덜미와 한쪽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미나의 입술을 파고드는 진욱 형의 혀의 움직임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진한 키스였다.

미나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진욱 형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하얀 블라우스 위 미나의 가슴을 만지는 게 보였다.

미나는 놀라서인지 그를 밀어 냈지만, 이내 다시 둘을 처음처럼 붙어 버렸다.

아주 오래전 엄마의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꺼내던 초등학교 5학년. 그때의 나처럼 가슴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플레이되는 동영상을 빨리 꺼버리려 했지만, 놀란 마음 때문인지 마우스에 올려진 채 굳어버린 손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미나의 블라우스 단추가 빠르게 하나씩 풀려져 나가자 미나의 맨 피부, 그리고 블라우스와 같은 하얀 브래지어가 드러나 보였다.

진욱 형이 브래지어 한쪽을 아래로 내려 미나의 맨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몸을 움츠리며 한없이 찌푸려진 미나의 얼굴이 화면에 보였다.

진욱 형의 얼굴이 미나의 열려진 가슴을 파고 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엉켜있던 둘의 몸이 홀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미나의 벌어진 다라사이, 스커트에 들어가 있던 손에서 작은 팬티가 들려 나온 건 한순간이었다,

미나의 브래지어는 언제 풀려졌는지 힘없이 아래로 쳐져있었고 그 위로 미나의 가슴 위 옅은 유두가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진욱 형의 급하게 바지를 아래로 내리고 홀 바닥에 누워있는 미나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움직였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한곳으로 향하는 마우스 커서가 내 마음과 같이 떨렸다.

그때, 

열기로 차여 있던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해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갑자기 내 심장이 일시에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절대 깨어나지 않을 듯, 잠에 취해 침대에 누워있던 미나가.......침대 한쪽 가장자리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쥐고 있던 마우스를 빠르게 눌러댔다.

[아!!! 아!!! 아아!!! 아!!!.........]

하지만 뜻밖에도 노트북 스피커에서 들러온 소리는......여자의 입에서 힘겹게 터져 나오는 진한 신음소리였다.

나를 보던 미나의 눈빛이 점점 또렷하게 변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미나가 내게 다가왔다.

나를 보던 미나의 눈빛이 노트북으로 향해 있었다.

“아아!!!!!”

미나가 노트북의 영상을 봤는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미나의 떨리는 눈동자가 정면으로 나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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