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77)

Deception (17)

[술을 무슨 술!!! 이러니까......이러니까....소문나는 거야......지금 몇 신데 여 선생이 밖에서 남자들하고 어울려 술 마시고 있어. 애들 보면 어쩌려고.......지 처신도 똑바로 못하는 게......]

양 선생의 말에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조용히 테이블로 향해 있던 아내의 시선이 양 선생에게 향했다.

테이블에 있던 내 스마트폰이 크게 울렸다.

순간 그 소리를 아내가 들을까봐 급하게 스마트폰 액정을 여러 번 터치했다. 그러자 미나의 이름이 떠 있다가 금방 사라져버렸다. 액정 상단에는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를 메시지 아이콘도 떠있었다.

[야!!! 양 선생.....너 왜 이러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한 남자가 날카롭게 아내를 노려보고 있는 양 선생에게 소릴 질렀다.

[왜? 내가 없는 말 했어? 여선생 하나 잘못 들어와서 학교 엉망진창인 꼴을 봐. 늙은 교감하고 연애한다는 소리나 들리고........젊은 여선생이 꼬리치니까 학교에 남자들 다 정신이 빠져서 그러는 거 아니야!!! 이게 학교야?]

날이 바짝 서있는 양 선생의 앙칼진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야!!! 양 선생. 너 미쳤어?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너 술 마셨어? 이 선생이 뭘 잘못했다고 지금 말을 그따위로 해!!!]

남자의 고함 소리에 보문호 앞을 산책하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해있었다.

[뭐야 이거? 박 선생. 왜 이렇게 갑자기 이 선생 감싸고 돌아? 벌써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된 거야? 

벌써 이 선생이.....한번 줬어? 아니면......오늘 술 마시고.....둘이 그러기로 한 거야?

이 선생! 교감은 어쩌고? 아하......여기 교감 안 왔으니까? 외로워서 벌써 다른 남자하고 붙어 먹은 거야? 호호호.....]

[이....이게.....진짜 미쳤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아내 옆에 앉아 있던 강 선생도 따라 일어나 옆에 서있던 양 선생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양....양 선생님....그러지 마세요....이제.....그만하세요.........]

양 선생이 강 선생의 손에 이끌려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재수 없게....학교에 미친년 하나 들어와서.....지가 술집 년이야? 학교에서 이리저리 붙어먹게.....더러운 년......내가 본거 이야기 다하면 저년은 더 이상 학교 못 다녀.......내가 다 말할까? 야! 이 은비! 말해봐!!!]

양 선생의 말에 그녀의 팔을 잡아 끌던 강 선생이 사색이 되어, 그녀를 끌고 로비가 있는 유리문 쪽으로 나갔다.

안쪽 Bar에 있던 몇몇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강 선생에게 끌려 나가는 양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흐윽.......흐흑......”

갑자기 아내의 입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 선생과 강 선생이 테라스를 떠난 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두 남자는 울고 있는 아내를 그저 바라볼 뿐 아무런 움직임도, 말도 없었다.

Bar 안쪽에 있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는 것을 아내 옆에 있던 남자에게 알렸다.

두 남자의 시선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 흐느끼는 아내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이내....불을 환하게 밝히던 카페가 그랬던 것처럼 Bar 내부 불이 꺼져 안쪽이 검게 변했다.

[흐흐윽.......흐흑......]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이....이 선생......]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양 선생에게 고함을 질렀던 남자가 울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였다. 

[흐흐윽......흐흑............]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아내의 하얀 손이 바들바들......떨리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던 한 남자가 테이블에 있던 자신의 잔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아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내 손 또한.....아내가 그러는 것처럼....떨리기 시작했다.

무음으로 해두었던 스마트폰에 계속 반짝였다.

[오빠! 지금 어디에요? 큰일 났어요. 세희 언니가.....연락이 안돼요.....같이 퇴근하고....저는 집에 왔는데......방금 진욱 오빠가 연락 왔는데요, 세희 언니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스마트폰 시계의 숫자가 변해 오후 11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늦어도 10시 전에는 미나와 세희가 퇴근을 했을 것인데......

카페에서 진욱 형 약국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한데......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들고 테라스 아래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아내가 있는 곳을 계속주시하며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와있는 진욱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우야!!!]

발신음이 한번만 울리고 급한 진욱형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미나한테 메시지 받았는데....]

[그래.,,,..아......세...세희가...아직 집에 안와.......연락 없이 그런 애가 아닌데......전화 해봐도 꺼져있고......너...너는 지금 어디야?]

진욱 형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불안해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와이프 때문에 지금 경주에 와있습니다....]

[아...그래? 미안해...미안해......세희 곧 오겠지......잘.....잘 지내다와....끊는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전화가 갑자기 뚝 끊겨 버렸다. 

아마도 진욱 형은 내가 경주에서 아내와 주말을 보내기위해 와있다고 생각해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떨리는 진욱 형의 목소리와.....평상시 세희의 일상을 돌이켜 볼 때 충분히 걱정이 될 상황이었지만......지금 나에겐 그런 것들은 전혀......중요치 않았다.

나는 조금 전 앉아 있던 카페테라스로 돌아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던 남자가 아내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좀 전까지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던 그 남자의 손이 아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고 있었다. 

아내에게 바짝 붙어 앉은 그 남자가 울고 있는 아내의 귀에 가까이 뭐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남자와 울고 있는 아내에게 시선이 머문 채 홀로 맥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던, 들썩이던 아내의 어깨가 조금씩 잦아 들었다.

언젠가부터 아내의 어깨위에 올려져 있던 남자의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와 아내의 어깨 바로 아래 연약하고....부드러운 그곳을 감싸고 있었다.

그 남자가 냅킨을 여러 장 뽑아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자신의 얼굴 앞에 있던 하얀 그것을 확인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 서둘러 젖어 있는 눈가로 가져갔다. 

“이 선생 이제 좀 괜찮아요?”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남자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흐흑....죄송해요....저 때문에....”

여전히 젖어있는 아내의 감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선생. 학교에서 있다 보면......별의별 일이 다 있어, 특히 여선생들 사이에 그런 알력들........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양 선생 그냥 저렇게 두면 안 되겠어. 월요일에 출근해서 오늘일은 위에 정식으로 보고 할 테니까....걱정하지 말고......”

너무나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질 때는.....두 가지 이유밖에 없다....

첫 번째는 진실을 고백할 때.....

두 번째는....진실을 왜곡할 때....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그 남자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지 아내의 몸이 천천히 그의 가슴을 향해 쏠렸다.

아내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얼굴이 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조금 전 보다 더욱 붉게 변해있었다.

남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아내의 어깨에서부터 아래 팔뚝까지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내의 얼굴과 바짝 붙어 있는 사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내는 아무런 말없이 앞에 있던 자신의 맥주잔을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그래.....이 선생. 술이나 마시면서 기분 풀어요.”

아내의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지쳐보던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아내의 맥주잔이 어느새 모두 비워져 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졌다.

“박 선생님. 천 선생님.....오늘 고마웠어요. 저는 올라가볼게요....”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내의 팔을 노골적으로 쓰다듬던 남자의 팔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어...어? 이 선생.....가...가려고?”

아내의 팔을 오랫동안 만지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 아내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내는 그들에게 고개속여 공손하게 인사하곤 테이블을 벗어났다.

하지만....

몇 발자국 내딛지도 못하고 아내의 몸이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어어어.....이 선생!”

아내가 쓰려지려는 찰라......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던 남자가 달려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쓰러지려던 아내의 몸이 어정쩡하게 그에게 팔에 매달려 있었다.

아내는 고개들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 또한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자신을 보는 아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남자가 아내의 허리를 얼마나 세게 감싸고 있는지 남자의 손이 아내의 가냘픈 허리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이 선생. 지금 술 취했잖아.....좀 더 있다가 술 깨고 가라고.....”

테이블에서 아내에게 말하던 남자의 그 한없이 부드럽던 목소리가 조금 변해있었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편한 스커트를 입은 아내의 한쪽 골반이 남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깊게 들어가 있었다. 

벌어진 다리사이 남자의 하체가 아내의 몸에 닿아 있었다.

“아....”

그렇게 남자에게 어색하게 안겨 한동안 움직임이 없던 아내의 몸이 조금씩 뒤틀렸다. 아내의 움직임이 남자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내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아.....박 선생님....가야겠어요....”

“아니.....이....이 선생......잠깐만.....그러지 말고......우리.....”

이상하게도 아내가 남자를 벗어나려 할수록......아내의 몸은 남자와 더욱 가까워졌다.

아내의 왼쪽 뺨이 남자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힘이 들어간 남자의 손이 아내의 허리를 넘어 배까지 닿아 아내의 몸을 더욱 깊게 감고 있었다.

그 광경을......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도.......참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안겨 버둥거리는 아내에게 가기위해 한걸음 내딛었다.

그때,

아내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싹 안고 있는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박 선생님.....이 손......놓으세요...”

너무나 차가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화가 난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러자 절대로 아내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남자의 손이 힘없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오늘 고마웠어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말고 쉬세요.....”

아내가 남자에게 또박또박 말하곤 그곳을 벗어나 유리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두 남자는 멀어져가는 아내의 뒷모습만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어둡게 변한 카페 문을 열고 리조트 로비 쪽으로 나갔다. 

아내는 벌써 저만치 앞서 로비 중앙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다.

급하게 마신 맥주 탓에.......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술에 취한 듯 했다.

깔끔한 남색 정장을 입은, 리조트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비틀거리며 로비를 가로질러 가는 아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내가 리조트 현관 쪽으로 향하자 자동문이 활짝 열렸다.

왜 룸으로 올라가지 않고.......아내가 밖으로 나가는지......이해가 되지 않았다.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는 리조트 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간 아내가, 갑자기 한쪽에 서서는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비야, 너 말이야. 혹시 다음에 내가 없을 때, 술에 취하면.....걷지마.....어지러울 때 잠깐 멈춰서 발끝을 바라봐......한 1분정도.....그러면.....조금 나을 거야. 알았지?]

[에이...오빠. 바보같애....그런다고 술이 깨요? 우리오빠....거짓말쟁이......호호호호......]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내와 둘이 술을 마신 그날....

아내의 빨간 볼이 너무나 예뻤던 그날....

내가 아내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가만히 서서는 아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우습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

항상 화려하게만 보였던 아내의 뒷모습이....이 순간, 너무나 초라하게 변해 있었다.

한 동안 그렇게 아래를 보고 있던 아내가 걸음을 옮겨, 내게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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