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morphosis (14)
조금 늦은 브런치였다.
“저녁에 거기 가기 전에 준비 좀 할 거 있으니까. 식사하고 서둘러 나가자...”
그가 커다란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고 말했다. 그의 눈이 퀭해보였다.
새벽에 은비와 황 경태의 동영상을 보며 자위를 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니터가 그의 정액으로 이미 엉망이 되었음에도 흐트러진 눈빛으로 멍하게 있는 은비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물건을 계속 쓰다듬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은비를 보며 자위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은비를 한번 품어 보고 싶다고 생각 하진 않았을까?
은비의 흠뻑 젖어있는 속살에 자신의 물건을 깊게 쑤셔 넣어 뜨거운 정액을 듬뿍 싸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에게 ‘새벽녘 니가 내 여자의 몸을 보며 자위를 한 것을 봤노라’ 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준비 할 거라니요?”
“혹여나 우리가 거기에 갔다는 것을 황 경태가 알면 안되니까......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타일은 조금 달리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정 수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덥수룩한 내 머리칼이 태국여자의 손에 쥐어진 반짝이는 은색의 날카로운 가위로 잘려 떨어져 내렸다. 뒤에 앉아 있던 정 수연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그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때요? 괜찮아요?”
나의 물음에 정 수연이 미소를 살짝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리에는 왁스가 듬뿍 발라져 있었다. 왁스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흐트러지듯 뻗어 있는 내 윗머리가 조금은 어색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그의 턱을 까맣게 뒤덮고 있던 수염이 말끔하게 밀려 있었고, 조금씩 보이던 그의 하얀 새치도 갈색 톤의 염색으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는 나이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였다.
센트럴 플라자의 한 남성 정장 매장에서 정 수연이 나의 슈트를 골라주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을 드레싱 룸에 들락날락했지만 정 수연의 눈에는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타이트한 짙은 남색 슈트를 입고 나오자 정 수연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저는 이게 가장 맘에 들어요. 치우 씨는 어때요?”
“조금 갑갑하긴 한데......괜찮은 거 같아요.”
쇼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마치 열정이 넘치는 새내기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커다란 거울 속에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던 4년 전 즈음의 내가 서있었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위층에 있는 한 스시집으로 들어갔다.
“몇 시에 거기에 가세요?”
“예약은 오후 8시에 했습니다.”
정 수연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저기.....죄송한 말이지만.....너무 기대는.....갖지 마세요. 황 경태 그 사람의 친구가 그 외국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요.”
정 수연의 말에 그가 잠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정 수연의 눈빛이 조금씩 떨리는 것 같았다.
“수연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직설적인 그의 물음에 정 수연은 아무런 대답도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이 많은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사실....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그 사람에게 벗어나고 싶다고만 생각했어요. 막상 그렇게 되고나니.....어떻게 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요. 하지만 수연 씨가 파타야에 계속 머무르면 언젠가는 황 경태와 마주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또 다시 언급하기가 곤란하여 나는 말을 끊었다.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그 사람이....가족을 괴롭힐까 걱정이 되고....그렇다고 여기 있을 수도 없고......잘...모르겠어요.”
정 수연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두 분다....조심하세요.”
운전석에 앉은 정 수연이 고개를 살짝 내밀며 우리에게 말해다.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좀 쉬어요.”
내 말에 정수연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머물다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허름한 뒷골목이었다.
이런 곳에 그런 업소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골목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멀리서 반짝이는 간판이 보였다.
작은 주황색 간판에 검은 글씨가 보였다.
[Devel's affair]
작은 문 앞에 달려있던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철컹하고 문이 열렸다. 복도에는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것을 지나자 또 다른 고급스럽게 꾸며진 나무 문이 보였다.
“예약하셨나요?”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몸에 달라붙은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8시 두 명.”
그가 짧게 대답했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앞서가는 여자가 걸을 때 마다 엉덩이가 한쪽씩 부드럽게 솟아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너무나 훌륭한 몸을 가진 여자였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작은 내실이었다.
그곳엔 검은색 소파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사장님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 여자가 내실에서 빠져 나가자 그가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지 마요. 내 뒤쪽에 카메라 있어요.”
목소리를 낮춰 그에게 말했다. 그가 아차 싶은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긴 시간이었다.
단지 10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안 오지?”
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희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을 한 그여서 인지 그는 이전과 다르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대머리의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몸은 무척 거구였다. 신장이 최소한 190센티는 되어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죄송한 표정이 아니었다.
“두 분다 한국 분이시더군요. 사실 저희 가게에 오시는 한국 분들은 아주 드문 편입니다. 아시아 쪽에선 일본 고객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경계와 의심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제가 두 분을 주목한 것은 예약할 당시 요청사항입니다. 너무나 디테일 하더군요”
백인 사장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붉게 번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우리의 성적 취향을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업소에 한국 고객 분들은 거의 찾지 않으시고 요청 사항이 너무 디테일하다 보니 저로서는 조금........”
내말에 서둘러 답하던 그가 끝말을 흐릿하게 얼버무렸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최소한의 확인절차가 필요할거 같습니다. 혹시....명함이 있으십니까? 단순한 확인 절차입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황스러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실망스럽군요. 이런 업소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곳은 지금까지 어떠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척 모욕적인 일이라 기분이 좋지 않군요.”
나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백인 사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지갑을 꺼냈다.
지갑의 가장 깊은 구석에 꼽혀 있던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영어로 인쇄된 뒷면으로 돌려 백인 사장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던졌다. 그 명함이 테이블 위 유리를 미끄러지듯 흘러 백인 사장 앞에 멈췄다.
백인 사장은 나의 행동에 다소 놀란 듯 보였다.
그가 명함을 들어 확인을 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잠시만요.....”
그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명함을 들고 밖으로 빠져 나갔다.
“김 치우. 저 새끼 왜 저래? 무슨 명함인데?”
“예전에 다니던 회사요.”
지갑을 열 때 마다 그렇게 꼴 보기 싫던 그 명함이 한 장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명함을 버려야지 하면서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갑에 그렇게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나....이 라면 정말 좋아합니다! 한국 라면은 정말 최고입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두 분이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손에 예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출시한 컵라면이 들려있었다. 그때서야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보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요청하신 취향에 최대한 부합하는 아이들입니다. 천천히 보시고 선택하십시오.”
고급스런 벨벳 천으로 덮여있는 표지를 넘기자 여자들의 프로필이 가득했다. 신체 사이즈와 특징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고, 정장을 입은 여자들의 사진, 비키니 사진.....그리고 침대에서 촬영한 알몸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다리를 벌리고 성기를 확대한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한 장씩....한 장씩 프로필을 넘길 때 마다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아마도 세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저기....여기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은 멉니까?”
그가 떨리는 소리로 백인 사장에 물었다.
“저희는 아가씨들의 프라이버시도 소중히 합니다. 그 아가씨는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프로필 리스트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은 그 여자뿐이었다. 그의 눈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여자로 하겠소.”
그가 백인 사장에게 말했다.
“하하하....역시 탁월하십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선 먼저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그가 내실을 떠났다.
“어때요? 세희 씨 맞아요?”
“모....모르겠어.....하지만 신체 사이즈나....몸매가 세희 인거 같아.....”
“그렇다면 저는 초이스하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러지마.....확실치 않아...”
문이 열리고 백인 사장이 들어왔다.
“먼저 선택하신 손님. 입장하시지요. 우리 직원이 룸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으로 보이는 늘씬한 여자가 그의 손을 잡고 내실을 빠져 나갔다.
룸에는 백인 사장과 나만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프로필 리스트를 뒤척이다 결국 덮어버렸다.
“마음에 드시는 아가씨가 없습니까?”
백인 사장이 근심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아가씨는 이 리스트에는 없네요. 저는 여기서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으음.....”
백인 사장이 한숨을 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단지 먼저 룸으로 들어간 그가 선택한 여자가 제발 세희이기를 기도했다.
내실에 답답한 침묵이 흘러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고객님...”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백인 사장의 목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낮게 깔려있었다.
“고객님께서 요청한 사항에 꼭 맞는 한국여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지만 몸에 문신이 조금 있습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일치합니다.
이 아가씨는 여기에서 일하는 아가씨는 아닙니다. 하지만 VIP 고객들에게만 몇 번 선보인 아이입니다. 저희 업소의 일본인 VIP께서 이 아이를 한번 품고 나서는 일본으로 데리고 가려고 저에게 거금을 제안했을 정도입니다.
이 아가씨는 매우 조심히 다루셔야 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실수한 부분도 있고 해서....고객님께서 원하신다면 특별히 이 아이를 오늘 내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를 보는 백인 사장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