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77)

Reunion (8) 

창가 자리에 엎드려있던 상체가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두 손은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손을 뻗어 스위치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Bar 위에 달려 있던 LED 램프하나가 켜졌다.

노랗게 물든 카페가 식어있던 온기를 다시 빠르게 찾는 듯 했다.

“너...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내 목소리가 카페에 울렸다. 그러자 얼굴을 감싸고 있던 하얗고 기다란 두 손이 서서히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그 고운 얼굴을 더욱 화사하게 돋보이게 했던 화장은 눈물 때문에 엉망으로 지워져있었다.

그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또 그녀에게 안 좋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다...

“하아.....” 

조금씩 울먹이던 소리가 줄어들자 은비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붉은 립스틱이 번져 마치 방금 전 누군가와 진한 키스를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은비는 테이블에 있던 티슈를 뽑아내어 자신의 젖은 얼굴을 닦아냈다. 

닦아도....닦아도...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가냘픈 손이 연신 얼굴에 닿아 움직였다. 

“미안해요....”

은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슨 일 있었어?”

은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은 조금 전 그 어린남자와 함께 나가서.....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 남자의 집에 따라가서 미친 듯이 섹스를 하고 이곳에 온 건지....아니면....그 남자의 외제차에서 그 짓을 했는지....

하지만 이런 천박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은비에게 묻긴 싫었다.

“아니요...그냥....갈 곳이 없어서....왔어요.”

“여기 같이 왔던 그 애는?”

내 물음에 나를 바라보던 은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나 핸드폰 없어. 핸드폰 줘봐. 은설이한테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부를테니까....”

단지 몇 발자국을 거닐었을 뿐인데 벌써 은비는 내 앞에 와있었다. 염색을 한 밝은 갈색 머리와 말끔하게 지워진 화장 때문에 은비는 더욱 어려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은비는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전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전에도 많이 보았던 은비의 그 백을 집어 들고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흐으흑......흐으흑......”

은비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다시 얼굴을 두 손에 묻고는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짧은 원피스가 당겨 올라가 은비의 엉덩이에 살짝 걸려 있었다.

검은색 원피스 뒤로 보이는 은비의 얇은 목과.....이따금씩 들썩이는 등이 왠지 예전과 다르게 깡말라 있는 것 같았다.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은비의 모습은 마치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러는 것처럼 그런 울음이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파왔다.

시간이 흘러도 은비의 울음은 멈출 기미가 보지지 않았다. 저렇게 계속 울다간 탈진해서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으음....”

쪼그려 앉은 채 바닥을 딛고 있는 뾰족한 하이힐에 위태롭게 버티던 은비의 몸이 한쪽으로 쏠려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은비의 머리가 차가운 바닥에 닿기 전에 그녀를 끌어않았다. 은비의 울음은 멈췄고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나는 은비의 몸을 안아 올렸다. 은비는 내 목을 감쌀 힘도 없는지 두 손은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은비의 몸이 너무나...너무나 가벼웠다.

나는 은비를 안고 방으로와 조심스레 내 침대에 눕혔다.

스타킹을 신고 있는 쭉 뻗은 은비의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파여 있는 검은색 원피스 사이로 은비의 뽀얀 윗 가슴살이 부드럽게 밀려나와 있었다. 

은비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홀로 나와 이미 지칠 때로 지쳐버린 내 몸을 소파에 뉘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은비가 내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어렴풋이 들리던 카페 밖,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힘들게 잠든 나를 다시 깨웠다. 

깜깜하던 카페 밖이 조금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은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은비가 깨어났는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은비의 얼굴은 좀 전보다 낳아 보였다. 세수를 했는지 번져 있던 화장은 모두 사라져있었고 얼굴이 우윳빛처럼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나.....다음 주 부터 학교에 출근해요....미안해요. 괴롭혀서.....오빠가 나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리고 어제......오빠를 마지막으로 보려고 온 거예요. 남자와 함께 오면....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나를 더 쉽게 지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를......이젠 나 같은 여잘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근데.....근데......나는 그게 잘 안돼요.......흐으흑.......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해도......안돼요......흐으윽......”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처절한 은비의 그 목소리가 점점 방을 가득 채워 나갔다. 

“시간을 다시 돌리고 싶어요......오빠와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또 다시 짙게 젖어버린 은비의 시선이, 테이블위에 쓸쓸하게 홀로 놓여 있는 그 반지를 향해있었다.

“오빠...오빠.....내 부탁....하나만 들어 줄 수 있어요? 내가........” 

나는 눈을 감았다...

은비의 그 말들이 끊임없이 내 가슴 깊은 곳을 파고 들었다.

2주일 후.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내 손에는 새로운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어느 날 승호가 나를 끌고 가서 강제로 이 스마트폰을 사게 했다. 엄밀히 말하면 지가 계산을 한다는 걸.....겨우 말리고는 내가 계산을 했으니.....내가 산건지 그가 사준건지 모르겠다. 

그리고...또 다른 변화는....

카페 Bar에서 미나가 세희에게 커피를 내리는 기계를 다루는 법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세희는 작은 노트를 들고서 미나가 하는 말을 놓칠세라 꼼꼼하게 적고 있는 것 같았다.

“치우 씨....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 수연이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하고선 테이블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정 수연의 가슴의 가슴 끝.......유두가 옷 위로 어렴풋이 표시가 났다. 

“파타야에서의 그 일 이후....치우 씨가....진욱 씨와 세희 씨를...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나는 정 수연의 말에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진욱이었구나....’

나는 그의 이름은 정 수연을 통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욱 씨도 많이 반대를 했어요. 하지만 세희 씨가......아무리 말해도 안 된다는 걸 진욱씨가 알고는 저에게 부탁을 했어요. 당분간만 세희 씨를 제가 보살펴 달라고.....”

그랬다.

세희는 지금 정 수연의 집에서 그녀와 함께 머물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다시 찾아와서 부탁을 했다. 세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당분간만이라도 이곳에 일을 하게 해줄 수 있냐고 어렵사리 부탁을 했다. 

그는 시간을 가지고 세희를 설득해서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정 수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위이잉.....]

매일 듣던 기분 좋은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우와! 언니. 정말 잘해요. 처음해보는 거 맞아요?”

Bar에서 미나가 활짝 웃으며 커피머신을 만지던 세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세희도 방긋 웃어 보였다.

세희는 모든 것이 빨랐다. 

이런 곳에선 처음 일하는 그녀였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다시 한 시간이 지날 때 마다 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녀의 얼굴에 머물고 있는 미소가 보기 좋았다. 손님들에게는 친절했고 예의 발랐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이 흘깃 흘깃 세희를 훔쳐보고는 서로 귓속말을 하곤 했다.

손님들이 휩쓸고 간 카페에 짧은 평화가 찾아 들었다. 나는 카페 한쪽에 트여있는 공간을 통해 미나에게 갔다. 

“할 만해?”

“네!!! 너무 재미있어요.”

작은 bar에 앉아 있던 미나가 활짝 웃고 있었다.

“세희 언니, 너무 잘하죠? 내가 이 카페에 처음 왔을 때처럼......그렇죠?”

사실 오전에 세희를 보고 있으니, 예전에 미나가 처음 여기서 일을 시작할 때가 떠올랐었다.

“식사들 하세요.”

세희의 두 손에 도시락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언니. 어때요 힘들지 않아요?”

미나는 세희가 사온 크림 파스타를 스푼으로 받친 채 포크로 천천히 말아 올리며 말했다.

“아니요. 너무 재미있어요.”

“에이...언니...섭섭해요. 말 편하게 해요....”

“아..그래요...다...다음에.....”

“언니! 너무 예뻐요. 언니도 연예인 누구 닮은 거 알죠?”

“아니요.....미나 씨가 더 예뻐요...”

나는 그녀들의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음....여자들이란.....

우리의 늦었지만 짧은 점심식사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세희는 우리가 다 먹은 도시락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제가 할게요....”

“아니에요...”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 비워진 도시락을 잡고 있었다.

그때.

“어? 언니....그거 뭐에요?”

“네?”

미나의 시선이 세희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목까지 채워져 있던 세희의 블라우스 가장 위쪽 단추 하나가 열려있었다. 

“언니....거기.....파...파란색......”

세희는 미나가 손가락 하나로 가리키던 자신의 블라우스 안쪽을 한손으로 급하게 감쌌다.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세희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고 동시에 그녀의 입술 또한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미나의 두 눈이 급히 나에게 향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미나 또한 당황해함이 역력했다. 

미나와 세희가 떠나고 카페는 다시 어둠으로 깔렸다. 

점심 식사시간 그일 이후, 세희는 불안해했다. 손님에게 다른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주길 반복했다. 

가게를 마칠 때 세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보였다.

나는 무엇인가를 기억에서 지우듯 머리를 가로젓고는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테이블에 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액정에 ‘상태형’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네. 형]

[야....치...치우야....]

[네.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그게...너 지금 뭐하냐?]

[가게 정리하고 잘려고요....]

[그..그게...너 지금 이리로 좀 올래?]

[네? 무슨 일 있어요? 혹시 승호 거기 갔어요?]

[아니 아니.....너한테 할 얘기가 좀 있어서.....지금 올 수 있어?]

[아....가는 거야 가면 되는데.....무슨 일인데요?]

[그래...그래....지금 바로와라. 와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승호한테는 말하지 말고 너 혼자와....있다 보자]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이상했다. 

상태 형이 왜 승호에게는 말하지 말고 혼자오라고 하는 것일까?

술 마신 목소리 같진 않았는데....

나는 생각에 잠긴 채 한동안 우두커니 그렇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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