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177)

Deception (4)

눈을 떠보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여전히 아내의 두 팔이 내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내 얼굴은 아내의 짙은 향이 배어있는 맨 가슴에 묻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내겐 너무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얼마 전 아내의 학교 근처 카페에서의 그 일이, 한동안 내 일상을 완전히 잠식해갔지만, 나는 그것을 잊기 위해 매순간 순간을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아내가 깰까봐 살며시 아내의 팔을 풀어헤치고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편안하게 잠든 아내의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아내의 새하얀 얼굴에 부드럽게 뻗어 있는 칠흑같이 새까만 속눈썹과 항상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는 붉은 입술.......그리고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솟아 있는 오뚝한 그 콧날.....

너무나 완벽한 여인의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런 아내의 얼굴이 조금 슬퍼보였다.

나는 조용히 침실을 빠져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내에게 아침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주방에서의 소음이 아내가 자고 있는 침실에까지 들리지 않도록 나는 노력했다.

적당히 그을린 토스트를 만들었고, 양념이 된 돼지고기를 구워 토스트위에 넉넉하게 올렸다. 그리고 낮은 불로 써니사이드업 스타일 달걀프라이 만들고는 또 다시 잘 구워진 돼지고기 위에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골라 접시에 보기 좋게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 카페 미나의 레시피인 에그베네딕트가 거의 완성되고 있었다.

“오빠......뭐하세요?

뒤를 돌아보니 분홍색 짧은 가운을 입고 있는 아내가 눈을 부비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다됐어. 아침 먹어.”

“네에?”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눈을 부비 던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내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실크가운 속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아내의 맨가슴과 얇은 가운을 밀어내고 있는 유두가 또렷이 보였다.

“음....어떡해....왜 안 깨웠어요?”

“당신 피곤한 거 같아서.....”

다행히 아내는 내가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그것이 입맛에 맞는지 작은 입속에 그것을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빠. 오늘 진욱 씨 개업하는 날이죠? 그런데 어떡하죠?”

“응. 왜 무슨 일 있어?”

“오늘 교육청에서 사람들 나온다고 해서요. 저녁에 조금 늦을 거 같아요. 먼저 만나서 저녁 먹고 있을래요?”

“많이 늦어?”

“아니요. 7시 전에는 끝날 것 같아요.”

“그럼 오늘 내가 당신 차 끌고 갔다가 데리러갈게.” 

아내는 아이처럼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의 오빠 진욱 형은 며칠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약국을 오픈하는 오늘 우리부부와 승호, 정 수연 그리고 미나까지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결혼식에 온 정 수연을 바라보던 아내의 떨리는 눈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결혼 후 아내는 이따금씩 정 수연의 안부를 내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 그리고 승호의 빌라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게 묻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아내와 정 수연이 만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 아내가 그때의 고통을 정 수연을 통해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지워졌다. 그때의 처절했던 기억까지도.... 

아내는 아침을 먹고 나서, 저녁의 모임 때문인지 화장과 옷차림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

아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카페로 와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차에 있던 아내의 그 신경안정제를 발견한날 스마트폰에 즐겨찾기 해두었던 작은 글들을 읽기를 반복했다. 

아내의 차 데시보드 깊은 곳에 있던 그 알약 몇 개가 사라져있었다.

[식약처 분류 (전문의약품) ? 신경계감각기관용 의약품, 중추신경계용약, 정신신경용제

효능 ? 불안장애의 치료 및 불안증상의 단기완화, 우울증에 수반하는 불안, 정신신체장애, 공황장애

마약류의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병용투여의 위험성

마약류와 이약의 성분인 알프라졸람을 포함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병용투여는 진정, 호흡억제, 혼수상태 및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마약류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병용투여는 적절한 대체 치료방법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 한해 처방해야함.

부작용 ? 정신착란, 불면, 불안 신경과민, 어지러움, 기억손상, 인지장애, 성욕의 변화.......]

‘우선 아내가 먹고 있는 이 약을 하루빨리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아내가 이 약을 먹기 시작 했는가에 대해서 먼저 알아내야한다.’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치우 씨? 무슨 일 있어요?”

내 앞에 정 수연이 앉아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 언제 왔어요?”

“좀 전에요. 너무 집중하고 계시길레......뭘 그렇게 오래 보시는거예요?”

“아니....별거 아닙니다.”

미나가 테이블에 달콤한 향이 나는 커피와 무스케익 하나를 정 수연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음.......김 사장님. 요즘 왜 매일 그렇게 멍하게 있어요? 일도 안 하시고.....피곤해요? 도대체 밤에 안주무시고 은비 언니하고 뭐 하시길레.....크큭....”

미니가 배시시 웃으며 놀리듯 내게 말했다. 

“이런.....쪼그만 게.....가서일 해!”

정 수연은 그런 나와 미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치우씨. 고마워요....”

“네?” 

“그때 그 일요....”

정 수연의 그 말에 영화 장면처럼 그 때의 일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옷이 풀어헤쳐져 가슴을 드러낸 채 주점의 룸 테이블위에 누워, 지점장이 시키는 대로 그의 발기된 성기를 빨던 정 수연의 그 멍한 눈빛..... 

잊고 있던 그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죠? 고맙다는 말을 지금에서야 하네요.....훗.....”

오래전 그때......정 수연과 지점장의 성관계 동영상을 편집하여 은행 감사실에 보낼 때 망설이던 내가 생각났다.

내가 그때 망설였던 이유는....

주점에서의 지점장과 함께 있던 정 수연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점장을 보던 정 수연의 눈빛이 처음과는 달리 조금씩 변해갔다. 그리고 그녀 입에서 터져 나오던 그 소리도.....

“뭐....오래전 일인데요....”

“은비는 잘 지내요?”

“네. 뭐...그렇죠. 요즘 바쁘고......”

내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있다가 저녁에 은비하고 같이 오죠?”

정 수연의 미소가 내게 머물러 있었다. 

아내와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시간이 흘러 저녁이 다가왔다.

“세희야. 저녁 준비 하려면 너 먼저 가봐야 되자 않아?”

“네 안 그래도 요거만 정리하고 가려고요.”

세희가 손님들이 남겨 놓은 하얀 머그잔을 씻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담겨있는 환한 미소가 너무나 보기 좋았다.

“미나야. 너는 어떻게 할래?”

“저는 정리하고 수연언니하고 같이 가기로 했어요. 오빠는 지금 은비 언니 데리러 가야되죠?”

“그래. 정리 잘하고 있다가 보자.”

아내의 학교주위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큰 도로에서 코너를 돌자 그때 들렀던 그 카페......트리하우스가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학교 안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55분...... 

차에서 내려 공원처럼 꾸며진 곳에 벤치에 앉아 학교를 찬찬히 둘러봤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는 좋은 학군으로 이미 전국에 소문이 나 있었다. 값비싼 시세의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전문직의 학부모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학교 내부 또한 최신 건물과 부대시설이 중학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아내와 약속한 7시가,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긴 통화음 끝에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방을 맨 학생 하나가 내 눈치를 보며 쭈뻣쭈뻣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녀석이 내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하하....나 선생님 아닌데?”

“네에? 그럼 누구세요?”

“음....여기서 일하는 선생님 만나러 온 사람인데...”

“아아....그렇구나.....근데 누구 선생님요?”

“1학년 2반 이 은비 선생님.....영어 선생님.....”

“네에? 정말요?”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보던 녀석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왜? 너 그 선생님 알아?”

“네...우리 옆 반 선생님이에요. 나는 1학년 3반 이구요...”

“그래?”

“네....근데....아저씨가......이 은비 선생님.....남자친구에요?”

나를 보던 녀석의 눈빛이 또 다시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변해 있었다.

“하하하.....이 은비 선생님 어때? 좋은 선생님이니?”

“그럼요. 영어도 대따 잘 하시구요. 목소리도 좋으시고.....그리고....예쁘세요....”

녀석이 뭔가를 안다는 듯 나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시고 여기서 기다리시는 거예요?”

“글세.....이 은비 선생님 어디에 계신지 몰라서....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아....이 은비 선생님. 좀 전에 보니까 요기 1층 회의실에 혼자 계시던데......가보세요....”

녀석의 손가락이 바로 뒤에 있던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4층의 건물 중에 1층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안녕히 계세요.....‘

녀석은 또 다시 허리를 깊게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곤 서둘러 나를 떠났다. 

스마트폰을 보니 아내로부터 전화도 메시지도 도착해 있지 않았다. 7시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좀 전 그 녀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1층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는 달리 너무나 적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회의실 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회의실 이라는 그 팻말이 점점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일을 왜 이따위로 하는 거야!!!” 

순간 비명과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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