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2)
[호호호....강 선생....몰랐어? 이 은비 선생 걸레잖아......]
[양 선생님!!! 누가 듣겠어요!!!]
소리죽여 다급하게 외치며 그 여자의 말을 막아 세우는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었다.
[훗. 강 선생도....듣기는 누가 들어...여기 누가 있다고...]
[그....그래도....너무....]
[이래서 강 선생은 순진하단 소리 듣는 거야. 오늘 이 은비 선생 옷 입고 온 거 봤지? 그게 선생이 학교에 입고 올 옷차림이야? 뒤에서 보니까 엉덩이에 스커트가 얼마나 붙는지 팬티라인까지 보일 것 같더라...
조회할 때 교장이고 교감이고 남자 선생들이 이 선생 몸 몰래 훑어보는 거 못 봤어? 가만 보면 이 선생은 아예 대놓고 보란 듯이 일부러 그런 옷 입고 다니는 거 같아. 학교가 무슨 술집도 아니고 말이야......]
[그거야....이 선생님은 몸매가 워낙.......하긴 오늘은 좀 심하긴 했어요.....히이...]
[이 은비 선생이 그렇게 술집여자처럼 흘리고 다니니까. 학교에 모든 남자들이 한번 어떻게 역어 볼까하고 이 선생한테 그렇게 들러붙어 있지.....남자 선생들이 이 선생한테 잘해주는 이유가 뭐겠어? 어리고 예쁘장한 여선생 한번 건드려 보려는 거지....
그리고 이 선생 우리학교 처음 부임했을 때, 내가 몇 번 좋게 주의를 줬어. 학교는 대학교가 아니다......항상 옷차림이나 몸가짐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했거든....
그러면 며칠은 괜찮다가....또 다시 그러는 거야....내 참 요즘 애들 기가차서.....]
[아....이 은비 선생님하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전혀 몰랐네요]
[그때 내가 하도 황당해서 이 은비 선생 졸업한 사대에 잘 아는 후배가 있어서 내가 물어봤어. 이 선생 대학 다닐 땐 어땠냐고....]
[그래요? 그 후배가 뭐래요?]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테이블에 커피 잔이 놓이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다시 그 듣기 싫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됐다.
[유명했데....이 은비 선생 대학 다닐 때도 보통 아니었데....]
[네? 정말요?]
[내가 아는 그 후배가 이 은비 선생 2년 선배였는데. 하는 말이. 이 선생 대학에서도 아주 유명했데. 주위에 남자들이 끊이지가 않았데...]
[에이....양 선생님. 그거야 이 선생님 예쁘고 그러니까.....남자들이 따라다니는 건 당연하죠]
[들어봐봐.....내 아는 후배가 졸업하고 거기서 조교 할 땐데, 몇몇 교수가 이 은비 선생을 그렇게 아꼈다네. 그게 제자로써 그런 게 아니라.....내 후배가 보기엔 교수들이 이 선생을 여자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데.
한 날은 교수 하나가 이 은비 선생을 급하게 찾더래. 그래서 후배는 이 선생한테 연락해서 그 교수가 찾으니까 방으로 빨리 가보라고 전해줬데.
그런데 후배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교수가 이 선생을 찾을 일이 없는데 뜬금없이 그러니까 좀 이상했데. 이 선생 지도 교수도 아니고 이 선생이 그 교수 강의를 전혀 듣지도 않았다는 거야.
그날 후배가 그 교수한테 무슨 승인받을게 있어서 교수실로 찾아 갔는데. 노크를 해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한참동안 조용하더래. 그래서 퇴근했나 싶어서 돌아가려는 순간 교수실 문이 열리더니...
열린 문사이로 얼굴이 벌게진 교수가 무슨 일이냐 물어서 후배가 이야기하니까 당황해하면서 서류만 건네받고는 내일 아침에 다시 받으러 오라고 했대.
근데.....
열린 문 사이로 보니까. 이 은비 선생이 소파에 앉아 있는데.......왠지 좀 옷차림이 이상했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놀래서 급하게 옷을 챙겨 입으면 여자들은 표시가 나잖아.
근데 더 결정적인 건.....
이 선생 구두가 소파 옆에 널 부러져 있더래. 그러니까 맨발로...... 그리고 그때 이 선생이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스타킹이 없이.....맨 다리더래.....그때는 겨울이라서 맨다리로 다닐 때가 아니었단 말이야....
뭐겠어? 이게.....교수실에서 둘이 붙어서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후배가 노크하니까 놀래서 화들짝 나온 거지 뭐겠어....]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에이....양 선생님......설마요.....이 선생님이 어떻게 교수님하고......]
그나마 지금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것은 듣기 싫은 목소리의 여자 앞에 앉아 그 말을 받아치고 있는 이름 모를 여선생이었다.
[으이구....강 선생. 이 맹추야......마저 들어봐, 여하튼 그 일이 있은 후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호주로 학과에서 테솔(TESOL) 연수 보낼 인원을 선발했데.
1년 동안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에 호주 체류비까지 지원해주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는데, 영어교육에서 1명만 선발해서 보내는 거였어.
누구나 당연히 영어교육 과탑이 선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뜬금없이 이 은비 선생이 선발됐다는 거야. 이 선생도 성적이 과에서 2~3등 정도로 좋긴 했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이상했나봐.
당연히 자기가 선발될지 알던 과탑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데. 학교 측에서 어떻게 달래서 조용해 넘어 가긴했는데......그 뒤에 도는 소문이 이 은비 선생을 교수실로 불렀던 그 교수가 이 선생을 선발하려고 그렇게 밀어 붙였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은비 선생이 그 교수하고 붙어먹고 선발됐다고 후배는 생각했었데.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 선생이 그 교수 애첩이라는 소문까지 잠깐 돌기도 했고.......그 후에 이 선생이 호주로 유학을 가버리니까 학교에서 소문이 흐지부지....그렇게 된 거지...]
듣기 싫은 여자의 목소리가 시종일간 들떠 있었다. 마치 지금 자기가 뱉어 내는 그 말들을 무척 즐기고 있는 것처럼 내게 들렸다.
[에이......양 선생님. 우리 대학 다닐 때 그런 소문들 한 두 번 쯤 없었어요? 교수가 제자를 건드렸다니......제자가 교수한테 몸 바쳐서 조교자리 차지했다는.....그런 소문들은 다른 대학에서도 항상 있어요]
나는 이 말을 끝으로 저 미친 여자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튀어나오던 아내의 대한 말들이 멈추길 간절히 바랬다.
[호호호호.......]
한 동안 조용한 와중에 갑자기 그 여자의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저 여자가 정말 미친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음......내가 정말 이런 말 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네? 또 뭐가 있어요? 이 은비 선생님 관해서?]
[어떡하나....말을 해야 되나....말아야 되나......후훗...]
[양 선생님도 참.....궁금하게 하시네요.,,...뭔데 그러세요? 말씀해주세요.]
[우리 한 달 전 즈음에 속리산에서 워크숍했었잖아?]
[네....우리학교 전체 선생님들 다갔잖아요]
순간 한 달 전 즈음 아내가 속리산에 1박2일로 워크숍을 갔던 게 떠올랐다.
[강 선생. 거기서 내가....좀 이상한 걸 봤어.....]
[뭐를요?]
[첫날 일정 마치고 저녁 먹고서 매번 그렇듯 크게 술판이 벌어졌잖아. 선생들 이때 다 싶어서 정신없이 술 마셨잖아. 물론 나도 그랬고...호호호......]
[아....그랬었죠. 저도 힘들어 혼났어요. 그때.....]
[남자 선생들이 권하는 술 계속 받아마시다 보니 너무 힘든 거야. 그리고 교장 영감탱이 내 옆에 붙어 앉아 느끼하게 웃으면서 술 주는 것도 싫고....
특히 이 은비 선생 주위에 남자 선생들 들러붙어서 희희낙락대고 이 선생은 거기에 맞장구치면서 술집 여자처럼 웃으면서 남선생들한테 술 따라주고....그 꼴 보기 싫어서 밖으로 나왔어.
그때가 아마....밤 11시가 넘었을거야.....산속이니까 밖이 깜깜했어.
나도 술에 좀 취했고 너무 힘들어서 좀 쉬려고 내차에 갔어. 차에서 잠깐 누워있는 다는 게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지 뭐야.
여름이었는데도 차에 있으니까 너무 추워서 깼어. 그래서 차에서 나가려고 보니까. 좀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어떤 차가 내 차 옆에 주차해있더라고, 그리고 한 남자가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어.
나는 우리학교 선생님인가하고 자세히 보니까.....아닌거야.....처음 보는 사람이었어. 무섭기도 해서 못나가고 차에 가만히 있었지.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니까 반대쪽에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까 이 은비 선생이더라고......
그러더니 밖에서 담배 피던 남자가 이 선생이 오는걸 보고 그쪽으로 가더라고. 그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니까 이 선생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주 불안해하더라고. 무척 당황하는 것처럼.....
분위기가.....참 묘했어.
갑자기 남자가 이 선생 팔목을 잡고 차 쪽으로 끌고 오더라고, 이 선생은 계속 주위를 둘러보면서 끌려오고......마치 억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 보였어.
남자가 이 선생을 차 조수석으로 거칠게 밀어 넣고 문을 닫고는 자신은 운전석으로 가서 차에 타더라고,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 때 차 실내등이 잠깐 켜졌는데....
이 선생이 얼굴을 손에 묻고는 울고 있는 게 얼핏 보이더라고....그래서 생각했지. 뭔가 좀 이상하다하고...
나는 그걸 보고 차에 혼자 있으니까 무섭기도 하고 이 선생도 조금 걱정되고 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 전화를 해서 남자 선생님들을 불러야 하나......어떡해야하나 하고 말이야....
내차 바로 옆에 주차하고 있어서 내가 차문을 열고 나가면 나를 볼 거 아니야? 그래서 나갈 수도 없고.......한 10분 정도 그렇게 차에서 가만히 숨죽이며 있었어.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니까 담배피던 남자하고 이 선생이 탄 차가.....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거야....흔들린다고 해야 하나?
너무 이상해서 나는 계속 그 차를 봤어. 그랬더니 깜깜해서 그런지 처음엔 아무것도 안보이던 그 차 속이......조금씩 어둠에 적응이 되니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 심장이 내려앉는지 알았어....]
[왜......왜요?]
[그 남자가 그 차 조수석에 와있었어.
그....그리고.....이 은비 선생.......하이힐이.....창가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