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의 사연을 들어 주시는 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잠지님의 솔직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
1978 년 그 당시 우리가족은 말 그대로 찌저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같이 나가셔서 밤 10 시가 넘어야 들어왔죠, 가족은 여동생 둘 포함해
다섯 식구 였는데 방이라곤 달랑 한 칸 뿐이라 점점 턱수염이 나면서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잠지님 에게 글을 올리기 전 미리 말씀 드리고 싶은건 저는 가정환경 때문에 근친을 하게
되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나 어머니를 어머니로 써 대하였고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 성
하나 만큼은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보였습니다….
이점을 먼저 생각하시면서 저의 사연을 읽어주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그리고 읽기가 거북 가셨다면 답장을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솔직하게 저의 사연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달동네 에는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아서 구청에서 지어준 공동 화장실
을 이용했습니다.
지금도 서울에 조금 남아있는 달동네를 어쩌다 가보면 그런 화장실을 가끔 봅니다
그러나 전부 시멘트로 지어져 있지 당시처럼 목조 화장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때 그 목조 화장실은 칸 이 세칸 이였는데 동네에 질 나쁜 형들이 가운데 칸에 앞 뒤로
미세한 구녕을 뚫어 놓았습니다.
내가 중학교 올라가며 형들에게 그 정보를 입수했고 전 호기심 도 호기심 이지만 여자꺼
한번 제대로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방과후 언제나 가운데 화장실에서 죽치고 있었습니다…형들과 교대로…….
그렇게 매일 보다 보니 옆집 아줌마고 담배가게 할머니고 전부 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던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엄마꺼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생각을 갖자 마자 평소와는 느낌이 다른 엄청난 흥분이 되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벌렁 거리는지…그때의 그 기분을 잠지님께 어떻게 설명 해야할지 모르겠
네요…. …………..,
암튼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지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조그마한 봉제공장에 다녔는데 한참 수출에 박차를 가하던 그 시절 어머니의
공장도 그런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미싱을 굴려야 했고….나와 두 동생들은 눈을 뜨면
아무도 없었죠, 단지 밥상만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그 시절…, 그리고 나의 근친에 대한 생각들도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간간히 생각나는 그때 뿐 , 평범한 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중학교 3 학년에 올라가던 그 해 겨울 지금의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
니다… 아버진 지방에 내려 가셔서 몆일 있다가 와야 했고 두살 터울 동생들은 중 1 하나
는 초등 5 년 이었는데 저는 동생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방 이라고는 기껏 2 평 남짓한데 여기저기 도배지가 덜렁덜렁 거리는 그런 방이였죠….,
천장엔 못을박아 빨래를 널어 놓았는데 자다보면 어쩌다 들짠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웃기죠….저 그렇게 살았어요………….. 암튼 그날은…….
저녁을 먹고 10 시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머닌 연탄불을 다시 한번 확인 하시고는
자리에 누우셨고 이내 잠이 드셨는지 숨소리만 조용히 들렸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여동생과 잠시 장난을 치다 저도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잠들었나 새벽녁 어머니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께었죠…낡은 야광 시계를
한참을 들여다보니 시간은 새벽 5 시 어머닌 내 몸을 타고 넘어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연탄불 갈러 간거죠…., 평소에는 아버지가 문 입구 쪽에 잠을 자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없다 보니 제가 자게 되었어요 ,얼마 후 어머니가 들어 오셨고 잠이 께어있는 나를 보더니
춥지 않냐며 손을 요 아래에 넣어보더니 온돌이 골고루 안된다며 감기 걸리기 전에 엄마랑
바꾸어 자자고 했어요…..전 어머니께 괜찮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끝끝내 고집을 접지 않으셨
어요…..,참고로 제가 3 대 독자 입니다…..
결국엔 어머니의 요에서 같이 누웠어요…..어머닌 6 시가 되면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요라고 해봐야 사촌 형님이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그 시절 몰래 빼내어온 국방색 군용 담요
였지요….. 10 분쯤 어머니와 두런 두런 이야기 하는데 옆에서 자던 여동생이 자리가 비좁
았던지 자면서 짜증을 내는 겁니다….
“아…이..씨 오빠 ….다리 좀 치워…”
어머닌 동생의 그 말에 나를 바짝 안았는데 그때 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입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잠시 이야기에 빠져있던 저는 얼마 후 나도 모르게 퉁퉁한 어머니의 젖
무덤을 3/1쯤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40 이었는데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조금은 더 늙어 보였죠….
몸은 약간 마른 편 이었습니다….
젖 무덤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발기를 하였고 완전히 발기한 후에야
몸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몸을 어머니께 들킬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슬며시 몸을 띠려고 하는데 어머닌 흘러내
린 이불을 덮어주고 나를 당기다 나의 성기를 느꼈나 봅니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요놈” 하는데 얼마나 창피하고 무안했던지 모를 겁니다.
근데도 어머닌 그런 나를 바짝 끌어 안아주며 태식이 장가 보내야 겠다며 나의 등과 허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성기는 서버려 붙힐 수 도 땔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는데 어머닌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잠시 그렇게 이야기만 하시던 어머닌 어디 우리 민수 장가가도 되나 엄마가 확인 좀 해야
겠다며 손을 내려 저의 물건을 잡아 버렸습니다…
전 중 3 이였고 당시의 물건이나 지금의 물건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15 센티 정도 입니다.
어머닌 좀 놀라시는거 같았어요 …그러나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던게 아닌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 합니다.
나의 가슴은 벌떡였고 어머닌 처음에 웃으시며 내복위에서 물건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어요..
말씀도 많이 하시면서…….
그렇게 5 분쯤 흘렀나 점점 말 수는 죽어갔고 간간히 정적의 어색함, 그리고 별거 아닌듯한
느낌을 주려 했는지 장난하듯 “우리 민수 엄마가 돈 많이 벌어 빨리 장가 보내야겠네”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물건의 두께를 느끼려 했는지 한참을 만졌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전 그때 중 3 입니다…. 야한 사진만 보아도 바로 반응이 오는 나이인데
제가 어떠 했겠어요….말 그대로 쇠 몽둥이 처럼 단단 했었어요….
어머닌 그렇게 얼마동한 아들인데 뭐 어때…하듯 당연하고 별거 아닌것 처럼 저의 물건을
주물렀고 전 미칠거 같았습니다….
P/S: 죄송합니다….아내가 빨리 가자며 재촉입니다…오를 친정에 가기로 했거든요…..
내일 퇴근하는 대로 나머지 사연 보내겠습니다….건강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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