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131화 설득
* * *
“흐음, 이게 무슨 상황이지?”
솔라리온 공작이 내게 물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수도 복구를 위한 3대 가문의 회의 자리지 않은가.”
지크프리트 공작이 대신 대꾸했다.
“3대 가문이라. 언제 드미트리가 3대 가문이 되었지?”
솔라리온의 시선은 내게 고정된 채였다.
“9클래스 마법사면 3대 가문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네만?”
지크프리트 공작이 다시 한 번 막았다.
솔라리온의 시선이 처음으로 지크프리트에 꽂혔다.
“언제부터 지크프리트가 드미트리의 하수인이 되었지? 상황이 참 웃기는 군. 제국 최고의 정치 가문이 이제는 쫄따구라…….”
솔라리온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
“자자, 그건 지금 상황에서 할 얘기는 아니라고 보네만?”
나는 두 공작을 중재했다.
애초에 싸우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크흠.”
솔라리온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왜 불렀나?”
“두 공작님들에게 부탁이 있다.”
“부탁이라. 황제까지 손에 넣은 천하의 모리스 드미트리가 한낱 공작에서 무슨 부탁을 하려는가!”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나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마탑을 설득하기 위해 힘을 빌려주길 바라네.”
“마탑?”
“마탑이라.”
두 공작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애초에 우리와 선을 그은 마탑이네. 굳이 마탑의 도움이 필요한가? 괜히 빚을 하나 더 추가할 필요는 없잖은가.”
지크프리트가 말했다.
“최대한 빨리 수도를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네. 아직 패잔병들이 남은 상황에서 내부가 불안해질 필요는 없겠지.”
잠시 솔라리온을 보던 지크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모리스 자네는 현 상황이 불안하다고 보는가?”
“아니.”
“그런데 왜?”
“현 상황에서 굳이 분란이 일어날 요소를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건 동의하네.”
그 모습을 보던 솔라리온이 비웃었다.
“반대한다.”
그럴 줄 알았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왜 도와줘야 하지?”
“그냥 도와달라는 건 아니다.”
“그럼?”
“거래를 하지.”
“거래라.”
솔라리온이 턱을 쓸었다.
내 생각을 읽고 싶은 듯, 나를 주시하던 솔라리온 공작이 한참을 뜸을 들였다.
“카드를 올려. 그 다음에 얘기를 시작하지.”
“황제를 알현하고 싶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을 텐데? 그건 협상카드 대상이 아니다. 황제와 솔라리온이 아니라 제국을 위한 카드를 내놔라.”
“허. 제국을 엉망으로 만든 모리스 드미트리가 제국을 위한이라는 말을 하다니.”
“마법부를 설득하려는 게 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고 보는가?”
“그럼 아닌가?”
솔라리온의 태도는 여전했다.
부정.
그저 내 의견이 반대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이 전부였다.
이해한다.
며칠 전까지 황제를 두고 전쟁을 했던 사이다.
나는 황제를 폐위했기 때문에.
솔라리온은 황제를 다시 복권시키기 위해서.
전쟁에서 나는 승리했고, 솔라리온은 패배했다.
그는 전쟁 포로가 되었고, 나는 승자의 권한으로 그를 구금하는 중이었다.
자유롭게 수도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해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황제파의 리더였던 그가 나를 도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을 테니까.
“수도를 복구시켜 제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내 첫 번째 목표다.”
“……웃기는 소리.”
“믿지 못하겠나?”
“당연하지. 네놈이 한 짓이 있는데.”
“만약 내가 황제를 다시 복권시킨다면 그래도 도와주지 않을 텐가?”
“뭐?”
솔라리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알고 있던 지크프리트는 그저 눈을 감았다.
“황제를 다시 돌려놓는다고?”
“그래.”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언령으로 계약을 맺어야만 믿을 텐가?”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언령을 쓴다면 공작은 바로 나를 도와야 한다. 그래도 말인가?”
“그런 언령이라면 내 도움에도 가치가 있지.”
지크프리트가 일어섰다.
“정녕 언령까지 써야 할 일인가?”
“그렇소.”
“…….”
황제가 정신을 차린다면 굳이 내가 모든 걸 통솔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정통성 없는 황제가 돼서 정적을 많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지크프리트의 생각은 알고 있다.
나를 황제로 만들고 싶은 거겠지.
통제가 불가능한 류클리드보단 내가 낫겠다는 건데.
‘굳이 내가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나는 두 공작을 보았다.
“자, 어떻게 할 건가?”
솔라리온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좋네.”
“알았다. 지크프리트 공작은?”
“그대가 원한다면, 말을 아끼지.”
나는 서클을 돌렸다.
일이 마무리 된다면 황제를 복권시키겠다.
우우웅.
방 안에 마나가 퍼지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갔다.
마나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슬이 내 심장을 옭죄었다.
쿵.
“하아.”
지크프리트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런 공작들을 데리고 일어났다.
“마탑으로 가지.”
***
지크프리트와 솔라리온, 드미트리.
현재 황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 제국을 이끄는 3대 가문이었다.
“변절자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마탑주, 데일레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리스의 등장에 마법사들의 표정이 싸늘했다.
“참, 익숙한 반응이군.”
예전부터 들었던 반응이었다.
과거 드미트리가 망했을 때.
수많은 오명을 뒤집어썼을 때.
몇 번이고 들었던 마법사의 멸시였다.
“뒤에 두 공작님이 아니셨다면 보려고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데일레인의 비아냥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데미지가 전혀 없었다.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는 할 필요 없지.”
“뭐요?”
“수도를 복구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력을 보내다오.”
“누가 들으면 이제 황제로 알겠소?”
“마법사들 인력은 마법부 장관일 때도 인력은 몇 번이고 고용했네.”
“제국을 이리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할 말입니까?”
“황제가 제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가 보군.”
“제국에 반하는 변절자의 말을 들을 이유는 하나도 없소.”
단호한 데일레인.
그때, 솔라리온이 끼어들었다.
“도와주게.”
짧은 한 마디.
그러나 그 한 마디가 가져가는 파급력은 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전쟁을 벌였던 솔라리온 공작이었다.
그가 모리스의 편을 들었다는 사실 하나에.
마법사들이 술렁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솔라리온 공작이 대체 왜?”
“무슨 일이야.”
예상하지 못한 솔라리온의 지원사격에 데일레인이 말을 더듬었다.
“허, 허나 모리스는 마탑의 규율을 어겼습니다.”
“정녕 마법대결까지 하길 원하는가?”
“…….”
그건 싫은 모양인지.
데일레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허나 고리타분한 마법사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 같아 보였다.
“결국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오?”
역시나.
“전혀 아니네. 결국 다시 황제는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갈 거야.”
보다 못한 솔라리온이 다시 한 번 끼어들었다.
“……. 장담할 수 있소?”
“이미 마나를 걸었네.”
“마나를 걸었단 말입니까?”
마나를 걸었다는 말에도 데일레인은 반신반의했다.
강한 마법사가 언령을 쓸 때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리스는 그들이 바라보기엔 아득한 차이였다.
같은 8클래스였을 때도 그랬는데.
미완의 9클래스인 지금은 얼마나 더 할까.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때.
“모두 조용히 하세요!”
세실리아였다.
에밀리와 함께 들어온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겁을 먹은 듯 안색이 파리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화, 황후님?”
“황후님께서 어째서?”
“실종되셨다고 하지 않으셨나?”
황제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던 세실리아.
눈과 귀를 잃었다는 그녀가 멀쩡하게 돼서 돌아왔다.
황제의 행위가 헛소문인가?
의문을 가졌을 때.
“황제가 저를 해했다는 소문은 전부 다 사실입니다. 전부 다 모리스 장관이 회복시켜준 거예요.”
“황후님…….”
“그러니 마법사들은 전부 수도 복원에 힘써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고리타분한 마법사들이기 때문에, 세실리아의 말이 어느 누구보다 크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결사반대를 외쳤던 마법사들이 꼬리를 말았다.
말을 마친 세실리아가 돌아갔다.
그녀는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걸로 저를 구해준 빚의 일부는 갚은 거예요.”
***
그렇게 마법사들이 각지에 배치됐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었다.
내게 몰려왔던 수많은 일을 사방에 분배했다.
골드 상단이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에밀리가 사람들을 데리고 지크프리트를 보좌했고, 마법사들이 나를 보조하는.
아주 균형 잡힌 프로세스가 완성되었다.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세실리아는 황궁에 복귀하지 않고 에밀리의 상단에 남았다.
황궁에 돌아가면 고문을 당했을 때가 떠올려서일 거다.
“오늘도 일이 다 끝났군.”
안경을 벗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밤을 꼴딱 샜다.
해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나눴음에도 이 모양이라.
나누지 않았다면 아직도 일에 허덕이고 있었을 거다.
‘시간이 붕 뜨는군.’
그렇다고 자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런 내 눈에.
류클리드가 갇혀 있는 방이 들어왔다.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요즘 업무가 밀려 세바스찬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그래도 얼굴은 비춰야겠지.
나는 류클리드 방으로 걸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