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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39화 (139/174)

〈 139화 〉 138화 용서해줄 방법

* * *

“왜 그러셨어요?”

세리아의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뚫었다.

내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하든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올 거 같은 표정이었다.

“세리아.”

“아니에요. 말하지 마세요. 저는 어차피 그런 존재였죠. 주인님의 노리개. 저기 늘 보이는 흔한 하녀인 거잖아요.”

“하아, 네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오지 마세요.”

세리아가 한 걸음 물러났다.

“주인님도 다른 귀족남자들과 다를 게 없네요. 아니, 심하면 더 심했죠.”

그녀의 표정이 편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여기서 톡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저를 가지고 노신 건가요?”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잖은가.”

“모르겠어요. 이젠, 잘 모르겠어요.”

“내가 실수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말하던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변명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

정을 통했고 오래 보냈다.

내 의도를 세리아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귀족 영애의 임신.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섣불렀다.

“미안하다는 말로도 용서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말 몇 마디에 용서할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세리아.”

나는 다가가는 걸 멈췄다.

무턱대고 다가가는 것은 그저 그녀를 더 자극하는 일이었다.

상처를 입고 분노로 일그러진 세리아의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누구에게도 꿇어본 적 없던 무릎이었다.

“세리아, 내 말을 들어다오.”

“주인님?”

“그저 말 한 마디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너라면 알 것이다. 귀족 영애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배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변명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핑계를 대는 것이다. 네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세리아가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엔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

처음보다는 훨씬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용서를 빈다고요?”

“그래.”

“제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아시면서…….”

“그래서 비는 거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용서를.”

“에미르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하셨죠.”

“그래.”

“그럼 제 명예는요? 저는 명예가 없는 여자인가요?”

세리아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그녀에게 분노가 있었지만, 그 분노의 방향이 내게 쏘아지지 못했다.

“제가 지금껏 당한 것은……. 명예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가요?”

“아니다.”

“내게 당한 것이다. 너를 안으려는 내가 한 것이고, 그것은 너의 명예가 훼손될 일이 없다.”

“너는 내가 싫었는가?”

“예?”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너의 명예가 다칠 정도로 힘든 일이었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세리아를 올려 보았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눈빛이었다.

힘든 일이라고 했다면 정말로 가슴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나와 눈을 마주치던 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이냐.”

“처음이고 싶었다고요.”

처음.

특별한 단어였다.

인생에서 오로지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것.

“그게 큰 욕심이었나요? 저로는 안 되는 거예요? 당신의 하녀일 뿐이라서? 내가……. 내가 지크프리트가 아니라서?”

“세리아.”

세리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너를 원래대로 지크프리트로 돌려놓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잖나.”

“알아요. 제게 큰 은혜를 주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또각또각.

세리아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나를 내려 보았다.

“지크프리트의 신분을 찾는 것보다 주인님께 사랑받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걸 모르시나요.”

“…….”

“그게 욕심이었나요? 주인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실 수 있지 않나요?”

분노는 사라져 있었다.

분노보다는 슬픔.

슬픔과 비슷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세리아의 얼굴을 쓸었다.

“변명할 말이 없구나.”

“원래는 주인님의 첩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세리아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던 내 손을 잡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졌어요. 정말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냐고. 그렇게 욕심이 생겼는데…….”

세리아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차라리 두 달 전이었다면……. 아니, 이 감정이 생기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요.”

“어찌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겠나. 화를 풀고 내게 웃어줄 수 있겠나.”

나는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댔다.

“이런다고 다 용서될 줄 아시나요?”

“아닌가?”

말없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 돌릴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지?”

“저도……. 저도 주인님의 아이를 가지겠어요. 그럼 되잖아요.”

세리아의 미소가 아름답고 무서웠다.

“제 명예도 지켜주실 거죠?”

여자의 질투는 그 무엇보다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우습게보았다.

후회했다.

조금은 신중했어야 했다고.

이상함을 느낀 내가 뒤로 물러서려는 짧은 순간에.

세리아가 양 팔로 내 뒷목을 감았다.

“세리아…….”

“어딜 가시려고요. 제 명예도 지켜주셔야죠.”

“이런 문제는 조금 길게 얘기를…….”

“진심으로 제가 화내는 걸 보고 싶으신가요?”

부드러운 목소리에 거부할 수 없는 기세가 담겨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솔라리온에게 져서는 안 돼요. 질 생각도 없고요.”

세리아의 입이 내 입술을 덮쳤다.

키스를 하는 그녀의 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매혹향이 나왔다.

흥분과 질투.

그녀 역시 수정하겠다는 깊은 욕망에서 시작되는 에너지였다.

“이런 면은 지크프리트답군.”

“저는 지크프리트니까요.”

입을 때자, 투명한 실이 늘어지며 떨어졌다.

“혹시 집안의 반대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께선 무조건 찬성하실 거니까요.”

다시 한 번 세리아가 웃었다.

세리아가 내 옷을 벗겼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거예요.”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긴 밤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한 번에 수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말을 마친 세리아의 눈이 짐승처럼 빛났다.

육식 동물.

그래, 딱 그 모습이었다.

“하, 하하. 정말 무섭군.”

“진심이신가요? 그런데 표정은 왜 그런가요? 웃고 계시는데요?”

“그런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세리아 너와 화해해서 그런가 보군.”

“거짓말이잖아요.”

세리아가 옷을 벗었다.

부드러운 가슴이 몸에 닿았다.

“거짓말이라고?”

“지금 저랑 할 생각에 좋은 거 아니에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세리아가 화를 풀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그녀와 한다는 두근거림에 얼굴이 풀어졌다.

조금은 쥐어 짜이겠지만.

그 정도는.

‘내 잘못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해야겠지.’

내 옷을 벗긴 세리아가 나를 침대로 밀었다.

풀썩.

방금 전까지 세리아가 앉아 울었던 그 침대에 내가 쓰러졌다.

세리아가 내 위로 올라탔다.

“수정될 때까지 절대 잘 생각 하지 마세요.”

“각오해보도록 하지.”

나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세리아의 부드러운 가슴을 쥐었다.

이미 할 마음이 가득했던 그녀는 그 짧고 가벼운 애무에도.

“하읏!”

신음을 뱉으며 몸을 떨었다.

“그리 좋으냐?”

“물론이죠.”

하아, 하아.

“애무도 필요 없겠군.”

세리아의 아래는 이미 홍수가 난 상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세리아를 안았다.

***

“하아, 하아! 주인님 좋아요!”

“임신시켜 주세요! 제 안에 가득 넣어주세요!”

“주인님께 보지 박히는 거 너무 좋아요!”

세리아의 비명이 저택을 가득 울렸다.

“이게 뭐야…….”

레밀리아가 무릎을 감싼 채 앉았다.

긴 귀를 쫑긋거렸다.

불쾌할 때마다 나오는 엘프들의 습성이었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갑자기 와달라는 모리스의 부탁에 일을 모두 접어놓고 달려왔다.

너무 오랜만이지만,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의미로 들었다.

집에 초대한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떨렸던가.

‘혹시 기정사실을 만들려는 걸까?’

던전에서 어쩔 수 없이 이어진 관계였지만, 애초에 모리스에게 마음이 있었던 그녀였다.

강한 힘, 높은 지능.

외모 역시 엘프들과 비교해서 꿀릴 거 없던 남자.

많은 장점을 지닌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데.

“주인님! 너무 좋아요!”

“더 깊숙이 박아주세요! 임신시켜주세요옷!”

“주인님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거지?

레밀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모리스가 이렇게 매너가 없는 남자였던가.

‘생각해보면 모리스가 어떤 여자를 만났는지, 몰랐어.’

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하고 있길래.

하는 호기심까지 들었다.

레밀리아는 창문을 타고 밖으로 나갔다.

벽을 타는 건 숙련된 엘프 전사인 그녀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흐읍!”

신음이 새어나오는 세리아 방을 본 레밀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알몸으로 된 두 남녀가 엉키고 있었다.

공기 또한 왠지 모르겠지만 분홍빛을 띄우고 있었다.

꿀꺽.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사답지 않은 탄탄한 모리스의 몸.

모리스가 세리아와 연결된 지점.

자꾸만 시선을 뺏겼다.

창문 너머.

모리스에게 안겨있던 세리아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싱긋.

승리의 미소였다.

“하아, 하아.”

신음을 내쉬던 그녀는 입을 벙긋거렸다.

‘접근하지 마.’

거기서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

숨을 들이켠 레밀리아는 억지로 발걸음을 땠다.

돌아가는 그녀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나만 진심이었던 거였구나.’

눈물을 삼킨 레밀리아는 방으로 돌아갔다.

***

나는 옆에 누워있는 세리아의 배를 쓸었다.

피임 마법을 쓰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해서.

“만족하는가?”

“예, 확실해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는 세리아의 눈에 사랑스러운 감정이 깃들였다.

“너무 급하게 하지 마라. 시간은 많으니.”

그럼 초대한 손님이 있으니.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

복도에서 나를 마주친 레밀리아가 나를 보며 흠칫 놀랐다.

“잘 잤는가?”

“아, 자, 잘 잤어?”

레밀라아가 유독 심하게 당황해 했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반응.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땀을 뻘뻘 흘렸다.

“바, 밤에 좋아 보이더라.”

아차.

내가 소음 차단 마법을 썼던가?

다 들었구나.

“내, 내가 눈치 없이 낀 거지?”

“끼다니.”

“머, 멍청했지. 하룻밤 함께 보냈다고 연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게 말이야. 하긴 이상했어. 그, 그렇게 바로 용무만 보고 끝낼 모리스가 아닌데 말이지. 그치?”

레밀리아가 머리카락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엘프의 하룻밤이 어떤 의미인지.

그녀와 던전에서 생겼던 일.

단순히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었다.

던전 때문에.

마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로 말이다.

그래서 단순히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니었던 거다.

오해했구나.

내 초대를 말이다.

아, 모리스.

죄 많은 삶이여.

이걸 산 넘어 산이라고 하던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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