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rance (3)
카페 문이 열리는 작은 종소리에 깊은 최면에서 깨어난 듯 흐려진 시야가 갑자기 환하게 변했다.
“아이구.....치우 있었네?”
카페 문 앞에는 승호 어머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미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은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승호 어머니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어머....은설이구나? 아이구.......”
승호 어머님은 은설이를 찬찬히 훑어보며 알 수 없는 감탄사만 한동안 내뱉고 있었다.
“아이고.....오랜만이네.....어쩜 이렇게 예쁘니? 은설이.....그래 잘 지냈어?”
“네. 아주머니도 잘 지내셨어요?”
“호호호....그래 그래. 너는 어떻게 점점 은비를 똑 닮아가니?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우리 예쁜 은설이 누가 데리고 갈라나.....”
그러자 은설이의 얼굴이 금방 불게 변해버렸다.
승호 어머님이 Bar에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님....잘 지내셨어요?”
“그래. 너 요즘 어디 아팠어? 어제는 안보이더라.....”
“아...네.....몸살이 심해서 하루 쉬었습니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니? 얼굴이 왜 반쪽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내 뺨을 훑어 내렸다.
그 말을 들어서 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얼굴의 골격이 내 손끝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바쁘니?”
“아닙니다...”
“그래? 그럼 이야기 좀 하자......물어볼 것도 좀 있고.....”
승호 어머님은 무슨 은밀한 이야기를 내게 할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카페 안쪽 구석에 자리 잡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그런 이야기가 한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어머님이 내게 무슨 다른 할 말이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치우야.....”
한동안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승호 어머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치우야. 수연이 있잖아....‘
“네?”
어머님 입에서 수연이 이름이 튀어 나오자, 갑자기 내 맘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사고가 또 난건가......’
“음....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호호호.....”
“어머님.....수..연이가 왜요? 무슨 일.....있었어요?”
“아니아니....그게 아니라......승호하고 수연이하고 사이가.....요즘 심상치 않아서......”
“네? 둘이요?”
놀란 내 표정에 갑자기 승호 어머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게 말이야.....둘이 사귀는지 뭔지.....요즘 새벽에.....승호가.....수연이 집에 자꾸 내려가서.........한두 번도 아니고.......둘이 사귀는 거 같아서.....”
승호 어머님이 말을 이어가기가 민망한지 말끝을 흐렸다.
“치우야. 우리 승호하고 수연이하고 사귀는 거 맞지?”
“아......”
저녁초대를 받았던 진욱 형 약국 개업식 날,
수연이가 하얀 승합차의 그놈들에게 그 일을 당한 날.
승호가 만신창이가 된 수연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 이후, 가끔 메시지만 주고받았을 뿐, 그들을 보지 못한지 꽤 지났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승호 녀석.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벽에 몰래 내려가서 자고오고.......우리 승호 나이도 있고, 나도 수연이 싹싹하고 하는 짓도 예뻐서 이참에 그냥 결혼시키려고 하는데....치우 니 생각은 어때?”
“아네....뭐....하하....둘이......”
승호가 수연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머님에게 어떤 말들을 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치우야. 니가 둘이 지금 어떤지 알아봐줄래? 둘이 괜찮다면....나는 빨리 결혼시키고 싶어서....승호 나이도 있고....”
“네...알겠습니다.”
또다시 일상적인 대화가 조금 이어지다 승호 어머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님 들어가세요....”
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 가던 어머님이 다시 네게 돌아왔다.
“근데...치...치우야....수연이 말이야......가....가슴.....가슴 수술한 거니?”
“네?”
“아...아니다...아니다....호호호...내가 너한테 별걸 물어 본다....아니야.......잘....잘지내....”
승호 어머님은 그렇게 서둘러 테이블을 떠났다.
미나와 은설이가 승호 어머님에게 인사를 하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시간이 오후 2시가 벌써 넘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카페를 나갈 채비를 했다.
“형부 어디 가세요?”
“어 그래. 미나하고 좀 있어. 볼일 좀 보고 올게...”
“네! 형부. 여긴 걱정마세요. 호호호....”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미나를 뒤로하고 나는 카페를 빠져 나왔다.
투명한 통유리를 통해 진욱 형의 양국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약국으로 들어갔다.
진욱 형이 약국으로 들어서는 나를 곁눈 짓으로 한번 보곤, 손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의 얼굴이 나의 그것과 같이 까칠하게 변해 있었다.
“아이고. 어머님. 병원안가고 자꾸 이약 먹으면 안 된다니까요.”
“호호호....최 선생. 아니 무슨 약국이 약을 안 팔고 자꾸 병원가래.....”
진욱 형이 인상 좋은 중년의 아주머니와 웃으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약을 먹어야지요. 어머니.....약만 먹으면 내성 생겨서 안 좋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호호호....나는 최 선생 약만 먹으면 말끔하게 안 아파. 다음에 병원 갈 테니까 약 줘 빨리.”
조제실로 들어간 진욱 형이 잠시 후 둘둘 말린 약봉지를 들고 나왔다.
“어머니. 정말 마지막입니다. 다음에 또 이러시면 약 안줘요.”
“호호호. 그런 그렇고. 최 선생. 총각이라고 했지? 우리 막내가 여기 대학 병설유치원 선생인데 한번 만나볼래?”
“하하하.....예뻐요? 몸매는?”
“호호호....두말하면 잔소리지....날 보면 몰라? 있어봐봐”
아주머니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그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그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어때? 예쁘지? 우리 딸 호리호리 하니 몸매도 좋아. 나 정말 담에 우리 딸 여기 데리고 온다, 최 선생 딴소리 하지 마!!!”
“으하하하.....어머니처럼 고집만 안세면.....”
중년의 아주머니가 약 봉지를 받고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약국을 떠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보기 좋던 그 서글서글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몸 안 좋아?”
그가 드링크를 하나 내밀며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세희는 어때요? 괜찮아요?”
“하루 종일 잠만 자....밥도 안 먹고......휴,,,,,”
그의 표정에는 나에게 토해낼 물음들이 잔뜩 드리워 있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요?”
“아니.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어서.....내가 마무리 했어. 그나저나 도통 아무것도 안 먹어서.....계속 영양제만 좀 놔주고 있어....”
그가 내어준 드링크를 한 모금 마시니 알 수 없는 쌉싸름한 한약 맛이 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마치 깊은 상처에 바른 약처럼 그 맛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너...그날.....”
그가 말을 땠다.
“그 새끼 살아있어......”
“뭐...뭐?”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 새끼.....파타야에서 안 죽고......살아 있다고.....”
쉽게 나오지 않던 그 말을.......나는 다시 힘을 주어 그에게 말했다.
나를 보며 잠시 멍하게 있던 그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약국 문을 열고 나가 팻말을 [외출중]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약국 문을 잠그고 밖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놓았다.
햇볕이 들어와 환하게 밝히던 약국 내부가 조금 어둡게 변했다.
“너.....너 지금.....그게 무슨 말이야?”
급하게 돌아온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내게 물었다.
“그날.....우리 여기서 저녁 모임 있던 날....수연이........그렇게 한 놈들.......황 경태 짓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세희.....납치해서 그렇게 만든 것도 그 새끼가 꾸민 짓입니다.”
그는 내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기억조차 하기 싫던 지금까진 내게 있었던 그 일들을 그에게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정 수연이 그날 어떻게 그들에게 당했는지...
세희는 어떻게 그들에게 끌려가서 그 창고에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아버님에게 접근해 협박한 사내와.....갑작스런 아버님의 죽음이 그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황 경태가 이번 주 어느 날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내말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갑갑한 그 정적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았다.
단지.....주먹을 꼭 쥔 그의 손이 떨렸고, 그가 쥐고 있던 하얀 볼펜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가의 핏줄 또한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치...치우야.........어떡할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여야지........’
그의 물음을 듣자마자 나는 대답을 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만 커다랗게 외칠 뿐, 입 밖으로 퍼져나가진 않았다.
나는....끝내.....은비가 당했던 그 참혹한 일들은 그에게 모두 털어 놓을 순 없었다.
그리고....조금 쉬어 버린 아내의 절규가 메아리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제발.......하지마......흐으윽.....]
뒤로 완전히 젖혀진 시트위에 누워있는 아내의 몸에 황 경태가 올라타 있었다. 아내가 몸을 뒤 틀 때 마다 열려있는 블라우스 사이에 드러난 새하얀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으....으아......]
황 경태의 엉덩이가 벌어진 아내의 다리 사이에 깊게 들어가 박혔다. 그러자 한쪽 시트를 쥐고 있던 반짝이는 매니큐어를 바른 아내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으....좋다.....으........너는.....그때나 지금이나......똑 같다.......니 보지.......]
아내의 속살에 깊게 박혀 있는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오래 느껴 보려했는지, 아내의 몸에 딱 달라붙어 한동안 미동도 없던 황 경태의 엉덩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흐윽....]
그러자 아내의 입에서 참고 있던 신음과 흐느낌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몸을 천천히 움직이던 황 경태가 두 팔을 시트 속으로 넣더니 아내의 허리를 자신에게 바짝 끌어안고서 자신의 얼굴을 아내의 한쪽 뺨에 쳐 박았다.
[아아앙...]
그러자 시트에 누워 황 경태의 몸을 받아들이던 아내의 얼굴이 뒤로 완전히 젖혀지고, 반대로 황 경태의 두 손에 감긴 허리는 위로 들려져 활시위처럼 휘어졌다.
완벽한 자세를 잡은 황 경태의 몸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듯 차가 요동쳤다.
[아! 아! 아! 아!.....아앙!!!]
아내가 토해내는 소리엔 눈물이 뒤섞인 흐느낌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은비야! 으아.......으........씨발.......]
벌어진 아내의 한쪽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덜렁거리던 아내의 하이힐이 아래로 떨어졌다.
은은한 핑크색 매니큐어가 완벽하게 발려진 아내의 발끝이........금방이라도 부러질 듯...안쪽으로 완전히 오므려져 있었다.
[아아앙!!!!]
“죽이자.....치우야....우리 그 새끼....죽이자......”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눈가에 이슬이 여미어 있는 듯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이 어른어른 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