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177)

Reunion (5)

“미나씨! 우리 꺼 언제 나와요?”

“네에~ 조금만 기다리세요.”

듣기 좋은 미나의 목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졌다. 손님들로 붐비는 홀이 피곤할 만도 한데, 미나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다. 몸도 마음도....

은비는 내가 주었던 약혼반지를 남겨놓고 떠난 날 말한 것처럼....가끔 카페에 찾아왔다. 그리곤 항상 머물렀던 그 창가 자리를 지키고 커피를 마셨다.

그날이후 은비가 처음 찾아오던 날.

미나는 가게에 들어서는 은비를 보곤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은비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꼭 그녀를 안아 주었다.

은비는 좋아 보였다.

내 삶에 함께 머물 때와 같이.......예쁘고....여전히 예의발랐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은비에게 좋아하던 케익을 내어 주었다.

[오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럴 때 마다. 은비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해다.

은비와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카페 사장과......단골 손님으로.....

아무런 특별할 것도 없는 나의 평범한 일상을 그녀와 함께 그릴 순 없지만.......

전쟁 같았지만 행복한 하루가 다시 지나가고 있었다.

“오빠. 도대체 은비 언니하고는 어쩔 거예요?”

손님이 뜸한 저녁, 테이블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던 미나가 내게 물었다.

“뭘? 어쩌긴?”

“어휴....오빠는 참 답답해. 은비 언니가 왜 자꾸 여기 찾아오겠어요? 오빠하고 헤어졌는데.......물론 우리 카페 커피가 맛있긴 하지만......그냥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여기 일주일에 한번 씩 온다는 게 말이 되요?”

“그럼......말이 되지. 커피 마시러 오는 건데.”

“내가 보기엔....아직 은비 언니가 오빠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미나의 그 말이 내 가슴을 한번 찡하게 울렸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퇴근해!”

“오빠는 어때요? 은비 언니 정말 잊었어요? 생각 안나요? 안보고 싶어요?”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이....우리 귀염둥이들.....”

문 앞에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승호가 웃으며 서있었다. 그의 손엔 캔 맥주가 담긴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오빠!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은비 언니 말이에요.”

미나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승호에게 말했다.

“쪼그만게....어른들 일에 관심이 많아? 너 졸업 일 년 남았는데 공부 안 해? 취업도 하고 해야지..”

“어휴.....오빠! 짜증나요.”

미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그건 그렇고....치우야. 어제 엄마하고 이야길 좀 해봤는데....옆에 꽃집 있잖아? 거기 니가 쓸래?”

“어? 무슨 말이야?”

“지금 여기 너무 좁잖아. 그래서 비워있는 꽃집도 같이 쓰라고....엄마가 너한테 물어보래....”

카페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꽃집이 얼마 전에 인근 더 큰 상가로 이사를 갔다.

“너무 작아서 세놓기도 번거롭고.....너 요즘 손님 많잖아. 꽃집에도 테이블 4개정도는 놓을 수 있으니까. 괜히 오는 손님 기다리게 하지 말고.....니가 써라....”

내 머릿속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오빠! 오빠! 임대료는 얼만데요?”

미나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왜? 니가 하게?”

“적당하면.....”

미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미나야. 너 할 수 있겠어?”

“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처음 이 카페 인테리어 공사 때 막아 놓았던 문만 트면 오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미나는 항상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 했었다.

“미니야. 정말 니가 해볼래? 니가 한다면 내가 도와줄게.....”

“정말? 정말요?”

“승호야. 니 생각은 어때?”

나를 뚫어져라 보던 미나의 시선이 급히 승호에게로 옮겨 갔다.

일주일 후....

꽃집이었던 그 공간이 공사를 시작한지 며칠 만에 이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미나는 행복해 했다.

마치 내가 처음 이 카페를 오픈할 때처럼.....

“김 사장님!”

미나가 생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뭐? 김 사장님?”

“아휴.....같은 사장끼리 왜 이러세요? 크크큭....”

“그럼 이제 너는 조 사장이냐?”

“호호호.....근데 오빠. 알바 구해야 되지 않아요? 내가 왔다 갔다 해도 한 사람 더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나는 말없이 Bar에 있던 A4 용지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직원구함]

다이엔 카페에서 함께 일하실 참신한 직원 분을 구합니다.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 하신 분 우대 (필수사항 아님)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준수

- 인 원 : 女, 1명

- 근무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 (조정가능)

- 지원방법 : 카페내방

“어머....호호호....이게 뭐야......웃겨.....무슨 카페 알바 구하는데 이렇게 딱딱해요.”

“이걸 붙이려던 날.....니가 돌아왔어.”

“네? 치이.....기다렸다는 거 거짓말이었구나...”

기분이 좋았다.

내가 원했던 소원처럼, 소박한 하루하루가 나에게 이렇게 행복으로 다가왔다.

미나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서 그 A4 용지를 카페 입구 잘 보이는 곳에 붙이고 있었다.

창밖에 보이는 하늘에서 먹구름이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조금 들떠있는 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Bar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어서 그쪽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어이. 김 치우!”

나는 까만 커피가 흘러나오던 기계를 급하게 멈췄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김 치우. 오랜만이다. 얼굴 좋아 보인다.....”

심장이 내려앉아 버리는 것 같았다.

카페입구에 그가 나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그의 여동생 세희가 서있었다.

나는 한동안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미나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와 그들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김 치우. 왜 그렇게 연락이 안됐어?”

테이블에 있던 그린 티 라테를 한번 길게 빨아 먹고서 그가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세희가 곁눈 짓으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핸드폰이 분실해서.....바빠서 그냥 그렇게 있었어요.”

“아...그랬구나....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았어. 걱정했지. 그래....별일 없지?”

나는 지금 이 순간 왜 내 카페이서 그와 그의 여동생과 함께 앉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근데...여기는 어떻게?”

“아.....수연 씨. 수연 씨하곤 연락을 종종 했어. 니가 많이 도와줬다고 하더라.....수연 씨도 여기 오라고 했더니 니가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고.....우리는 저녁에 따로 식사하기로 했어.”

세희가 블루베리 케익을 은색의 작은 스푼에 담에 자신이 입에 살짝 밀어 넣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붉은 립스틱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고 걱정 많이 했다. 니가 돌아가서 잘 살고 있는지.......궁금하기도 하고....보고싶기도 하고......”

“근데....세희 씨는.....”

나는 세희의 상태가 궁금했다.

“세희야. 잠깐 자리 비켜줄래? 우리 이야기 좀 하게....”

“네. 오빠”

그의 말에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비가 항상 앉아 있던 창가 테이블로 옮겨갔다. 미나의 시선의 그녀의 동선에 따라 움직였다.

“세희....괜찮냐고?”

“아....네...지금은 괜찮아요?”

“좋아졌어. 그때보단......우리는 지난달에서야 귀국했어. 세희 여권 문제 때문에.........그리고 복잡한 일들이 많았지.....”

“그랬군요.”

“다행이다. 좋아보여서....걱정 많이 했다. 요즘 은비 씨 하고는 어때?”

그의 입에서 은비가 튀어 나오자.......파타야에서 그가 은비의 동영상을 보며 자위를 하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의 물음에 나는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음......세희는 점점 좋아 지고 있어. 예전 기억도 돌아왔고, 가끔 잠을 잘 못자는 거 빼고는 뭐......”

그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파타야에서의 조금 어수선한 외모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많이 생각을 했어. 내가 불쑥 너에게 찾아 간다면....너는 어떨까? 불편하겠지. 어쩌면 기억하기도 싫겠지......하지만.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고.....”

그는 어떠한 표정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궁금하지 않아? 그 새끼?”

나는 그가 말하는 그 새끼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고 있었다.

“우리가 세희를 빼내나온 그 업소에 불나고 나서.....많은 일들이 있었어.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화재규모가 꽤 커서 인근에 까지 피해가 좀 있었지....

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태국 당국에서도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어. 그리고 그 업소를 비호해주던 파타야 경찰들이 줄줄이 소환돼서 조사를 받았어.

그곳에 감금돼 있다 풀려난 여자들의 증언이 계속 나왔지. 여자들 국적도 다양했어. 일본. 중국.....그리고 한국.....

업소 대표가 구속되자마자, 뇌물 처먹고, 성접대 받고 그러던 파타야 경찰들이 파면되고 구속되고.....그러더니 그 개새끼 황 경태는 바로 잠적했어.

내가 그 새끼 백방으로 찾으려고 노력해봤는데.....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었어.

들리는 소문 중에 평소에 그 새끼와 갈등이 있던 현지인 업소 사장들이 연합해서 그 새끼를 잡아서 죽이고는 파타야 코란섬 앞바다에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내 눈으로 확인한건 아니라, 알 순 없지.....개새끼......”

“그랬군요. 이제 완전히 들어온 거죠?”

황 경태에 대한 그의 말이 내 가슴을 정신없이 요동치게 했지만 나는 내 감정이 그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노력했다.

“응......그 지옥 같은 파타야.......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걱정되는 건 저 녀석이야. 이제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데. 가끔....그 생각에 힘들어 할 때가 있어. 쉽게 잊을 수 없겠지.....어쩌면 평생......

치우야....정말 고맙다. 너는 우리에게 은인이다. 내가 평생 잊지 않을게....”

그의 시선이 창가에 앉아 있는 세희를 향해 있었다. 창 밖에서 바삐 거리를 걸어가던 남자들이 창가에 앉아 있는 그녀를 흘깃 훔쳐보며 지나갔다.

창밖에 앉아 무엇인가를 뚫어지기 바라보고 있던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세.....세희야!”

그가 놀라 그녀를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희가 창 밖에 서서는 조금 전 미나가 카페 입구에 붙여 놓았던 그 A4 용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가냘픈 새하얀 손이......그것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카페 문이 열렸다.

세희가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오빠. 나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녀가 자신이 뜯어낸 그 것을 그에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희가 입고 있던.....

조금 벌어진 블라우스 틈을 통해......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새 파란 그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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