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tion (13)
“미...미나야....지금 뭐 한 거야?”
은비가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미나에게 말했다. 미나를 바라보는 은비의 짙은 눈 화장이 조금 지푸려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미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은비의 물음에 미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한 체 그렇게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시간이 잠시 정지 된 것처럼 홀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또각....또각....또각.....]
은비의 하이힐이 바닥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은비가 나와 미나가 앉아있던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나의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차 있던 홀의 향기가 잠시 잊고 있던 은비의 그 진한 향기로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은비는 자리에 앉아서도 여전히 미나에게 시선이 향해있었다. 미나는 그 눈빛이 두려워서인지 은비의 눈치를 살피다 이내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은비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에게 향한 은비의 그 시선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오빠.....왜....미나가.....”
“미안한데. 미나는 자리 좀 피해줄래?”
나는 은비의 말을 끊고 미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미나는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색한 표정을 하고선 자리를 떠나 방이 있는 안쪽으로 향하는 은비의 뒷모습이 왠지 안타까워 보였다.
은비의 두 눈이 나를 향했다.
은비의 얼굴을 보는 것은 2주 만이었다. 그녀의 볼이 조금 야위어 있었지만 내가 사랑했던....그녀의 얼굴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빠....”
“살이 조금 빠졌네. 밥 잘 챙겨 먹어야지.....”
“오빠....미나......미나하고......어떻게.....”
지금 은비의 관심사는 미나가 왜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에게 몸을 의지해 안겨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가게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빠르게 뛰는 심장처럼 내 목소리가 떨렸지만.....냉정했다.
은비의 표정이 변해갔다.
“오빠. 걱정 많이 했어요. 전화도 안 되고...연락도 없고...그때 오빠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니 거 알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 걱정하고 있었던 것도 알아요. 내가 미안해요. 오빠 우리 이제 이러지 말아요.”
[아...아 아.....아 저씨....살살....살살해요.....아윽.....]
나에게 향해 있는 은비의 커다란 눈동자 속에서 그때의 장면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은비야. 우리는....더 이상....예전처럼 그렇게 지낼 수가 없어. 그리고 나는 지금......너를 사랑하지 않아. 미안해.....그러니까...”
“오빠!”
은비의 눈가가 붉게 번져갔다.
“오빠. 제가 다 잘못했어요. 파타야에서도 그렇고.......다시는 어린애처럼 굴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이러지 말아요.”
파타야....파타야....파타야....그 빌어먹을 파타야...
내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은비의 눈가에 맺혀 있던 투명한 보석 하나가 곱게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을 미끄러지듯 타고 흘러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오빠....사랑해요.....”
“저....기.....언니.”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나왔는지 미나가 안쪽 Bar 앞에 서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은비와 같이 붉게 변해 있었다.
미나가 다가왔다.
“언니. 미안한데요. 이제......여기 안 왔으면 좋겠어요. 사장님......아니 오빠도 이제 언니 좋아 하지 않아요.”
“미...미나야....”
은비가 놀란 눈으로 미나를 쳐다봤다. 절묘하게 말려 올라간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떨리던 미나의 표정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언니. 저 오빠하고....잤어요. 매일 언니가 자고 갔던 저기 안에 있는 방에서요.”
미나의 얼굴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미소가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다.
“뭐...뭐라고.....”
“오빠하고 처음 나와 섹스 할 때....오빠가 얼마나 나 아껴줬는지 알아요? 오빠가 밤새 나를 안아주고.....사랑해줬어요.
오빠가 내 몸을 만질 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오빠 꺼 빨아주고, 그러면 오빠는 그걸 내 몸에 넣고.......오빠가 그날 콘돔도 없이 내 몸 속에다 몇 번이나 한지 알아요?
그리고 오빠가 내 몸이.....너무 맛있데요.
이제는 알겠어요. 왜 언니가 오빠 좋아했는지.....훗.....”
“조 미나....그만해.”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나의 시선은 당당하게 은비를 향해 있었다.
은비의 표정이 점점 처참하게 변해 갔다.
“언니. 오빠하고 저하고 섹스 파트너 아니에요. 아까 봤죠? 내가 오빠 입술에 뽀뽀하고 안겨있고, 그때 행복해 하는 오빠 표정 봤어요?
오늘 나 여기서 자고 가기로 했어요. 그러니까....언니....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여기 안 왔으면 좋겠어요.”
“조 미나. 들어가!!!”
내 고함 소리에 놀라 미나의 몸이 쓰러질 듯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에 언제 부터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나는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다시 안쪽으로 사라졌다.
은비의 시선이 테이블위에 있던 반짝이는 와인 잔에 꽂혀 있었다. 조금 남겨진 그 와인잔 윗부분에 미나의 붉은 립스틱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갈게요....잘 지내세요.”
은비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비의 짙은 향기가 조금씩 멀어져갔다. 찬바람이 내 뺨을 가여운 듯 한번 어루만지다 사라졌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은비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노란 택시들만이 내 눈에 들어와 내 마음을 재차 복잡하게 뒤집어 놓았다.
테이블 위에 반쯤 남아있던 와인잔을 들고 마셨다. 살얼음판처럼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적당하게 산화되어 알싸한 그 맛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방으로 향했다.
“엉엉엉.....엉엉........흐흐윽.........”
서러운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나가 바닦에 앉아 침대 위에 얼굴에 파묻고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미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미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봐라봤다.
미나의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얼굴 전체가 그것으로 젖어 있었다.
“오빠. 오빠......나 어떡해요. 나 미쳤나 봐요. 흐흐흑......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오빠한테도 미안하고 언니한테도......너무 미안해요.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엉엉엉......”
나는 말없이 미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엉엉엉.....언니 아직 있어요? 내가 나가서 잘못했다고 거짓말이라고 말할게요....언니 어디에 있어요?”
“갔어.....”
“흐흐윽....어떡해.....나 어떡해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내가 왜 홀에 나갔는지 왜 그런 말을 언니에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오빠 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 그만 울어........”
미나의 얼굴에 내 가슴에 닿았다. 그 곳에 미나의 뜨거운 눈물이 조금씩 번져가고 있었다.
“앞으로 언니 어떻게 봐요? 내가 지금 언니 집에 찾아가서 빌까요?”
미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미나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 혼자 보내는 것이 걱정되어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했지만 미나는 끝내 사양했다. 눈이 퉁퉁 부은 체, 가게를 떠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가게에 홀로 남겨지자 또다시 깊은 절망과 상실감에 빠졌다.
은비와 헤어진 후 2주 동안 가까스로 안정을 찾은 마음이 또다시 블랙홀로 빠진 듯 뒤죽박죽 변해 있었다.
[흐흐흐......개 같은 년....보짓물 싸는 거 봐.....으하하하......아가씨. 내가 그렇게 좋아? 우리 애인할래? 어때? 지금 니 보지에 내 자지 넣어 줄까? 내 건 벌써 이렇게 딱딱해.......좆대가리에서 허연 물이 흘러나와.....이거 봐봐.....이거 보라고 씨발년아!]
[아윽......아...아...아...아앙.....흐아앙]
스피커가 켜지듯 고요하던 카페에 택시기사의 목소리와 은비의 교성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와인을 병체 들고 마셨다.
파타야에 있을 그가 떠올랐다.
여동생이 실종되고 그녀를 정신없이 찾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술을 마시는 것 뿐 이라고 했었다.
급하게 들이킨 와인 덕택에 금방 취기가 올랐다. 볼에 손을 대니 얼굴이 뜨거웠다.
구석에 달려있던 앙증맞은 나무 벽시계는 새벽 1시 15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사장님....사장님계세요?”
누군가가 출입문 유리를 다급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문을 열어주자 근처 술집에서 알바를 하는 학생이었다.
“어? 니가 웬일이야?”
“사..사장님...안녕하세요? 그게.....지금 저희 가게에 좀 급하게 가보셔야 될 거 같은데요....”
“가게에? 왜?”
“그게.....저희 사장님이 사장님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저 보고 여기 가보고 사장님계시면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안면 있던 그 학생의 뛰어 왔는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이었다.
나는 가게도 들어가 카디건을 챙겨 입고 그를 따랐다.
그 술집은 우리 카페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대로에 있었다. 6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는 룸Bar 였다.
6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두터운 문을 열자 빠른 비트의 음악이 들렸다. 한쪽 구석에 DJ박스에 하얀 스냅백을 쓴 남자가 춤을 추며 열심히 믹싱을 하고 있었다.
구석진 소파에 앉아 있는 가게 사장의 시선이 한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사장님...”
내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지만 그는 내말을 듣지 못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사장님.....모시고 왔어요.”
알바의 큰 소리에 그제야 그가 나를 바라봤다.
“야.....치우야. 너 은비 씨하고 싸웠니?”
뜬금없는 그의 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네? 무슨 말입니까?”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조금 전 향하던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전체가 통유리로 된 창가에 있는 작은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끈적한 춤을 추고 있었다.
남자들 사이 리듬을 타며 긴 머리칼을 찰랑이는 늘씬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단정하게 자신의 상체를 감싸고 있던 페이즐리 패턴 블라우스가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 마다 풀어 헤쳐진 그 블라우스 사이로 그녀의 뽀얀 가슴을 힘겹게 담고 있는 검은 브래지어가 이따금씩 보였다.
그리고 눈물로 엉망이었던 그녀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하게 변해 있었다.
“두 시간 전 즈음에 은비 씨가 혼자 왔더라고. 그래서 너는 어디 갔냐고 했더니 조금 있다고 온대. 그래서 주문한 조니 워커 블루 750미리짜리를 가져다 줬어.
그런데....너는 안 오고.....은비 씨 혼자 계속 술을 마시더라고......스트레이트로 계속 마시길래 좀 취한 거 같아서 너한테 전화 했더니 전화는 안 되고, 걱정돼서 은비 씨한테 가서 너 오면 같이 마시라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하고.....
저기 남자 손님들 우리 단골이거든 근데 질이 좀 안 좋아, 은비 씨 혼자 술 마시고 좀 취해 보였는지 계속 가서 추근대더니 좀 전부터 합석해서 저러고........그래서 알바 보내서 너 카페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했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던 술집 사장의 눈길이 다시 은비에게로 향했다.
풀어헤쳐진 블라우스 사이 은비의 가슴살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은비의 주위에서 춤을 추던 3명의 남자들이 실실 웃으며 은비에게 다가가 어느새 둘러쌓다.
뒤에서 춤을 추던 남자가 은비의 타이트한 남색 스커트 위 볼록하게 솟아 있는 엉덩이를 향해 다갔다.
그의 하체가 슬며시 은비의 그곳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한 손이 얇은 블라우스 위 은비의 배 부분을 천천히 뱀처럼 감싸 안았다.
은비는 자신의 몸에 닿아 있는 남자의 손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꼭 감고서 음악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풀어헤쳐진 은비의 블라우스 아래를 타고 위쪽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꼭 감겨 있던 은비의 눈이 번쩍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