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77)

Reunion (7)

“정말 나쁘다....”

속삭이는 듯 한 미나의 작은 소리가 내게만 들렸다.

고개를 돌려 미나를 보니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창가로 향해 있었다. 여전히 미나의 얼굴이 화는 듯 찌푸려져 있었다.

은비의 배 부분으로 사라진 남자의 손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자 은비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남자의 시선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은비에게 향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얼마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은비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은비의 몸 어디엔가 숨겨져 있던 남자의 손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비 씨. 어떡하실래요? 오늘 우리 집에 갈래요? 얼마 전에 사놓은 와인 있어요. 와인 좋아해요?”

은비는 남자의 말이 들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은비가 오늘 나에게 왔을까?

이미 끝난 우리 사이를 다시 확인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새로운 남자친구를 나에게 소개해주기 위함인가?’

나는 궁금했다.

창가에 남자와 함께 앉아 있던 여자가 은비라는 것을 알고는 순간 화가 났다. 그리고 그녀의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지금 은비의 모습은 클럽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진한 화장과 헤어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느새 화는 사그러들고.....궁금했다. 은비가 왜 저러는지....

나에게 헤어짐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는 절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 것인지....

은비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은비의 허리를 감고 있는 남자의 팔뚝에 순간순간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이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은비의 어깨가 어느새 남자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남자에게 마치 반쯤 안긴 것처럼...

“간다. 정리되면 말해......”

나는 미나에게 이곳을 떠나 안쪽 방으로 들어간다고 엉켜있는 그들이 절대 들을 수 없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Bar를 돌아 서는 순간.

“내가 좋아요?”

은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뒤돌아 볼 수는 없었다.

“하하하.....그럼요.”

남자가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왜 좋은데요?”

“그야.....은비 씨는.......음.....”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잠시 머뭇거렸다.

“좋아요.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할게요. 은비 씨. 아까 술 같이 먹을 때 말도 잘 통하고....너무 예쁘고 몸매도 좋고......맘에 너무 듭니다. 그래서....오늘 같이 있고 싶어요.”

“저하고 오늘 자고 싶다는 말이에요?”

그때서야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 봤다.

마지막으로 봤던 은비와 남자의 모습이 조금 변해 있었다.

창밖을 향해 있던 은비의 몸이 어느새 변해, 짧은 원피스 아래 깊게 드러난 미끈한 허벅지가 남자에게 향해있었다.

남자의 한 손은 은비의 드러난 허벅지 위, 당겨 올라간 원피스 밑단과 반짝이는 스타킹의 경계 즈음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은비 씨가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요? 내가 그렇다면 은비 씨는 그럴 수 있어요. 나 사실 오늘 처음 은비 씨 봤을 때부터 자고 싶다고 생각 했어요.”

남자의 말에 은비가 웃었다.

은비의 얼굴에 보기 좋은 미소가 서서히 번져갔다.

은비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은비의 그 두 눈이 내 눈 안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나는 그 눈빛을 외면하고 다시 뒤로 돌아 섰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순식간에 정신이 이탈한 시체처럼 그렇게 있었다.

1분....2분.....3분.......

시간의 흐름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책상에 있던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카페를 비추고 있는 실시간 CCTV에 접속했다.

화면이 켜지자 Bar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미나의 모습이 보였다.

은비의 시선은 다시 창밖을 향해 있었다. 남자의 손이 은비의 아찔한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좀 전 보다 더 가까이 붙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계속 화면에 눈을 때지 못한 채,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너질 때로 무너져 완전한 싸구려가 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좀 전 꿈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 흰 천을 벗겼을 때......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남자들의 비웃음소리와 같은 그런 비참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우스 커서가 노트북에 보이는 화면을 종료하기 위해 움직였다. 커서는 종료버튼에 닿아 있었다.

그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 앉은 채 잠시 그 남자를 올려다보던 은비도 천천히 그곳에서 일어섰다.

“미나야. 또 보자....”

은비가 Bar에 있던 미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미나는 아무런 대꾸도하지 않았다.

은비의 늘씬한 몸매가 돋보였다.

CCTV를 통해 보는 은비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TV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문 쪽으로 걸어 나가던 은비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쓰러질 것 같은 은비를 남자가 급하게 감싸 안았다.

남자의 한 손이 은비의 파여 있는 원피스.....한 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노트북을 밝히던 화면이 꺼져 검게 변했다.

독하게 맺힌 열기 때문에 내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방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미나가 서 있었다.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이 매우 불안해 보였다.

“갔어요....”

“정리 다했어? 좀 늦었네....퇴근해....그리고 택시 타고가......”

나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두 장 꺼내 들었다.

“정말 너무해!”

미나는 한참을 참고 있었다는 듯 말을 토해냈다.

“정말....은비 언니.....너무 싫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요? 오빠 앞에서...”

“인마....니가 왜 그래.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거짓말이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절대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정말 내가 미쳐. 왜 가만히 있어요? 은비 언니가 오빠 놀리고 있잖아요. 지금!!! 오빠 바보예요?”

상기된 미나의 얼굴이 화가 난 것인지 답답해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나의 이런 표정은 지금까지 처음 본 것만은 분명했다.

“미나야. 늦었어....어서가....피곤할 텐데.....”

“오빠!”

“응?”

“오늘 같이 있을까요? 오늘.....여기서 잘까요?”

나는 미나를 빤히 쳐다봤다.

“미나야. 너 나 좋아하니?”

갑작스런 물음에 미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예뻤다.

‘만약 내가 은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 후.... 잠시 동안 상상을 했다.

“오빠. 우리 그냥 편하게 지내요. 나 예전에 아무나 만나서 쉽게 자고 그런 거 알잖아요. 저는 그런 애 예요. 그러니까....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나하고 섹스....하고 싶으면.....그렇게 해요.....나는 괜찮아요.”

귀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그대로 서있는 미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부드러운 여자의 몸이 내 몸에 닿자 기분이 좋았다.

방금 전까지 빨리 미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외치던 내면의 외침이....조금씩 퇴색되어 갔다.

여자를 안아본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마지막 섹스는 미나였다.

미나의 머리에서 떠난 내 손이.....그녀의 몸을 쓰러내려 등과.....잘록한 허리까지 이어졌다.

내 물건이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미나야. 고맙다.”

여기까지였다.

나는 내 본능을 힘겹게 누르고 있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몸에 닿아 있던 안식 같은 미나의 부드러운 몸이 나에게서 서서히 떠났다.

아쉬웠다....그리고 후회했다.

미나는 가게를 떠나는 순간까지 나를 걱정했다.

내 방을 떠나는 미나의 마지막 눈빛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여자와 사랑을 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 질수 있을까?

미나가 떠난 후 나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내겐 너무 피곤한....아니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파타야에서 그와 그의 동생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생각하기도 싫은 엿 같은 꿈을 꾸었다.

마지막으로 은비가.....남자와 함께 이곳에 왔다.

눈을 감아도 되돌이표처럼 이 세 개가 반복되어 떠올랐다.

‘씨발.....빌어먹을...’

언제 잠이 들었을까?

이전의 그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나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방의 스탠드는 켜진 채 노란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목이 탔다.

물 보다는....타격감 있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 필요했다.

홀로 나가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가 앓는 듯한.....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작은 소리가......한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마다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흐흐흑.......흐흑........”

Bar에 있는 몇몇 기구들이 발하는 빛이 어슴푸레하게 홀을 비쳤다.

어둠속에서 나는 잠시 서있었다.

무엇인가 서서히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어둠이 적응되자 나는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창가 자리에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내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미나가 가게를 나간 후 나는 카페 문을 잠갔다.

“흐흐흑.......흐흐흑......”

검은 옷을 입은 귀신같은 형태였다. 더군다나.....낮은 울음소리가 계속 카페에 울렸다.

나는 공포감에 움직일 수도.....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도로에서 불법유턴을 하던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카페 내부를 완전하게 비추고는 사라졌다.

그러자 창가에 있던 그 것이......상체를 천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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