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77)

Deception (6)

교감선생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없이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내는 조금 전 양 선생과의 그 말도 안 되는 다툼이 억울했는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감선생이 자신의 바지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파란 손수건을 꺼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잠시 고민하다 그것을 건내 받고는 젖어 있는 자신의 눈가로 살며시 가져갔다.

교감선생이 옆에 있던 의자를 빼어내 아내의 곁에 앉았다.

“이 선생. 많이 힘들지? 이 선생이 참아. 요즘 여선생들 예전 같지 않아. 양 선생도 예전엔 그러지 않았어. 

참 이해가 안되는 게....자신들도 예전에 선배 여교사들한테 똑같이 당해 놓고선.....왜 이렇게 되풀이하는지.....“

“죄송합니다. 교감선생님....”

아내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여전히 울먹이며 그에게 말했다.

“이 선생이 뭐가 죄송하나....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양 선생도....이 선생도.....

이 장학사님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시고.....이 선생이 많이 힘 들었다는 거 알아. 그런데도 이 선생은 표시하나 안내고 꿋꿋하게 학교생활 하고 있는 거 보면 기특하기도 해. 

학교라는 곳이 밖에서 보기완 다르게 만만한 조직이 아니지만, 이 선생 지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힘내고 조금만 참고 견뎌봐”

“흐흐윽.....”

뜻밖에 그에게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내의 흐느낌은 더욱 커져갔다. 아마도 교감선생은 돌아가신 아버님과 평소에 알고 지낸 사이인 것 같았다.

교감선생의 한 손이 들썩이는 아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토닥이고 있었다.

오후 8시 20분.....

나는 다시 차로 돌아와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환청처럼 양 선생이 아내를 쏘아 붙이던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왜 양 선생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양 선생이 카페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던 속리산 워크숍당시에 있었던 그 이야기....

아내를 공격하기 위해 그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었을 것인데....양 선생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양 선생의 그 이야기는 모두 미친 그 여자가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멀리서 그 건물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아내가 나를 발견하곤 반가운 듯 내게 손을 흔들었다. 

무릎 조금 위까지 오는 H라인 와인색 스커트를 입은 아내가 내게 점점 가까워졌다. 스커트 길이는 평소에 아내가 입던 것보다는 길었지만, 그 타이트함은 여전했다. 

아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 마다 스커트 속에 감춰진 아내의 부드러운 허벅지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은은한 블라우스에 얼핏 보이는 아내의 가슴까지도....

“오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던 아내가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달려와 내게 안겼다. 

아내의 가슴이 내게 완전히 닿았다. 두 팔로 내목을 완전히 두르고 있는 아내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꼈다. 아내의 향기가 유독 짙게 느껴졌다.

“오빠. 죄송해요. 오래 기다렸죠?”

아내의 얼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오늘 아침에 보았던 것처럼 화사하게 변해 있었다. 

조금 전 울어서 인지 투명한 눈 속이 조금 붉었지만, 그것까지도 아내의 얼굴과 화사한 화장에 어울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여기에 오기까지...

아내가 힘겨웠던 자신의 오늘을 나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했을까. 생각을 하니 그런 아내가 대견해보이기도 하고........내 마음이 무척 아파왔다. 

“아니. 당신 바쁜 거 같아서 그냥 기다렸지.....학교 참 좋다. 공원 같다.....”

아내는 말없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립스틱을 방금 바른 아내의 탐스러운 붉은 입술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너무나 먹음직한 그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려 내 입술을 살며시 감싸왔다. 

“오빠 어떡해요? 너무 늦지 않았어요? 진욱 씨 한테 늦는다고 연락했어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걱정이 되는지 내게 물었다.

“아니....이제 가면 금방인데.....”

스마트 폰이 울렸다. 승호였다,

“야!!! 인마.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야!!! 연락도 안 되고.......지금 다 너 기다리고 있는데....어디야!!!”

스피커에 성난 승호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승호 오빠.....죄송해요.....제가 학교에 일이 있어서요....저 때문에 많이 늦었어요. 지금 가고 있어요......음....어떡해.....죄송해요....”

“어!!! 은....은비 씨. 하하하.....아이고....미안......아닙니다...천천히 와요. 천천히.......”

승호는 민망했는지 아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그냥 끊어 버렸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안에, 형형색색의 예쁜 빛들이 들어와 창밖을 보고 있던 아내의 얼굴을 잠시 감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빛이 아내의 화사한 얼굴과 어울려져 아내의 얼굴을 더욱 빛나게 했지만....나에겐, 그런 아내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다. 

1층에 파란색으로 금방 단 듯한 약국 간판이 달려 있었다. 총 3층으로 된 건물은 연식이 조금 있었지만, 삼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약국 위치가 매우 좋아 보였다.

3층에 들어서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예쁜 구두가 여러 개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좋은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미안해서 어쩌나....좀 늦었어요....”

“오빠!!”

“언니!!”

“왔어?”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시에 우리를 향했다.

“언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가장먼저 미나가 아내에게 다가와 아내에게 안겼다.

“미나야. 잘 있었어? 오랜만이다”

결혼 전 항상 그랬듯....아내가 미나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야...오늘 은비씨.....의상이.....와.....역시....”

승호의 시선이 아내를 향해 있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음식을 들고 나오던 진욱 형 또한 웃으며 아내를 보고 있었다. 오빠 뒤에 있던 세희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내를 이곳저곳 훑어보기 시작했다. 

“수연 언니는....”

정 수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내가 미나에게 물었다.

“수연 언니 조금 늦는다고 연락 왔어요.”

“아...그래?”

어느새 거실 테이블에 음식이 한가득 차려졌다.

“와....이거 언제 다했어요?”

“다 한건 아니고......몇 개는 주문하고....몇 개는 세희가....나는 뭐 보조만 했지...하하하.....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많이 드세요. 은비 씨, 미나 씨.....”

진욱 형의 얼굴에 땀이 조금 맺혀있었다. 

아내는 음식이 입맛에 맞는지 잘 먹었다. 나 또한 그랬다. 타이트한 스커트가 조금 불편한지 아내는 식사를 하다 몇 번을 고쳐 앉았다. 그럴 때 마다 타이트한 스커트 위 아내의 볼록한 엉덩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형님. 많이 도와주세요...”

갈비를 뜯던 승호가 말했다.

“응? 뭐를?”

둘이 벌써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는지 승호와 진욱 형의 대화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형님. 약쟁이가 도와달라면 뻔 하지요....하하하....”

“하하....승호 너희 회사 약은 잘 팔려서 영업할 것도 없잖아. 언제나 환영이다 가져와라.....”

“아이고....감사합니다. 형님!”

“근데 우리 오빠하고는 어떻게 아시게 된 거예요? 대학도....지역도 다른데.......”

아내가 궁금한 듯 큰 두 눈을 깜빡이며 진욱 형에게 물었다. 

갑작스런 아내의 질문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자신에게 향해 있는 아내의 시선에 당황한건 진욱 형도 마찬가지였다.

“아......”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내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음.....치우는.....은인입니다.”

“네?”

“하하하....네. 은인. 내가 정말 힘들 때.....치우가 도와줬어요. 만약 그때 치우가 없었으면.....나는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그래서.....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욱 형 옆에 앉아 있던 세희가 생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세희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궁금한 표정을 한 아내의 시선이 내게 향해있었다.

식사자리에서 곁들인 술로 인해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건 식사를 마친 모든 사람이 동일했다. 소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까지도....

나는 갑자기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정 수연이 궁금했다.

“저기....언니.....”

세희가 아내에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어? 세희 씨. 이게 뭐예요?”

“불편하신 거 같아서.....제 옷인데....”

세희는 부끄러운지 말을 하곤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아마 식사를 할 때, 타이트한 스커트가 불편해서 자리를 뒤척이던 아내가 세희는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어머...고마워요.”

“그래요. 은비 씨, 이제 편하게 마셔요....하하하.....”

승호의 말에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희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3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꽤 괜찮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담배 맛이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담배 펴?”

뒤에서 문이 열리고 진욱 형이 나왔다.

“여기 좋은데요?”

“아마 여기에 발코니가 없었으면 계약 안했을 거야...하하....그리고.....참 좋아 보인다...”

“네?”

“너하고 은비 씨.......참 잘 어울려. 둘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예전에 세희하고.....그 녀석처럼.....” 

한동안 깊게 담고 있던 담배연기를 그가 길게 뿜어냈다.

미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승호 또한 같은 표정으로 미나를 보고 있었다.

“아....왜 연락이 안 되지.....수연 언니....”

“수연 씨 전화 안 받아?”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의 편한 스커트로 갈아입은 아내의 모습이 주방에서 얼핏 보여 그곳으로 갔다. 

아내는 손에 들려 있던 하얗고 작은 무엇인가를 입안에 넣고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당신 뭐해?”

내가 다가가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놀랬다.

“아....머리가 조금 아파서요.....두통약......”

“심해? 집에 갈까?”

“아니요. 심한 거 아니에요.” 

아내의 하얀 손에는 차에서 보았던 빈 신경안정제 캡슐이 작게 구겨져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대화 또한 점점 뜨거워졌다.

가게에서 가져온 몇 병의 와인이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아내는 이 술자리가 즐거운지 이야기를 하면서 듣기 좋은 예쁜 소리로 자주 웃었다. 하지만 아내의 와인 잔이 비워질 때 마다 아내는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유가 아내가 조금 전에 먹은 그 약 때문 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의 몸이 어느새 내게 완전히 의지해 있었다. 내게 닿은 아내의 몸에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빠.....어지러워요...”

아내가 힘겨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괜찮아? 그만 갈까?”

“나 조금만 누워 있으면 안되요?”

“치우야. 은비 씨 방에서 좀 쉬게 해라. 안되겠다.....”

“은비 씨. 평소에 주량 아는데.....오늘 왜 이렇게 빨리 취해요?”

진욱 형과 승호의 걱정스런 시선이 은비에게 향해 있었다.

아내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희가 어느 방으로 가서 바닥에 푹신한 이불을 깔아 놓았다. 나는 그곳에 아내를 눕혔다.

아내는 연신 힘든 숨을 내쉬고 있었다.

“조금만 쉬어. 괜찮아 지면 집으로 가자.....”

“아...어지러워.....”

아내는 힘든지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치우야. 은비 씨 괜찮아?”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모양이네....”

테이블에 있던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오빠. 전화.....어!!! 수연 언닌데요?”

미나가 급하게 스마트폰은 내게 전해줬다.

“네. 수연 씨! 왜 안와요. 다 기다라고 있는데.....”

“하아...하아......”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수연 씨?”

“치.....치우 씨. 하아.....저 좀.....저 좀.....도와주세요.....”

무엇인가에 크게 놀란 듯한 정 수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수연 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