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19)
가파른 비탈길을 기어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몇 번을 미끄러져 간신히 오르자 도로 한쪽에 주차된 차가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비탈길 아래를 바라봤다.
한 여자가 낑낑대며 그곳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젖가슴이 완전히 드러난 것도 모르는 듯 힘겹게 그곳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선택의 순간...
수로에 처박혀 있던 차 안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여자를 목소리를 듣고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내 마음이 몇 번을 오락가락했다.
나는 비탈길을 기어오르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내민 손을 놓칠세라 꼭 부여잡았다. 힘을 주자 여자의 몸이 위쪽으로 쭉 끌려 올라왔다.
“하아....하아.....하아....흐윽.....”
도로 가장자리에 올라선 여자의 입에선 가뿐 숨소리와 흐느낌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스커트만 걸쳐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출렁이는 자신의 맨가슴을 두 손으로 급하게 가렸다.
나를 따라오던 여자는 다소 높은 내 차에 올라타는 것이 버거운 건지 조수석 문 앞에서 망설였다.
나는 그런 여자를 안아 올려 조수석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조수석 시트 위에 여자의 몸속에 담겨있던 사내의 허연 흔적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여자는 자신의 몸속에서 삐져나온 그것이 시트를 적시는 것을 확인하고는 무척 당황해했다.
운전석에 올라타고서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차 내부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여자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숨소리만이 차 안을 채우고 있었다.
“괜찮아요?”
나는 노력했다.
내 감정을 여자에게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다. 하지만 내 입을 떠난 그 말은......완전히 내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실내등을 켰다.
차 안에 노란 불빛이 켜지자 달빛에 어렴풋이 보였던 여자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의 뺨이 사내에게 맞았는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여자의 젖가슴 이곳저곳이 사내의 입술 흔적이 남아 붉게 변해있었다.
여자의 몽우리 진 젖꼭지는 크기와 색상을 볼 때 출산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허벅지는 무엇인가에 긁혀 핏자국이 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모습만으로도 차 안에서 사내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입고 있던 한쪽 손목이 길게 늘어난 내 카디건을 벗어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든 여자는 빠르게 입고서 자신의 드러난 맨몸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병원으로 갈까요? 아니면.....경찰서로 갈까요?”
나의 냉정했던 목소리가 처음보다는 다소 누그러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요...아니요....여기서 빨리 가요....빨리......제발요....”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가 시종일관 불안하게 떨렸다.
나는 이 여자가 왜 수로에 처박혀 있는 하얀 승합차에 타고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지금 내 차....조수석에 타고 있는 여자가 바로 양 선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재수 없게....학교에 미친년 하나 들어와서.....지가 술집 년이야? 학교에서 이리저리 붙어먹게.....더러운 년......내가 본거 이야기 다하면 저년은 더 이상 학교 못 다녀.......내가 다 말할까? 야! 이 은비! 말해봐!!!]
아내에게 고함을 질렀던 이 여자의 목소리가 자꾸만 메아리쳐 들려왔다.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아내를 매섭게 몰아붙이던 여자의 눈빛과 표정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내 차는 깜깜한 국도를 한동안 지루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타이어가 반복적으로 아스팔트를 감아 돌아가는 소리와......엔진소리만이 한동안 들려왔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내가 내어준 카디건으로 자신의 몸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여미며 말했다.
“경주로 가다가.....사고 나는 거 보고 차를 돌렸어요. 병원 안가도 되겠어요?”
“괜찮아요....괜찬아요...미안한데요....집까지 좀 태워주실래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집이어딘데요?”
내 물음에 여자가 작은 목소리고 위치를 알려줬다.
여자가 알려준 곳은 아내가 일하는 학교 근처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였다.
차 안에 불을 밝히고 있는 시계가 새벽 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는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아 보였다.
여자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한동안 만지작거리더니 자신의 귀로 가져졌다. 발신음이 얼핏 들리고 있었다.
[강...강선생.....자고 있었지? 미안해......
그게......집에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지금 집으로 가는 중이야.....
아침에 우리 반애들 좀 챙겨줄래?
아침에 주임선생님한테는 내가 전화를 따로 할 거야...]
스마트폰에서 놀란 여자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응...그래....괜찮아....아니야 아니야.....
응....부탁 좀 할게....고마워....]
여자가 전화를 끊고는 큰....한숨을 쉬었다.
통화한 강 선생이라는 여자가.....조금 리조트 Bar에서 이 여자를 끌고 들어갔던 그 ‘강 성생’ 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신가 봐요?”
“네? 아......”
갑작스런 나의 물음에 앉아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흐렸다.
“우리 와이프도 교사거든요.”
“네?”
“사실은 우리 와이프가 반애들 데리고 경주에 체험학습을 갔어요. 집에 혼자 있다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말도 안하고 경주로 가다가 사고난거 본겁니다.”
나는 깊게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집이 그쪽이시면....잘하면 아실수도 있겠네요. 그 아파트 근처에 아내 학교가 있거든요. 소린중학교라고....와이프가 거기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요.
이 은비라고 영어담당하고 있어요. 1학년 2반 담임이고.....”
나를 보던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속도를 높이며 달리던 차가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초고층의 아파트 건물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차가 멈추자 여자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를 했다.
“괜찮아요.....”
“그리고...지금...가진 게....없어서.....연락처.......주시면......보답할게요.....그리고 이 옷.....”
“아니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단호한 한마디였다.
그런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던 여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파트 현관 입구로 주위를 둘러보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볼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
여자가 차에서 떠나, 아파트 현관으로 사라진지 한참이 지났지만 내 차는 그곳에 그렇게 서있었다.
나는 눈을 꼭 감고서, 시트에 깊게 몸을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잠이 쏟아졌다....그리고 온몸이 아팠다.
몸이 아픈 건 참을 만했지만.....머리가.....머리가.....깨질 것 같았다.
이 모든 게....꿈인 것 만 같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아내의 좋은 향기가 깊게 배어있는 안방의 침대였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꼭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내 바램과는 달리.....나는.....여자가 떠난 아파트 주차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주머니에 이리저리 박혀 있던 것을 하나씩 꺼냈다.
하얀 승합차에서 들고 온....사내들의 스마트폰과 은색 디지털 카메라.....그리고 블랙박스.....
디지털 카메라를 켰다.
파일을 열어 가장 마지막 파일을 실행했다. 그러자 흔들리는 화면의 영상이 보였다.
[이 씨발년아! 가만히 있어!!!]
[아악....왜 이러세요....살려주세요....제발....]
찢겨진 옷 사이로 여자의 맨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사내는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고 여자는 그 사내의 손을 힘겹게 밀어 내고 있었다.
[야이새끼야! 차 세워!]
[미친 새끼야. 좀만 기다려....]
[개새끼....니가 먼저 따먹고...나는 씨발놈아!! 차 당장 세워 개새끼야!!]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내가 운전석으로 다가가자 차가 한번 휘청거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저리 가....운전하고 있잖아...]
[차 세우라고....개새끼야!!!]
달리던 차의 속도라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들리지 않던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악!!]
날카로운 여자의 소리가 들리자 앞쪽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뒤를 향했다.
승합차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여자가 금방이라도 차에서 뛰어 내릴 것 같았다.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졌는지 흔들리는 차 천정만 보였다.
[이.....미친년이!!!!]
[으아아!!!]
[쾅!!!]
남자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카메라에서 플레이되던 영상이 멈췄다.
영상은 사고 직전의 영상이었다.
카메라에 있던 또 다른 파일을 실행했다.
[썅년아!!! 가만히 있어. 뒤지기 싫으면.....]
[하아....하아...하아....하지마!!!!]
좀 전 내차에 타고 있던 여자의 발버둥 치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찼다.
사내가 여자의 뺨을 몇 차례 후려쳤다.
[씨발년이....가만히 있어. 보니까....나이도 있는 년인 것 같은데....처녀처럼 지랄이야? 개 같은 년아!!
하긴 이런 년들이 맛은 좀 떨어져도....한번 하고나면 좋아서 침 질질 흘리지.....]
사내가 여자의 헐렁한 옷을 잡고 단번에 찢었다. 그러자 여자가 하고 있던 검은 브래지어도 사내에 손에 따라 한 번에 뜯겨져 나왔다.
[씨발....아줌마...표시 안나 게 해줄 테니까......협조 좀 해라.....흐흐흐......]
사내의 얼굴이 덜렁거리는 여자의 젖가슴을 향했다.
“미친 새끼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디지털 카메라 위의 버튼을 눌렀다.
[우와.......이년 봐라.....씨발년....뭐야 이게....]
지금까지 보았던 영상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상이었다.
[씨발...,,,이년 얼굴은 연예인인데........몸은.....완전 창녀네....뭐야 이거.....흐흐흐.....]
카메라 화면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냘픈 여자의 두 발목이 양옆으로 묶여 활짝 벌어져 있었다.
화면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 허벅지를 지날 때 즈음.......거뭇거뭇한 수풀 사이로 여자의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새빨간 무엇인가가 여자의 성기 쪽에 닿아 있었다.
[씨발....너 이런 문신 본적 있어? 우와.......완전 작품이구만.......]
여자의 성기에 머물러 있던 화면이 몸을 타고 또다시 천천히 올라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내 손에 들려 있던 카메라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