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34화 (134/174)

〈 134화 〉 133화 세실리아, 과거의 미련

* * *

“무, 무슨?”

여자로 변한 류클리드를 본 세실리아는 한참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류클리드.

자신의 이상형이었고.

그녀가 보았던 소설의 주인공이었으며.

한때는 그녀의 낭군이었다.

언제나 그녀의 옆에서 거대한 기둥처럼, 거대한 벽처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꼼짝하지 않고 든든하게 버텨주던 남자였다.

힘이 되었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넓은 어깨.

커다란 키.

두꺼운 손은 물론이고, 손바닥에 남은 굳은살까지.

그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커다랗고 믿음직스러웠다.

가끔 잔혹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남자였다.

그런데 대체 왜?

그 단단한 남자가 이렇게 됐느냔 말이다.

세실리아보다 조금 작은 키.

슬랜더 형의 호리호리한 체격.

류클리드의 상징이었던 날카로운 턱선은 그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거기에 수줍게 홍조를 띄운 볼까지.

누가 봐도 완전히 여자였다.

“류……클리드?”

말하는 세실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맞……아. 나야, 세실리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그녀에게 한 짓은 잔혹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미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류클리드를 찾아온 것도 남아있던 그 애정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가진 감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왔는데.

“왜?”

세실리아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모르겠어.”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변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얘기를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류클리드는 주인공처럼 뭐든지 알고 있었고, 뭐든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게 다야?”

“정말 몰라…….”

류클리드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래?”

세실리아가 모리스를 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장관이라면 말해줄 수 있죠?”

“저 역시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당신이 여자로 만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래도 저 역시 모르는 게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이유를 몰랐다.

분명 류클리드를 남자로 돌아오게 만드는 마법을 걸었다.

서클을 최대로 돌렸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

나도 놀랐고, 류클리드도 당황했다.

왜냐고?

마법으로 이미 한 번 변한 성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마법은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한다.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3가지.

류클리드가 남자로 돌아가는 걸 싫어하거나.

이미 여자의 몸에 너무 적응한 것.

이 둘도 아니라면.

사랑에 빠진 것.

뭘까.

저 중에서.

‘2년.’

역시 그게 큰 건가.

잘 모르겠다.

“장관까지 모른다면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거겠죠.”

잠시 류클리드를 보던 세실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장관님.”

“말씀하시죠. 황후 폐하.”

“단 둘이 말할 시간을 좀 줄 수 있을까요?”

“단 둘이라.”

“단 둘이 보게 해준다고 약조하셨잖아요.”

나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흠, 알았습니다.”

“고마워요.”

“무슨 일이 생기면 불러주십쇼.”

나는 두 여자를 두고 방을 나갔다.

‘충격을 먹은 거 같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나.

***

“이게 무슨 꼴이야?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면 차라리 떵떵거리고 있지.”

“…….”

류클리드의 어깨가 좁아졌다.

황제 때 입었던 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때의 위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작 이렇게 되려고 그런 짓을 했던 거야?”

“…….”

류클리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해. 예전처럼. 네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능글맞게 변명도 해보고 솔직하게 고백도 해보란 말이야. 왜 말이 없는 건데.”

“미안…….”

“……그게 다야?”

“응.”

패기는 없었다.

여유로움도 없었다.

세실리아가 류클리드를 좋아했을 때 느꼈던 그의 장점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 앞에 있는 류클리드는, 어쩌면 세실리아보다 작은 여자일 뿐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차올랐다.

단순한 분노일까?

아니면 억울함?

그녀의 짧은 머리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미안해.”

“뭐?”

“정말 미안해.”

류클리드와 연애하고 사랑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솔직하고 진솔한 사과였다.

그러나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 류클리드의 사과는 오히려 화를 부추기는 꼴이었다.

시선을 내리깔고 손가락을 배배 꼬며 사과를 하는 류클리드.

“겪고 나니까 네게 했던 짓이 얼마나 악독했던 일인지 깨달았어. 나는 정말 하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던 거야. 사람이면 해선 안 되는.”

“그게 무슨 말이야?”

“미안해.”

세실리아는 깨달았다.

그녀가 보았던 소설 속 왕자님은 죽었다.

왕자님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연약한 공주가 되었다.

그녀가 좋아했던 모든 모습을 잃은 류클리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뿐이었다.

고작 이런 사람을 위해 내 모든 걸 포기하고 이곳에 남았다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이곳에 남았다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그런 사람을 한 번이라도 더 믿어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그 마지막 믿음마저 배신당했다.

가슴이 아팠다.

뼈저리게 아팠다.

실연당했을 때보다.

그에 의해 눈과 귀가 멀었을 때보다 더.

“하, 진짜 허망하다.”

“뭐?”

“나는 너와 행복해지려고 모든 것을 포기했었는데.”

말하는 세실리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정이라고는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 세실…….”

“이제 그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도 마. 역겨우니까.”

“뭐? 하지만 나는 네게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사과 같은 거 받으려고 온 거 아니야.”

여자로 변했다고 해도 원래 그가 가졌던 당당함이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너지지도 않았을 거다.

“미안.”

세실리아는 손을 올릴 뻔 한 걸 억지로 참았다.

불끈 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남자로 돌아가지 못해서 좋아?”

세실리아가 물었다.

류클리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쓰레기 같은 놈. 넌 남자도 아니야.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류클리드는 죽었네.”

세실리아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류클리드를 보았다.

“너를 만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어. 용서한다고 말할까. 괜찮다고 말할까. 앞으로 그러지 말고 우리 반성하면서 서로를 다독이자고 할까. 그런데…….”

세실리아가 숨을 삼켰다.

“그게 다 소용이 없네. 내가 아는 류클리드는 죽어버렸으니까.”

“세실, 난 죽지 않았어. 봐. 여자가 됐지만 아직 이렇게…….”

“닥쳐!”

세실리아의 비명에 류클리드가 입을 다물었다.

“그 입으로 말하지 마. 듣기도 싫으니까.”

“세실.”

“서로 잘 헤어지자. 앞으로 여기 올 일 없을 거야. 원래라면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까지 정 때문에 온 거니까.”

“에밀리야? 설마 그 여자로 변한 그년 때문에 간다는 거야?”

류클리드가 처음으로 소리를 높였다.

질투? 아니면 배신감?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과거 세실리아가 느꼈던 박력은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땍땍거리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에밀리는 너처럼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 날 찾지 마.”

세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만나 하려고 했던 수많은 얘기들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류클리드가 황제로 돌아갈 때를 대비한 협상.

이혼으로 그녀가 받아야 할 위자료.

류클리드에게 남은 많은 재판들과.

앞으로 그녀와 에밀리를 견제하지 말라는 경고 등등.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지금의 류클리드에겐 닿지 않을 거다.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세, 세실.”

쾅!

세실리아는 애처롭게 부르는 류클리드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얘기는 다 끝났습니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리스가 말했다.

“덕분에요.”

“생각보다 일찍 끝났군요. 많은 얘기를 할 거 같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봤잖아요. 그 꼴을.”

“흠,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까?”

“별 거 아니에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세실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황제가 무너진 지금, 앞으로 제국의 실세가 될 남자였다.

적어도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군요.”

“예. 그리고 얘기 나누기로 했던 거 말이에요. 내일 봐도 될까요? 지금은 조금 피곤하네요.”

“좋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세실리아가 자리를 떠났다.

나는 멀어지는 세실리아를 보내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방에는 주먹을 꽉 쥔 류클리드가 있었다.

“모리스.”

“왜 그러지?”

“나는 왜 남자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야?”

“복잡하다. 나도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이제 아예 돌아갈 수 없는 건가?”

류클리드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보았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 하하.”

웃음에 힘이 없었다.

“방법이 없나 보구나. 정말로.”

상처 입은 고양이가 딱 이꼴일 거다.

“정신을 가다듬어라. 조만간 다시 찾아…….”

류클리드가 나가려는 내 옷자락을 잡았다.

“가지 마. 잠깐만 내 옆에 있어줘. 그 때처럼.”

“후우, 알았다.”

나는 류클리드의 맞은편에 앉았다.

“진짜 다르네.”

내 손등을 만지작거리던 류클리드가 말했다.

“분명 예전에는 나랑 똑같은 손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굵고……길기까지 하네. 몸도 크고 확실하게 남자의 몸이야.”

넋두리하듯 혼잣말을 하던 류클리드가 자신의 몸을 쓰다듬었다.

“반면에 나는 이제 완전히 여자가 다 됐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고.”

류클리드가 물었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모른다. 이건 내 권한 밖이다. 나도 성별 전환 마법에 대해서는 지식이 적다.”

“그런……가. 역시 그럼 이제는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네.”

류클리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안아줄 수 있어?”

“안아달라고?”

“응.”

“남자를 안는 취미는 없다.”

“남자 아니야. 봐, 난 이제 분명히 여자라고.”

류클리드가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너도 내가 지금 여기서 옷을 벗으면 눈을 가릴 거잖아.”

류클리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실리아와 만남이 정신적인 충격이 된 거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충동적인 방향은 좋지 않다.”

“나한테까지 상냥할 필요는 없어. 차라리 막 대하란 말이야. 나는 못된 놈이었잖아. 네가 반란을 일으키고 제 입으로 충신이라고 말하던 놈들이 배신을 할 만큼.”

“이제 여자가 다 됐군.”

“너도 나보고 여자가 다 됐다면서. 그런데 왜 안 하겠다는 건데!”

“네가 남자였기 때문이고, 황제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류클리드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

폭풍 전 고요.

잠시 침묵이 끝나고 류클리드가 입을 열었다.

“황제가 아니면 날 안아주겠다는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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