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156화 행복한 시간 그리고.....
* * *
“웨딩드레스라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요.”
내 손에 깍지를 낀 세리아가 말했다.
우리는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를 알아보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도심지로 나왔다.
물론, 우리 둘만 함께한 건 아니었다.
“손깍지라니요. 세리아 씨만 그러는 건 반칙이죠!”
에미르도.
“소녀 또한 모리스님과 손깍지를 하고 싶사옵니다.”
백설도.
“황실의 마차를 이용했다면 모두 모리스의 옆에 앉을 수 있었다.”
“에, 엘프의 손은 인간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데 만져볼래?”
류클리드와 레밀리아도.
다른 여자들이 질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가 담긴 말투였다.
“왜들 그러세요. 정당하게 따낸 거잖아요?”
세리아가 당첨 제비를 흔들며 말했다.
아마 내 옆자리를 두고 내기를 한 모양인데, 그 승자가 세리아인 모양이었다.
세리아는 내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못 하지?
하는 그런 미소였다.
“그리 좋은가?”
나는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요. 주인님의 옆자리인 걸요.”
나는 한 차례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다른 영애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직 손이 하나 남아있네만?”
내 손을 본 다른 영애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가 이 손을 차지할지 경쟁하듯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싸!”
승자는 에미르.
그녀가 두 번째 당첨 제비를 뽑았다.
에미르는 두 손을 꽉 쥐며 환호를 질렀고, 곧장 세리아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헤헤, 제가 됐네요. 모리스님.”
내 옆자리에 앉은 에미르가 헤실거리며 웃고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치이이…….”
그 모습을 보던 세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나를 독점하지 못해서 불만인 모습이었다.
“욕심을 너무 내면 곤란하다. 세리아.”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제야 세리아의 얼굴이 펴졌다.
“짐은 이 결과에 용납 못해!”
류클리드가 외쳤지만, 이미 결정 난 결과를 바꾸진 못했다.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 행복이 깨지는 그 순간이 두려워졌다.
***
“어때요?”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세리아가 내 앞에 섰다.
“이게 이번 겨울과 봄에 유행하는 스타일입니다. 투명한 베일 사이에 박혀있는 보석들이 마치 눈처럼 떨어지는 것을 연출했고요…….”
옆에서 디자이너가 옷에 대한 컨셉을 설명하는 것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머리 위에 걸린 베일이 세리아의 백금발과 섞여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녀의 머리에 단 서클릿이 베일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했다.
옷은 또 어떤가?
가슴이 살짝 드러난 상태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듯한 디자인의 하얀색 웨딩드레스는, 수많은 보석들과 자수들로 새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우아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그리고 허리에서부터 퍼지는 치마 때문일까.
고풍스러운 멋까지 느껴졌다.
“아름답군.”
아름다웠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시선이 자꾸 그녀에게 쏠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것 말고는 더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아름다워.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로군.”
“그렇게 칭찬하셔도 뭐 안 나와요.”
너무 뚫어지게 쳐다본 걸까.
세리아가 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진심이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역시 볼 줄 아시는군요! 장관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다시 재잘거리는 디자이너.
그가 떠들기 무섭게, 에미르가 커튼을 걷고 나왔다.
가슴을 강조했던 세리아와는 다르게 그녀는 자신의 탄탄한 라인을 드러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깨선을 드러내고 드러난 어깨선부터 시작해 딱 달라붙은 웨딩드레스가 에미르의 탄탄한 몸매를 강조했다.
종아리 부분까지는 그녀의 몸매를 강조하다가 다리 부분에서는 마치 인어공주의 꼬리처럼 활짝 펴지는 것이.
마치 땅에 올라온 인어공주 같아 보였다.
“감상은……어떠신가요?”
에미르가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감상이 필요한가? 너무 예쁘구나. 진심으로.”
세리아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나는 에미르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이런 부인들과 함께라니, 지금 가장 행복한 남자를 찾으라면 바로 나일 거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백설 역시 세리아처럼 가슴을 강조하는 A라인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세리아의 것보단 훨씬 디자인이 수수했으나, 그 수수한 디자인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크루이 족의 예복이 아니로군.”
“제국과 함께하려면 소녀의 방식 또한 제국식으로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은 아쉬운 걸?”
“무엇이 말이옵니까?”
“크루이 방식의 드레스를 입은 백설의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 그렇습니까?”
나는 백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기회가 된다면 너희의 예복을 보고 싶구나.”
이 제국에서는 그녀도 나와 같은 이방인이었다.
그녀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색할 겁니다. 온통 제국식으로 입은 귀족들이 올 텐데…….”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나와 너의 결혼식이다. 하객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마라.”
그러자 백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레밀리아였다.
그녀는 하얀색 드레스가 아닌 연녹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색이, 다르군?”
“물론이지. 우리 엘프들의 예복이야.”
그녀의 드레스는 보석이 아닌,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이 생생한 나뭇잎이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 나뭇잎을 살리고 있는 건 엘프 고유 마법이군.”
“어떻게 알았어?”
“제국 최고의 마법사를 무시하지 마라.”
나는 나뭇잎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파리가 촉촉하니 살아있었다.
“엘프들도 하객으로 오는 건가?”
“물론이지. 다들 널 보고 싶어해. 여러 가지 의미로.”
“장로들이 오면 대판 싸움이 나겠군.”
“설마, 누구 덕분에 엘프들이 제국 안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됐는데.”
엘프인 레밀리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힘을 좀 썼다.
엘프들도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내자고.
처음엔 류클리드도 반대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엘프들에 대한 법이 추가로 수정됐다.
앞으로 그들을 제국에서 봐도 사로잡지 않는다는 법.
“네가 이 옷을 입고 결혼식에 오를 모습이 기대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류클리드가 나왔다.
다른 영애들보다 키가 작은 그녀는 벨라인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치마 부분이 마치 종와 같은 모양새로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보석들이 그녀의 드레스를 장식했다.
역시 황제인가.
그녀의 옷을 장식한 보석들은 하나 같이 입을 쩍 벌어지게 하는 값어치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건, 류클리드가 머리에 쓴 티아라에 박힌 보석이었다.
저게 핑크 다이아몬드라고 했던가.
“화려한 게 황제 그 자체로군?”
“헤헤, 그렇게 티가 나?”
“황제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도 하기 싫긴 한데…….”
류클리드가 내 품에 안겼다.
“나를 위로해 줄 국서가 있으니 괜찮아.”
류클리드가 내 몸에 볼을 비볐다.
“그렇게 좋은가?”
“물론이지. 나는 너만 있으면 돼. 그러면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령과 맺었던 계약이 떠올랐다.
빙의자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그녀들이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비극을 맞이할 거라는 말까지.
‘이틀……남았군.’
나는 다섯 영애들을 보았다.
모두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지금의 행복을 충격 발언으로 깨고 싶지 않았다.
“주인님, 어때요?”
세리아가 가장 먼저 달려와 내게 물었다.
“모리스님, 역시 제가 가장 아름답죠?”
“무슨 소리이십니까! 소녀가 가장 아름답사옵니다!”
“엘프의 고귀함을 넘보려고 하다니!”
“고귀함을 따진다면 황제가 제일이지!”
다른 영애들도 앞 다투어 내게 달려들었다.
“다들 아름다운데…….”
“그래도 모리스님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을 거 아니예요.”
에미르까지 적극적으로 어필하다니.
“에미르, 그대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여자랍니다. 낭군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건 당연한 욕심이라구요?”
“크흠.”
가장 아름다운 영애라…….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내게 과분한 사람들이었다.
순위를 매겨달라라.
모두가 좋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거다.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닐 테니.
그렇다고 너무 고민을 한다면 그 또한 곤란했다.
진한 진심으로 알 테니.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미르의 손을 쥐었다.
“오늘 가장 아름다운 건 아무래도 에미르 당신이지.”
다른 영애들이 아쉬워 하는 눈빛이 매서웠다.
특히 혀를 차면서 에미르를 노려보는 세리아의 눈빛에는 불꽃까지 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쉽게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웨딩드레스를 고르는데만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옷을 하나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드레스를 입었던지.
하나하나 감상평을 만들어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냥 아름답다. 예쁘다. 보기 좋다 라는 말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어디가 아름다운지, 어디가 예쁜지, 왜 예쁜지를 원했다.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면서 말을 내뱉고 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옷을 벗은 세리아의 머릿결을 쓸었다.
오늘은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는 날.
거사를 치르고 잠들기 직전, 나는 눈을 감고 여운을 느끼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오늘 고생 많았다. 옷을 입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니에요. 주인님께서도 쉽지 않았잖아요. 다섯 영애들의 옷을 일일이 다 말해줬어야 하니까요.”
세리아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아마 그녀 혼자서 나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나는 좋았다. 신부의 가장 아름다울 때를 오래 볼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을 듣던 세리아가 잠시 주저했다.
머뭇머뭇, 입술을 달싹거리던 세리아가 내 품에 안겨 나를 올려다 보았다.
순간 풍기는 살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명 방금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물건이 빳빳해졌다.
그때였다.
“주인님.”
“음?”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
“오늘 내내 기운이 없어 보여서요. 고민이 있으시다면 말해주세요. 우리는 이제 부부……잖아요.”
빙의자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준비 때이기에, 최대한 숨겼었다.
티가 났나?
나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보였나?”
“예, 오랫동안 함께 했잖아요. 주인님 옆에 거의 붙어 다니듯이 있었는데, 작은 습관도 체크할 수 있다고요.”
“그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나를 잘 알고 있다니, 고마우면서도 그 관심이 무거웠다.
내가 고백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더 두려워서.
“말해주세요. 무엇이 주인님을 고민에 빠트리는지……. 저라면 도와드릴 수도 있다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령이 제시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허나 어차피 말해야 한다면 세리아에게 가장 먼저 말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