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tion (15)
그곳에는 홀에서 울리는 음악소리만이 윙윙 그러며 어렴풋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사내와 은비가 들어가 있던 그 닫쳐진 문 속에서 분주하게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일시에 멈춰, 정적만이 흘렸다.
채 일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와!”
조금 전의 힘없던 내 목소리가 어느새 달라져있었다. 너무나 또렷하게 화장실을 울렸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와 조금씩 크게 들렸다.
[철컥]
드디어....
금속 소재 화장실 문 걸쇠가 젖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굳게 닫혀 있던 화장실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은비의 하이힐을 살짝 밀치며 나오는 반짝이는 검은색 구두가 보였다.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그 사내의 다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사내가 빠져나와 잠시 열린 그 문 사이로 축 늘어진 은비의 기다란 한쪽 종아리가 얼핏 보이고는 문이 닫히자 금세 사라졌다.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더욱 그게 들렸다.
“뭐...뭐야?”
황당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돼지새끼!”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뭐..뭐? 이씨...발....돌았나 이 새끼가? 보아하니 밖에서 보다가 꼴려서 구경하려 기어들어온 것 같은데. 쳐 맞지 말고 조요히 기어나가.”
사내의 목소리는 단호했으나 그 속엔 조급함이 담겨 있었다. 혼자만의 즐거운 파티에 뜻밖의 방해에 대한 걱정과 경계였으리라.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사내의 정장 바지가 조금 전까지 화장실 안에서 은비와의 일 때문인지 중앙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굵은 검은색 뿔테가 살집 오른 그의 얼굴을 더욱 미련하게 보이게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새끼야! 그...그냥 나가. 귀찮게 하지 말고.”
그의 목소리 또한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돼지새끼야. 좋아? 술 취해 정신 잃은 여자 니 마음대로 건드리니까 좋았냐고?”
“뭐...뭐...이런 미친 새끼가....”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한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사내의 매서운 눈매가 내 시선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사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칵테일 잔에 남아 있는, 이미 식어 버린 롱아일랜드를 급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사내의 불안한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그 잔에 머물렀다.
“나가라...”
“뭐? 이 새끼기가.....돌았......”
[쨍그랑....]
내가 쥐고 있던 칵테일을 옆에 있던 하얀 소변기 언저리에 내리쳤다.
칵테일 잔이 깨어져 그 조각이 하얀 타일 위에 흩뿌려 졌다.
나를 노려보던 사내의 눈매가 떨렸다. 그 틈에 나는 한발 그에게 다가갔다.
“어..어...이씨발......미친 새끼가......”
사내가 예상치 못한 나의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조금 전 은비와 함께 들어가 있던 화장실 문에 바짝 몸을 의지한 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미 날카롭게 변해있는 칵테일 잔을, 셔츠 단추 몇 개가 풀어 헤쳐진 그의 두터운 목살로 서서히 갖다 댔다.
“으..으.....잠깐만......잠깐만요.....”
남자의 목소리는 좀 전의 당당함이 사라져 있었다.
칵테일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새빨간 피가 내 손목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저기 안에서.....저 여자하고 뭐했어?”
“그...그게.....사...장님....잠시만......아무것도...”
“이 개새끼가!!!”
나는 들고 있는 그 잔으로 그의 목을 쑤시려 들이밀었다.
“으아악......”
그가 나를 거칠게 두 손으로 밀치고 화장실 문 쪽으로 가다가 미끄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내가 잠궈 놓았던 화장실 문을 열고서 밖으로 급하게 빠져 나갔다.
손이 더욱 욱신거렸다. 뒤로 넘어져 바닥을 짚고 있던 손에 날카로운 칵테일 잔 파편들이 몇 개 박혀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얀 타일위에 내손에서 흘러내린 새빨간 피가 흩뿌려져 지기 시작했다.
은비가 들어가 있는 문을 힘없이 밀쳤다.
“하아......”
그곳의 광경을 보고는 깊은 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
은비는.....
은비는 뚜껑이 닫친 변기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아니......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은비의 블라우스가 완전히 풀어헤쳐져 있었다. 그리고 하얀 브래지어가 구겨져 구석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었다.
부드럽게 찰랑이던 은비의 머리가 사방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짙은 화장이 번져 있었고, 새빨간 립스틱은 어느새 모두 사라져 그 흔적만이 입술 주위에 어렴풋이 보였다.
은비의 목덜미에 수많은 붉은 흔적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빳빳하게 쏟아 있는 젖꼭지 주위에 좀 전 사내의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수많은 그 붉은 흔적 또한 보였다.
은비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이트한 남색 스커트가 들쳐져 그녀의 허리에 말려 있었다. 거칠게 벗겨 내느라 이리저리 긁혀 훼손된 검은색 스타킹이 화장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브래지어와 세트를 이룬 은비의 하얀 팬티가.....그녀의 한쪽 발목에 간신히 걸려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벌어진 허벅지 사이에 은비의 속살이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흠뻑 젖은 그 주위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좀 전 그 돼지 새끼가 입으로 빨아댔는지 아니면 손으로 쑤셨는지는 모르겠지만.....은비의 속살에서 반짝이는 물이 타고 흘러내려 변기 위를 조금씩 적시고 있었다.
은비의 한쪽 눈에서 새어 나온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은비는 모습은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또다시 한쪽 손이 욱신거렸다. 나는 화장실의 휴지를 뽑아내 손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를 연식 닦아 냈다. 하지만 닦아도....닦아도 계속 세어 나와 하얀 휴지를 붉게 물들었다.
나는 한동안 축 늘어져 있는 은비의 모습을 바라봤다.
은비의 한쪽 발목에 걸려있던 하얀 팬티를 집어 들었다.
손에 눅눅한 기운이 느껴졌다. 홀에서 끊임없이 사내들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팬티는 은비의 몸에서 흘러나온 분비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세면대로 갔다. 화장실 문을 잠근 후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그것을 씻었다. 내 손에서 아직도 흘러내리는 피가 그 하얀 팬티를 물들였다 지워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변한 그것을 들고 은비에게 갔다. 은비는 좀 전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새어나오는 숨은 좀 더 빠르게 변해 있었다.
젖어 있는 팬티에 온기가 남아 있을 때 나는 서둘러 더럽혀져 있는 은비의 몸을 조심스레 닦았다.
하지만 은비의 몸을 수놓고 있는 붉게 변한 그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으음........”
벌어진 은비의 속살에 그것을 대어 닦아 낼 때, 은비의 짧은 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더러운 흔적을 연신 닦아냈다.
은비의 속살 주위가 말끔해졌다가 그 속에서 금세 새어 나오는 새 물들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그 모습에 어금니가 아플 정도로 이를 꽉 물었다.
만약 내가.....이곳에 오지 않았으면.....아니 홀에서 남자들과 함께 있던 은비를 내버려두고 돌아 갔다면.......
은비는 정신을 잃은 채, 이 화장실에서 조금 전 그 사내의 물건을 받아 냈을 것이다. 그리고 밖에 있는 사내들에게도 자신의 몸을 말없이 몇 번이고 내어줬을 것이다.
은비의 뽀얀 허벅지에 내 눈물이 세차게 떨어져 내렸다.
은비의 허리를 한손으로 감아 들어올렸다. 가냘픈 몸이 힘없이 위로 딸려 올라왔다. 은비의 몸에서 내가 좋아하던 은비의 그 향기와 뒤섞인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은비의 몸에서 처음 맡아 보는 비릿한 냄새도 느껴졌다. 아마 은비의 얼굴과 목에 묻어있던 사내의 타액일 것이라는 생각에 구역질이 세어 나왔다.
허리에 감겨 있던 타이트한 남색 스커트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풀어 헤쳐진 블라우스 단추를 아래부터 하나씩 채웠다. 가장 위쪽 단추는 뜯겨져 나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은비에게 입혔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굴던 하이힐을 은비의 발에 신겼다. 내 얼굴에서 연신 땀이 솟아 흘러내렸다.
나는 한번 깊게 심호흡하곤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늘어져 있는 은비의 몸을 내 등위에 뉘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은비의 젖가슴이 내 등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래로 늘어져 있던 은비의 두 팔이 서서히 내목을 감싸왔다.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홀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여전히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걸었다.
그 사내들이 있던 테이블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 은비를 이 홀과 화장실에서 맘껏 데리고 놀던 그 돼지새끼와 눈이 맞았다.
그 사내는 서둘러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사내 옆에서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알바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엇인가 급하게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 무대 위에서 스냅백을 쓴 채 디제잉을 하던 청년이 홀을 빠져 나가던 나와 은비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다소 찬바람이 내 뺨을 여러 번 훑고 이내 사라졌다.
가게 밖은 술에 취한 남녀들이 서둘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힘없이 나에게 업혀 있는 은비를 보며 히죽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한동안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그곳에....그렇게 서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의 출처는 나의 한쪽 목 부분 이었다.
나는 그 미세한 온기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잠시 후 또다시 그 온기가 내 목덜미에 전해졌다.
“사....사랑.....해요...”
나의 한쪽 목에 닿아 있던 은비의 입에서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마치 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몽롱한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