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77)

Disguise (4) 

상태 형에게 밀려 앞에 서있던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내 옆자리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호. 너 이 쉐끼. 약속 지켜라. 치우야. 다른 방에 손님 와서 좀 있다가 올게. 놀고 있어라.”

상태 형은 승호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다시한번 활짝 웃고는 급하게 룸을 빠져 나갔다.

어린 여자를 끌어안고 있던 승호가 내 옆에 자리를 잡은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승호의 입술에 어린 여자의 분홍색 립스틱이 빤짝이고 있었다.

“우와....저 언니...예쁘다. 언니...언니는 어디 사무실에서 왔어요?”

여전히 승호의 품에 안겨 있던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내 옆에 앉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테이블 아래를 보니 다소곳이 허벅지를 붙이고는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었다.

하지만.....두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아....참....그 양반....거짓말이 아니었어?”

승호가 자기 몸에 올라타 있는 여자의 허리를 감아서는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치우야. 저 양반 정말인가? 그게 모두 사실이란 말이야?”

술 때문인지 승호의 발음이 심하게 꼬여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가만히 그를 보고만 있었다.

“오빠. 오빠? 뭐가? 무슨 이야기? 사장 오빠가 왜?”

승호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물었다. 

“그런게 있어, 너는 몰라도 돼. 치우야! 이제 파트너 왔으니까.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승호의 말에 비워있는 내 잔을 채우기 위해 위태롭게 술병을 들고 있는 가느다란 하얀 손이 보였다. 

여자가 들고 있던 술병이 파르르 떨려다. 아래로 흘러내린 긴 웨이브 머리에 가려서 그 여자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치우야. 오늘 정말 끝장을 보자. 친구야.....오늘....간만에 술맛이 참 달다...”

우리는 모두는 술잔을 비웠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도 술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옆자리에서 연신 예전에 맞아 본 듯한 향기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봤다. 

나는 이 여자가 상태 형과 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차렸다. 진한 화장과 갈색 서클렌즈 그리고 달라진 헤어스타일로 변신을 한 그 여자는 바로......

정 수연 이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도 있었다. 깊게 파여 있는 원피스 사이에 반 이상 드러나 보이는 가슴.....

그 가슴만은 예전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파타야에서보다 살이 오른 정 수연의 얼굴과 몸매는.....남자의 관점에서......이전보다 더욱 좋아 보였다.

“언니 언니. 미안한데요....언니 가슴......그거....진짜예요? 어디서 한 거예요?” 

승호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테이블에 바싹 다가와 정 수연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으하하하.....왜 저 언니 가슴 이뻐?”

“아아앙.....오빠! 아파요....”

승호가 옆에 있던 여자의 가슴을 거칠게 쥐어 잡으며, 말하자 여자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야.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이리 나와 봐”

승호가 옆에 있던 어린 여자의 손목을 잡아 끌고 앞으로 나가서 기계에 예약된 번호를 눌렀다. 

은은한 발라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승호의 품으로 안겨.....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승호는 여자를 꼭 안고서 눈을 감고, 노래에 맞춰 블루스를 추듯 천천히 움직였다.

‘승호가 정 수연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혼란 스러웠다. 

하지만, 예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는 정 수연을 승호가 모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지금 정 수연의 모습은 영락없는 완벽한.......술집 여자의 모습이었다.

“인마! 치우야. 너도 이리 나와!”

나는 승호가 정 수연을 알아보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정 수연을 잡아 일으켰다. 순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를 이끌고 승호와 어린여자가 춤을 추고 있는 앞쪽으로 나갔다.

정 수연의 허리를 잡고 내 몸 쪽으로 바싹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나의 가슴에 아래에 닿아 내 몸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있었다.

“치우.......좋겠으......상태 형 말대로........아가씨 장난 아니네.......으하하하.....”

승호는 춤을 추다 우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승호의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승호는 정 수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 수연의 몸이 내 몸에 완전히 안겨, 구석구석에 닿을 때마다 조금 전 상태 형이 말해준 그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내 물건이 서서히 발기되어.....내 몸과 바짝 붙어 있는 정 수연의 배 부분에 닿아 있었다.

노래가 몇 곡 돌아가고 나서 음악이 꺼졌다.

“아이 오빠. 무거워요...”

승호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완전히 몸을 의지 하고 있었다. 낑낑대며 승호를 부축하던 여자를 도와 승호를 소파에 뉘었다. 

“으아......아.....”

승호는 스스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완전히 취해버린 듯 했다.

“오빠 괜찮아? 물 좀 마셔봐....”

여자가 주는 물을 힘겹게 받아 마신 승호는 또다시 눈을 감은 채 소파에 깊게 기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룸에서는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저기....오빠! 어떻게 해야 돼요?”

한참동안 승호를 지켜보던 그 여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으응....그래 정리하자.....”

“네. 알겠어요. 김 부장 오빠 불러올게요.........아아....”

여자가 말을 하고 일어서려던 순간, 승호가 깨어났는지 여자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이씨....가기는 어딜 가....오늘 끝가지 가는 거야....야....너 오늘 나하고 잔다....올라가자....”

“오...오빠... 괜찮겠어. 술 깼어?”

어린 여자의 애교 담긴 소리가 룸에 울렸다.

“야....김 치우....너도 올라와 저 여자하고....우리 정말 오랜만에......오늘.....끝까지 가는 거야....알았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씨....바로 올라와....어? 내가 니 방에 찾아간다.....옛날처럼 도망가면...새끼....엄마한테....가게 빼라고 한다.....알았어? 인마!”

여자가 내게 인사를 하고는 승호를 부축하며 룸을 빠져 나갔다.

룸에는 나와 정 수연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예전 파타야 그의 빌라에서 맡았던 정 수연의 향기가 룸을 점점 채워나갔다.

나는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들어 마셨다. 양이 조금 많아서 인지 속이 한 번에 달아올랐다.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정 소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연 씨”

“네에?”

갑작스런 물음에 놀란 눈을 한 정 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대체......여기서.....뭐하는 겁니까?”

정 수연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이 가게.....승호 선배 가게입니다. 상태 형하고는 저도 친하고요.....왜 여기서......우리가 만난 거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목소리는 화가 난 듯 다소 떨렸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던 파타야에서의 은비와....그리고 그와 정 수연과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남.....남자가 필요했어요.”

한동안 가만히 있던 정 수연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후훗.....남자가 필요해서.....남자하고 섹스가 하고 싶어서.....멀쩡한 여자가 이런데서 일한다고요? 그래....여기서 일 해보니까 좋던가요? 만족스러워요?”

정 수연이 비아냥거리는 내말을 듣고서 입술을 한번 꼭 깨물었다. 

“남자가 그리우면.....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든지.....정상적인 만남을 해야지.......수연 씨가 몸 파는 여잡니까?”

술기운 탓인지 내입에서 머리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수연 씨 꼴을 봐요. 어떻게 하고 있는지.....그 구질구질한 파타야 소이혹에 있던 창녀들 같아......하하하....” 

갑자기, 파타야에서 알몸으로 황 경태와 침대에서 뒹굴 던 은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씨발!!!”

언더락 잔에 반쯤 채워져 있던 위스키를 단번에 마셔버렸다.

“남자가 필요하면.....나 한테 오지 왜......우리 파타야에서 뜨거웠잖아......하하........내가 볼 때 수연 씨는......보통 여자들 하고 달라.......정상적으로 살수가 없는 여자야.......은비처럼.......”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핑 돌았다. 

테이블에 있던 술병을 들고 잔에 따르려고 하자 정 수연이 내 손을 낚아챘다.

“천천히.....치우 씨 천천히 마셔요.....”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나더니 살짝 열렸다. 

김 부장이었다.

“저기...치우 형님.... 사장님이 수연 씨 찾아서.........잠깐만.....”

김 부장이 룸으로 들어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 수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 부장을 따라 룸을 빠져나갔다.

타이트한 원피스를 통해 드러난 정 수연의 뒷모습, 잘록한 허리와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상태 형이 들려준 그 이야기를 온전히 믿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정 수연 이라면........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 수연은 파타야에서 이보다 더한 일도 했으니 말이다.

‘정 수연은 미친년이다......그 짓에 미친년이다.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 여자다.......은비도.....그런 여자다.....’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

다시 급하게 술을 들이 부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휘젓고 있는 것들이 더욱 또렷하게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자꾸 반복되는 생각만 되뇌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분간 할 수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 담뱃갑이 텅 비워있었다.

룸을 빠져 나오니 복도는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모든 룸이 조명이 사라져 어둡게 변해있었고 저 멀리 구석방에서만 간간히 불빛이 새어나왔다. 아마도 저 방에 상태 형과 지인이 있는 것 같았다.

주점을 빠져 나와 옆에 있던 편의점에서 즐겨 피우는 멘톨 담배를 한 갑 샀다.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남녀 무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담배를 다 피고 나서, 다시 주점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냥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쓰러져 자고 싶었다. 

하지만, 주점 앞에 주차된 차가 내 발길을 막아 세웠다. 

승호와 내가 이곳에 도착할 때 주차를 했던 그의 차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승호는 여자와 위층에 있는 모텔로 올라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불이 꺼진 지하로 내려갔다.

어두운 카운터 입구를 지나 내가 있던 룸으로 가는 도중 어디에선가 익숙하지 않은 소음이 들려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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