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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55화 (155/174)

〈 155화 〉 154화 초월자의 세 번째 만남

* *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황제의 결혼식 준비로 제국이 시끄러운 이 시간에 나는 다른 일로 바빴다.

초월자와 대결.

약속한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번 방문으로도 나를 현혹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황제인 류클리드를 현혹시키지 않겠다는 내기가 걸린.

마지막 싸움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대비해서 여러 방면으로 준비를 하긴 했는데.

“통했으면 좋겠군.”

그리고 나는 황궁으로 들어갔다.

­제시간에 왔군.

초월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기다리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말이야.”

­좋은 얘기야.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초월자가 빙글 돌았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얘기라……. 오늘은 얘기로 끝나지 않을 거다.

빈정거리던 녀석이 내게 날아왔다.

순간, 나는 초월자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공기를 옥죄는 강렬한 살기.

녀석의 살기는 명확하게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 쏟아졌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려는 건가?”

죽이는 건 아닐 테다.

녀석 또한 초월자.

세바스찬의 말처럼 이 황궁을 벗어날 수 있는 육체를 얻고 싶을 테니까.

­두렵지 않나? 내가 무엇을 하든 네놈은 저항할 수 없을 텐데?

“그게 무서웠을 거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다.”

­재밌군.

“그래서 이번엔 뭐지?”

­간단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월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쑤우욱.

허공을 가르던 녀석의 영혼이 내 몸을 통과했다.

몸을 통과했으나 뒤로 빠져나가는 것은 없었다.

­네 정신을 직접 지배할 거다. 고작 인간인 네가 이걸 견딜 수 있을까?

“하아.”

머리 깊숙한 곳에서 초월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떨쳐내고 싶어도 자꾸만 나를 따라왔다.

“생각한 것이 이거냐?”

가장 성가신 방법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초월자가 내 몸 안에 들어온 거다.

떨쳐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직 네가 내 몸을 뺏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내가 몸을 주는 건 분명 승부가 결정 난 다음일 텐데.”

­그랬지.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기면 결국 네놈은 내 것이 되는 거 아닌가?

“재밌는 말이군. 네가 졌을 땐 내 밑으로 와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나?”

­끌끌, 네놈 걱정이나 하시지.

그리고.

“크으윽!”

지독한 두통이 느껴졌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하늘이 빙글 돌았다.

지독한 현기증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크크크, 벌써 시작되는 모양이군.

“이, 이건 뭐지?”

­세바스찬이 말해주지 않던가? 내가 다른 존재들의 이성을 먹어치울 수 있었던 이유. 아 나이가 들어서 다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혼자서 떠들어댄다.

나는 녀석의 말을 반쯤 무시한 채로 정신을 집중했다.

무너지면 안 된다.

의식을 잃는 순간, 놈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결국 이 몸은 녀석의 것이 되겠지.

‘방심했어.’

마지막까지 신사적으로 대화로 풀어갈 거라고 생각한 안일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괜찮다.

녀석이 내 몸에 들어온 것.

오히려 이렇게 해주는 것이 더 편했다.

어차피 놈을 내 아래로 두기 위해선 한 번 쯤은 이길 필요가 있었으니까.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다.”

­젊은 나이에 노망이 난 건가? 후회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겠지. 그딴 건 걱정하지 마라.

초월자가 웃었다.

그의 웃음 소리가 내 머리를 직접 때렸다. 어지러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크으윽!”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버틴다.

고작 10분.

아무리 초월자가 대단하다고 한들, 10분 만에 내 의지를 전부 집어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초월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를 삼킬 건가?”

­그래, 이성부터 영혼까지 전부 다.

“재밌군.”

웃음이 났다.

“그럼 한 번 해보시지?”

­뭐?

“해 보라고. 네가 잘 한다는 그거 말이다.”

­우습게보고 있군.

“글쎄.”

그와 동시에.

치지직!

머리가 타들어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크으으윽!”

­걱정하지 마. 아픈 건 오래가지 않을 거다.

마치 내 안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낮게 울렸다.

감각이 하나씩 둔감해졌다.

손에 쥔 의자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에 가득 찼던 황궁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으며.

균열 특유의 후각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육체의 통제권이 하나하나 녀석에게 뺏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큰소리쳤던 것과 다르게 너무나도 쉽군.

초월자가 비아냥거렸다.

그 목소리가 마치 내가 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사소한 말버릇까지도 나와 닮아 있었다.

“크아아악!”

점점 동기화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의 감각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불쾌하게만 느껴졌던 균열의 감각이 익숙해졌다.

황궁을 울리는 내 비명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악문 입에서 피가 흘렀다.

피비린내가 입에서 퍼졌고, 귀에서 초월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편해져. 다 놓아도 괜찮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모리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잠깐동안 정지.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던 모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후우우.”

깊고 낮은 한숨을 뱉었다.

“이게 끝인가? 처음부터 이럴걸 그랬어.”

초월자, 아니 모리스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볍군.”

그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가벼웠다.

이렇게 동기화가 잘 된 몸은 처음이었다.

제국 내에서 가장 강한 황제라고 불렸던 율리우스 3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하하, 이거라면 정말 가능하겠어.”

과거 초월자였던 자신이 찢었던 마나의 균열을 다시 찢고 세상에 나가는 것 말이다.

“9서클이라, 이 녀석도 인간의 경지를 초월했군.”

모리스는 자신의 몸을 대견하다는 듯 쓸어내렸다.

“장관님! 괜찮으십니까!”

병사들과 하녀들이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방금 변하기 전의 그가 냈던 비명 때문이리라.

“아, 괜찮아. 그러니 들어가서 쉬도록.”

모리스는 손을 휘저으며 그들을 내쫓았다.

“아, 넵…….”

병사들과 하녀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모두의 기척이 멀어지고.

“후후후.”

모리스는 낮게 웃었다.

“너무 쉽군. 내 술수가 통하지 않는 놈이라 고생 꽤나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쉬워.”

몸을 차지하는 것.

그것은 초월자인 그도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행위였다.

정말 확실한 상황, 또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시도하지 않는 기술.

모리스가 자신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거 같다는 확신 때문에 저지르고 말았다.

꽤 애를 먹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예상 외로 모리스의 몸을 차지하는 건 손쉬웠다.

“아무리 대마도사라도 결국은 인간이지. 네놈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는 낮게 웃었다.

가벼운 소란이 있었다.

하지만 모리스는 이겨냈다.

그 건방진 인간 마도사는 감히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황궁을 둘러 보았다.

자신이 찢었던 마나의 균열에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골치 아픈 녀석이지만, 육체가 생겼고 거기다가 9서클의 마도사의 몸까지 가졌으니.

‘해볼만 하지.’

자신이 찢었던 마나의 균열을 다시 찢어내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한다면.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육체가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했다. 수많은 여자들을 품고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도 못했다.

물론 황가의 녀석들의 몸을 일부 차지하고 놀아대긴 했으나, 그건 다르다.

감옥 속에서 느낀 쾌락이 어찌 자유를 맞이하고 느낀 것과 같을 쏘냐.

이젠 다르다.

육체가 있고, 자유가 눈앞이다.

“이놈의 여자들을 취하는 것도 재밌겠어.”

모리스는 음산하게 웃었다.

제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미인들이 모리스의 수중에 있다. 이제 모리스의 몸을 차지했으니, 그녀들 또한 자신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벌써부터 흥분되는군.”

모리스는 입맛을 다셨다.

벌써부터 자신에게 안기고 덤빌 여자들을 생각하니, 아랫도리가 불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여자 수십 명을 불러다가 난교파티를 벌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황궁을 거닐었다.

목적지는 그가 찢었던 균열의 시작점.

“아름답군.”

모리스는 지나가는 궁중 하녀의 턱을 쓸었다.

하녀 중에서도 유독 미인이었다.

꽤 괜찮은데?

“그래? 처녀이더냐?”

“예?”

“처녀냐고 물었다.”

“그, 그러하옵니다…….”

“호오.”

처녀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지금 이년의 팔을 잡아채고 저 구석에서 범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됐다. 가 봐라.”

모리스는 자신이 과거에 보았던 세리아를 포함한 그의 여자를 떠올렸다.

지금 이 하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들.

진짜배기들을 두고 이런 피라미와 상대해야 한다니.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조금만 참자고.’

만약 균열을 부수지 못해서 다시 이 황궁 안에 갇힌다면 모를까.

아직은 참을 수 있다.

하녀를 보낸 모리스는 거침없이 대전에 놓인 황좌에 다가갔다.

그그긍!

황좌를 옆으로 밀자, 그 아래에는.

고고고고고.

과거의 모리스가 찢었던 균열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초월자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끝내겠다며 그었던 균열.

오히려 그것이 저주가 되어 자신의 족쇄가 될 거라고 누가 알았던가.

코웃음을 친 모리스는 손을 뻗었다.

9서클이라…….

충분히 가능할 거다.

수백 년을 산 자신의 노하우가 있으니.

균열을 만드는 것보다 그 균열을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 몇 배는 더 쉬웠다.

그리고 모리스는 균열에 손을 넣었다.

쿠과가가강!

균열이 그의 마나를 빨아들였다.

9서클 대마도사의 방대한 마나를 흡수한 균열이 조금씩 메꿔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빨리는 고통에도 모리스는 웃고만 있었다.

“크크크, 그래. 이거야. 이걸 원했다고.”

그는 균열로 쏟아지는 마나를 컨트롤 하며 균열 사이사이를 조금씩 메꾸기 시작했다.

원래 모리스라면 하지 못했을 마나 컨트롤.

이것이 수백 년간 싸인 노하우였다.

균열이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마나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쿠르릉!

폭풍과 함께 건물 안에 번개가 몰아쳤다.

“귀찮아.”

따악!

모리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폭풍이 진정되었다.

9서클의 마법사란 그런 것이다.

자연 재해라고 불리는 마나폭풍마저 한손으로 잠재울 수 있는.

그리고 그는 다시 균열에 온 힘을 다했다.

“끄으으으윽!”

***

“크아아아아!”

해냈다.

드디어 해냈다.

균열이 없어지고, 깨끗한 마나의 공기가 느껴졌다.

모리스, 그가 해낸 거다.

수백 년간 저 빌어먹을 균열 안에서 갇혀 있던 삶이 드디어 끝이 나는 거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어!”

모리스가 두 팔을 쭉 펼쳤다.

“나는 자유다아!!”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최초의 초월자가 되는 거다.

“크하하하하하하!”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모리스, 네놈의 몸은 내가 유용하게 잘 쓰마!

한참동안 웃은 그가 세상을 점령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찰나.

­정말로 해냈군.

모리스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짚었다. 초월자.

“뭐?”

­밖이 아니라. 여기다.

모리스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경악했다.

“어, 어떻게 존재하는 거지? 너는 분명히 내가 삼켰을 텐데……?”

­내 몸에 빙의하는 것 정도야, 예상 범주 안이다.

몸 속에서 모리스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다 방법이 있지.

“이 빌어먹을 자식!”

­이제 돌려받을 때가 됐다. 그리고 내기는 내 승리다.

“뭐?”

­나는 아직 제정신이지 않은가?

모리스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초월자는 당황했다.

­내가 3번 방문한 뒤에도 제정신이면 네 패배가 아니었던가?

“넌 분명이 내게 삼켜졌어야 했어. 아니, 분명히 삼켰다! 그런데 어찌?”

­아, 그건 말이지.

잠시 뜸을 들인 모리스가 말을 이었다.

­몸에 남아 있던 기존 모리스의 영혼이었다.

“……뭐?”

­설명은 여기까지.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모리스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그의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어떻게 자유의 몸이 됐는데 이리 허망하게!”

초월자가 기를 쓰고 저항했으나, 소용 없었다.

­고맙다. 대신 균열을 제거해줘서. 네가 아니었다면 황궁은 계속 균열 속에 존재했겠지.

“네노오옴! 나를 이용한 게냐!”

­피차일반 아닌가? 네가 날 이용한 것처럼 나도 너를 사용했을 뿐이다.

초월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의 주도권을 뺏겼다.

빛이 사그라들고, 고통스러워하던 모리스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후우.”

나는 눈을 떴다.

황궁을 덮었던 마나 균열은 사라졌다. 몸의 감각도 다시금 선명해졌다.

잠시나마 초월자에게 뺏겼던 주도권이 온전하게 돌아온 것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

손바닥 크기만큼 작아진 초월자가 옆에서 악을 쓰며 외쳤다.

­복수할 거야. 반드시 복수하고 말거야!

“마음대로 해라.”

나는 보았다.

작아진 초월체 옆에 둥둥 떠 있는 정령 한 마리를.

[반가워. 오랜만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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