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ption (1)
“휴.....내리기 싫다.....”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교문 앞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하게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왜? 일하기 싫어?”
“아니요....그냥 오빠하고 이렇게 차타고 예쁜데 여행가고 싶어서요....”
“하하...선생님이 그럼 쓰나. 이 은비 선생님 직업 의식을 가지세요.”
“호호호.....”
아내의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차에 가득 찼다.
[쪽!]
아내의 입술이 내 볼에 지긋이 닿았다 떨어졌다. 이렇게 아내가 내 몸을 스쳐지나갈 때 마다 아내의 향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오빠. 4시 전에는 마칠 거 같아요. 있다가 봐요. 후훗....”
아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환한 미소를 내게 안겨주고는 차를 빠져 나갔다.
교문으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 마다 타이트한 살구색 스커트 속, 아내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킹으로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아내의 쭉 뻗은 허벅지 아래 다리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아내를 좀 더 있다 보낼 것을 하고 후회가 되었다.
몇몇 학생들이 아내를 보고 웃으며 연신 인사를 하자 아내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내의 눈부시게 새하얀 피부를 꼭 빼닮은 이 준준형차에서 아내의 향기가 가득했다. 그러자 아침 식사자리에서 나눈 뜻밖의 아내와의 섹스가 떠올랐다.
아내의 엉덩이를 감싸고 있던 살구색 미니스커트가 아내의 허리에 바짝 감겨 올라가 그 아래 모습을 드러낸 탐스런 엉덩이골 사이에 발기된 내 물건이 박혀 빠르게 움직이던.....그리고 내 움직임에 맞춰 터져 나오던 아내의 신음소리와.......
달아오른 아내의 몸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쏘아진 수많은 정액덩어리가 아내의 엉덩이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던 모습까지....
어느새 차는 카페 맞은편 대학 주차장입구에 도착해있었다.
“안녕하세요.”
입구에 있던 주차담당 여직원이 생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주차카드!’
급하게 주차카드를 찾았으나 보이지가 않았다. 조수석에 데시보드를 열어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주차카드가 보였다.
“미안해요. 여기요....”
“괜찮아요.”
내 차 뒤로 줄지어 서있는 차들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매일 주차를 하던 곳이 다행이 비어있었다. 이럴 때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동을 끄고 내리려는 순간, 좀 전 미처 닫지 못한 데시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열려있는 데시보드 깊은 곳에 작고 하얀 박스가 보였다. 얼핏 보니 알약이 담긴 박스 같았다.
나는 그것을 꺼내어 박스에 적힌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렸다.
“어...안녕하세요. 사장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앉아 있던 단골 녀석이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야! 너는 아침부터.....강의 없어?”
“하하하...사장님도 참.....아침에 한잔하고 가야죠. 여기서 한잔 안하면 하루가 피곤해요....크크큭...”
“자식.....”
“어....사장님...근데....그게 뭐에요?”
녀석의 손가락 하나가 내 얼굴로 향해 있었다.
“우하하........사장님.....대박....”
내 볼을 빤히 들여다보던 녀석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댔다. 그 소리에 안쪽에 있던 미나와 세희가 동시에 급히 다가와 녀석처럼 내 얼굴 한쪽을 빤히 들여다봤다.
무표정하게 나를 보던 미나가 테이블에 있던 하얀 냅킨 하나를 꺼내어 내 한쪽 볼을 슬쩍 닦아냈다. 미나의 손에 들려 있는 냅킨에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어......뭐야....이거...”
“에휴......오빠! 애들 앞에서......작작 좀하세요.....은비 언니도 좀 그래....흐음.....”
미나가 한숨을 쉬며 Bar로 돌아갔다. 그때서야 아내가 차에서 내릴 때 나를 보던 표정이 생각났다.
내 뺨에 남겨놓은 자신의 립스틱 자국을 보며 환하게 웃던 그 예쁜 얼굴이.....
“세희야! 너 오늘 좋은 일 있어?”
매일 밝은 모습의 세희였지만 오늘은 그녀의 얼굴에 더욱 기분 좋은 미소가 보였다.
“네!”
“그래? 뭔데? 야...좋은 일 있음 나도 같이 알자.....섭섭하게.....무슨 일인데?”
“있다가 오빠 와요.”
“단지 그것 때문에? 너희 오빠 오는 거야 매주 그런데....”
세희는 웃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Bar에서 자신의 일을 했다.
세희의 오빠 최 진욱....오랫동안 내게 ‘그’ 라는 이름으로 지칭된 그 사람.
파타야에서 일주일간 고통을 나날을 나와 함께했던 그,
반년 전 즈음, 그가 처음 카페로 나를 찾아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하지만 지금은 그를 만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의 일 때문에 묘한 동질감이 들기 까지 했다. 더욱이 세희가 우리 카페에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를 만나기로 한 오후 4시가 점점 다가왔다.
매일 나와 함께하고.....매일 나와 한 침대에서 잠자리를 하는 그런 아내가, 하루중 이렇게 잠깐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보고 싶은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이...치우야! 세희야!”
“오빠!!!”
카페 문을 열고 최 진욱이 들어왔다. 그러자 세희가 조르르 달려가 그에게 풀썩 안겼다.
“왔어요?”
“어이....김 치우....못 보던 사이 얼굴 좋아졌다. 역시 이래서.... 남자는 결혼을 잘해야되...흐하하하.....”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는 한동안 나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하.....뭘 그렇게 빤히 봐요? 민망하게....”
“하하하....보기 좋아서...너 표정 보니까...나까지 기분 좋아 진다....내가 처음 여기 너를 찾아 왔을 때....그때 니가 나를 보던 그 얼굴은 정말 엉망이었는데....”
“그럼 형님도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시든가....하하....”
“하하하...그래버릴까?”
“오늘 주말도 아닌데 어떻게 왔어요?”
“아...그게 나 이쪽으로 완전히 이사 올 거야. 세희 저렇게 수연 씨 집에 계속 둘 수도 없고, 떨어져 있으니까 걱정되서...”
“네? 그럼 지금 거기서 하는 약국은요”
“거긴 후배한테 처분하고, 여기 아래 사거리 근처에 약국자리 봐뒀어. 안 그래도 지금 계약하고 오는 길이야.”
다소 뜻밖이었지만, 세희와 떨어져있던 그가 그녀와 같이 지낸다는 게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아....그래서 그랬구나.”
“응? 뭐가?”
“오늘 세희가 좋은 일 있다고 하더니 이거였군요.”
“하하하....그랬어? 휴....이제는 걱정할 일 없어서 나도 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얼굴에 세희와 꼭 닮은 미소가 시종일간 떠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하고 있는 흐르자, 내가 아내에게 가야 할 때가 점점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에게 무엇인가를 물어 볼지 말지를 계속 망설였다.
“저기....이...이건 무슨 약입니까?”
나는 몇 번을 갈등하다가 아내의 차에서 촬영한 약상자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뭔데 그래? 어.....이거 신경안정젠데.....”
“신경안정제요?”
“응....왜....스트레스....불안...우울....불면증....등등....그런데 쓰는 약인데. 근데 이건 좀 쎈 약인데. 부작용도 좀 있어서....처방전 받아야 되는 약인데. 근데 이 약은 왜? 어디서 났어?”
그의 물음에 내 눈빛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어제 손님이 두고 갔는지 테이블에 있어서요....버리려고 하다가 형님 온 김에 물어봤지....음....이거 버리며 안되겠네....”
“그래? 그건 그렇고 은비 씨는 잘 지내지?”
“네. 요즘 학교서 바빠서 정신없어요.”
나는 다시 아내의 차를 몰고 아침에 아내를 내려주었던 중학교로 가고 있었다.
‘신경안정제....’
왜 아내의 차에 신경안정제가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박스에 있던 그 약은 벌써 몇 알을 먹었는지 캡슐이 몇 개가 비워져 있었다.
결혼초기까지 아내가 가끔 아버님 생각이 나는지 내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방을 빠져 나가 소리죽여 흐느끼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내를 그렇게 둘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아내라고 하더라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두 부모님을 모두 잃었던 것처럼.....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내에 대한 생각에 깊게 빠져 있는데.....스마트폰 액정에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가 떠있자 절묘한 타이밍에 나는 웃음이 났다.
“으응. 여보!”
“오빠? 지금 오고 있죠?”
“응”
“으음....근데 어떡하죠? 아직 일이 남아서....30분정도 더 걸릴 거 같은데....”
“그래? 그럼 학교근처서 기다리지 뭐....”
“그러실래요? 그럼 정문 내리막길 옆에 트리하우스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기다릴래요?”
“그래. 알았어. 괜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 나는 괜찮아”
“안돼요. 빨리 갈 거예요. 보고 싶어요....후훗....사랑해요 이따 봐요 여보!”
통화가 끝났음에도 좀 전까지 차에 울리던 경쾌한 아내의 목소리가 아련히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알려준 카페 주차장에 도착하여 카페 건물을 찬찬히 둘러봤다.
규모가 있는 카페인 것 같았고,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카페 이름처럼 녹색의 나무들이 빼곡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다.
애매한 시간이서인지 손님들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전 아기자기한 정원이 훤히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고급호텔에서 서빙을 보는 듯한 차림의 여직원이 웃으며 내게 커피를 전해줬다.
모든 것이 관리가 잘되고 있는 카페라고 생각되었다. 이곳에 비하면 내 카페는 구멍가게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단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나무들로 가로막혀 있는 내가 앉은 뒤쪽에서 거슬리는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그 소음의 정체는 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우아하게 보이고 싶어 흉내를 내지만.....들리기에는 너무나 천박한 목소리....
끊이지 않는 그 소음에 내 얼굴이 점점 찌푸려졌다.
듣기 싫은 온갖 잡다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간 이야기....아들이 얼마 전 중간고사에서 2등을 했다는 이야기.....
분명 두 여자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대화를 듣기 싫은 목소리의 한 여자가 주도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어느 학교의 이야기.....
듣다보니 대화를 하는 여자 둘 다 교사임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 나는 요즘 너무 이 선생님이 너무 부러워요.]
[뭐? 누구 이 선생?]
[이 은비 선생님이요....]
뒤에서 들려온 뜻밖의 그 소리에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은비 선생? 왜? 뭐가 부러워?]
[휴....이 선생님....똑똑하고...그리고 예쁘고.....다른 선생님들도 다 좋아하고.....애들도 다 좋아하고......우리 반 애들은 내 말은 죽어라 잘 안 듣는데....이 은비 선생님 말은 한 번에 들어요...섭섭하게....자식들....]
[흥.....부럽긴 뭐가 부러워?]
감정이 묻어나는 신경질 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손에 들려진 머그컵이 한참동안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호호호....강 선생....몰랐어? 이 은비 선생 걸레잖아......]
순간 내 머리 한 쪽을 누군가 전기로 지지는 듯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