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177)

Metamorphosis (1)

노트북 화면에 그리운 가게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을 떠나 이곳 파타야로 온지 고작 12일이 지났지만, 그곳의 익숙한 모습은 마치 한없이 그립기만 한 고향과 같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두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그랬듯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미나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채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미나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빠...아니...사장님!!!]

미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바쁘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노트북 화면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미나의 모습이 보였고, 그녀의 조금 큰 목소리 때문인지 테이블에 있던 몇몇 사람이 그런 미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지....미안하다. 일이 좀 있어서....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갈 거 같아]

[네. 어제 승호 오빠에게 들었어요. 그리고....은설 언니가 어제 왔었어요. 사장님. 파타야에서 은비 언니하고 싸웠어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오랜만에 너 얼굴 보니까 좋다....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가게에 급한 일 있으면 승호한테 연락하고....]

[네? 내 얼굴을 봐요?]

갑자기 미나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시선이 카운터 위 구석에 달려 있던 CCTV로 향하자 노트북에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사장님. 지금 가게 보고 있어요?]

[응. 힘들면 가게 조금 빨리 닫고 퇴근해]

[치이. 나는 괜찮아요. 가게는 걱정하지 말고요. 빨리 오세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고마워....]

노트북 화면에는 CCTV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미나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착!!!]

그였다. 

나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룸을 빠져 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주차장에 흰색 도요타가 전조등을 밝히고 있었다.

“왔냐?”

그의 모습은 어제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급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 좀 하자고..”

그가 나를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차는 어느새 복잡한 좁은 골목에 도착해 있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태국 여자들로 골목이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각양각색의 작은 Bar 간판들이 수많은 별들처럼 반짝였다.

그가 앞장서 한 술집에 들어갔다. 그러 자 가슴이 반 이상 드러나 보이는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그에게 안겼다.

“뭐해? 안 들어오고?”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그와 그 품에 안겨 있는 여자를 보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이 그에 입술에 닿자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의 손이 여자의 가냘픈 허리와 엉덩이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테이블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가 어딥니까?”

“보면 몰라? 술집이지. 이런데 처음이야?”

“아니.....왜....여기에.....”

“술 한 잔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나 할까 해서....왜 맘에 안 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구글맵을 실행했다. 

내가 있는 이곳은 Soi6....소이혹이였다. 승호가 은비 몰래 가보라고 했던 곳이었다.

그와 진한 키스를 했던 여자가 맥주 두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 여자는 그의 허벅지 사이에 파고들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와는 달리 벌어진 원피스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부풀어 오른 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저 남자 누구야?”

그 여자가 말했다.

“새로운 친구....왜? 맘에 들어?”

그의 말에 그 여자가 웃으며 그에게 완전히 몸을 기대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할 건데....잠시만...”

그의 말에 그 여자가 서운한 듯 그를 한번 흘겨보고는 테이블을 서둘러 떠났다.

하나둘씩 들어오던 외국인들로 금세 Bar가 가득 찼다.

“정 수연.....”

그의 말과 함께 짙은 담배 연기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황 경태의 집에서 두 명의 태국 경찰과 함께 뒤엉켜 있던 정 수연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자 말이야.....그 여자도 그 새끼한테 당한 피해자야.”

“네? 그게 무슨....”

“정 수연이 그 여자도 그 새끼한테 똑같이 당했다고.....그 여자도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하고 여기에 여행을 왔었어. 

워킹스트리트에 있는 클럽에서 당했지. 정 수연이 그 클럽 내부에 있는 밀실로 끌려 들어가서 윤간을 당했어. 남자 친구는 약에 취해 클럽에 널 부러져 있었고....손 쓸 틈도 없이 참혹하게 당한 거지. 

황 경태가 그 뒤처리를 해줬어.

경찰에 신고도 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그들을 도와줬지.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을 꾸민 놈이 황 경태라는 걸 그들도 알게 되었어. 하지만 그때는 늦어 버렸던 거지.

벌써 정 수연이 며칠 동안 황 경태에 끌려 다니며 수차례 당한 뒤였지. 

정 수연의 남자 친구가 그 사실을 알고서는 발버둥을 쳤나봐. 황 경태 죽이려고.....

하지만 황 경태는 한 술 더 떠서 남자친구가 보는데서 정 수연을 또다시......여하튼 그 새끼는 개새끼야. 좆같은 새끼.”

그의 얼굴이 말하기 전과 달리 터질 듯 불어져 있었다. 

그는 맥주를 한참 동안이나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결국 정 수연이 남자친구가 계획된 일정보다 먼저 파타야를 떠났지. 그리고 정 수연이는 일정을 꽉 채워 황 경태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갔어. 

하지만 정 수연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파타야에서의 그 지옥 같았던 일이 끝나지 않았어. 황 경태가 동영상들로 계속 협박을 했지. 

정 수연이 아마도 무슨 은행에 다녔다고 하던데.... 

황 경태가 어떻게 알았는지 정 수연이 다니는 은행 부지점장에게 파타야에서 찍은 말도 안 되는 그 정 수연이 사진을 몇 장 보냈나 봐. 그런데 부지점장 그 개새끼도 황 경태하고 다를 바 없는 게....

그 사진들로 정 수연이를 어르고 달래서....한마디로 협박이지. 잠자리를 했나봐. 한번이 두 번....세 번....계속 늘어나다 보니 은행에서 소문도 안 좋아지고 결국 정 수연이는 은행을 그만뒀어. 

여하튼 개놈의 새끼들 미친개처럼 발정 난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정 수연이는 결국 황 경태 끊임없는 협박에 그 새끼가 원한대로 파타야로 들어왔지. 그래서 지금까지 창녀 아닌 창녀처럼 그렇게 지내는 거야.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그렇게.....”

그의 말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술집의 요란한 노랫소리만이 크게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나와 은비로 변해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개새끼.....”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뭐...뭐? 너 지금 나보고 욕했냐?”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눈이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 여자.....정 수연이는 분명히 뭔가 알고 있어. 황 경태와 같이 살다시피 오랫동안 붙어 있었고, 이제는 항 경태도 정 수연이가 어디로 도망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믿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정 수연이한테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거야. 그게 우리 일의 시작이야.”

“오빠. 오빠!!!”

한 태국 여자가 우리 테이블 앞에 다가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여자는 진한 화장을 하고 몸에 완벽하게 밀착된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하...로즈! 오랜만이네. 이리 와 이리.....”

그가 의자를 끌어와 자리를 내어주자 여자가 다가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짧은 원피스 사이로 그 여자의 허벅지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다. 그리고 검은색 레이스 팬티마저 내 시선에 들어왔다.

“둘이 잘 알지? 니가 그날 클럽에 널 부러져 있을 때, 내가 로즈에게 부탁해서 너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라고 했어. 그날 이 여자 아니었으면 너는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 여자가 그를 보고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자 조금 전의 그 미소는 단숨에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오빠!! 오빠!!”

조금 전 테이블을 떠났던 여자가 다시 그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자신의 몸으로 이끌었다. 그의 손이 벌어진 원피스 사이 반 이상 드러난 그 여자의 가슴에 머물러 있었다. 

“하하....둘이 이야기하고 있어. 나 2층에 좀 갔다 올게.”

그의 얼굴이 불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여자는 그의 몸에 깊게 파고들었다. 

그 둘은 마치 뜨거운 연인인 듯 자석처럼 진득하게 들러붙어 술집 안쪽 어디론가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테이블에 남겨진 나와 로즈라는 여자 사이에는 한동안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내 몸에 올라타 부드럽게 허리를 돌리던 그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고마웠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요? 섹스?”

“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무표정한 눈빛 때문인지 순식간에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뭐가 고맙다는 거예요? 나와의 섹스가 고마웠다고요?”

“아니요. 그게....”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내 스마트폰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도 나를 따라 그곳을 향했다.

나는 액정에 보이는 사진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스마트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남자들을 호객하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의 재잘대는 소리만이 한동안 들렸다.

“오빠......”

오랜 기다림 끝에.....

작은 스피커에서 나의 귀를 타고 들어온......떨리는 은비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내려앉아 버리는 것 같았다.

“어...디세요?”

은비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나...아직 거기야.....”

“네? 어디요?”

“파타야....”

또다시 갑갑한 적막이 흘렀다.

“일이 좀 있어서...다음 주에나 돌아갈 거 같아....”

떨리는 목소리 아니.....들킬까 봐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그냥.....그냥....돌아오시면 안돼요?” 

은비의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돼. 내가 해야 될 일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

이상하게도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 냉정하고도 단호했다. 은비에게 이런 톤으로 말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빠...미안해요.....내가.....흐흑.....”

은비의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은비야. 나는 괜찮으니까.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

나의 한쪽 귀를 감싸고 있던 스마트 폰이 어느새 아래로 내려져 액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은비의 사진이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나의 두 눈에서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오빠? 까올리?”

흐트러진 분홍색 유카타를 입은 한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자신의 가슴을 나의 한쪽 팔에 부비기 시작했다. 

여자의 짙은 향수가 내가 서있는 공간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짙은 화장을 한 하얀 얼굴에 새빨간 립스틱이 너무나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 

반짝이는 매니큐어가 발려진 그 여자의 작은 손이 바지 위 내 물건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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