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tion (6)
은비의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손이 나도 모르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은비가 사라진 베란다 쪽을 바라봤다. 아직 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무엇인가 빨리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내 손은 쉽게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가빠진 숨을 천천히 조절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때서야 내손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2통의 부재중 통화는 모두 같은 번호였다.
나는 나머지 미확인된 5통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가씨 접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오늘 한번 만나고 싶은데.....]
첫 번째 메시지였다.
그리고 12분 후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이야기 좀 하자니까. 내가 아가씨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잖아 ㅎㅎㅎ]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전화 자꾸 안 받을 거야?]
[지금으로 부터 5분 안에 전화해요. 좋은 말 할 때...]
[씨발년아! 정말 뜨거운 맛 좀 볼래? 지금 니년 아파트로 가니까. 당장나와....]
은비가 들어간 베란다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해졌다.
나는 서둘러 그 번호를 내 스마트폰에 저장하려 했지만 손이 떨려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포기하고 대신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미안해요. 10분만 있다가 내려갈게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은비가 이것을 보면 안 된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그 메시지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그리고 부재중 전화도 통화목록에서 모두 지워버렸다.
은비의 스마트폰을 원래 자리에 두려다 테이블 위에 떨어트려 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오빠!”
“응?”
은비가 자신의 마른 속옷을 들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오빠.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전화 왔어요?”
내 얼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렸다.
“으....응.....저기. 승호가 조금 다쳤다네...”
“네에? 승호 오빠가요? 어쩌다가가요?”
은비가 놀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퇴근하다가......회사 근처에서 접촉사고가 났나봐....”
“어머! 어떡해.....”
은비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토끼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은비야. 미안한데.....지금 좀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승호 오빠 지금 병원에 있어요? 많이 다쳤데요?”
“아니....아니...많이 다친 거 같진 않고, 가보고 전화할게....”
“아니요. 나도 같이 가요....”
은비가 급하게 옷 방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 방으로 가려고 반쯤 뒤돌아 있는 은비의 두 어깨를 잡고 나에게로 돌려세웠다.
“은비야.....오빠 혼자 갔다가 올게. 너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너무나 완고한 나의 목소리 때문일까, 놀랐던 은비의 표정이 단번에 차분하게 변했다.
은비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현관문을 열자 뜨겁게 달아오른 내 얼굴에 찬바람이 연신 부딪쳤다. 그 덕분에 참고 있던 뜨거운 숨을 쉬기가 조금씩 편해졌다.
은비가 현관에서 머라고 머라고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17층에서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나에게는 억겁(億劫)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은은한 소리가 울리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쪽에 붙어 있던 커다란 거울에 벌써 조금 늙어버린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을 빠져 나오자 찬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나는 한쪽에 몸을 숨기고 107동 앞을 찬찬히 살펴봤다.
몇 개 되지 않은 지상 주차 선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보였다. 그 중에 붉은 미등이 켜진 차가 하나 보였다.
건너편에서 거리를 두고 그 차로 향했다. 혹시나 다른 차에 사람이 탔는지 확인해지만 사람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미등이 켜진 차에 점점 가까워져갔다.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등이 켜진 차는 택시였다. 이상하게 그 택시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택시 천장에 달린 승객 탑승 알림등이 꺼져 검게 변해 있었다.
택시 계기판의 밝은 불빛 때문인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검은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내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해 다시 숨이 가빠졌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조금 전 찍은 사진을 열었다.
사진에 찍힌 핸드폰 번호를 몇 번이고 대뇌였지만 쉽게 외워지지 않았다. 나는 여러 번 그 사진을 확인하고서야 간신히 번호를 끝까지 누를 수 있었다.
많이 들어본 트로트가 내 스마트폰을 통해 귀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 검은 택시 안이 하얗게 밝아졌다.
“여보세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여보세요? 전활했으면 말을 해야지....에이 씨발....”
그렇게 전화가 뚝 끊겼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은비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 놈이 누구인지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 사람이 은비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며, 전화를 하고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는지......아무리 생각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자.....은비에게 위협적인 메시지를 보낸 저 새끼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힘겹게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발.....조금씩 택시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져갔다.
택시 조수석 문에 달려있는 은색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택시 내부가 환해졌다.
나는 말없이 택시에 올라타고는 문을 닫았다. 그러자 다시 택시 내부가 검게 변했다.
“저기 손님...죄송......어....어........”
택시기사가 말을 하다 이내 얼버무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자 택시 안이 단번에 짙은 연기로 가득 찼다.
담배를 깊게 빨아 서너 번 연기를 뿜어냈지만, 택시 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향해 있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담배 연기가 택시에 가득 찼을 때 즈음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기사 아저씨. 안가고 뭐해요? 손님 탔는데.”
기사는 말이 없었다. 그의 숨이 처음보다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아이씨....이 아저씨....바쁜데 빨리 가지니까.”
“네....네?”
“손님 탔으니까 가자고.....택시 기사 서비스가 왜 이따위야!”
나도 모르게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택시기사의 몸이 한번 움츠려드는 게 보였다.
“아...미안....미안.....내가 목적지를 말 안했네....저기 중부 경찰서로 갑시다....”
“네에?”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부 경찰서로 가자고.....이 아저씨야”
나는 거의 다 피워가는 담배를 앞쪽 대시보드에 아무렇게나 비벼 껐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담배 공초를 앞쪽 창문으로 튕겼다. 조금 남아 있던 담배 불꽃이 폭죽 터지듯 환하게 불을 밝히고는 금세 사라졌다.
“죄.....죄송합니다......선생님.”
그가 자신을 노려보는 내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중부경찰서 가자니까......왜 자꾸 딴소리를 하고 지랄이십니까? 급하니까 빨리 갑시다.”
“선....선생님......”
[짜악!]
“아....”
참고 있던 내 손이 날아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
“누가 니 선생인데? 좋은 말 할 때 가자. 아니면 지금 112 누른다....”
내가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가 보이는 키패드를 열자. 그가 다급하게 내 손을 잡고 막았다.
“손 치워!”
“선생님.....잠깐만요. 제발.......잠깐만 내말 들어보십시오.”
그의 날카롭던 인상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듯 처절하게 변해 있었다.
“무슨 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 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제 말 좀....”
몇몇의 아파트 주민이 택시를 지나가다 실랑이를 들었는지 흘깃 이쪽을 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강변 체육공원으로 가자.”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택시의 라이트가 환하게 앞을 밝혔다.
찬바람이 부는 이 빌어먹을 날씨에도 두터운 파카를 입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택시는 인적이 드문 공원 가장 안쪽에 정차해있었다.
이곳에 오며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두었지만, 도착하는 순간 내 머리는 또다시 바보가 된 듯 하얗게 변했다.
은비의 스마트폰을 찾아준 그 택시기사는 이곳에 도착해서도 아무런 말없이 안절부절 하고만 있었다.
“바쁘니까. 빨리 이야기해. 헛소리 하면......내가 뭘 할지 말 안 해도 알거야. 그러니까 헛 수작 부리지마라.”
그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깊은 숨이 길게 내쉬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그 아가씨가 선생님께 말할지는 몰랐습니다.”
“뭐야 이 개새끼야!!!”
“으웩....켁켁.....”
나는 한손으로 단 숨에 그의 목을 짓눌렀다. 그러자 그의 양손이 자신의 목을 터질 듯 감싸고 있던 내손을 잡고 버둥거렸다.
“켁...켁...선...생....니임......제발...말을 들어.....켁켁.....”
내 손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그의 손톱으로 이리저리 긁혀 붉은 선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그의 목을 풀어 주었다.
“우엑...켁켁....”
하지만 자신의 목을 터질 듯 누르고 있던 내 손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그는 한동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거친 기침을 내뱄었다.
“선생님. 저의 실수입니다. 제가 백 프로 잘못했습니다. 그 아...아가씨가 너무 예쁘고.......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이딴 말 들으러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니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어? 개새끼야.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겠어.
나는 지금 차에서 내리니까. 너는 집구석에 가든 영영 사라지든 니 맘대로 해라 쓰레기 같은 새끼야.”
나는 차 문을 박차고 내렸다.
뒤에서 운전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제발요....제발요........이것만 확인하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가 급하게 내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고는 애원했다.
그의 한 손에는 마이크로SD 카드 하나가 들려있었다.
나는 택시 안에서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이런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졌다. 택시 기사가 내민 마이크로SD가 내손에 쥐어져 있었다.
담배 필터의 쓴맛이 느껴질 때 까지 택시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내 스마트폰에 택시 기사가 건네준 마이크로 SD카드를 꼽자 동영상 파일 하나가 들어있는 폴더가 열렸다.
나는 그 파일을 실행했다.
내 스마트폰에 택시 내부가 환하게 보였다. 화질이 매우 좋았고 적외선 감지가 되는지 어두운 택시 내부가 훤하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정면 유리창 위쪽에 달린 블랙박스를 바라봤다. 붉은 LED가 반짝이고 있었다.
택시가 정차하자 택시 문이 열렸다.
[은비야. 혼자 괜찮겠어? 치우 오빠한테 전화할까?]
은비친구 민정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냐...괜찮아...금방....금방...가....]
은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취했는지 발음이 어색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은비가 택시에 타고 있었다.
[은비야. 뒷자리에 타...왜 앞에 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은비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히.....괜찮아....괜찮아.....]
은비가 택시에 완전히 올라타자 문이 닫혔다.
조수석에 올라탄 은비의 몸가짐이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아음......기사....아저...씨.....경대 북문으로....가주세요.....”
“네네....”
은비가 벨트도 메지 않았는데 택시는 서둘러 출발했다.
“아이고....아가씨. 오늘 좋은 일 있나 보네? 많이 취했네?”
“호호....네...네....”
은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거리를 빠르게 달리던 택시가 신호를 받았는지 정차했다.
은비가 취기 때문인지 희미하게 풀려버린 눈을 힘겹게 깜빡이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고개를 은비 쪽으로 완전히 돌려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