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77)

Hindrance (1)

“음......형부......”

처제가 내게 달려와 매달리다 시피 안긴 채, 나를 보며 생글거리고 있었다. 

처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두 달이 훌쩍 넘어 있었다. 

아버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고 아내와 결혼을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장모님은 처제를 데리고 도쿄로 떠났었다. 그 당시 처제는 일본으로 가기 싫어했지만 아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그렇게 떠났다.

처제의 얼굴이 좋아 보였다.

무용전공인 처제는 항상 체중에 민감했었다. 내가 보기엔 살을 더 뺄 곳도 없는데, 항상 칼로리와 식이요법을 챙겨가며 민감하게 몸매 관리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처제는 예전과 달라져 보였다. 

예전에도 예쁘고 몸매가 좋았지만, 지금은 얼굴에 살이 조금 붙어, 내가보기엔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형부....나 보고 싶었죠? 응?”

처제의 얼굴이 내게 바싹 다가와 여전히 생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단지 내게 안긴 채 흔들리는 처제의 허리를 살며시 잡고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처제의 이런 모습을 예전에도 본 듯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외출에서 돌아온 처제는 항상 아버님에게 이렇게 애교를 부르며 인사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은설! 너 지금.....왜 왔어. 내가 내년에 복할 할 때까지 오지마라고 했지!” 

아내의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내게 매달려 있는 처제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왜 자꾸 그래? 나 이제 거기 싫단 말이야. 지겨워.....”

“내가 몇 번을 말했니? 왜 언니 말 안 들어?”

“그저께 형부하고 통화했어. 형부도 나 보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아내를 쏘아 붙이던 처제가 슬며시 내 뒤로 몸을 숨겼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겠지만....,,,.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처제......그리고 나의 이 뜻밖의 대치는......적막 속에 얼마간 지속되었다.

거실 테이블에 커피와.....카페에서 가져온 까만 쿠키들이 접시에 보기 좋게 놓여 있었지만, 거실의 분위기는 테이블위에 모습과는 달리 무척 냉랭했다.

아내는 여전히 처제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고, 처제는 그런 아내의 시선을 피하고 만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내와 처제의 갈등이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오직 내 머리 속에는 조금 전 드레스 룸에서 보았던 그 동영상만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잔뜩 주눅이든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의 얼굴을 빤히 보며 웃던....그 사내의 얼굴.... 

“이 은설. 며칠 쉬다가 다시 돌아가. 그리고 내년에 복학할 때 와....”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나 냉정했다. 

“치이....치사하게....언니. 그러는 거 아니야. 신혼인건 알지만......아무리 그래도......”

처제의 말이 답답한 듯 아내의 깊은 눈가가 서서히 잠겼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형부.....나 일본가기 싫어요....나 여기 조용히 있을게요.....방해안하고....그러면 안돼요?”

“아......”

나를 향해 있는 처제의 눈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만 했다.

‘은설아......나도 지금 미칠 거 같다......’

머릿속에서 혼잣말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거실에서의 그 불편한 자리가 언제 끝이 난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침실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아내도 내 곁에 함께 있었다. 

[다음 주에 한국 들어간다.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머릿속에 동영상에서의 사내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릴 뿐이었다.

“당신 학교.....당분간 쉴래? 그럴 수 있어?”

“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었다.

천정을 멍하니 보다 흘러나온 말에 아내는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당신....힘들어 보여서 좀 쉬다가.......”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아내의 부드러운 팔이 내 가슴을 감쌌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바짝 내게 다가왔는지 아내의 뜨거운 숨소리가 내 귓가를 조용히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으......개새끼!!!!”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지만, 무슨 꿈을 꿨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그 꿈이 무척 견디기 힘 들었다는 건 추측 할 수 있었다. 

나로 인해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 놀랐을까봐 옆을 돌아봤지만 아내의 모습은 침대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모든 불이 꺼져 깜깜했다. 하지만 저기 끝에 있는 작은 방에서 불빛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거실을 몇 발 걸어 그곳으로 다가가자.....

재잘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어여쁜 작은 파랑새가 서로 대화를 하는 그런 소리같이 들렸다.

작은방에서 아내와 처제는 그렇게 재잘거리며 둘만의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간히 아내와 처제의 웃음소리도 번갈아 가며 들려왔다.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던 아내와 처제가......불과 몇 시간 만에 예전의 사이좋은 예쁜 자매로 또다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다시 그 지옥 같았던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방문을 잠갔다.

아내가 작은방에서 나와 침실에 없는 나를 발견하거나.....드레스 룸으로 나를 찾으러 오는 것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TSA락이 잠기지 않은 채, 흐트러져 있는 아내의 캐리어를 활짝 열어젖혔다.

포켓에 박혀 있던 스마트폰의 버튼을 누르자 빛을 발해 어두운 드레스룸을 밝혔다. 그리고.....마지막에 보았던 그 영상이 멈춰 있었다.

사내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을 웃으며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내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피부는 거칠게 변해 있었고, 얼굴에 무엇인지 모를 없던 흉터도 몇 군데 보였다.

나이트모드로 바뀐 카메라 화면이 색상은 알아볼 수 없이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잘 지냈어? 마지막으로 본 게 파타야 힐튼에서 우리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였으니까....반년이 지났지 아마....]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이런 산속에까지 와서 워크숍을 하는 모양이지?]

[왜......이러세요.....]

아내가 고개를 돌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하하.....치우하고 결혼 했다면서? 왜....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 미리 알았으면 부조라도 했을 건데.....]

[하아......]

사내의 말에 아내 입에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니가 연락을 하도 피하니까.....내가 애들 보내서 서로 불편하게 됐잖아. 

내가 그 새끼들한테 정중하게 말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는데.....불편하진 않았어? 그 새끼들 무식한 새끼들이라서 걱정을 좀 했는데....]

사내의 말에 하얀 승합차 뒷공간에서 두 사내 틈에 뱀처럼 엉켜있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나도 파타야에서 고생을 좀 했어. 일이 좀 꼬여서.....씨발.....죽을 뻔했지. 그 좆같은 일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널 만나러 왔을 건데......]

표정변화 없이 말을 이어가던 사내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오늘도 너 만나려고 간신이 온 거야. 아직 처리할게 있어서 며칠 있다가 태국으로 돌아가야 해.]

[제발.....이러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조금 떨렸지만, 차분하고 담담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이 하나있더군...이 은설? 무용한다고?]

사내를 바라보던 아내의 깊은 눈매가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 새끼들이 보낸 사진하고 동영상을 보니.....똑 닮았더군....너하고. 자매라서 그런가......부친은 참 좋았겠어. 너희 같이 보기 좋고 누구나 탐내는 딸이 둘씩이나 있다는 게......]

[흐윽.....]

아내의 손이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줄이려는 듯 얼굴로 향했다.

[어? 왜 울어? 걱정하지 마. 내가 필요한건 너야. 너 하나면 되. 

그리고......너는 치우하고 결혼생활 그대로 해. 나는 너희 가정을 깨고 싶진 않아. 왜냐하면.....나는 인간적으로 치우도 좋아해. 너를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너에게 두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 

너 자신을 두 남자에게 공평하게 공유하는 거지......너는 치우와 결혼생활 성실히 하고.....그리고 나에게도 그만큼의 노력을 하는 거야.

나는 너를 독점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니가 무너질 걸 알기 때문에....너를 배려하는 거야. 

어때?

그럴 수 있겠어?]

사내를 보는 아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둘이 시선이 서로를 향한 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내의 몸이 순간 반대편으로 움츠려 들었다.

사내의 손의 아내의 뺨에 닿았다 떨어졌다.

[너 술 마셨지? 니가 차에 탈 때 술 냄새가 좀 났는데.... 볼도 따뜻하네? 

술 많이 마셨어? 선생들을 이런데 와서 술 어떻게 마셔? 아마 너보고 가만히 둘 남자 선생들은 없을 건데.....술 처먹고 찍접되지 않아?

우리 마지막으로 한 게......힐튼 주차장 내 차에서였지? 그날 아침까지 호텔에서 밤새도록 하고.....내가 저녁에 다시 찾아 갔잖아. 기억나?

니 살 냄새와 보지....그리고 니 소리까지 잊은 적이 없다...]

[아아아.....]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단번에 아내가 있던 조수석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놀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엉거주춤 한 자세로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내는 시트에 몸을 끝가지 기댄 채. 사내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잠시 후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조수석 시트가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이어서 꼿꼿이 세워져 있던 시트 등받이도 뒤로 기울어져 갔다.

시트에 앉아 있던 아내의 몸이 뒤로 기울어져 거의 누워버린 상태가 되어버렸고 아내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듯 두 팔을 가슴 쪽으로 바짝 모으고 있었다.

[내가 그날 아침에.....호텔에서 말했지? 현실을 받아들이라고.......그리고.......즐기라고......]

사내의 몸이 아내를 덮쳤다.

사내가 한손으로 아내의 목을 끌어않고 다른 손으로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흐흐윽......]

사내의 상체 옆으로 흘러내린 아내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에 바짝 다가가 무엇을 맞추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몇 번을 움직이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조금씩 들리던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멈췄다.

찌푸려진 눈을 꼭 감은 아내의 얼굴은 고정되어 있었으나, 사내의 얼굴은 여러방향으로 깊게 각도를 돌려가며 한참을 움직였다. 집요하리만큼.......그렇게....

[하아.....하아.....하아....]

아내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온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묻혀 아내의 옅은 그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의 뺨을 어루만지던 사내의 손이 아래로 향했다. 아내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배를 지나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던 허벅지 사이를 타고 들어갔다. 

[흐흐흐......]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커트 사이에 깊게 들어가 있는 사내의 손의 움직임에 아내의 몸이 몇 번 떨리듯 들썩였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 같던 손의 움직임이 조금씩 변해갔다.

[아...하지마.......]

애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흐흐........너.....역시.......여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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