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rance (2)
끊임없이 귓가에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소리에 깊게 감겨 있던 눈이 스르륵 열렸다.
침실은 어둠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주고받는 그 소리가 어둠을 뚫고, 조금씩 선명하게 들려왔다.
끊이지 않는 그 소근 대는 소리 때문에 단잠을 깨어버려서인지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짜증까지 밀려왔다.
그리고 내 머리에 무게감 있는 무엇인가로 얻어맞은 듯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바닥에 두 발을 디뎠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닥이 냉골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냄새......
아내의 좋은 향기로 항상 가득하던 이 공간에 몹시 기분 나쁜 비릿한 향이 스며있었다. 숨을 쉴 때 마다 아내의 향기와 그 비릿한 향이 번갈아가며 내 코를 타고 들었다.
침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저 작은 틈을 타고 듣기 실은 그 소리가 침실로 울려 펴진 것 같았다.
침실 밖에서 들려오는 소근 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지만, 그 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뭉개져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단지.....두 사람의 대화라는 것과 둘 중에 하나는 거친 사내의 목소리라는 것뿐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한발씩 앞으로 나아 갈 때 마다, 차가운 얼음 위를 걸어가는 것 같아, 그 한기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조금 열려 있는 침실 문을 빼꼼히 열어 조심스레 거실을 들여다봤다.
[치우는 지금 자?]
[네...그이는 벌써 깊은 잠에 빠졌어요]
[그래? 흐흐흐.....]
어둑어둑한 거실 소파에 남녀가 연인처럼 사이좋게 붙어 앉아 있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자신의 한쪽 머리를 기대고선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치우 있는데 집에서 이래도 괜찮은 거야?]
[뭐...어때요......우리가 이러는 거 비밀로 하면....그이는 절대 모를 거야....]
여자가 교태를 부리며 남자의 몸에 바싹 다가가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하늘거리는 슬립만 걸친 채, 남자이게 반쯤 안겨 있는 여자는 아내였다. 화장을 얼마나 짙게 했는지 어두운 거실에서도 아내의 얼굴에 발려진 진한 색조가 옅은 빛에 반사되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남자가 아내의 허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무릎위로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내의 얼굴이 내가 훔쳐보는 침실 문 쪽을 향해 있었다.
[아음....]
남자가 아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곤 속살이 비칠 듯 한 얇은 슬립위에 탐스럽게 솟아 있는 아내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짙은 화장에 숨겨진 흐릿한 아내의 두 눈이 감기고, 그와 반대로 새빨간 아내의 입술이 크게 열려 뜨거운 신음을 토해냈다.
[아아....음.....]
남자가 아내의 한쪽 목덜미를 자신의 입에 담아 진하게 빨기 시작했다.
아내가 입고 있던 슬립을 거추장스럽다는 듯 급하게 위로 벗어버리자 새하얀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남자가 아내의 가냘픈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위로 살짝 들어 올리자 아내의 엉덩이 아래에 깔려 있던 남자의 성기가 단번에 위쪽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아내는 몸을 조금씩 움직여 자신의 몸속에 남자의 성기를 맞추기 시작했다.
[으음.....아앙......]
아내의 속살이 이미 넉넉하게 젖어버린 것 인지 남자의 성기가 아내의 몸속으로 조금씩 사라졌다.
[은비야....오늘은 안에다 싸도 돼?]
[아.....당신 마음대로 해......아음....]
남자의 물건이 아내의 몸속에 완전히 사라지자 남자가 아내의 얼굴을 뒤로 돌려 아내의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길게 삐져나온 새빨간 두 혀가 빠르게 뒤섞이는 모습이 너무나 음탕하게 보였다.
[이......씨팔년!!!]
정적을 깨는 나의 외침이 들리지도 않는지, 사내의 몸에 올라타 있는 아내의 몸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남자의 성기가 아내의 몸속에 깊게 박혔다가 빠져 나올 때 마다 아내의 속살에서 흘러나온 허연 물이 거실 바닥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오빠!!! 오빠!!!.............형부!!!”
흔들리는 내 몸이 느껴졌다.
화장기 하나 없는 투명한 얼굴이 큰 눈을 깜빡이며 나를 향해 있었다.
“형부....꿈꿨어요?”
내 몸을 흔들어대는 여자는 처제였다.
“은비는? 은비는?”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고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언니 꿈꿨어요? 언니가 꿈에서 무슨 나쁜 짓했어요? 형부 지금 화 난거 같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던 처제의 눈빛이 조금씩 변해갔다.
“지금.....몇 시야?”
“9시 조금 넘었어요. 언니는 출근했어요. 형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안 깨우고.....애도 아니고 무슨 꿈을 이렇게.....”
나를 보는 처제의 커다란 눈동자가 아내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으음....너무 맛있다....형부 이거 먹어봐요.”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처제가 아내가 해놓은 새우튀김 하나를 맨 손으로 집어 내 앞에 내밀었다.
“내가 먹을게....처제 먹어.”
“아이잉.......”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처제가 집어준 그것을 말없이 받아먹었다. 그러자 처제는 항상 아내가 그랬듯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 일본에서는 어떻게 지냈어? 어머님은 잘 지내시고?”
“음......처음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게 재미있었는데요. 그것도 하다 보니 질려요. 그리고 언니도 너무 보고 싶고.....형부도.....히이........둘이 어떻게 신혼생활 하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엄마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엄마는 잘 지내세요. 이모하고 그렇게 지내는 게 좋은가 봐요......”
‘자매가 어쩌면 이렇게.....비슷할까?’
미소를 머금은 채, 조근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처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긴 건 조금 다르지만,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는 아내와 똑 닮아 있었다.
처제를 처음 봤을 땐, 그냥 활발하고 예쁜 어린 여대생으로만 보였는데, 지금 처제의 모습은 결혼을 곧 앞둔 그런 아가씨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처제를 보고 있자니 자꾸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빠. 일어났어요?
너무 피곤해 보여서 안 깨우고 먼저 출근해요.
은설이하고 식사하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아침에 오빠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걱정돼요.
꼭 아침 드세요.....사랑해요. 여보]
아내가 출근해서 보내온 메시지가 떠올랐고.......그리고....간밤의 그 말도 안 되는 꿈과......
[다음 주에 한국 들어간다.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잃어버렸다고 했던 아내의 스마트폰에 도착해 있던 황 경태의 그 메시지까지....
그렇게 원치 않았던 모든 일들이...너무나 잔혹하게도 이제는 내게 완전히 펼쳐져 있었다.
몇 달 전 워크숍에서 양 선생이 목격했던 황 경태와 아내의 일이 사실이었고,
황 경태에게 사주를 받은 그 승합차의 사내들이 정 수연과 세희를 납치해 강간하고.......아내까지도 처참하게 윤간했다.
그리고 그들은 처제의 신상까지 이미 알고 있고, 일본에 숨겨져 있던 그 처제가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내 앞에 이렇게 앉아 있었다.
파타야에서 죽은 줄 알았던 황 경태가 살아서 이번 주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런 그가 아내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아내가 황 경태에게 양 선생을 해하기 위해 부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이건.....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부정한 거래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가슴이 조금씩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형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나를 부르는 처제의 목소리에 또다시 갑갑한 현실로 돌아왔다.
“처제....안 바쁘면....카페서 일 좀 할래?”
“네?”
“요즘....바빠서....좀 도와줄래?”
“정말요? 그래도 돼요? 나 그런 거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냥....조금만 도와주면 돼. 힘들면 쉬엄쉬엄.....”
처제의 까만 눈동자 속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숨을 한번 깊게 내쉬고 카페 문을 열었다.
“오빠!”
카페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Bar에 있던 미나가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며칠 동안 잠을 못잔 듯 반쪽이 되어 있었다.
미나의 얼굴을 보자 산속 허름한 창고에 납치되어 침대위에 알몸으로 묶여있던 세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내 연락을 받고 그 창고로 찾아 온 진욱 형의 뒤에......미나가 서있었다.
“오빠!!!.....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아니면 걱정이 된 건지 알 수 없는, 나를 보던 미나의 표정이 일시에 변했다.
“어...어.....”
“미나야!!!”
내 뒤를 따라 카페로 들어오던 처제가 미나를 보자 반가운 듯 소리쳤다.
“어? 은설아....언제 왔어?”
“잘 지냈어?”
처제가 나를 가로질러 미나가 있는 Bar로 급하게 향했다.
“어머....미나야. 너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히히.....정말? 너는 더 예뻐졌다. 몸매도.....”
미나가 두 손으로 처제의 뺨을 한동안 어루만지다가 그 손이 처제의 몸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마 이전과는 다르게 보기 좋게 살이 오른 처제의 몸을 확인하려는 것 같아보였다.
다행이었다.
그날의 일에 대해 물어볼게 뻔했던 미나를 나는 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미나와 처제는 꼭 붙어 있었다. 그 동안 밀려 있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따금씩 미나의 시선이 나를 향해있었다.
오후에 나는 가볼 곳이 있었다. 아니...가야할 곳이 있었다.
조급하게 마음이 앞서니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갔다.
반짝이는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와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1학년 3반 윤 승현 인데요.
오늘 양 희진 선생님 학교 안 왔어요.
아프데요.
그래서 이 은비 선생님이 5반 임시 담임해요]
녀석의 문자에 까맣게 잊고 있던 양 선생이 떠올랐다.
녀석의 메시지에 답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대신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치우야. 어떻게 된 거야?]
[치우야? 일어났어?]
[치우야. 연락 좀 주라....]
[미나 한테 연락 왔는데...오늘 출근 안했다면서? 아픈 거냐?]
[좀 쉬고.....몸 괜찮아지면 연락 줘]
[세희는 이제 좀 괜찮아. 아직 신고는.......우선 너한테 자세한 이야기 듣고.....하려고....]
그날 이후 진욱 형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2시쯤에 약국으로 갈게요. 가서 이야기합시다]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있던 숫자 1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바로 회신이 왔다.
[그래. 기다릴게]
어쩌면 오늘.....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아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모든 일들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모두 털어놓을까?
그리고 아내가 처제를 보호하기 위해 숨겨 놓은 것처럼....나도 아내를.......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을까.....
그러면 아내는.....
미나와 대화하던 처제의 시선이 갑자기 나와 마주쳤다.
처제는 너무나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처제의 그 예쁜 얼굴을 보며 내가 떠올린 것은......
뜻밖에도,
그 차 조수석에서 아무렇게나 옷이 풀어헤쳐진 채, 황 경태의 몸에 깔려 버둥거리던 아내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