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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33화 (133/174)

〈 133화 〉 132화 류클리드

* * *

끼이익.

나는 보았다.

식어가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않은 채 침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류클리드를.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빛이 닿으면 안 된다는 듯, 그녀는 철저히 빛을 피해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그런 얼굴.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건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류클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며칠을 울었던 걸까.

눈가가 붉었다.

“모리스…….”

“누가 보면 세상 다 잃은 사람인 줄 알겠군.”

“다 잃었지. 황제의 위엄도, 권력도, 충신이라 믿었던 사람들도 전부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모든 걸 앗아간 건 나였으니.

방금 내 말이 기만으로 들렸겠지.

허나 어쩔 수 없었다.

물지 않으면 물리고, 먹지 않으면 먹힌다.

그것이 이 제국의 세계.

그녀가 절망하는 것에 죄책감은 없었다.

나는 류클리드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밥도 먹지 않았군. 며칠 째 굶은 거지?”

“계속 안 먹었어.”

나는 다시금 류클리드를 살폈다.

볼이 핼쑥하게 들어가 있었다.

업무로 바쁘게 지내는 동안 계속 먹지 않았던 거다.

“하아, 조금이라도 먹는 게 좋을 거다.”

“싫어.”

“이대로 죽고 싶은 건가?”

“차라리 죽을래. 이런 꼴로 더 살고 싶지 않아.”

류클리드가 고개를 더 파고들었다.

“역사상 최초로 굶어죽은 황제가 되고 싶은 건가?”

“폐위 당해 죽은 황제가 되겠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계속 피어올랐다.

이대로라면 같은 말을 반복할 거 같아, 나는 류클리드에게 진정 마법을 걸었다.

엉키고 묶인 정신을 회복시키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마법이야 간단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불안한 자세로 앉아있던 류클리드의 몸에 힘이 풀어졌다.

방금까지 멍한 눈으로 초점 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던 류클리드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다.

공허하게 허공만을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나았다.

적어도 눈물을 흘릴 정도 진정됐다는 뜻이니.

나는 별다른 말없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지금 그녀가 위태로운 것은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

세실리아에 의해 마음이 망가진 이후, 그녀의 옆에 단 한 명도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권력까지 잃었으니, 허탈감이 컸을 거다.

이 상황에서 더 많은 말을 쏟아내봤자, 류클리드에게 들리지 않겠지.

그래서 앉았다.

말없이, 가만히.

“흑, 흑 흐윽.”

류클리드는 울었다.

맺혔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울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모르겠다.

모리스가 들어오고.

그가 옆에 앉는 순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풀어졌다.

방금 전까지 단단하게 말라 굳었었는데.

“끄윽, 흑, 흐으윽.”

세실리아가 생각났다.

그녀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차라리 모든 걸 이해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어어어엉.”

나는 자꾸만 우는 류클리드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류클리드는 마치 레이디처럼 손수건을 받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환각으로 보여줬던 2년.

그 때의 기억이 깊게 남아 있는 걸까.

눈물을 닦고 울며 과거를 후회하는 류클리드의 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였다.

그녀가 한참 울고 진정되고 나서야.

“먹어라. 입맛은 없겠지만, 먹는 게 사는 거다.”

나는 식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나한테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뭘 말이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너한테 더 낫지 않아? 황제가 죽었으니 찬탈자가 황위에 오를 이유가 되고…….”

“쓸데없는 소리.”

나는 류클리드의 말을 끊었다.

“네가 죽으면 제국은 부서지고 끊어진다. 나는 그걸 바라지 않아.”

“그럼 왜 나를 공격한 건데? 왜 반란을 일으킨 거야.”

“간단하지. 너 때문이지 않은가.”

“……나?”

“네가 귀족들을 압박하고 내가 원하는 평화를 깨트렸으니까.”

“…….”

“세리아를 조교할 때도 말없이 따랐다. 다른 귀족과 전투할 때도 따랐고, 반란을 진압하라는 명도 받았다. 세실리아를……치료하는 것도 말이지.”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랬지.”

류클리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서로가 만들어낸 재앙이다.”

“…….”

“나는 그 재앙을 최소한으로 만들고 싶어서 너한테 말하는 거다. 네가 죽으면 안 된다고.”

“아…….”

류클리드가 입을 벌렸다.

떨리는 눈동자가 내게 꽂힌 채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류클리드는 세바스찬의 말이 떠올랐다.

­주인님의 선택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지요.

뭐든 걸 해내는 능력.

그래서 믿을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그녀는 모리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과거 ‘그’가 묘한 경계심을 느꼈던 이유.

모리스 역시 그녀처럼 지배자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류클리드의 몸이 떨렸다.

여자로 변한 뒤로부터 나오지 않았던 그 힘이.

모리스에게서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의 ‘그녀’보다는 지배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먹어라. 괜히 쓰러지지 말고. 따뜻하게 만들어뒀다.”

“……알겠어.”

류클리드는 모리스가 데운 고기를 썰었다.

“고마워.”

“그래.”

류클리드가 우물거리며 고기를 먹었다.

달그락 달그락.

나는 천천히 음식을 먹는 류클리드를 보았다.

그녀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위도 작아진 건지,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릇을 치운 나는 류클리드에게 말했다.

“세실리아가 돌아왔다.”

“어……?”

류클리드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그렇게 찾고 다니던 세실리아를 수도로 복귀시켰다고.”

“얼마 전까지 그렇게 숨겼잖아.”

“네가 죽이려고 들었으니까.”

“…….”

다시 조용해졌다.

“그거……말하려고 온 거야?”

“그래. 그거 말하려고 왔다.”

“그랬구나.”

여기까지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고는 알려줄 수 없을 거 같아.

“세실리아가 올 거다.”

류클리드에게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세실리아가 올 거다. 당장은 만나지 못할 테지만, 신변 정리가 다 되면 저택으로 올 거다.”

“그, 그럼 이대로 만나?”

류클리드가 여자의 몸을 가리켰다.

남자였을 때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맨들맨들하고 여리여리한 몸이었다.

아마 이 모습을 세실리아가 본다면…….

좋은 얘기는 나오지 않겠지.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류클리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건, 위험했다.

그러나.

세실리아가 여자인 류클리드를 만나는 것 또한 좋은 일은 아닐 거다.

‘어렵군.’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돌리냐 돌리지 않느냐 이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류클리드를 향해 손을 튕겼다.

따악!

그와 동시에 주위 마나가 휘몰아쳤다.

***

“생각보다 일찍 부르셨네요.”

저택에 찾아온 세실리아가 말했다.

“황후 덕분에 수도가 안정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세실리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마법사들이 나를 도와 수도를 복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의 공이 컸다.

그에 대한 감사는 확실히 하는 편이었다.

“황후라는 말, 듣기 좋지 않네요. 예전에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에요.”

나를 보는 세실리아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소설에서 읽었을 때에도 저런 눈빛은 종종 보여줬다고 읽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이제는 그 칭호를 듣기는 늦은 거 같네요. 황제도 이미 장관의 손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보았다.

차가운 눈빛을 유지하고 있지만,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세실리아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그녀는 억지로 참고 있는 거다.

아직 남자를 볼 때마다 생기는 불안감이 다 낫지 않았음에도 류클리드를 보기 위해 왔다.

나는 괜찮기 때문일까.

모른다.

세실리아의 생각은.

“류클리드는 안에 있나요?”

“그렇습니다. 황후, 아니 세실리아 영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대되네요. 당신이 그 사람을 어떻게 망가트렸을지.”

“망가트리다니요.”

“고문의 마에스터 아닌가요? 정신이 단단한 대마법사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런가요?”

세실리아가 웃었다.

“에밀리는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예. 오기 싫다고 하네요. 류클리드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고. 이상하네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여자가 되고 변했는지…….”

“바빠서 그런 걸 겁니다.”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여기에 올 짬도 되지 않았으리라.

“그럼 따라오시죠.”

나는 세실리아를 데리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폐위된 황제를 자신의 저택을 가둔다라. 그건 장관밖에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습니까?”

“물론이죠. 그가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큰데. 차라리 지하감옥에 가두고 말지.”

말하는 세실리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복도를 지나, 류클리드가 지내는 방 앞에 도착했다.

“열겠습니다.”

“잠깐만요.”

세실리아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 됐어요.”

나는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 안에서.

“세……실리아.”

제국의 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류클리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류클리드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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