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8)
약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그 집요한 손길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잠 들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그 손길이 내 바지 속을 파고들어가는 순간이었는데, 다시 얼핏 깨어나 보니 힘겹게 서있는 내 물건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가끔 잠결에 섹스를 하곤 했다.
그 움직임에 나도 호응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지독한 가위에 눌린 것처럼.....
“으음.....”
내 물건이 흠뻑 젖어있는 부드러운 막을 뚫고 뜨거운 곳으로 서서히 파고 들 때, 옅은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내 몸이 너무 뜨거웠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내 몸 전체가 땀으로 젖어 있는 것 같았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방안은 아직 어둠으로 가득했다.
아내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아내의 알몸에서 뿜어져 나와 나에게 전해지는 그 열기가 너무나 뜨거웠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아마도 내 품에 완전히 안겨있는 아내의 뜨거운 몸때문인 것 같았다.
내 가슴에 뜨거운 숨이 연신 닿았다. 나는 아내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꿈인 것 같았다. 아니 꿈이기를 바랬다.
내 손에 닿은 그 머리칼이 익숙하지 않았다.
부드럽게 웨이브 진 그 머리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내의 머리칼이 아니었다.
갑자기 급하게 뛰기 시작하는 내 심장 소리가 방에 울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안겨있는 그 여자를 천천히 밀어냈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서도 여전히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는 그 여자는 바로 세희였다. 나는 그 어떠한 한 조각의 소음도 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뒤를 돌아 봤다.
아내가.....홀로 이불을 덮고 벽 쪽을 향한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단지 내 가슴속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그 소리만을 줄이고자 힘겹게 노력했다.
좀 전 내 몸에 올라타 움직이던 여자가 누구인지......하지만 조금씩 떠오르기 옅은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마다 가슴이 몇 번이고 내려앉았다.
문을 천천히 열어 놓고 아내를 보니 아내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얇은 담요에 싸여 자고 있는 세희를 그대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세희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까 급하게 방에서 빠져 나왔다.
정면이 있던 방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내게 안겨있는 세희는 축 늘어진 채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세희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길고 고통스러웠다.
세희를 침대에 눕혀 놓자마자 나는 그 방을 빠져 나왔다. 그 방문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내 물건이 어렴풋이 보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뱀이 허물을 벗듯.....성기 전체에 빼곡하게 붙어 있던 부스러기가 손길에 따라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거실을 가로질러 곧장 아내에게로 향했다.
“으음.....”
갑작스런 소리에 내 발걸음이 거실중간에 얼은 듯 멈춰 섰다.
“아아아......”
또 다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나는 뒤돌아 문이 조금 열려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던 방을 바라봤다.
“으.......아........”
이번엔 남자의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이미 나는 그곳을 향해 있었다.
“아! 아! 아음....아아..........”
그 방안은 스탠드가 그곳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방의 정 중앙에 있는 침대위에서....
알몸인 남녀가 뒤엉켜 있었다.
남자가 활짝 열려있는 여자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움직이자 남자의 발기된 성기가 허옇게 젖어 있는 여자의 작은 구멍 속을 너무나 빠르게 드나들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일이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와 진욱 형은 정 수연을 계속 설득을 했지만 정 수연은 그날 자신이 당했던 일을 끝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욱 형이 가져온 사후 피임약만 먹고는 그렇게 끝내버렸다.
승호는 집에 혼자 있는 정 수연이 걱정이 됐는지 출근 할 때 그녀를 카페로 데려다 주고는 퇴근할 때 다시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를 며칠째 반복했다.
세희가 그날 밤 아내와 자고 있는 방에 왜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희는 기억을 못하는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페에 출근해 일을 했다.
그것은.....침대에서 알몸으로 진욱 형과 뒤엉켜있던 미나도.....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가 그날 그 방에서 있었던 일을 혹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걱정을 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다행히 평상시와 변함이 없었다.
정 수연이 카페 한쪽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그 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연 씨. 좀.....괜찮아요?”
“네....”
“홀에 있기 불편하면 안에 방에 가서 좀 쉬어요.”
“아니요. 여기가 더 편해요.....사람들도....구경하고.....”
“수연 씨. 혹시.....그 놈들.....그 지점장이.....그런 거 아닙니까? 어디 집히는 데도 없어요?”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정 수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그 일을 다시 들춰내는 게 나 또한 불편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멈추질 않았다.
정 수연은 나의 물음에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홀에서 바삐 움직이는 세희와 미나를 보고 있자니 그 날 밤이 다시 떠올랐다. 더욱이 미나가 왜 진욱 형의 방 침대에서 그와 섹스를 하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그랬는지.....아니면....이성으로서 서로 끌렸는지.....
별의별 잡생각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휘젓고 있었다.
학교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은비.....나의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
테이블에 있던 스마트 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새한 은행 본점입니다. 김 치우 고객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정길 고객님 관련해서 안내드릴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오래 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뜻밖에 들려와 나는 무척 놀랐다.
[이 정길 고객님이 계약하신 개인금고가 오늘자로 김 치우님에게 양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양도 절차를 안내해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그....그게 무슨......말이죠? 개인 금고요?]
당황하는 내 모습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정 수연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었다.
[우선 저희 은행 본점으로 내방해주시면 상세히 양도 절차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돌아가신 아버님......장인 어른의 이름이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왜 지금 내게 들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급하게 그 은행으로 향했다.
“고객님 어디로 안내해드릴까요?”
은행 입구에 있던 커다란 자동문이 열리고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남자 직원이 내게 물었다.
“개인 금고 담당하시는 분이 누구시죠?”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를 따라갔다.
중앙에 있는 넓은 홀을 지나 또 다른 자동문이 열리고 응접실 같은 화려한 공간에 도착했다. 그러자 데스크 안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 내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좀 전 내게 전화를 했던 사람인 것 같았다.
“네...조금 전에 전화를 받았는데요. 개인금고 양도관련해서......김 치우라고 합니다.”
“아네. 고객님. 빨리 오셨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리곤 한동안 서류들을 찾는 것 같았다.
“음.....이 정길 고객님께서 지난 3월 24일에 저희 은행에서 개인 금고를 오픈하셨습니다. 계약당시 200일이 되는 날, 김 치우님에게 개인 금고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옵션을 걸어놓으셨습니다.
오늘이....정확히 200일이 되는 날이고....따라서 개인 금고에 대한 양도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김 치우 고객님에게 연락 드렸습니다.
확인 차 어제 이 정길 고객님이게 전화를 드니리까 번호가 바뀌신 건지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실례지만 이 정길 고객님과는 어떤 관계 신지요?”
“사위입니다.....아버님은..........돌아가셨습니다......”
“아......죄송합니다.”
당황하는 그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그.....그러면....우선 서류 작성해주시고요. 신분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가 건네준 서류에 개인정보를 기입하고 서명을 했다. 몇 줄 안 되는 그것을 적는데도 내 손이 떨려 끝내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작성한 서류와 내 운전면허증을 건네받은 그가 데스크 너머 한동안 분주하게 움직였다.
“네...이제 다 됐습니다. 지금부터 이 개인금고는 김 치우님에게 완전히 양도 되었습니다. 사용 기간은 지금부터 1년간입니다.
금고 대여 비용은 이미 전 소유자였던 이 정길 고객님께서 완납을 하셨고. 고객님께서는 일 년 동안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상황이 나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자...그러면 금고로 가실까요?”
나는 조금 앞에서 나를 안내하는 그를 따라갔다.
보안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또다시 보안문을 통과하자 은색의 작은 금고들이 벽에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가 한쪽에 있던 작은 금고를 가르치며 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 그럼 고객님. 저는 올라가 있겠습니다. 혹시나 필요하시면 저기 보이는 전화를 들으시면 저하고 자동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럼.....”
또깍거리던 그 남자의 구두소리가 멀어져 이내 사라졌다.
나는 은행직원에게 건네받은 열쇠로 먼지 하나 없이 유리처럼 반짝이는 작은 금고를 열었다. 그 속에는 노란색의 두툼한 서류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중앙의 테이블로 왔다.
서류봉투는 완전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뜯어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하나씩 펼쳐 놓았다.
보이스레코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동일한 모양의 검은 USB 두 개와 하얀색 봉투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하얀색 봉투에는 일억오천만원짜리 수표가 한 장 들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파일을 서류 봉투에서 꺼냈다.
투명한 파일에는 아버님이 일하셨던 지방 교육청 이름과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투명한 파일 너머.....하얀 A4 용지에 빼곡하게 적힌 글들이 보였다. 아버님이 직접 적으신 것 같았다. 나는 그 글을 확인하기 위해 파일에서 그것을 꺼냈다.
그러자 그 A4 용지 사이에 함께 들어있던 무엇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건 사진이었다.
“어.....이게.....”
그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그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몇 장의 사진에는......
새하얀 은비의 알몸에.....검게 그을린 한 남자가 올라타 있었다.
은비의 벌어진 다리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속살에 남자의 검은 성기가 끝까지 박혀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붉은 입술을 벌리고 있는 은비의 얼굴도 보였다.
그리고....은비의 얼굴에 새하얀 무엇인가가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