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77)

Reunion (12)

“누나! 우리 매일 주문하던 걸로 주세요.”

“네에~”

거의 매일 카페에 찾아오던 단골 녀석이 활짝 웃으며 세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주문을 받은 세희 또한 방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세희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다. 

조금 주눅 들고 긴장해 있던 그 표정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희의 얼굴에는 항상 편안한 미소가 스며 있었다. 

그리고 세희의 화장과 옷차림도 변했다. 

처음에는 화장을 한 건지 안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본 메이크업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매일 조금씩 화사하게 변해 갔다.

자신의 몸속에 새겨있는 흉물스러운 그것을 감추려, 항상 상체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어 답답하게 보이기까지 했던 블라우스가 언젠가부터 조금 루스하게 변했다.

단골손님들 사이에서는 세희가 여배우와 닮았다는 이유로 계속 이슈가 회자되고 있었다. 하지만 세희는 딱히 그들의 그런 관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세희가 카페 일에 적응이 되자 나는 한층 편해졌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을 정도로.... 

미나는 비록 나와 함께 쓰는 가게지만, 자신만의 작은 공간이 생긴 것이 기쁜지 모든 행동들이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미나는 가게를 운영함에 있어 특별한 감각이 있었다. 

미나는 일주일을 넘게 홀로 고민하던 끝에 점심때까지만 판매할 자신의 메뉴를 만들었다.

그것은 ‘에그베네딕트’ 였다.

혼자서도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 할 수 있고, 커피와 잘 어울리는 메뉴라고 나는 생각했다. 더군다나 미나가 만든 그것이 매우 맛있었다.

미나의 선택은 적중했다.

판매 개시 첫날부터 손님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렇게...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특별한 나의 일상이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오빠 잠깐만요”

“어어....그래...”

세희가 비좁은 Bar 입구에 서 있던 나를 간신히 헤집고 안쪽으로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조금 비켜주자 세희의 엉덩이가 내 그곳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지나갔다. 부드러운 살결이 내 몸에 닿은, 단 몇 초의 그 느낌이 순간 내게 깊게 각인되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얼마 만에 여자의 몸이 내 몸 거기에 닿았던가를 생각하니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세희는 Bar 안쪽에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여자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이고 교감이고 그딴 것들은 필요 없이, 단지 내 몸속에 오랫동안 고여 있는 그것을 여체를 통한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빨리 배출하고 싶을 뿐이었다. 

“저기.....오빠? 저 좀 나갈게요....”

세희의 손에는 앙증맞은 케이크 접시가 쥐어져있었다. 그녀는 다시 Bar를 빠져 나가기 위해, 입구를 막고 있던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내 물건이 어느새 빳빳하게 변해있었다.

“언니. 언니 그거 알아요? 손님들이 언니보고 뭐라고 부르는지?”

늦은 저녁을 먹다말고 미나가 세희에게 말했다.

“응? 뭐라고 부르는데?”

“호호호....경대 이 지안이라고 불러요.”

“아.....”

어색한 미소를 띤 세희의 볼이 순간 붉게 변했다.

“근데 나는 이 지안보다 언니가 더 예쁜 거 같아요. 정말 닮긴 많이 닮았는데....분위기가......”

미나는 말을 하다 세희를 얼굴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렸다.

“언니는 가끔 보면 귀엽기도 하면서.....섹시하기까지 해요....호호호....오빠!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둘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의 그런 시선에 엉뚱한 것이 떠올랐다.

파타야의 그곳에서....세희를 처음 봤던 그날이 생각났다.

두터운 문이 열리고 하늘거리는 분홍색 유카다를 입은 채 욕조에 있던 나에게 걸어오던 세희와의 첫 대면이 영화처럼 문득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흐흠....세희는 어때? 수연 씨하고 같이 지낼만해?”

갑자기 화제를 돌리자 미나가 나를 못마땅하게 흘겨보며 삐죽거리는 게 보였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좋아요. 수연 언니가 너무 잘 챙겨주세요. 미안할 정도로......”

“오빠. 근데 우리 회식 같은 건 안 해요? 다른 사장님들은 일마치고 직원들 맛있는 거 사주고 그러든데.....그리고 세희 언니 여기서 일한지가 2주가 다 되어 가는데.....너무한 것 같아요. 노동착취....악덕업주.....”

미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 은비와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내가 가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홀로 카페에서 고생했던 미나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그러면 이번 주 금요일에 가게 마치고 맛있는 거 먹으로 가자. 메뉴는 둘이 상의해서 정하고....”

“정말이죠?. 세희 언니! 우리 정말 비싼 거 먹으러가요. 수연 언니도 불러서 같이 가요. 후훗...”

미나의 큰 눈이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그때,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카페 문이 여는 소리였다.

“오빠하고 언니는 마저 드세요. 저는 다 먹었어요.”

미나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와 카페를 이어주는 공간을 통해 건너편 홀 쪽으로 빠져나갔다.

“세희야. 수연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

미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 쯤 세희에게 물었다.

“음.....잘 지내세요. 수연 언니 요즘 좀 바쁜 거 같아요. 본가에 자주가세요. 거기서 하루 이틀 자고 올 때가 많아요.”

“아...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오래전 본가와 연락을 끊어버린 정 수연이 그곳에 가서 자고 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 수연이 아직도 그 은행 사람들과 만나며 여전히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됐다. 

홀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미나의 밝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수연 씨, 덕분에 조 사장이 우리 쪽으로 직원들 급여는 넘겼어. 조 사장하고 따로 몇 번 만났다면서? 

하하하....영감탱이...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안 된다더니.....오늘 오전에 조 사장 만났는데. 수연 씨 한테 완전히 푹 빠져있던데....어떻게 한 거야? 나한테 한 것처럼 그렇게 한 거야?]

최 실장의 손이 옆에 앉아 있던 정 수연의 스커트를 파고들어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정 수연의 몸이 최 실장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조 사장 애인이라도 하기로 한 거야? 그 영감 알부자로 이쪽까지 소문난 양반이라 돈은 많으니까 어떻게...잘해볼 생각이야?]

그의 물음에 정 수연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늙은 영감보단 내가 낮지 않아? 어때? 요즘...출근해서도 니 생각이 자주나.....여기서 너하고 정신없이 섹스 할 때가......그럴때면.....밑에 데리고 있는 예쁘장한 여직원 하나 방으로 불러 따먹고 싶어서 미칠 거 같아....

예전에 계약직 많을 때는 말 안 해도 발랑 까진 애들은 지가 방으로 찾아와서 엉겨 붙었는데. 요즘은 미투다...성희롱이다 뭐다 말이 말아서......재미가 없어......씨발

흐흐흐.....수연 씨. 은행이 얼마나 지저분한 곳인지 수연 씨는 잘 모르지? 아무래도 젊은 여자들이 많다보니 보고 있으면 가관이야....

대학 졸업하고 갓 입사한 예쁘장하게 생긴 애가 들어오면 과장이고 차장이고 지정장이고 서로 따먹으려고 난리도 아니야.

한 2~3년 전이었나? 수연 씨처럼 정말 예쁘게 생긴 애가 한명 들어왔었는데 알고 보니 한 달 만에 지점에 있던 남자들이 거의 다 따먹었더라고.......물론 나도 그랬지.

직원 회식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은 방향이라고 차에 올라타더라고, 그 여자애가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살살 웃으면서 그러기에 차안에서 키스하고.....주차장에서 바로 했지.

참 요즘 어린애들 대단해... 

그 여자애는 은행에 이상한 소문나서 두 달 만에 시외 쪽에 있는 다른 지점으로 옮겼는데........그 지점에서도.....몇 달 후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 

하하하.....수연 씨. 이건 누구 잘못일까? 예쁜 여자 잘못일까 아니면 틈만 나면 딴 짓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잘못일까?

수연 씨는 아직 어리고 여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이 나이 있는 남자들이 볼 땐 말이야. 여자들의 끼가 다 보여. 어린 여자든 늙은 여자든지 간에....남자를 끌어당기는 특유의 끼가 있어. 

요즘 말로는 흘리고 다닌다고 하나? 냄새를 풍긴다고 하나?

그런 끼가 있는 여자들은 평범하게 절대로 못살아. 주위의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가만두지 않거든......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아.

내가 보기엔....너도 그런 년 중에 하나일 것 같은데.......흐흐흐흐]

정 수연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근데 말이야. 수연 씨 왜 자꾸 우리 지점장을 여기서 만나려고 하는 거야?

음....그건 차차 이야기하고, 와이프한테 상갓집 간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천천히 즐기자고 시외 경치 좋은데 호텔도 예약 해놨어. 빨리 한번하고 자리 옮기지....]

최 실장의 입술이 크게 벌어져서는 정 수연의 부풀어 올라있는 맨 가슴을 깊게 빨았다. 

그러자 잠시 후 정수연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오빠! 어디 불편해요? 얼굴이 왜......”

좀 전에 홀에 나갔던 미나가 어느새 돌아와 내 옆에 서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나를 보는 세희의 눈빛도 미나와 같았다.

그때가 벌써 10여일이나 지났지만, 정 수연의 그 동영상이 떠올라 이따금씩 평온했던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곤 했다. 

나를 응시하는 두 눈동자의 민망함에 손으로 내 볼을 만져보니 미나의 말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빠. 손님이 오빠 찾으세요.”

“뭐?”

“방금 오신 손님이 사장님 어디계시냐고 물으세요.....”

“오늘 약속 없는데.....누군데?”

미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안을 깨끗이 헹궈 내고 나서 나는 반대편 홀로 나갔다.

창가 쪽을 보니 머리가 희끗한 채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깔끔한 남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는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홀라 앉아있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 그의 옆모습이 얼핏 보일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어...치우야.”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려내게 나를 보고 있었다.

“아....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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