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3)
[그....남자가....조수석에 있던 이 은비 선생 위에 올라타서....그...그 걸하고 있는 거야....]
[어머!!!]
언젠가부터 인가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던 머그컵속의 아메리카노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이 돋아.......남자가 이 선생 위에 올라타서 그러고 있고, 하이힐을 신은 이 선생 다리 한쪽이 창가 쪽에서 힘없이 덜렁거리고.....차는 계속 흔들리고.....
그리고...좀 있으니까....그....소리까지 얼핏 들리더라고....]
[소...소리요?]
[그래......그 소리....남자하고 섹스 할 때 나는 소리......이 선생 신음소리........내차 뒤쪽 창문이 조금 열려있더라고.....산속에 아무도 없는 주차장이 조용하니까.....얼핏 얼핏 그 소리가 들리더라고....]
내 목안이 바싹 말라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그 씁쓸한 아메리카노가 마치 내 마음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한참을 차속에서 그러더니.......급하게 움직이던 남자가 멈췄어. 남자가 뒤로 젖어진 조수석을 덮고 있어서인지 아래쪽으로 향한 남자 머리만 한동안 보이더라고.
그러다 남자가 운전석으로 다시 넘어가는 게 보였어. 그 남자가 조수석에 있던 이 선생 보고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 것 같더라고 근데 조수석은 여전히 뒤로 젖혀져 있어서 이 선생은 안보이고....
그렇게 한 5분 정도 지났나? 갑자기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거야......다시 실내등이 켜지더니 차에 습기가 가득 차서 그런지 조수석에 있던 이 선생이 뿌옇게 보였어.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고, 상의는......이 선생....맨 가슴이....얼핏 보였어......
밖으로 나간 남자가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어. 그리고 조수석 쪽을 보면서 희죽거리고 있었어......휴....그 표정이.....꿈에 나올까봐 무서울 정도였어....
남자가 밖에서 담배를 다 필 때 즈음, 조수석 문이 열리고 이 선생이 차에서 나왔어. 그리곤 앞에 있던 남자에게 가서 뭐라고 하고는 건물이 있는 쪽으로 급하게 가더라고....
그런데 그 남자가 이 선생을 쫒아가더니....우악스럽게 이 선생 팔목을 잡아 당겨 안아서 강제로 키스를 하려고 하는 거야.
이 선생은 그 남자를 밀쳐내면서 누가 볼까봐 그런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그렇게 잠깐 버둥거리다가 남자가 뭐라고 하니까 이 선생이 가만히 있더라고,
그 남자가....이 선생한테 키스를 하면서 두 손으로 온몸을 만지는데.......스커트까지 들쳐서 거길 계속 만지더라고.....이 선생은 가만히 있고....
한참을 그러더니 이 선생이 그 남자를 밀쳐내고 숙소가 있는 건물 쪽으로 뛰어 갔어. 남자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차를 타고 떠났어....]
카페에서 울리는 클래식 음악만이 조용히 귓가에 타고 들어왔다.
[양....양 선생님.....]
[왜?]
[그거...정말이에요?]
[뭐? 이때까지 뭐 들었어? 내가 거짓말 하는 거 같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잊어지지가 않아.......BMW 8772.......내가 얼마나 놀랬으면 주차장을 빠져나가던 그 남자 차번호를 지금까지 기억하겠니?]
[에이.....혹시 그때 이 선생님 남편 분 온 거 아니에요? 둘이 싸워서....밤에 왔던 거 아닐까요?]
[으이구......강 선생. 우리 이 은비 선생 결혼식에 같이 갔었잖아.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예식은 보지도 못하고 밥만 먹고 왔지만, 이 선생 신랑 얼굴은 멀리서 얼핏 봤어. 그때 우리 그랬잖아 키도 크고...괜찮다고....
그때 거기에 왔던 남자는 절대 아니야. 그 남자는 이 선생 신랑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였고.....인상이.....너무......날카로웠어....눈빛이 무섭다고 해야 하나.....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날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았어....]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들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나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자들이 득세하는 여초 집단에서는 항상 패거리가 형성된다. 그중에 우두머리가 생기고 그 우두머리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긴다. 그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반대되는 세력을 처참하게 응징한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 흔히 보던 장면이다. 여직원들끼리 뒷담화와 험담과 출처가 불명확한 괴소문들......
여교사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은비의 학교에서도 그러하리라....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 여자의 두 번째 이야기였다.
저 여자가 미친 여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 상세하게 그때를 묘사할 수는 없다. 그리고 BMW 8772....
‘저 여자는 이야기를 맛깔나게 창조해내는 소설가 일까?’
[음....양 선생님 나는 오늘 이야기 못들은 걸로 할래요.....우리 그만 가요....]
갑자기 꽉 막혀 있던 귀가 한 번에 열렸다.
[호호호.....그래? 알아서해. 강 선생 재미있었으면 다행이고.....근데 두고봐봐.....이 은비 선생 저러다 정말 큰일 터질걸......한번 헤픈 여자는.......호호호호....]
무게가 있는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얼굴을 급하게 창가로 돌렸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카페를 빠져나가는 두 여자 중에 누가 양 선생이고 강 선생인지 나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창밖을 통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두 여자가 보였다.
양 선생이 입고 있던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패턴무늬 스커트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때.
아침에 보았던 살구색 스커트를 입은 아내가 카페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차장 쪽으로 향하던 두 여자와 아내가 마주쳤다.
두 여자는 아내를 발견하곤 반가운 듯 환하게 웃었다. 아내의 얼굴에서도 그 여자들과 같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아주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잠시 후 아내가 그 여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내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런 아내를 보고 양 선생은 고개를 몇 번 끄덕였고, 강 선생은 아내에게 연신 손을 흔들어 댔다.
아내가 다시 카페 쪽으로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두 여자에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아내의 표정이 너무나 차갑게 변해 있었다.
하얀색 중형차가 카페를 빠져 나갔다. 동시에 그리고 아내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는 카페에 들어와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 미소와 함께.....
나도 아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내 입가가 조금씩 떨리는 걸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아내가 알아차릴 수 없음이 다행스러웠다.
나는 아찔했다.
만약 아내가 조금만.......단 1분만이라도 일찍 카페에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말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아내의 모습은 아침과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아내의 얼굴은 아침 보다 더 화려하게 변해있었다. 방금 새로 한 듯 한 화사한 화장과 몸매가 드러나 보이는 그......스커트......
“오빠! 많이 기다렸어요? 죄송해요”
아내가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얼마 전에 뿌린 아내의 진한 향수가 순식간에 나를 취하게 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온지 얼마 안됐어.”
아내는 내게 더욱 바짝 다가와 내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아까 밖에 만난 사람들은 누구야?”
“어? 보셨어요? 우리학교 선생님들요.....이 카페 가까워서 선생님들 자주와요. 오빠 우리 오늘 어디가요?”
아내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나를 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아내의 큰 눈동자 속에 비친 내가.....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음.....나 여기 너무 오고 싶었어요.”
안쪽의 레스토랑을 통과해 야외 테라스에 들어서자 기쁨에 찬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래전 아내가 좋아했던.....그리고 6개월 전 미나 그리고 세희와 회식을 했던 그 레스토랑에 아내를 데리고 왔다.
“요즘 학교는 어때? 힘들지 않아?”
아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스파클링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담았다. 입속에서 은은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작은 기포들이 연신 그 속을 두드려댔다.
“아니요. 재미있어요. 선생님들도 다 좋으시고.....애들도....너무 착하고 예뻐요.”
“보통 여자들 많은 곳에서 텃새 부리는 사람들이나 신입 들어오면 군기 잡는다고 괴롭히는 여자들 있다는데......거기는 그렇지 않아....”
속으로 한번 정제하지 않고 생각 없이 말을 해버리곤 아차 싶었다.
아내가 파스타를 예쁘게 말아 붉은 립스틱이 곱게 발려있는 입속으로 넣고는 포크를 파스타 접시에 살포시 올려놓고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내의 두 눈이 나에게 향해 있었다. 말없이.......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는......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그런 일들은.....내게 익숙해요....”
아내는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부드럽게 깜빡이는 아내의 두 눈이 자신의 말에 확신에 찬 듯 내게 향했다.
내 가슴이 저려왔다. 아내의 그 말속에 지금까지 아내가 홀로 격어 왔을 수많은 일들이 하나씩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카페에서 여자가 말했던 것처럼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은 아내의 엉덩이에 팬티라인이 보이는 것 만 같았다.
서빙을 하던 잘생긴 남자 직원의 시선이 아내의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테이블 한쪽에 올려져 있는 아내의 작은 토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집어 내게로 가지고 왔다.
자석으로 굳게 닫혀 있던 그것을 열었다. 그러자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가 훤히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사라진 카페 안쪽을 한번 돌아봤다.
가방 안쪽 가장 깊은 곳에 작은 박스가 보였다. 그것을 꺼내어 보니 아내의 차 데시보드에 들어 있던 그 신경안정제였다.
작은 박스 속에는 단 두 개의 알약만이 남아 있었다.
내손에 들려진 그걸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테라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화려한 모습은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들이 지나고 행복에 겨워 지낸 지난 몇 달........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또다시 그 어떤 문턱에 위태롭게 서있는 것만 같았다.
“오빠. 뭐하세요?”
아내가 다가와 내게 팔짱을 꼈다.
“응.....오랜만에 여기 야경 좀 볼라고....여기 야경이 아마 이 도시에서 제일 좋은 것 같다....”
“오빠”
“응?”
“고마워요.”
“뭐가?”
“모든 것들이.....”
아내의 얼굴에 어느 건물에서 쏘아진 붉은 빛이 잠시 머물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너무나 슬퍼 보였다.
“나는 오빠하고 다투거나, 오빠가 나 미워해도........나는 절대 오빠 떠나지 않을 거야......오빠도 그럴 수 있어요? 평생?”
“그럼....”
“날 평생 사랑하고.......지켜 줄 거예요?”
“응......”
아내의 머리가 내 어깨에 살며시 닿았다.
아내의 작은 손이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마치 하나가 되듯이 깍지를 켰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내 손이 조금씩....조금씩 젖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