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도시 (3)
우리는 호텔조식을 먹은 후 우버를 이용해서 파타야로 향했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비는 나의 어깨에 기대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은비는 나에게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지난밤의 과음과 새벽녘의 뜨거운 섹스 때문에 몹시 피곤했던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랬다.
파타야로 향하는 7번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쯤 내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은비를 처음 만났던 날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가게를 오픈한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무심결에 인사를 하고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그레이 스키니진에 아이보리 폴로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음....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주세요.”
“아..네...네....”
그녀는 주문을 하고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책을 꺼내어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보고 놀랐던 것은 스키니를 입은 그녀의 몸매가 너무나 완벽했고, 외모 또한 거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하는 여자 손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내리면서 나의 눈길은 그녀의 뒷모습이 고정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웨이브 갈색 머리가 하늘거리며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허리에서 골반을 타고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이 얇은 허리 때문인지 너무나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가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수제 초코쿠키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어머. 이건 주문 안 했는데요?”
“아. 오픈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요. 손님들에게 그냥 드리는 겁니다.”
“아....그러시구나....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상냥했다. 그리고 예의 바랐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의 기억이 나에게는 너무나 강렬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가게에 찾아왔다. 그녀는 항상 처음 왔을 때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노의 쓴맛과 밸런스를 이룰 수 있는 달달한 것들을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갑작스런 봄비가 요란하게 오던 날이었다.
그녀가 가게에 급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으며, 탄력 있던 머리가 빗방울에 젖어 조금 숨이 죽어 있었다. 아마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일정에도 없이 가게에 온 것 같았다.
“아...젖으셨네요. 이걸로 좀 닦으세요.”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하얀 새 타월을 전해주었다.
“아...네....감사합니다.”
주문도 하지 않은 그녀에게 이전과 같은 메뉴를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새로 팔기 시작한 블루베리 무스케익 한 조각도 아메리카노와 함께 전해주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아메리카노와 블루베리 무스케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나에게 시선이 향했다.
“항상 이런 식이예요?”
“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가웠다. 항상 나를 보며 예의 있게 말하던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무척 당황했다.
“항상 이런 식으로.......여자 손님들한테.....그러시는 거냐구요.”
그녀의 말뜻은 항상 이런 식으로 여자 손님들한테 치근 되냐는 그런 뜻인 것 같았다.
“아니요. 그게....아니고요..........아....불괘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면에서 그 큰 눈으로 조금 화가 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 안쪽으로 돌아왔다.
단골손님을 잃었다는 것보다 어쩌면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상실감이 더욱 나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과잉친절이 불러온 이런 참사에 대해 깊게 반성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전과 같이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거리를 보며 내가 전해준 아메리카노와 블루베리 무스케익을 먹고 있었다.
그녀가 계산을 하러 올 때,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할 멘트까지 속으로 연습하며 그녀가 나에게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의 사람들이 우산을 모두 접고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무렵,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나의 가슴이 요동쳤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도 않고 쌩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가게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그녀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러 갔다.
테이블 위에는 깔끔하게 비워진 아메리카노와 무스케익을 담은 접시가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예쁜 영어 글씨로 쓰여진 메모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그 메모를 읽고서 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 커피값과 지금까지 내어주셨던 너무나 달콤한 쿠키 값은 다음에 제가 다른 음식으로 대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메모지 아래에는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오빠! 왜 웃어요? 무슨 생각하세요?”
우리가 탄 우버 택시가 파타야 비치로드에 진입해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응? 아니.......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서.......”
“네? 호호홋.....왜 갑자기 그 생각을 해요?”
나는 미소를 띤 채, 뜨거운 눈빛으로 은비를 바라보았다.
[형부! 형부! 안녕하세요?]
은비의 스마트폰 속에서 은설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서 나를 보며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은설아. 잘 지내니? 별일 없지?]
나와 은설이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은비는 스마트폰을 돌려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파타야 비치를 은설에게 보여주었다.
[은설아. 여기 봐 너무 예쁘지?]
[우와! 언니 너무 예쁘다. 저기 바다에 떠있는 게 전부 배야?]
[응. 여기 너무 좋아. 다음에 우리 같이 꼭 오자]
[언니 너무 좋겠다. 나도 가고 싶어.....]
[그래 그래...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너....외박하면 언니한테 죽는다. 매일매일 집에 들어가서 영상 통화해 알았지?]
[치이~. 싫어. 잘 지내다 와]
은비는 은설이와의 영상 통화가 끝나자 눈부시게 반짝이는 파타야 해변을 스마트폰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피곤하지 않아?”
“아니요. 차에서 푹 자서 이제는 괜찮아요. 오빠는 괜찮아요? 피곤하죠?”
“아니. 너하고 있으면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정말?”
“그럼”
“그러면....우리......또.......”
은비가 다가와 나의 무릎에 살포시 앉았다. 그녀의 엉덩이가 부드러운 쿠션처럼 내 몸 위에 포개어졌다.
“여기 너무 아름답다....”
은비가 한 손으로 나의 목을 두른 채 바다를 보며 말했다.
“아직 9일이나 남아 있어. 우리 평생 기억에 남도록 천천히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자.”
내 손이 은비의 스커트 속에 깊게 들어가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 속살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은비의 팬티에 간신히 닿자 그녀의 허벅지가 서서히 벌어졌다.
“어제 많이 아팠지? 미안해.”
“아니요. 가끔......오빠가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나는 좋을 거 같아.”
“뭐라고? 하하하....”
나의 손가락 하나가 은비를 팬티를 비집고 그녀의 속살에 살며시 들어갔다. 움찔거리는 은비의 몸이 그녀의 엉덩이를 타고 나의 무릎에 전해졌다.
“오빠. 사랑해요.”
은비의 입술이 나의 볼에 살짝 닿았다 아쉽게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두 팔로 나의 얼굴을 감싸 않고는 자신의 가슴 쪽으로 꼭 끌어안았다.
상큼한 과일향이 났던 은비의 젖가슴 향기가 이제는 지워지지 않을 여자의 진향 향기로 변해 있는 것 같았다.
오후 5시.
우리는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에는 수십 척의 하얀 요트와 제트스키가 떠있었다. 파타야 비치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해변 바로 앞에 있는 비치베드에 자리를 잡고 태국 음식을 잘 알고 있는 은비가 갖가지 음식들을 주문했다.
알싸한 태국 음식과 얼음이 담긴 시원한 맥주 그리고 노을져가는 바다의 풍경은 우리의 완벽한 약혼 여행을 보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은비가 바다에 발을 담그기 위해 해변으로 걸어갈 때 주위의 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해 있었다.
뽀얀 피부를 하고서 바닷바람으로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은비의 몸을 감싸는 순간 그녀의 몸매가 완벽하게 드러나 보였다.
지금 은비를 보는 많은 사내들이 생각할 것이다.
저 아름다운 여자를 발가벗겨 놓고 마음대로 품어보고 싶다고....
자신에게 안겨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를 내뱉는 저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오빠! 이것 봐요 너무 예뻐요.”
은비가 소파베드에 다가와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들고서 자랑하듯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은색으로 반짝이는 소라 껍데기였다.
은비가 그것을 소중한 보물처럼 두 손으로 감싸고 비치베드에 앉으려는 순간....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한 아이가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은비의 작은 토트백을 낚아채서 해변으로 내달렸다.
“어머...오빠!”
은비의 다급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아이를 쫓아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변을 달리는 그 아이와 나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앗!”
나는 해변에 있던 맥주병을 밟고서 미끄러졌다. 나의 두 팔이 해변의 모래사장 위를 짚고 있었고 바로 앞에 있던 그 아이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왼쪽에서 한 남자가 나를 지나쳐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