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77)

Reunion (16)

테이블 위를 예쁘게 수놓고 있는 그 특별한 음식들이 입에 넘어가지가 않았다.

나는 애꿎은 호주산 쉬라즈 와인만을 홀짝이며 붉은 빛의 꼬리를 달고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는 도로위의 차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맛없어요?”

미나는 걱정이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아니. 맛있어...맛있어.....너희들 많이 먹어....나는 벌써 배불러...”

미나와 세희가 자신의 와인 잔을 내개 내밀었다.

세 개의 와인잔이 조심스레 살짝 부딪치자 듣기 좋은 은은한 소리가. 우리 테이블 주위에 머물다 아쉽게도 금방 사라졌다.

“오빠. 고맙습니다.”

와인을 길게 한 모금 마신 세희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매가 진한 화장으로 더욱 깊어져 있었다.

와인 탓인지 그녀의 크고 또렷하던 눈동자가 조금 흐려져 있었다.

“응? 뭐가?”

“절 구해주시고.....잘 대해주시고.....보살펴 주시고.....감사합니다.”

다소 뜬금없는 세희의 말에 미나가 놀라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오빠 아니었으면 아마도 거기서 죽어 버렸을지 몰라요. 그런 나를 오빠가 구해줬어요.....”

“세희 언니? 그게 무슨......”

미나가 궁금한 눈빛으로 나와 세희를 번갈아가며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빨리 이 늦은 저녁자리가 끝나고 상태 형의 주점에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미나에게 무슨 핑계를 대야할지 고민했다. 분명히 미나는 식사 후 다른 곳에서 ‘술 한 잔 더’를 원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나와 세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표시나지 않게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0시가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오빠 우리 이제 어디가요?”

테이블 위에 턱을 두 손으로 괴고서 나를 보는 미나의 눈이 반짝 거렸다.

“음......둘이 한 잔 더하고 들어가....나는......”

“네? 뭐라고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나가 나에게 쏘아 붙였다.

“저기. 김 사장님. 그러시지 마시고요...오늘 하루만은.....우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계세요......

언니. 언니 우리어디 갈까요? 클럽 갈까요? 아니면 노래하러?”

“음.....나는 아무데나 괜찮아. 미나 너가 정해....”

볼이 와인 빛으로 붉게 물든 미나와 세희가 서로의 눈을 맞추고는 내겐 보이지 않는 언어들을 바삐 주고받고 있었다.

앞머리가 듬성듬성 나있는 4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가 틈이 있을 때 마다 백미러로 뒤에 앉아 있는 미나와 세희를 훔쳐보고 있었다.

택시에 무슨 냄새인지 모를 무슨 쿰쿰한 냄새가 깊게 베여있었다.

몇 달 전......택시 조수석에 깊게 기대어 다리를 벌리고 있던 은비가 잠깐 떠올랐으나 다행히 금세 지울 수 있었다.

“오빠 거기가 어디에요? 학교 근처?”

뒤에 앉아 있던 미나가 말했다.

“으...응....선배가 하는 가게.....”

나는 할 수없이 미나와 세희를 데리고 상태 형의 주점으로 가고 있었다. 그 둘을 억지고 떼어 놓고 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긴 싫었다.

“오빠....여기에요?”

미나가 상태 형의 주점 앞에 서서 반짝이는 노란 간판을 한동안 보곤 내게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 지하로 내려갔다. 뒤에서 나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는 미나와 세희의 하이힐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형님.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사장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기다렸는지 김 부장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홀에서 아가씨들의 노랫소리가 크게 울렸다.

“야....현수야 지금 룸 있지?”

“네?”

“일행 있어....빈방 있으면 하나줘...”

“네? 어........”

김 부장의 시선이 내 어깨를 살짝 넘어 뒤를 향해있었다.

그는 한동안 이 상황이 정리가 안 되는지 멍하게 서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아......네...이쪽으로........”

김 부장이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 했다.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 손님의 시선이 미나와 세희의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훑고 있었다.

문을 열고 시간을 추가하던 아가씨의 시선이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김 부장이 안내한 곳은 항상 갔던 안쪽 바로 전 룸 이었다.

“현수야. 맥주 좀하고 술 먹던 걸로 가져오고.........알아서....”

“네 알겠습니다. 형님. 사장님은 안쪽 룸에 계십니다. 오셨다고 말씀드릴게요......”

김 부장의 마지막 시선이 미나와 세희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오빠! 여기 그런데 아니에요? 여자들 나오는?”

김 부장이 룸을 빠져 나가자마자 미나가 테이블로 바싹 다가와 말했다. 세희는 룸 안을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니야. 그냥....노래 부르는데야.....”

“에이.....좀 전에 다른 방에 있던 여자 봤는데요. 옷차림이.......호호호.....어쨌든 괜찮아요. 이런데 한번 오고 싶었는데요......오빠 때문에 오네요...........우와....안에 화장실도 있어요?”

미나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찬찬히 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 짠해요?”

미나가 세희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었다. 세희도 그런 미나를 친 동생처럼 챙겼다.

이곳에 미나와 세희를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였으나, 다행히 그녀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미나. 세희, 둘 다 좀 천천히 마셔....내일 아침에 일은 어떻게 하려고...”

“피곤하면 가게서 자면 되죠.....다같이....”

미나가 세희의 허리를 깊게 끌어안았다.

위스키가 목으로 넘어가자 아직까지 남아 있던 좀 전 레드와인의 여운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미나와 세희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둘다 술이 조금 달아올랐으나 취한 것은 아닌 것 같았고,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언니! 언니! 우리 노래 불러요. 이 노래 알아요?”

세희에게 노래 제목을 보여주던 미나가 세희의 손목을 잡고서 앞으로 끌고 나갔다.

잠시 후 조금 빠른 템포의 노래가 시작됐다.

나는 습관적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미나와 세희를 보고선 이내 관뒀다.

미나와 세희가 같이 맞혀 입은 플레어스커트가 그녀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움직일 때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렸다. 그러자 검은 스타킹을 신은 깊은 허벅지가 이따금씩 내게 드러나 보였다.

노래를 부르던 미나가 앉아 있던 다가와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미나에게 이끌려 그녀들이 있던 앞쪽으로가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나를 정면으로 보며 노래를 부르던 미나가 뒤를 돌아 몸을 내게 밀착했다. 미나가 움직일 때 마다 그 부드러운 엉덩이가 내 아래쪽을 스치며 지나갔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진한 여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세희는 조금 떨어져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미나의 배를 감싸 안았다.

오랫동안 잊은 듯 했던 너무나 보드라운 그 살이 내 손에 느껴졌다. 조금씩 스치기만 하던 미나의 엉덩이가 완전하게 내 몸에 닿자, 노래를 부르던 미나의 목소리가 순간 변했다.

“아아!!!!”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가던 미나의 마이크에서 갑자기 전혀 어울리지 않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 나를 등지고 있던 미나를 살펴보았다.

미나의 몸은 앞쪽으로 바싹 움츠려져 있었고, 세희가 떨리는 눈으로 미나의 가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내 손에 전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 느낌이 전해줬다.

룸에서는 미나의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 반주만 이어졌다.

나는 미나를 뒤에서 끌어 않은 채, 내 한 손이 미나의 한쪽 가슴을 떠질 듯 움켜쥐고 있었다.

“어!!! 미안해.....미나야....미안해.....”

나는 너무나 놀라 미나의 가슴을 터질 듯 움켜쥐고 있던 손을 급하게 떼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엉덩이에 붙어 있던 내 하체 또한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뜨겁게 변한 내 물건을 바지가 간신히 막아 세우고 있었다.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던 미나는 노래를 다시 어어 갔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소파에 돌아와 민망함에 반쯤 남아있던 위스키를 마셔버렸다.

내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는 건 이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나의 가슴을 주무르던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지만 되돌린 순 없었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났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나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볼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몸이 내게 완전히 기대어 있었다. 좀 전의 그 향기가 다시 느껴졌다.

새하얀 손이 방금 내가 마신 빈 위스키 잔을 들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술을 따라줬다.

미나는 그 술을 한 번에 마시고 잠시 내 곁에 머물다가 다시 세희가 있는 건너편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안겼다.

미나와 세희의 표정이 급히 마신 술 때문에 조금 흐트러져있었다.

테이블에 있던 스마트폰이 환하게 빛을 발해 어두운 룸을 밝혔다.

[도착.....]

짧은 메시지 위에 상태 형의 이름이 보였다.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미나야. 세희야. 나 형님 잠깐 보고 올 테니까 둘이 좀 놀고 있을래? 필요한 거 있음 아까 현수한테 말하면 알아서 챙겨 줄 거야. 혹시나 급한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구......”

미나와 세희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룸을 빠져 나와 주위를 둘러 봤다. 멀리 카운터에 현수가 얼핏 보이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몇몇이 그 앞에서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룸 문을 열었다.

예전처럼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상태 형이 테이블에 있던 자신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치우야.......너....아가씨들 데리고 왔다면서?”

“네...오늘 회식이라....직원들.....”

“그랬구나...”

“수연 씨는 왔어요?”

“아니 아직....근데....일행은 온 거 같아.....수연 씨가 오늘 전화 와서 지난번 최 실장하고 한 사람 더 갈 거니까. 같은 룸에 모시라고 말을 하더라고.....”

“같은 룸이라고 함은......몰래카메라? 그 방요?”

“그래...그방....방금 들어왔어. 이리 와서 같이 보자.....”

나는 상태 형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화면에는 두 남자자의 모습이 보였다. 상태 형이 노트북의 볼륨을 끝까지 높였다,

[최 실장.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화면에 50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한 사내가 말했다. 나이는 들어 보였으나 머리는 염색을 했는지 전체가 까맣게 보였다. 그의 말투는 무척 부드러웠지만 눈빛에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분위기가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점장님. 부탁드릴 것도 있고.....오늘 소개해드릴 사람도 있어서 이렇게 따로 뵙자고 했습니다.]

최 실장이었다.

[허허허.....은행에서 말하며 되지.....무슨 은행 바로 앞 동네에 이런데서 보자고 하나......이사람아....]

[그....그게......사정이 좀 있어서....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동영상에서 봐왔던 최 실장의 모습과 오늘은 전혀 딴판이었다.

[그래. 그럼 최 실장. 말이나 들어 봅시다]

[지점장님....부지점장님.....서울 다른 지점으로 옮긴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리.....제가 앉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지점장이라는 남자가 황당한 건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한동안 최 실장을 빤히 쳐다봤다.

[허허허.......최 실장........이 사람이거........하하하하......]

그때 문이 열렸다.

“뭐....뭐야 저거.......수......수연 씨 맞아?”

상태 형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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