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77)

Reunion (19)

주점에 손님들이 가득 찼는지 홀로 빠져나오자, 여기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갖가지 소음들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미나와 세희가 있던 룸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 닥친 나 때문인지 화들짝 놀란 미나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세희가 안 오다니?”

“언니가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는 안와요......하도 안와서 좀 전에 나갔다가......이상한 아저씨들이 많아서....무서워서 그냥 돌아왔어요”

놀란건지 미나의 얼굴전체가 붉은 빛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테이블에 있던 위스키가 3분의 2이상 줄어 있었다. 

“술 많이 마셨어? 세희가 나간 지 얼마나 됐어?”

“술은 좀.....근데 언니 나갈 때 멀쩡했어요. 30분 정도 지난 거 같아요.”

“알았어. 걱정하지마. 내가 찾아볼게.....”

룸을 빠져 나오자 또 다시 듣기 싫은 잡다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멀리 카운터에서 김 부장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형님. 뭐 필요하세요?”

“아니....나하고 같이 왔던 아가씨 봤어?” 

“누구요?”

“이 지안 닮은 아가씨.....”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세희가 닮은 여배우 이름이 튀어 나왔다.

“아.....아까 서비스 안주 가져다준다고 룸에서 보고, 밖에서는 못 봤어요. 지금 룸 풀이라....오늘 저도 너무 바빠서....형님 무슨 일 있어요?”

다행히 김 부장은 세희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 차렸다.

“아니다....”

나는 김 부장을 지나쳐 안쪽으로 걸음을 바삐 옮겼다. 

“어머!!!”

여자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세면대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단장하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급하게 다시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미안해요...미안.....”

잠시 후 화사하게 화장을 고친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나를 한번 흘깃 보고는 통로를 빠져 나갔다.

나는 여자화장실에 다시 들어갔다.

“세희야! 너 여기 있어?”

화장실 안은 내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변기가 있는 문을 하나씩 열어 확인했다. 

바닥에는 여자들이 쓴 휴지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이상한 색으로 번진 생리대까지 보였다. 

가장 안쪽에 있는 마지막 문까지 열어 확인을 했지만 세희는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통 옆 구석에 버려져 있는....이미 사용한 듯, 늘어진 콘돔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는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하얀 정액이 가득 차 있었다. 

내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형님! 그 아가씨 없어요. 룸에?”

다시 홀로 빠져나온 나를 보고 김 부장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그냥 지나쳐 입구에 있던 룸부터 하나씩 들여다봤다.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다시 옆에 있던 다른 룸을 들여다봤다. 남녀가 짝을 맞춰 소파에 딱 붙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룸을 확인할 때 마다 모두 비슷한 광경이었다.

미나와 세희가 있던 맞을 편 룸을 들여다봤다. 

내부가 어두웠다.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천정에 달린 미러볼이 빛을 내며 천천히 돌아갔다.

나는 그곳을 지나쳐 다른 룸으로 향했다. 중간 즈음 갔을 때,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멈췄다. 무슨 이유인지 내 얼굴이 서서히 찌푸러져 갔다.

나는 방금 지나친 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단번에 열어젖혔다. 

잔잔하지만 짙은 음색의 노래가 들려왔다.

룸은 조명을 최대한 줄였는지 너무나 어두웠다. 홀을 은은하게 밝히던 빛이 룸 안으로 새어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얼핏 들어나 보였다. 그들이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테이블 위에 누군가가 올라가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채 룸 안에서 크게 울리는 그 노래에 맞추어 한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의 늘씬한 몸매가 마치 속옷 모델처럼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여자가 움직일 때 마다 맨 가슴이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나는 테이블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는 알몸이었다. 아니.... 몸에는 작은 팬티만이 걸쳐져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의 얼굴에 너무나 매혹적인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여자가 움직일 때 마다 몸에 새겨져 있는 그 새파란 뱀이 살아 튀어나와 나를 감싸고 또아리를 틀어 내 몸을 터드려 버릴 것 만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게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는 여자를 바라봤다.

자신을 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 하얀 치아가 들어날 정도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내 목을 깊게 끌어안았다.

나는 그 여자를 안고서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여자의 몸이 너무나 가벼웠다. 여자의 맨몸이 땀으로 조금 젖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내게 익숙한 옷을 내밀었다.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옷을 입혔다. 브래지어를 채우고.....플레어스커트를 입히고......하지만 여자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내 얼굴만 뚫어져라 봐라보고 있었다.

옷을 모두 입히자 세희가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세희의 손을 잡고서 밖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김 부장이 떨리는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언니!!! 어디 있었어요? 하두 안와서...걱정했잖아요.”

세희와 함께 룸에 들어서자 소파에 흐트러져있던 미나가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꼭 잡고 있던 세희의 손을 놓아주고 내 자리로 가려고 했으나 세희는 내 손을 풀어주지 앉았다.

“오빠....”

갑자기 세희의 얼굴이 내게 바싹 다가왔다. 나는 뒤로 조금 물러났지만 급하게 다가오는 세희의 얼굴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 살며시 입에 담았다 놓아주는 ‘쪽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희가 두 팔로 내목을 깊게 두르고 안겨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이 내 몸에 바짝 닿았다.

그녀는 내 입술 이곳저곳을 자신의 입술로 감쌌다가 놓아주길 반복했다. 그럴 때 마다 좋은 향기가 내게 스며들었다.

세희의 작은 혀가 내 입술을 파고 들 때 쯤, 나는 그녀를 천천히 밀어냈다.

룸에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내가 술병을 들어 내 잔에 술을 따르고, 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따르는 소리만이 반복됐다.

세희는 미나와 처음처럼 함께 붙어 앉아 있었다.

계속 들이키는 술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은비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은비가 나를 잃어버릴세라, 내 손을 꼭 잡고 방콕 수완나품 공황을 웃으며 걸어가던 모습이 생각났다. 

붉은 석양이 물들어 눈부시게 아름답게 변한 파타야 비치를 내려다보며 내게 영원한 사랑을 속삭였던 은비의 그 예쁜 목소리도 들렸다.

은비가 자신의 몸을 마사지를 하던 검은 태국 남자의 성기를 입속에 깊게 담아 빨던 모습......

황 경태의 몸을 꼭 끌어 않고서 그가 움직일 때 마다 그 가냘픈 몸으로 뜨거운 신음을 토해내던 은비.... 

택시 조수석에 기대어 다리를 벌린 채, 택시기사의 굵은 손가락이 자신의 몸속으로 빠르게 파고 들 때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을 지켜보던....은비....

어떤 모습이 사랑스러운 나의 은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가.....처음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오르가즘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게......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학교에 일주일 동안 나가지 않았어요. 물론 준비하던 시화전에 그림도 내지 않았어요.

엄마 아빠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셨지만, 저는 절대 그날의 일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 아빠는 그런 저를 이해하고 학교에 가라고 재촉하지도 않았어요. 

매일 밤 그날의 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며칠 후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 왔어요. 

엄마가 방에서 잠시 나가자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침대에 누워있는 저의 이마와 뺨을 손으로 만지며 괜찮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내 몸이....또....이상하게 변해서....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마치.....트라우마 같은 거였어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대학에 입학했어요. 

내 주위엔 항상 남자들이 많았어요. 남자들은 항상 내 옆에 서성이며 나를 도와줬어요.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남자들의 눈빛은 어느 순간.......그때 내 몸을 만지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 아저씨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어요. 

항상 같았어요. 유학을 가서도.......

오빠를 처음 봤을 때, 오빠가 나를 위해 주문하지도 않은 케익과 쿠키를 내어줬을 때, 나는 의심했어요. 이 사람도......지금까지 그랬던 그런 남자들과 같을 거라고......

비가 오던 날,

내가 오빠를 쏘아 붙이자 오빠는 나를 보며 얼어버렸어요. 나를 보던 마지막 그 눈빛이 나에 대한 모든 호기심을 잃어버린 듯한 그런 눈빛 이었어요.

이 남자라면 어떨까? 이 남자라면 지금까지 내 주위에 있던 남자들과 다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오빠는......달랐어요. 

하지만 오빠 친구가 내 가슴을 만지고.......술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내 몸을......그렇게 했던 날.....나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거 같아요.

오래전 미술실에서의 그날 밤의 나로 돌아 가버린 거죠..... 

남자들이 나를 이상 눈으로 보는 게 너무 싫어요. 

남자들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게 너무나 싫어요.

하지만......좋아요.....

후훗......나 미친 거 같죠? 

오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빠예요. 이건 내가 죽을 때까지 절대 변하지 않아요.

부탁하나만 들어주세요.

만약 내가......정상적인.....평범한 여자로 돌아온다면 나를 다시 받아 줄 수 있어요?

내가 스스로 나에게 확신이 들 때 다시 오빠를 찾아오면.... 그럼 받아 줄래요?

그때까지 오빠는 마음대로 하세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사귀고......아니면 다른 여자들과 그냥 잠자리를 해도.....저는 괜찮아요.

만약 내가 오빠를 다시 찾아 왔을 때.....오빠가 여전히 혼자라면 저를 다시......

내 부탁 들어 줄 수 있어요?] 

그날 새벽.....내방 침대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던 은비가 떠올랐다. 

테이블 모퉁이만을 계속 바라보던 내 시야가 천천히 흐려졌다.

나는 언더락 잔에 채워진 독한 술을 반 이상 마셔버렸다. 술이 내 몸속을 타고 들어가며 곳곳에 불을 지르는 것 같이 몸이 달아올랐다. 

[수연아. 그냥 니 운명을 받아 들여. 보아하니 술집에서 일하는 거 같은데. 나는 니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너는 남자 없으면 절대 못살아. 그것도 한 남자로는 부족하지 이렇게 술집에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남자들하고 즐기고....그렇게 살라구. 흐흐흐....]

조금 전 정 수연을 바라보던 지점장의 능글맞은 그 얼굴이 떠올랐다.

“개새끼.....”

갑자기 튀어나온 욕설에 미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세희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나를 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건너편에 있던 그 룸으로가 문을 열었다.

“아....아.....하지마......아악!!!!”

정 수연이 알몸인 채로 검은 테이블위에 엎드려 있었다. 바닥에는 그녀가 입고 있던 짧은 스커트와 스타킹이 찢겨진 채 나뒹굴었다.

알몸인 하체를 정 수연의 엉덩이 속에 바짝 붙어 움직이고 있는 지점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정 수연의 짧게 변한 뒷 머리채를 한 손으로 쥐어 잡고 자신의 몸 쪽으로 바싹 당기고 있었다. 때문의 정 수연의 몸이 뒤로 활처럼 뒤로 휘어져 있었다.

“으아.......씨발년아......으하......개같은.......년.....”

내가 룸으로 들어온 것도 모른 채 그는 계속 움직였다. 

은색의 반짝이는 무선 마이크가 앞에 걸려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그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쿵!!! 쿵!!! 쿵!!!]

마이크 헤드가 그의 머리와 이마에 닿을 때 마다 룸 스피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누구야.......으으......아.......” 

“개새끼야!!!!”

[쿵!!! 쿵!!! 쿵!!!]

마이크를 쥔 내 팔이 움직일 때 마다 그의 얼굴에서 진한 피가 터져 나와 아래로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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