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77)

Deception (18)

리조틀 입구를 벗어난 아내가 주차장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내의 발걸음이 가끔 휘청거렸지만 로비 안에서 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주차되어 있던 아내의 하얀 차 라이트가 환하게 한번 반짝였다. 

아내가 그 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문이 열리자 내부가 환해지더니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리고 몇 초 후, 차 내부를 밝히던 노란 빛이 희미해져 이내 까맣게 변해버렸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아내의 차 꽁무니 붉은 미등이 들어왔다.

‘아내가 지금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려는 것인가?’

내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는 보문호가 보이는 아래쪽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아내를 쫓아가야 한다!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화단에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내 발길에 몇몇 예쁜 꽃들이 엉망으로 짓눌렸다. 

울타리를 두어 개 뛰어넘자 카페 앞에 주차해 있던 내 차가 보였다.

카페 옆 테라스에는 여전히 두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뛰어오르듯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시동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라이트가 켜지자마자 굉음을 내며 차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소리에 테라스에 있던 두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향해 있었다.

리조트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나가자 다행히 아내의 차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붉은 등을 켠 채..... 

나는 차 속도를 줄여, 처음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주차했던 그곳에 차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시동을 껐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정면에 아내의 차가 보였다.

아내가 타고 있는 차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내가 차 안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무척 걱정되었다.

참아 왔던 감정에......또다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차에 달린 시계의 숫자가 변해 방금 자정이 되었다.

아내가 차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처음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다.

뒷일은 신경 쓰지 않고 지금 아내에게 달려 가야하는 것인가......초조하게 그 생각만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조용하던 리조트 입구에서 환한 불을 밝힌 승합차 하나가 서서히 주차장 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승합차가.....불과 나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곤 앞쪽을 환하게 밝히던 라이트가 꺼졌다.

이상했다.

승합차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내 시선은 아내가 타고 있는 차를 떠나....한참 동안 그 승합차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승합차 뒷문에서 한 사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내렸다. 그가 리조트 현관 쪽을 잠시 응시하다가 승합차 뒤쪽으로 갔다.

그가 승합차 뒤 나무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을 막고 있는 나무 때문에 그의 얼굴이 어둠에 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물건을 잡고 한참 동안 소변을 털어내던 그가 담배를 끄려는지 앞쪽으로 몇 번 튕겨내자 붉은 담뱃불이 몇 번 환하게 변해 그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내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착각일 수도 있다....

그가 다시 승합차에 올라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또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12시 30분......

내 머릿속에선 지금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정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 

조용하던 승합차가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내 시선도 그 승합차를 따라갔다.

언제 나타났는지 한 여자가 주차장 쪽에서 무엇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아내인 줄 알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빨간 불을 밝히던 아내의 차 미등이 꺼져 있었다. 

“하아.....”

한숨이 터져 나왔다.

흰 승합차에 정신이 팔려 아내의 차에서 시선을 놓친 것이었다. 지금 차 안에 아내가 여전히 타고 있는지.....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흰 승합차가 주차장에서 두리번거리던 여자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이내 멈췄다. 그러자 그 여자가 고개를 돌려 그 승합차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조수석 쪽으로 다가가 뭐라고 말을 하는 듯 보였다.

갑자기....승합차 뒷문이 열리더니.....조수석 창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여자의 긴 머리칼을 낚아채 끌고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승합차 안으로 끌려 들어가 다시 차문이 닫힌 것이 불과 1~2초 상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핸들을 꼭 쥐고 있던 두 손이 떨려 차까지 조금씩 떨리는 것 같았다. 

여자를 끌고 들어간 흰 승합차가 크게 돌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승합차 라이트가 꺼져있어서 차 넘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승합차는 처음 주차했던 곳에 차의 앞부분부터 들어와 멈췄다.

아내의 차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당장 달려가 차 안에 아내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움직일 수 없었다. 

승합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흔들림이 심해져 차가 요동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있는 차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칠게 요동치던 차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흔들리는 그 승합차를 보고 있으니 흐릿하던 기억 속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결합해........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승합차의 움직임은 일이십 분이 훌쩍 넘게 계속 이어졌다. 

한동안 그렇게 흔들리던 승합차가 시간이 멈춘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마치 사람이 타고 있는 차가 아닌 것처럼..... 

갑자기 승합차 운전석 창문이 아래로 내려갔다. 한 남자가 하얗게 둘둘 말린 무엇인가를 창밖으로 몇 차례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 하얀 것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져 내가 주차해 있는 앞쪽에 굴러다니며 지나갔다.

사내가 내던진 하얀 그것은 다름 아닌 뭉쳐있는 휴지였다.

아내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지 걱정이 됐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아내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승합차 라이트가 켜지고 그 차가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흰 승합차의 뒤에서 검은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차는 급히 주차장을 떠나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찾아 헤매던.......그 실체와 연결된 작은 실마리를 나는 꼭 쥐어야만 했다.

‘어쩌면 이것이...마지막 기회다...’

시동을 걸었다. 

벌써 저만치 멀어져.....리조트 입구까지 가 있는 그 승합차 뒤를 나는 쫓기 시작했다. 

그 승합차는 내가 리조트에 올 때 왔던 그 길을 반대로 계속 달려갔다. 

보문호 입구가 보였고, 경주 시내를 관통해 첨성대를 지나쳤다. 그리고 어느새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그 국도에 올라있었다.

이따금씩 내 차를 지나치던 밝은 불빛을 본지 한참이 지났다. 도로에는 멀리 앞서 달려가는 흰 승합차와 내 차 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똑바로 달리던 그 승합차가 한번 휘청거렸다.

나는 놀라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승합차가 또다시 휘청거리려 중앙선을 몇 번 넘나들더니....급하게 오른쪽 도로 밖 아래로 승합차의 불빛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급브레이크를 밝고선 차의 불빛이 사라진 곳으로부터 멀찌감치 뒤에 차를 세웠다.

내 심장이 요동쳤고. 손에서는 계속 땀이 차올랐다.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쉽게 결정내릴 수가 없었다.

멈춰있던 내 차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승합차가 사라진 곳으로 접근하자 도로에 까만 스키드마크가 굵은 뱀처럼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스키드 마크가 사라진 곳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그러자 인적이 드문 국도가 암흑처럼 변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과속카메라나 방범 CCTV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새벽의 공기가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장갑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깜깜한 도로 중간에서 그것을 찾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비탈진 곳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흰 승합차가 시멘트로 된 넓은 수로에 처박혀 있었다.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으.........으.........”

운전석 유리창이 깨져 그 사이로 한 사내가 끼인 채, 가슴까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스마트폰 불빛을 그 사내의 얼굴에 비췄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새빨간 피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와......씨발....냄새도 좋고.......보지도 보들보들하고.....물도 많고....니 말대로 이년 빠꾸리도 잘하고......존나게 맛있겠는데....]

[아이 씨발.....선생님.....손가락 이렇게 존나게 젖게 만들어 놓고 그냥 가면 안되지...]

겁에 질려있던 아내를 뚫어져라 보며 말했던 사내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옷이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반 알몸인 채로, 두 사내 사이에 엉켜 발버둥 치던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개새끼.....으.........”

이를 악물자......내 입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조수석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문짝이 휘어져 있어서 쉽게 열리지 않았다.

승합차 안은 처참했다. 

붉은 피가 튀어 이곳저곳 낭자해 있었다.

차 뒤에는 헐벗은 남녀가 엉켜있었다. 

여자의 스커트만이 허리에 감겨있었고 나머진 알몸이었다. 

사내는 운전석 시트에 꼬꾸라져 대가리가 아래로 처박혀 있었다. 남자의 하체에 무엇인가로 하얗게 젖은 축 처진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나는 차 앞에 달려 있던 블랙박스를 뜯어냈다. 운전석 바닥에 있던 누구의 것인지 모를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뒷문을 잡아당기자 쇠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쯤 열린 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발로 차서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엉클어진 여자의 얼굴이 시트 바닥을 향해 있었다. 여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대가리가 바닥에 처박혀 있는 남자의 것이라 추정되는 재킷을 집어 들고 주머니를 뒤졌다. 스마트폰과.....지갑이 들어있었다. 

나는 가장 중요한 나머지 하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차안에서 스마트폰 불빛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비추자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풀어헤쳐진 채 엉망이 되어 있는 여자의 긴 머리칼 사이에 스마트폰 불빛에 반짝이는 은색이 보였다.

소형 디지털카메라였다. 

차 안에 연기가 차,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연기가 차안에 더욱 가득차기를 바라며 차문을 꼼꼼하게 다시 닫았다.

내 발 앞에 깨어져 있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나는 입고 있던 니트의 소매를 앞으로 길게 빼어내 그 유리 조각을 꽉 쥔 채, 운전석 창문 밖으로 반쯤 튀어나와 있는 사내에게로 갔다.

“으..........으.....흐..........”

신음소리가 처음보다 약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목덜미 정중앙에 쥐고 있던 유리 조각의 아래 날카로운 부분을 바짝 가져다댔다.

내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자 유리조각에 닿아있는 사내의 목덜미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내 마음이 조금씩 편해져 갔다.

“아.......살,,,,살려...........아..........살려주세요......”

차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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