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77)

Variation (9)

아침 6시....

대학 북문 앞에는 이른 시간 도서관에 가려는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으로 또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고 있었다.

건너편, 어둠이 깔린 나의 카페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쓸쓸히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딸랑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래 동안 홀에 갇혀 있던 전날의 좋은 커피향이 나를 반기며 왈칵 다가와 안겼다. 소주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안주를 깨작여서인지 내 몸에 베였던 나쁜 냄새를 그 커피향이 한 동안 씻겨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욕실에 들어가 내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한 동안 뜨거운 물이 내 몸에 닿자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지난밤에 입었던 모든 옷들 그리고 속옷까지 벗어 세탁기에 집에 넣었다. 그 나쁜 기억과 함께 남아있던 어제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기 싶었기 때문이었었다.

깔끔한 카디건을 입고 거울 앞에 서있는 내 얼굴이 조금은 초췌해 보였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홀로 나와 카페 내부의 모든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조금 쓸쓸해 보이던 가게 내부가 노란 불빛을 반짝이며 다시 생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한 인디밴드의 음악을 틀었다. 그러자 이내 여자 보컬의 진한 음색이 홀에 가득 찼다.

[무엇이 그댈 아프게 하고 무엇이 그댈 괴롭게 해서

아름다운 마음이 캄캄한 어둠이 되어 앞을 가리게 해

다 알지 못해도 그대 맘을 내 여린 손이 쓸어내릴 때

천천히라도 편해질 수만 있다면 언제든 그댈 보며 웃을게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사라지지 말아

고통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나 덜어줄 텐데

도망가지 말아요 제발 시간의 끝을 몰라도

여기서 멈추지는 말아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안쪽 Bar를 깔끔히 정리하고 나서 홀의 테이블을 한쪽으로 모두 몰아넣고는 바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닦았다.

얼굴에서 타고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반짝이는 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청소를 멈췄다.

“어머!”

가게 문이 열렸다. 미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와우! 사장님.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요? 매일 아침 청소는 나만 시키시더니....”

“굿모닝. 청소는 다했어. 테이블 정리만 좀 해.”

나를 바라보는 미나의 미소 속에는 작은 의구심 또한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미나가 홀에 자리를 잡자 가게에는 다시 새로운 커피 향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전 새로 들어온 티라미수와 초코 머핀을 테이크아웃 박스에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었다.

“사장님. 포장 주문 들어왔어요?”

커피를 내리며 한 동안 나를 의아하게 보던 미나가 쪼르르 다가와 물었다.

“아니...”

“그럼요? 이건....”

“은비 가져다 줄 거야”

“아하....근데 이렇게 나 많이요? 언니 어디 가요?”

“아니. 오래 두고 먹으라고.....”

“아.......”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끔 미나가 내 여동생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에겐 여동생이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지금의 나와 미나 같은 사이는 아닐까 상상했었다.

“미나야. 창고에서 로부스타 원두 두 봉지만 가져다줄래?”

“넹!”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미나가 쌩하고 갔다가 금방 원래 자리로 돌아와 그것을 나에게 내밀며 생글거리고 있었다.

“하아.....조 미나....너 오늘 기분 좋은 일 있냐?”

“호호호....굿 모닝이잖아요! 근데 사장님. 어제 잠 못 잤어요? 얼굴이 조금 까칠 까칠....”

나는 웃으며 미나에게 건네받은 그 원두 두 봉지를 케익과 함께 우리 가게 이름이 새겨진 종이 봉투에 조심스레 넣었다.

“어? 사장님. 원두도 언니 가져다주려고요? 언니 매일 여기서 그거 마시는데....”

이 종이 가방에 담겨있는 티라미수와 머핀 그리고 로부스타는 우리 가게에서 은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미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스마트 폰에 그 음악이 들려왔다.

[오빠! 오빠!]

[그래. 일어났어?]

[네. 전화하려고 했었는데...방해될까 봐...참았어요. 승호 오빠는 이제 괜찮아요? 오빠는 피곤하지 않아요? 잠 잘 못 잤죠?]

[그래. 승호는 괜찮아. 나도 괜찮고...]

[은설이는 스키장에서 돌아왔어?]

[아니요. 아직요]

[그래? 지금 집으로 갈까하는데....]

[정말요? 빨리 식사 준비해야겠다....헤에....]

서둘러 가게를 나서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미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택시기사가 말하던 은비의 살 냄새가 진동했다.

“오빠. 벌써 왔어요?”

말끔하게 화장을 한 은비가 내 앞에 서있었다. 조금 전 샤워를 했는지 은비의 부드러운 머릿결에 습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뭐에요?”

내손에 들려있는 종이가방을 보고 은비가 물었다.

“오늘 들어온 티라미수 하고......너 좋아하는 로부스타.....”

“어머. 이렇게 나 많이 가지고 왔어요? 로부스타는 몇 달을 먹겠어요.”

식탁에는 소고기 미역국과 여러 종류의 반찬들이 예쁜 접시에 담겨 있었다. 매우 신경 써서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은비는 식사를 하며 시종일관 나와 눈을 맞추기를 부단히 노력했다. 나 또한 은비의 작은 움직임까지 내 눈 속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은비는 까르르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와 주고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식탁에는 내가 가져온 티라미수와 분쇄해서 금방내린 로부스타가 머그컵에 담겨 있었다.

은비는 티스푼으로 티라미수를 조금 베어 입에 넣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은비야. 우리 헤어지자...”

은비가 들고 있던 반짝이는 은색 티스푼이 접시에 놓여 진 순간 나는 말했다. 나를 향해있던 그녀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 이쯤에서 헤어져.”

“오...빠. 장난하지 마요.....”

은비를 바라보는 식어버린 내 표정은 더욱 깊어갔다.

“은비야. 잘 들어. 지금까지 너무 고마웠어. 항상 나 챙겨주고 걱정해주고.....부모님 설득해서....나를......”

나는 잠시 목이 메여왔다.

“이유는 없어. 그냥 지금 우리가 끝내는 게 너를 위해서 좋을 거 같아. 오랫동안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야.

슬퍼할 이유도, 괴로워할 이유도 없어. 그냥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니가 아버님, 어머님에게 직접 말씀드리기 힘들면 내가 할게.”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던 은비의 눈 속이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준비를 했던 그 말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은비야....미안해....나는 너를 더 이상 지켜 줄 수 없을 거 같아. 내가 말했지? 니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내가 너를 떠날 일은 결코 없다고....

나는 너를 더 이상......감당할 수가 없어. 니가 원하는 데로 그렇게 살아가길 바랄게......]

나는 은비에게 할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은비의 왼손에 끼워져 있던 그 작은 다이아 반지가 반짝거렸다.

“그리고....그 반지는.....돌려줄 필요는 없어. 가지고 있기 곤란하면....그냥 버려....”

내 말이 끝나자. 은비의 깊은 눈 속에 맺혀 있던 굵은 물방울이 뽀얀 얼굴을 타고 흘러.....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비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 그리고....가게에 찾아오거나.....그러지는 마.”

나는 얼어붙은 듯 식탁에 앉아 있는 은비를 남겨두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어? 오빠! 오빠! 아니....형부 왔어요?‘

눈같이 새하얀 롱 패딩을 입은 은설이 현관을 들어와 나에게 풀썩 안겼다.

나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치이....매일 나 없을 때 언니하고 둘이만 놀려고 집에 오고....형부 참.......응큼해요.....호호호...”

나는 은설의 양 어깨를 잡고 천천히 나에게로부터 떼어냈다.

“은설아.”

“왜요? 형부?”

은설의 얼굴이 좀 전 은비가 나를 보며 생글거리던 모습과 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였다.

“은설아. 언니 잘 부탁해. 앞으로 니가 언니 많이 챙겨주고 그래야 돼. 둘이 식사 거르지 말고 항상 챙겨먹고..........은설아 잘 지내라....”

“흐흑.......흐흐흑.......”

식탁에 홀로 앉아있던 은비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오빠.....이게 무슨.......”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은설을 뒤로하고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왔다.

“언니....언니....이게 무슨 일이야?”

현관문이 닫힐 때 까지 은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내 마음을 더욱 괴롭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은비의 아파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승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이.....친구 최 승호]

[하하하.....새끼...어디냐?]

[우리 오랜만에 낮술이나 찐하게 한잔할까? 너 시간 괜찮냐?]

[으하하....새끼 어제는 다 죽어가더니....나야 언제나 콜이지. 어디서 볼까?]

승호와의 전화를 끊고나서.....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나의 모든 것들이 깊은 암흑에 빠져버렸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깨어난 것은 정확히 5일 후였다.

희미하던 시야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내 입에서 연신 거친 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승호의 방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헛구역질이 터져 나왔다. 침대 아래에는 비어져있는 위스키 병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야.....치우야....너...괜찮아?”

문을 열고 들어오던 승호가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닥을 딛는 눈앞이 어두워져 다시 침대위로 쓰러졌다.

“너 정말......미쳤어?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인마. 나는.......니가 정말 죽는지 알았어...새끼야! 미친놈.....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매일 술만.......”

승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아....하아......어...머니....어머니는.......”

“그날....니가 낮술 마시자던 날....계모임 여행 갔어. 아침에 오셔”

“그래....다행이다......다행이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찾았다.

“너 폰 찾냐? 그날.....술 마시다가 니가 박살냈어.......새끼 정말.....”

“미안하다.....가게....가야돼.”

“지금 새벽이야. 자고 아침에가.....”

“아니야.....이제 괜찮아. 어머니 오시기 전에.......”

승호는 계속 나를 만류했지만 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걱정이 됐는지 집에서 불과 300미터도 안 되는 가게까지 나를 바래다줬다.

가게에서 떠나지 않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승호를 몇 번이고 안심시키고 나서야 그가 가게를 떠났다.

승호가 떠나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홀의 구석 테이블에 풀썩 주저앉았다.

은색의 반짝이는 커피머신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 속에서는 괴물같이 생긴 한 사내가 나와 눈을 맞추며 퀭한 눈으로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에 소름이 돋아 서둘러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귓가에.......은비의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아......하아......아저씨.......안돼요.....거기...거기....빨지마.....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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