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7)
“치....치우 씨....저기 지금...제가 좀 다쳤어요......흐흑.....좀 와 주실래요.......여...여기가요.........”
스마트폰을 통해 타고 들어오는 정 수연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승호가 넘어질 듯 위태롭게 3층 계단을 앞장서 내달렸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세 남자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만이 크게 울려댔다.
승호가 약국 앞에 주차해 있던 자신의 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야!!! 너 술 마셨잖아”
“괜찮아....괜찮아.....”
나의 만류에도 기어코 승호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나와 진욱 형은 잠시 망설이다가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차의 올라탔다.
“어...어디라고? 우리 동네 밑에 시....시장?”
운전대를 잡은 승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우리 가끔 가던 국밥집 밑에......”
내 목소리 또한 그와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길가를 환히 밝힌 차가 급하게 유턴을 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달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치우야. 수연 씨는 괜찮데? 많이 다쳤데?”
“아니요...저도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가봐야 알거 같아요.....”
승호가 급하게 핸들을 꺾을 때마다 내 몸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려 창가에 부딪쳤다.
차는 출발한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좁은 골목에 있는 재래시장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카페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그리 멀지 않아, 가끔 장을 보러 왔던 자그마한 동네시장이었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 있어서 주위가 암흑천지였다.
“치우야...어디라고? 수연 씨 어디에 있다고 했어? 앗!!!”
승호가 소규모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골목 안쪽으로 달려가다 입구에 있던 나무 상자에 걸려 길바닥에 넘어졌다.
“야....조심해!!!”
나는 넘어져 있는 승호를 지나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 뒤에 진욱 형이 따랐다.
골목 안쪽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더욱 어두워져 길 조차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스마트폰 플래시 앱을 실행했다. 암흑천지였던 그곳이 일시에 대낮처럼 환하게 변했다.
골목에 시장 상인들이 내다 버린 각가지 박스와 쓰레기들이 나뒹굴어 걸을 때마다 발에 걸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악취 또한 심하게 풍겨 속이 메스꺼웠다.
“수...수연 씨! 어디에 있어요? 저희 왔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연 씨!!! 괜찮아요? 어디에요?”
다시 한 번 승호가 외쳤다.
우리는 골목 한가운데에 서서 주의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자 저기 앞쪽에 있는 어느 상점 앞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점 앞, 무엇인가를 덮어 놓은 방수포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렸다.
“수연 씨!!! 거기 있어요?”
나는 그 곳으로 다가가 새파란 방수포를 들어 올렸다.
“어!!!”
내 뒤에 서서 그 곳을 바라보던 승호와 진욱 형의 입에서 동시에 놀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들어 올린 방수포 아래에........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정 수연이 겁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정 수연의 머리가 엉망으로 엉클어져 있었다. 눈물을 흘렸는지 마스카라가 눈가 아래로 검게 번져 있었고, 진한 화장이 흐트러져 얼굴 이곳저곳에 뒤엉켜 있었다.
얇은 블라우스 위쪽은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한쪽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짙은 남색 스커트는 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검은 스타킹은 이곳저곳이 긁혀 정 수연의 하얀 맨다리가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구두는 어디에 갔는지......맨 발이였다.
“수....수연씨....괜찮아요?”
정 수연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굵은 물방울이 솟아내 연신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병원으로.....아니 아니 약국으로 가자....”
진욱 형의 말에 승호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정 수연의 상채를 감싸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
정 수연의 입술이 계속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욱 형이 약국 안 뒤쪽공간에서 급하게 약들을 하나둘씩 챙기고 있었다.
환한 약국 안의 조명 아래에 있는 정 수연의 모습은 조금 전 그곳에서 봤던 것보다 더욱 처참했다.
얼굴을 맞았는지 한쪽 뺨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브래지어가 사라진 가슴에는 여기저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흔적이 보였다. 한쪽 무릎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와 찢어진 스타킹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수연 씨. 누...누가....이랬어요?”
“승호야....잠깐만....우선 소독하고....치료부터 하자”
정 수연의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승호가 진욱 형의 말에 옆으로 비켜섰다.
진욱 형이 군데군데 찢어진 정 수연의 스타킹을 벗겨냈다. 그러자 새하얀 다리에 붉게 긁히고 멍든 자국이 여러 개 보였다.
정 수연은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눈물과 화장이 뒤엉켜 엉망이었던 얼굴이 조금씩 깨끗하게 변해갔다.
정 수연의 몸에 있던 붉은 상처에는 하얀 밴드와 붕대가 이곳저곳 덮여 있었다.
나는 정수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정 수연에게 건네줬다. 정 수연은 목이 타는지 그것을 천천히........하지만 끝까지 한 번에 비웠다.
“형님....병원 안 가도 되겠어요?”
승호가 진욱 형에게 물었다.
“음.....상처는 그리 깊지 않고 찰과상 정도라서.......괜찮을 거 같긴 한데.....수연 씨. 어디 더 아픈데 없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좀 더 할까요?”
정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한동안 정 수연을 바라봤다. 모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 수연이 좀 더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수연 씨....어떻게 된 거에요?”
그녀에게 물었다. 정 수연이 자신에게 쏠린 시선들을 확인하곤 잠시 머뭇거리다 이야기 시작했다.
“여기에 오려고 케익을 사려고 이곳저곳 다니다가 좀 늦었어요.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천천히 걸어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내 손을 잡았어요.”
[정 수연 씨?]
[네? 누....누구세요]
[정 수연 씨 맞죠?]
[이...이거 놓으세요....]
“저는 그 남자 손을 뿌리 쳤어요....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다른 남자가 내 팔을 너무나 세게 잡았어요”
[정 수연이 맞네....씨발년이.....따라와.....]
[아....아파요....]
“다른 남자가 내 머리칼을 나를 끌고 갔어요. 승합차 같은.....큰 차에 저를 태웠어요....골목이 너무나 깜깜하고....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내 손을 잡았던 남자는 운전석에 타고.....다른 남자는 저를 밀어 넣은 뒤쪽에 올라탔어요. 그 남자가 내 뺨을 계속 때렸어요. 정신이 아득 할 때까지......”
[씨발년.....이쁘네......야....이년 젖탱이 수술했나봐.....존나 커.....흐흐흐....씨발...가만히 있어봐....뒤지기 전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 남자가 칼....칼로....내 옷을 찢고 있었어요.....그리고.....강제로.......”
“얼굴 기억나요? 누군지 생각나요? 아는 사람입니까?”
나는 예상되는 정 수연을 뒷이야기를 더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처음 보는 남자들이었어요. 흐흐흑......”
정 수연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흐흐윽....그...그 남자가.....저를....강간......그....그 남자가 하고나서.....차에서 내리고.....운전석에 있던....남자가......차에 올라 타려할 때.........그 남자를 밀치고....미친 듯이 뛰었어요.....엉엉......”
“이...씨발.....개새끼들......신....신고.....경찰.........”
가만히 듣고 있던 승호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요...아니요....싫어요....”
정 수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승호를 보며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그래요....수연 씨 이제 괜찮아요......진정해요.”
진욱 형은 신고라는 소리에 흥분한 정 수연을 진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나는 그를 따라 약국 밖으로 나갔다.
“지금 수연 씨 많이 놀라서 정상 아니야. 강간은 48시간 안에 병원에서 검사받고 신고해도 괜찮아. 우선 지금은 수연 씨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야.
오늘은 여기서 재우고.....내일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는 차분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야! 운전 괜찮겠니?”
“그래 술 다 깼어. 동네라서 차로 금방인데 뭐....”
승호가 자신의 재킷을 입은 정 수연을 조심스레 조수석에 태우고 있었다.
진욱 형 집에서 정 수연을 재우려고 했으나, 미나와 세희.....그리고 아내가 정 수연의 모습을 보고 놀랄 것 같아, 승호가 우선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승호의 세단이 이미 약국을 벗어나 멀어져갔지만 나와 진욱 형은 한참동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수연 언니는요?”
3층 집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미나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큰 일 아니야. 수연 씨 여기 오다가 넘어 졌나봐. 그래서 치료하고 승호가 집으로 데리고 갔어.”
“그래요? 많이 다쳤어요?”
“아니아니....괜찮아 이제...”
그제서야 미나는 안도하는 듯 했다.
테이블에는 좀 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와인이 남아 있었다. 미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은 세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가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 샤워를 했는지 아니면 세수를 했는지 아내의 얼굴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방으로 들어온 것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자고가라...”
방에서 빠져 나온 내게 진욱 형이 말했다.
“은비......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좀 자다가 은비 일어나면 갈게요.”
“그래그래. 편하게 해.”
“미나야. 너는 어떡해? 택시 불러줘?”
테이블에서 세희와 붙어 앉아 이야기를 하던 미나에게 물었다.
“나는 좀 더 있다가 갈게요....”
미나가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미나 씨. 늦었어요. 세희하고 같이 자고가요”
진욱 형의 말에 세희가 미나에게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대충 씻고 아내가 잠들어 있는 불 꺼진 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아팠다.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다.
아내의 학교에서 아내의 고단한 학교생활을 직접 목격했고.....그리고 정 수연의 일까지......
그리고....학교에서 양 선생이 회의실의 떠나며 남긴 말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씨....발년.......내가 가만 안 둬.......]
“으음......”
아내 곁에 눕자 아내의 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내 품을 파고 들었다. 아내의 얼굴에서 집에서 쓰던 것과 다른 비누향이 풍겨왔다.
내 가슴에 완전히 파고든 아내를 살며시 안았다. 자고 일어나면.....또 다시....내가 아내의 가슴에 안겨있겠지....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꿈인 것 같았다.
내 귓불이 간질거렸다.
완벽하게 마비되어 있던 나의 모든 정신과 감각이 아주 조금씩 깨어났다.
조금 젖어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아 연신 내 귓볼을 조심스럽게 핥는 것 같았다.
잠들기 전 맡았던 아내의 새로운 비누향이 느껴졌다.
작은 손이 내 얼굴과 가슴을 타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바지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