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6화 빙의자의 고백
* * *
“아,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나는 다급히 깨진 컵을 정리하러 오려는 하녀를 막아세웠다.
마법으로 깨진 유리잔을 정리했다.
그와 동시에 나와 세실리아를 중심으로 소음 차단 마법을 둘렀다.
이제 이 얘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빙……의요?”
세실리아가 내게 물었다.
“그래. 빙의. 너처럼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세실리아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창백했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지었던 그 여유로운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최유준, 나이 23. 서울에 살다가 이 세계로 빙의했다.”
절대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한국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세실리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더 말해줘야 하나? 대통령이 누구고 서울 지명이 어디며 옆 나라에 누가 있는지까지.”
“아, 아뇨. 괜찮아요.”
세실리아가 창백해진 이마를 짚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마주한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간간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나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부정, 경악, 불신.
수많은 감정들이 세실리아의 얼굴에 깃들었다.
나는 묵묵히 그녀를 마주보았다.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릴 뿐.
한참 입을 닫았던 세실리아가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나를 구하고 류클리드를 무너트린 이유가 이거 때문인가요? 같은 빙의자라서?”
“그건 과정일 뿐이야. 류클리드는 내가 한 번은 이겨야 하는 벽이었을 뿐.”
“과정……. 과정이었군요. 당신에겐…….”
“나는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니까.”
세실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떨어트리지 못했던 마지막 의문을 턴 표정이었다.
“악에서 찾는 해피엔딩. 네가 빠진 소설이겠지?”
내가 보았던 소설, 악에서 찾은 해피엔딩과 똑같은 제목을 가진 소설.
그게 바로 세실리아가 빙의했던 로판 소설이었다.
“하, 놀랍네요.”
평정을 가장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세실리아의 눈에는 이 상황을 믿지 못한 떨림이 있었고.
당황을 넘어 패닉에 가까운 충격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듣고 놀랐다.”
소설에 빙의되다니.
여자 주인공이 있다니.
내가 보았던 소설의 여주가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가 읽던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알고 있으니.
“그럼 대체 왜 제 앞에 나오지 않았던 건가요?”
세실리아가 물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으리라.
수많은 로판을 읽었고 빙의까지 했던 그녀라면.
자신이 많은 로판 여주처럼 주인공의 삶을 살았다라는 것을.
그런 세실리아가 이 세상의 주인공 중 하나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으리라.
그렇기에 물은 것이겠지.
왜 이 세계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오지 않았냐고.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굳이 피폐물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기 싫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네가 진짜 빙의자라는 확신도 없었다.”
세실리아에게 진실을 숨겼다.
그녀 역시 소설 속 인물이었다는 걸.
“그런……가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빙의자라는 걸 공개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너도 알 것이다.”
무너진 류클리드.
부서진 세계관.
그리고 작금의 사태까지.
후폭풍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오신 건, 제가 빙의자라는 확신이 있어서겠군요.”
“맞습니다.”
“하, 하하…….”
세실리아가 힘없이 웃었다.
슬픔이 가득한 웃음.
“늦었네요. 아주 많이.”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저와 따로 얘기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세실리아의 질문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알지 않나. 같은 빙의자 입장에서 황후, 아니 세실리아님이 어떻게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그걸 거절했는지.”
“그게 궁금하셨습니까?”
“그래요. 그게 궁금했습니다.”
내게는 오지 않았던 복귀 방법이.
왜 그녀에게는 갔는지.
‘원작에서도 그 방법과 이유에 대해선 나오지 않았었지.’
그저 그녀가 이 삶에 행복하다고만 적혀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 또한, 가지지 않았다.
왜?
단순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행복했으니까.
그런데 류클리드가 말하길.
그녀는 돌아가는 걸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장관님께는 오지 않았나요? 정령이.”
“정령……. 말입니까?”
“예.”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정령이라.
오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신가요?”
“예. 세실리아님은 만났습니까?”
“예. 한 번 만났어요.”
“그러셨군요.”
내겐 전혀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대체 왜?
“이유가 뭡니까?”
그녀는 나를 주시했다.
유심히 나와 눈을 마주치던 세실리아는 내가 원하는 답을 내주지 않았다.
“장관님은 그 정령을 절대 만날 일이 없겠네요.”
오히려 뜬구름 잡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만날 수 없다니.”
“행복하시잖아요? 지금 여기 삶이.”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정령이 제게 말했어요. 빙의자가 행복하지 않을 때, 딱 한 번 나타난다고.”
“…….”
“그 때 딱 한 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어요. 그 마지막 선택으로 이 세계에 남을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정할 수 있다고요.”
“그런 겁니까?”
“예, 장관님은 못 보셨나요?”
“그렇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정령?
그와 비슷한 녀석들은 본 적이 있었다.
허나 엘프들이 부리는 정령을 얘기하는 건 아닐 테니까.
“없습니다.”
“그런가요? 정말 행복하신가 보네요.”
말하는 세실리아의 목소리가 슬펐다.
행복하다라.
그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최유준으로 살았을 때보다는 훨씬 행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것인가.
“정령이 찾아올 만큼 괴로웠습니까?”
“예,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으니까요. 우울하고 슬펐습니다.”
“헌데 왜?”
“…….”
잠시 창밖을 보던 세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이지윤, 25살, 대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평범한 직장을 다녔던 저는 단 한 번도 남자친구란 걸 만들지 못했어요.”
“얼굴이 못생겼거든요. 남자들은 제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어요. 인기 있는 삶? 남자들의 눈길을 받는 삶? 저에게는 먼 일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가능했죠.”
후후후.
세실리아가 낮게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름다운 외모.
깨끗한 목소리.
핑크빛 머리카락.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몸매 등.
누가 봐도 아름다운 그녀였다.
“그래서 안 가신 겁니까?”
“예. 슬펐어도 원래 세계보단 나았으니까요.”
“그렇군요.”
과거가 떠오른 듯 세실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신세네요. 원래 사랑했던 이에게 버림받고 이제는…….”
“더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하는 세실리아의 얼굴이 죽어가는 것이 보는 내가 더 안타까울 정도였다.
“후우, 장관님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령은 장관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궁금했던 것은 전부 풀렸다.
빙의자였던 그녀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주저했는지.
왜 남았는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장관님, 저도 한 가지만 물을 게요.”
“물어보십쇼.”
“장관님은 정말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
돌아가고 싶냐라.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돌아가고 싶어서 여쭤보시는 것은 아닌 거 같아 보여서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세리아와 에미르, 그리고 백설.
말고도 이곳에서 맺은 수많은 인연들까지.
고작 4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원래 세계에서 가졌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예.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 행복했다.
여기서 만든 인연을 두고 떠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찾아오신 겁니까? 굳이 모르셔도 됐을 텐데요.”
“학자로서 가지는 순수한 궁금증 때문……이라는 건 단순한 핑계이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예,”
“그게 뭐죠?”
궁금했다.
나 말고 다른 빙의자는 어떻게 지냈는지.
이 세계에서 어떤 행복을 찾고 어떤 삶을 보냈는지가 말이다.
소설 속에서 보았던 활자가 아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거기다가.
같이 이방인이지 않은가.
저 먼 세계에서 온,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같은 고향 사람이니까요.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잖습니까.”
“그런……가요?”
“예. 적어도 혼자만 끙끙 앓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세실리아가 나를 보았다.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점점 진정되기 시작했다.
같은 고향 사람.
짧은 한 단어였지만, 이 세상에 빙의자가 그녀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비밀을 혼자만 간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렇……네요.”
“고민되고 고향이 그리울 때면 찾아오십쇼. 언제든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모리스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혹, 류클리드에게 전할 말이 있으십니까? 원하신다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세실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구와 함께 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행복하라고 전해주세요. 저주의 말을 쏟고 싶어도 그런 꼴을 보니 도저히 나오지가 않네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세실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지내시길.”
“조만간 모리스님 저택에서 뵙지요. 한국에서 먹었던 떡볶이 얘기라도 하고 싶거든요.”
“일이 진정되면 그렇게 하시죠. 네버랜드, GCV,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말씀하세요. 기회가 된다면 치맥도 만들어드리죠.”
“치맥이라, 그건 정말 좋은 제안이네요.”
과거,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이 떠오른 세실리아의 얼굴이 밝았다.
이렇게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럼, 이만.”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치고 에밀리의 저택을 나갔다.
이거면 됐다.
적어도 세실리아가 내 적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다.
이게 그 내적 친밀감인가.
나는 저택을 떠나며 세실리아가 말한 정령에 대해 가장 잘 알만한 사람을 물색했다.
역시 정령이라면 엘프밖에 없겠지.
나는 손가락을 튕겨 수정구를 켰다.
모리스 어쩐 일이야?
“레밀리아, 제국 수도에 와줄 수 있나? 너한테 물어볼 게 있다.”
***
“흐음, 그러니까……. 이제 양가 결혼을 진행하자?”
“그렇소.”
솔라리온 공작이 얼굴을 붉혔다.
“절대 안 돼! 내 눈이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로!”
시작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럴 줄 알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