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177)

잔혹동화 (6)

“너무나 착하고 예쁜 여자가 있었지. 그 여자는 마치 천사 같았어. 언제나 상냥하고 예의 바른 그런 여자였지. 모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좋아했어.

어느 날 그 여자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어. 그 남자 또한 그 여자와 같이 매사에 바른 사내였지. 그 둘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어.

그리고 그 둘은 결혼을 결심해.

양가에서 요즘 시대에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그들을 걱정했지만, 너무나 서로 사랑해서 마치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그 둘을 아무도 막을 순 없었어. 

남자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들을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돼.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나지.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신혼여행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하게 가는 유럽이나 하와이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한 달 동안의 동남아 일주였어. 

그들의 일정은 베트남 호치민을 시작해서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태국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행 경로였지.

그들은 신혼여행 중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일 올렸지. 그곳에는 너무나 예쁜 동화 같은 이야기들로 매일 매일 가득 채워졌어. 

하지만 그들의 신혼여행이 5일 정도 남았을 무렵......방콕에서의 행복한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 동화 같던 이야기가 끊겨 버렸어. 방콕에서 마지막 여행지인 파타야로 이동한 그날이었어.

그들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에 지쳐 연락을 했어. 

그들이 파타야로간지 하루....이틀....까지는 연락이 띄엄띄엄 됐어. 

사람들이 연락했을 때, 그들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하지만 오랜 여행에 지쳐 잠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

그들이 긴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이 되었어. 하지만 그들은 귀국을 하지 않았어.

가족들이 연락을 했지만 그 둘 모두와 연락이 닿지 않았어. 귀국 편이 예약된 항공사에 연락을 했지만 그들은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고 전해왔어.

예상치 못한 일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지.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했던 날로부터 정확히 이틀이 지난 후 외교부에서 연락이 왔어. 

남자가 파타야에서 머물던 콘도 1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고......그리고 함께 있던 여자는 실종되었다고.....

으흠.......”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사내의 입술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곤에 찌든 듯한 충혈된 눈동자 주위가 더욱 붉게 변해있었다.

그는 한쪽 구석 선반에 있던 위스키를 마시던 커피 잔에 가득 따랐다. 그 선반에는 무엇인지 모를 크고 작은 약병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오랜 된 실험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소파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급한 듯 그 위스키를 길게 한 모금 마셨다. 그의 표정은 며칠 전 그 일이 있은 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실종된 그....그....여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여동생이었어. 그리고 그 콘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남자는 내가 친 동생처럼 아끼던 후배 녀석이었지.......”

“네?”

그의 말에 놀란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의 퀭한 눈빛이 잠시 동안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나와 죽은 후배의 가족 몇몇이 급하게 파타야로 왔어. 

경찰들이 CCTV를 우리에게 보여줬어. 후배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 그 콘도에 체크인을 했어. 

그 이틀 동안의 CCTV에서 내 동생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어. 멀리서 보이는 후배의 마지막 모습은 어둠이 내려앉은 베란다에서 한참 동안 여러 개의 담배를 피우고는 난간에 올라서 뛰어내리는 모습이었지. 

명백한 자살이었지.

죽은 후배의 스마트폰은 말끔하게 지워져 있었어. 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 수차례 반복해서 발신한, 한 태국 번호만이 남겨져 있었어. 

나는 한 파타야 경찰에게 적지 않은 사례비를 주고 그 번호의 주인을 알아냈어. 그 번호는 황 경태의 전화번호였어.

나는 황 경태의 가게에 찾아갔지. 그는 내가 찾아가자 무척 놀란 듯 보였어. 나는 물었지. 내 동생과 후배에 관해서....

황 경태는 내 동생과 후배가 파타야에 도착한 다음날 만났다고 했어. 

비치로드에 있는 한 카페에서 태국 놈 하나가 내 여동생을 희롱하다 후배와 싸움이 벌어지자 자신은 그것을 해결해줬다고 했어.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동생과 후배가 감사의 표시로 마련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어. 

황 경태는 그날 내 동생과 후배가 사소한 일로 조금 다퉜다고도 알려줬어.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 

내가 파타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단지 나는 내 동생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맬 뿐이었지. 하지만 이곳 파타야에서 이방인인 나를 도와줄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어. 믿었던 경찰들은 협조한다는 명목으로 단지 나에게 돈을 원할 뿐이었지. 

파타야에 온 지 3주 만에 나는 동생에 관한 어떠한 소식도 알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어.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날, 병원에 있던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우셨어. 그리고 매일 매일 동생을 애타게 부르며 울기만 하셨지. 

어머니는 지병이 악화되어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어. 이제 세상에는 나와....실종돼버린 내 동생 둘만 남겨지게 된 거였어.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그날 밤, 친구에게 부탁한 죽은 후배의 스마트폰 포렌식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지. 마음을 굳게 먹고 확인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 친구는 서둘러 떠났어.

사진들이었지.

사진에는 사랑하는 내 여동생과 그 후배 녀석이 마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어. 수백 장의 사진 속에 그 새끼의 사진도 들어있었어. 황 경태.....

테이블에는 해산물 요리가 가득했지. 그리고 여동생과 후배, 황 경태가 테이블에 앉아 웃고 있는 사진이었어. 그리고 다음날도.....그 다음날 사진에도 황 경태가 찍혀있었어.

그리고 동영상....

후배의 스마트폰에는 직접 찍은 영상이 아니라 어디선가 전송받은 동영상 하나가 있었어.

그 영상에는......

천사 같은......천사 같은.....내 여동생이......찍혀 있었어....

호텔 객실이었어.

동생의 팔과....다리는... 침대에....묶여 있었어. 벌거벗은 채로...그리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지.

한 태국 사내가 동생의 몸에 올라탔어. 그리고 그 짓을 오랫동안 했어. 그 사내가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무렵 침대에서 내려오자 다른 사내가 올라갔어. 그리고 또다시.....또다시......

24살 밖에 안 된, 그 예쁘고 어린 동생을 그놈들은 너무나 처참하게 망쳐 버렸지.

동생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죽이지 말라고도 울부짖었지. 

나는 하던 약국을 서둘러 정리하고 다시 이 지옥 같은 파타야에 왔어. 

나는 매일 황 경태를 쫓아다녔어. 그러다 보니 그에게 한국 관광객에게 접근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여자를 빼앗아 즐기고, 협박하고.....이용하고....황 경태는 혼자가 아니야. 그를 돕는 현지인들이 마치 팀처럼 움직여. 

내가 황 경태 뒤를 쫓으며 이렇게 죽은 귀신처럼 파타야에 머문 지가 벌써 6개월째야. 

나는 황 경태를 죽이려고도 했어. 그리고 충분히 그럴 기회도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못한 이유는 내 동생 우리 세희 때문이야.

나는 어딘가 아직 세희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세희를 찾을 때 까지 그 새끼를 죽일 순 없어.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조금만 더 견디면 우리 세희를 찾을 수 있어.

니가 나에게 물었지?

왜 너에게 그 지옥 같은 동영상을 보냈는지?

황 경태를 쫓아다니면서 너와 네 여자......은비를 봤어. 그리고 나는 죽은 후배 녀석과 우리 세희가 떠올랐지.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너희가 황 경태에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기는 싫었어. 

그리고 또 하나........”

파타야의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낯설게 변해있었다. 입고 있던 반팔이 다소 춥게 느껴졌다.

호텔 룸에 들어와 새것같이 다시 정리된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의 등을 감싸는 몸에서 포근한 침대가 느껴졌다. 

그리고.....눈이 시려왔다. 

“어이. 김 대리 이리로 와봐”

나를 부르는 배 팀장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네! 팀장님.”

“너는 대리라는 새끼가 일을 이따위로 하냐? 니가 맡은 영업소 실적은 왜 항상 이따위야? 너는 일은 하는 거야 마는 거야? 너는 밑에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죄송합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지금 너한테 사과 듣자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실적이 떨어지면 니가 채워 넣든지 거래처에 가서 그 새끼들 구워삶아서라도 실적을 맞추든지 뭐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니가 자선 사업가냐? 왜 그 새끼들 사정을 봐줘가며 일을 하냐고? 니가 이렇게 물렁하게 구니까 그 새끼들이 너를 병신으로 보는 거잖아. 너는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냐? 4년 동안 전 팀장 밑에서 도대체 뭐 했어? 말해봐. 뭐 했냐고 이 새끼야!!”

“팀장님....”

“뭐? 말해봐!”

“욕은 하지 마십시오.”

“어..어....뭐? 이 새끼기가 돌았나? 너 뭐라고 했어 방금?”

“나한테 욕하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치우야. 지금 몇시 야?]

방금 잠에서 깬 것 같은 승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한국 들어왔어?]

[아니....승호야....너에게 부탁할게 좀 있어서...]

[응? 먼데?]

[나....일주일만 여기 더 있을게. 아직 일이 좀 남았어]

[뭐? 너...정말.....지금 어디야? 내가 휴가내고 그리고 갈까?]

[아니. 일주일이면 돼. 그때까지 가게하고....은비.....부탁해. 은비가 아픈 거 같아.....]

승호와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나는 침대에 앉은 채, 화장대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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