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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44화 (144/174)

〈 144화 〉 143화 진실게임

* * *

“위스키라. 이건 왜 가지고 왔지?”

“한 잔 하자고.”

“일은 다 끝냈나?”

류클리드에게 건넨 일거리가 꽤 많았다.

그동안 황제의 인가가 필요한 서류들은 전부 다 올렸으니까.

“물론이지. 나를 누구로 아는 거야? 이런 일은 내게 껌이야.”

“그래?”

“물론이지. 내가 황제 일을 얼마나 잘 했는데.”

류클리드가 우쭐거렸다.

“그랬나?”

나는 아직 일거리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일을 내가 담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을 핑계로 그녀를 쫓아낼까 고민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설마 아직 못 끝낸 건 아니지? 천하의 모리스 드미트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나를 도발하는 류클리드의 말에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분노? 보다는 가벼웠고 짜증? 보다는 무거웠다.

‘내일은 그보다 2배는 더 많은 일거리를 줘야겠군.’

그녀를 대신해 맡고 있던 일거리까지 주기로 결심한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와라.”

“실례하겠습니다아.”

집무실로 들어온 류클리드가 대뜸 집무실 중앙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한 잔 하자!”

쿵.

위스키와 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은 류클리드가 외쳤다.

“안주도 없이?”

“물론이지. 안주는 술이 약한 사람들이나 먹는 거야.”

“꽤 센가 보군.”

“자신 있어.”

쪼르륵.

류클리드가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주황빛 선명한 액체가 잔에 가득 들어찼다.

손만 한 잔에 가득 찬 위스키.

“내기라도 할래?”

“내기?”

“그래. 누구라도 먼저 뻗는 사람이 지는 거. 당연히 마나로 흡수하기 없기. 맨몸으로 마시는 거야.”

“재미있군.”

“그냥 술을 마시는 건 재미가 없으니, 게임을 하나 더 추가하자.”

“말해 봐라.”

“진실게임 어때?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게임이던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술을 마시는 거야.”

이 세계에도 그런 게임이 있었나.

재밌는 제안이었다.

진실게임, 참 오랜만에 듣는 게임이지 않은가.

“좋아.”

그리고 류클리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굳이 황제직을 거부하려는 그녀의 이유.

그리고 여자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까지 전부.

“그럼 물건은 내가 준비하지.”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마나가 회오리치며 수많은 부품들을 만들었다.

마나를 형상화시키는 마법.

세리아를 위한 마나 딜도를 만들다 보니 익숙해진 마법이었다.

형상화 된 마나들이 손바닥 모양의 작은 판을 만들었다.

“거짓말 탐지기다. 여기에 손을 얹고 대답하면, 그 대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려주지. 진실이라면 파란색, 거짓말일 경우 빨간색으로 빛날 거다.”

“호오, 본격적이네. 역시 마법부 장관인가.”

“전 마법부 장관이지.”

지금은 다른 이가 임시로 자리를 차지했으니.

“첫 질문은 류클리드, 네게 넘기지.”

나는 류클리드가 따라준 위스키 잔을 들며 말했다.

다른 손으로는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렸다.

“자신감이 넘치네. 좋아.”

잠시 뜸을 들인 류클리드가 입을 열었다.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뭐야?”

시작부터 강한 질문이었다.

정적에게 싸움의 이유를 묻는다라.

“세게 나오는군.”

“내기가 걸렸잖아.”

“반란을 일으킨 이유라.”

당연히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을 끊었겠지.

“간단하다.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지.”

“평화롭게?”

“그래. 세리아를 뺏기지 않고, 미친 황제의 폭정 아래 불안해하지 않는 그런 삶 말이다.”

“윽…….”

류클리드가 움찔거렸다.

거짓말 탐지기는 푸른색으로 빛났다.

“진짜네.”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이제 내 차롄가?”

“그래.”

이번에는 류클리드가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렸다.

이쪽에서 먼저 세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너는 왜 남자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알고 있나?”

“…….”

“말하지 못할 거 같으면 마시면 된다.”

입술을 깨문 류클리드가 잠시 나를 보았다.

“모른다는 말은 안 되겠지?”

“정말 몰랐다면 가능했겠지.”

삐­.

류클리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탐지기가 붉게 빛났다.

역시 알고 있었다.

류클리드의 몸을 알고 있는 건 류클리드 자신일 테니까.

“이유를 말해주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다.”

류클리드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감당할 수 있겠어?”

“감당은 가능하다만, 정말 말하려고? 부담스러우면 말하지 않고 마셔도 된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할 거다.

남자일 때도 그랬다.

자존심이 강하고, 남을 믿지 못해서 자신의 본심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다.

세실리아에게도 그녀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 때까지 책으로 120화 분량이나 필요했으니.

말하지 않으리라.

“그래. 알겠어.”

잔을 쥔 류클리드가 입을 열었다.

“모리스 너를 좋아하니까.”

“농담이 지나치…….”

“몰라서 물어본 거 아니잖아.”

거짓말 탐지기가 푸른색으로 빛났다.

류클리드의 눈가만은 붉은빛을 띄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야. 너는 어때?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라?”

“여자로서 어떠냐고.”

“…….”

바로 이렇게 물을 줄이야.

류클리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남자일 때도 잘생긴 그였다. 그만큼 아름다운 여자로 변한 건 사실이었다.

아마 그의 정체를 모른 남자들이 류클리드를 본다면 다들 한눈에 반했으리라.

그러나 알잖은가.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남자였다. 원래 여자가 아니었다의 문제라고 말하기엔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서로를 죽이려고 싸워댔던 상대였다.

좋다 나쁘다 감정을 갖기엔 감정의 교류가 적지 않은가.

거기다가 싫다고 말했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내전은 사절이었다.

‘괜히 게임을 하자고 했군.’

얌전히 마실 걸 그랬다.

나는 위스키를 마셨다.

높은 도수의 알코올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후우.”

“그렇게 대답하기 싫었어?”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을 때가 있지.”

“그래. 이제 네 차례야.”

무슨 질문을 해야 하나.

“반란을 일으켜서 황제의 자리에서 순간 끌어내린 내가 원망스럽지 않은가? 너를 가둬서 고문까지 가했다.”

질문이 끝나자.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아니야.”

푸른색으로 빛났다.

“나를 연애대상으로 생각해?”

“아까랑 같은 질문…….”

“같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

‘젠장.’

나는 다시 마셨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야?”

“이미 마셨다. 궁금하면 다음에 쓰도록.”

“아쉽네.”

질문.

무슨 질문이 좋을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술에 약했던가?’

조금 취할법하면 항상 마법으로 알코올을 뿜어내곤 했다.

그래서 술에 자신이 있었는데.

고작 위스키 2잔에.

아니, 고작은 아니지.

그 도수 높은 위스키를 주먹보다 큰 유리잔에 부력이 일어날 정도로 가득 따랐으니까.

“벌써 아웃이야? 참고로 마법으로 술기운을 빼내면 반칙패야.”

“그럴, 일……. 없다.”

후우.

뜨거운 입김이 올라왔다.

“다음, 질문을 하지.”

류클리드가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질문.

나는 대충 짐작하고 있지만, 그녀가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

알코올로 둔해진 머리로 힘겹게 생각한 나는.

“이 늦은 시간에 이 방엔 왜 왔지?”

자존심 강한 그녀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늦게.

“알잖아. 내가 온 이유.”

후회했다.

그녀가 내가 알고 있는 류클리드가 아니라는 걸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방금 질문은 취…….”

“이 늦은시간에 너를 보고 싶어서. 너를 덮치고 싶어서. 혹시 너라면 나를 취한 나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욕구 때문에.”

류클리드가 다가왔다.

방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류클리드, 이건 아니다. 방법이 잘못됐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우리 내기는. 그럼 패배를 선언할래?”

그녀가 만든 깊은 함정에 빠졌다.

아니.

그녀가 만들고 내가 완성시킨 함정에.

“질문해라.”

빠져들었다.

“내 질문은 똑같아. 나를 어떻게 생각해? 이성적인 의미로 말이야.”

“나는…….”

천장이 아래로 바닥이 위로, 정신이 어지러웠다.

“말해 봐. 나를 어떻게 생각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 않은가.

싫다고 드러났을 때 파급력과.

좋다고 드러났을 때 파급력이.

그럴 바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결론.

나는 다시 잔을 집었다.

“정말 끝까지 말하지 않을 셈이구나.”

멀리서 류클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위스키를 마셨다.

“후우우.”

“의지가 대단하네. 아직도 버티고 있고.”

“아직 물어볼 게, 남아서.”

“물어 봐.”

“왜 황제가 되기 싫은 거지?”

어지러운 정신을 부여잡으며 질문했다.

류클리드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저번에 네가 말했잖아. 내가 황제라서 안지 못한다고. 그럼 황제가 아니면 나를 안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잠시 말을 멎은 류클리드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네가 황제에서 내려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서 국서로 맞이하기로 했지. 내 남편이라면 언제든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설사 내가 황제라고 해도.”

류클리드가 내게 몸을 기댔다.

스르륵.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류클리드가 옷을 벗는 것이 보였다.

“지금 뭐 하는?”

“황제가 국서를 안으려는데 이유가 필요해?”

“아직 결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이길 거야. 그렇지 않아?”

봉긋하게 솟은 류클리드의 작은 가슴은, 선홍빛이었다.

작은 가슴과 슬랜더한 마른 몸매.

남자였을 때와 달리, 작아진 그녀는 태곳적 그대로인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그러니까. 나를 안아줘.”

류클리드가 알몸인 채로 나를 안았다.

그녀를 떨쳐내려는 찰나.

“거기까지 하세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세리아?”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세리아가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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