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5화 Dday 전쟁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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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돌격하라! 모리스님을 거역하는 저 제국의 개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크루이 족 전통 갑옷을 입은 백설의 외침에 크루이 족의 기병들이 제국군을 향해 기수를 몰았다.
두두두두!
기병들의 돌격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제국군의 후방을 그대로 때렸다.
“으아아!”
“뭐, 뭐야?”
“적이다! 후방에 적들의 기병이다!”
“모두 대형을 갖춰!”
지휘관들이 악을 써라 외쳤지만 그 뿐이었다.
이미 한 번 흐트러진 전열을 갖추기엔.
“죽여! 전부 죽여라!”
기병대가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콰과광!
크루이 기병대와 제국군 보병의 충돌.
보병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끄아아악!”
“살려줘!”
속도가 붙은 군마들이 내는 충격은 일반 보병이 견디기엔 너무나도 강력했다.
말에 부딪친 제국군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따뜻한 땅에서 배만 불린 제국 개들을 전부 죽여라!”
백설의 외침에 크루이 병사들이 환호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크하하하! 드디어 칼 휘둘러보는구나!”
“전부 죽여!”
“잔치다. 잔치!”
제국군의 그 누구도.
백설의 군대를 막을 수 없었다.
고작 1만의 기병이었다.
허나 그들의 존재가 전세를 뒤바꿨다.
“빌어먹을!”
솔라리온 공작이 주먹을 쥐었다.
퇴각을 결심한 상황이지만, 만에 하나 서부의 정규군이 뒤늦게 참전한다면 다시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뿌우우!
다시 한 번 뿔피리가 울렸다.
“이번엔 또 뭐지.”
혹여 절망적인 상황을 구원해줄 이들이 아닐까.
시선을 돌렸다.
허나 깃발이 달랐다.
골드 상단의 깃발.
에밀리.
세실리아를 데려갔던 에밀리가 고용한 용병단이었다.
뒤이어 온 병사들마저도 모리스의 지원군이었다.
“어, 어떻게……. 우리 원군은?”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지.”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고?
솔라리온은 눈앞의 모리스를 보았다.
이 진격은 그의 최선이었다.
모리스에게 시간을 더 준다면 귀족파들을 설득했을 것이고, 내부가 단단해진 적들은 이보다 더 많은 병력을 모았을 거다.
실제로 효과가 있지 않았던가.
내부로부터 붕괴.
단지.
‘모리스가 망그레브의 배신을 알고 있었다는 것.’
멍청한!
순탄하게 이어지는 상황에 적이 알고 있을 거라는 가정을 배제했다.
“공작, 그대는 너무 서둘렀어. 수도 탈환이라는 목적에 너무 갇혔다고.”
“크으윽…….”
솔라리온은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패해도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승산은 있다.
허나 만약에 그가 죽거나 잡힌다면?
앞으로 황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마스터 둘이 희생한다면 남은 병사들은 후퇴할 수 있겠지.”
“자신하는군.”
모리스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그의 손에서 마나가 휘몰아쳤다.
미완성된 9서클의 마나였다.
“내 허락 없이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
“솔라리온은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할 것이다.”
“웃기는군.”
모리스가 화염 마법을 쏘았다.
“공작님! 피하십쇼!”
마스터들이 모리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앙!
다시 한 번 마나 충돌로 인한 폭발이 일어났다.
몇 번이고 이어지는 폭발.
계속되는 마스터와 대마법사의 싸움.
그리고 솔라리온은 느꼈다.
아득한 경지의 마법사는.
마스터 둘도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세리아와 에미르가 참전했다.
동문에 돌입한 제국군을 정리한 릴리스와 세바스찬까지 마스터들의 전장에 합류했다.
수적부족.
머스크가 전투불능인 채로 쓰러졌음에도.
여전히 모리스의 강자들은 많이 남았다.
‘방심했다.’
솔라리온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했다.
적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싸웠는데 어찌 이길 수가 있을까.
“제국은 여기까지인가.”
패배를 직감한 솔라리온 공작은 눈을 감았다.
“패장이 살아서 무엇하리.”
공작은 뽑은 검으로 자신의 배를 찌르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거지?’
불길한 예감에 솔라리온 공작은 앞을 보았다.
모리스가 웃으며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말했잖은가. 도망갈 수 없을 거라고.”
그 모습이 악마같이 느껴졌다.
***
이후 전투 양상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무려 20만의 대군이었으나.
한 번 기세가 넘어간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었다.
전장의 중앙에서 통솔해야 했을 솔라리온은 모리스에게 사로잡히고, 기타 마스터들이 분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백설의 크루이 기병이 계속해서 적들의 후방을 교란시켰고, 굳건한 성벽에서 버티는 귀족파의 군세는 아무리 제국군이어도 쉽게 뚫을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진 골드 상단의 용병 군대.
용병왕을 앞세운 보병 만 오천이 소란스러운 제국군의 측면을 돌파했다.
20만 제국군 중 2만이 죽고 10만이 넘는 병사들이 포로가 되었다.
남은 병력은 황제파의 귀족들이 추스르고 퇴각했다.
그래봤자 솔라리온이 없으면 오합지졸.
목표는 달성했다.
‘다행이군.’
만약 솔라리온이 회동에 나오지 않고 전장에서 지휘를 했더라면, 이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됐을 거다.
그가 회동에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그것만으로도 계획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제국군 포로들이 귀족파 병사들의 인솔을 받으며 이동했다.
얼마나 많은지 한참을 움직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잘 끝났어.’
어려운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아직 황제파 세력 모두를 박살낸 건 아니지만, 핵심인 솔라리온과 황제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쟁취한 거다.
“감상보다 먼저 정리할 게 있지.”
내 시선은 밧줄에 묶인 채 무릎 꿇린 망그레브에게 닿았다.
“배신이라……. 나는 망그레브 후작, 그대를 믿었는데.”
“자, 장관님.”
망그레브 후작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야 배신한 걸 후회하는 걸까?
“황제파와 협상을 위해 보냈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배신하다니,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거지?”
나는 콧잔등을 쥐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슬프다. 망그레브 후작.”
“자, 장관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 몸, 분골쇄신하여 장관님의 옆에서 수족이 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고! 개처럼 짖으라면 짖겠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라면 죽이겠습니다!”
“비참하군. 망그레브. 자네가 이런 시시한 남자였던가?”
“장관님.”
망그레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배신한 자를 살리면 내 권위가 떨어지기 마련이라.”
“장관님! 제발!”
“아까 말하지 않았나? 죽으라면 죽겠다고.”
“…….”
망그레브는 대답하지 못했다.
“죽어서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그 때 자네를 기용하도록 하지.”
“장관니이이임!! 솔라리온, 네놈도 뭐라고 말을 해라! 네놈 때문에 내가 이리 되지 않았느냐! 멍청하게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오!”
기사들에게 끌려가던 망그레브가 몸을 꿈틀거리며 솔라리온을 노려보았다.
허나 솔라리온은 그를 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솔라리온에게 물었다.
“패장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죽여라.”
“죽음에 태연하군.”
“내가 살아있는 것이 네놈에게 좋은 일일까? 생각해봐라.”
“어찌 공작이 없는 게 좋은 일이겠는가.”
“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는 솔라리온 공작에게 다가갔다.
“한 때 나와 가족이 될 뻔한 사람 아닌가.”
“…….”
솔라리온이 눈을 부릅떴다.
“네놈 내 딸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이냐?”
방금까지만 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솔라리온의 얼굴이 깨졌다.
평정심이 깨진 솔라리온의 얼굴에 담긴 건.
순수한 분노.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분노였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약속을 한 게 있어서 살려두는 거야. 오해하진 말고.”
솔라리온 공작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공작의 몸 묶은 줄을 풀었다.
“무슨 짓이냐?”
“귀한 분이다. 중히 모시도록.”
나는 뒤에 도열한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런다고 내가 네놈 밑에 들어갈 듯 싶으냐!”
“굳이 내 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뭐?”
“솔라리온 공작의 충성을 기대하진 않으니까.”
솔라리온을 풀고 자리로 돌아가는 내게 솔라리온 공작이 물었다.
“황제 폐하는 어디에 계신가!”
“황제?”
“그래. 네놈이 폐하를 지하감옥에 가둬 고문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디서 헛소문을 들었군.”
“헛소문이라? 네놈이 죽인 망그레브의 증언이 있었다.”
“배신자의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해졌나?”
내 말에 솔라리온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폐하께선 내 저택에서 지내고 계신다. 황궁에 계시는 건, 몸에 부담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다면 폐하를 알현하고 싶다. 네놈이 나를 중히 여긴다면, 그 부탁은 들어주리라 믿지.”
나는 잠시 그를 보았다.
“아직은 안 된다.”
“뭐?”
“정신적으로 힘드신 상태거든.”
나는 머리를 톡톡 쳤다.
“그러니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게 무슨……?”
솔라리온 공작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니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게.”
“잠깐, 모리스 장관! 그게 무슨 말이지? 정신적으로 힘드시다니! 그 분이 어째서?”
“내 친절은 여기까지. 이봐, 병사들은 어서 공작을 모시지 않고 뭐하느냐.”
솔라리온이 병사들에 의해 끌려갔다.
포로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추 다 된 건가.”
나는 성 밖에서 불타는 시체들의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
이게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었다.
이러지 않았다면.
황제에 의해 목이 달아났을 테니까.
“모리스님.”
현장을 정리한 백설이 다가왔다.
“호오, 몰라보게 변했군. 갑옷까지 본격적이네.”
“예, 전장에서도 부족장으로 위엄을 갖추기 위해선 필요한 복장입니다.”
그녀는 북부 특유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털과 두꺼운 가죽으로 덮인 갑옷은 특수처리가 되어 있어 작은 화살 정도는 쉽게 막아낼 수 있는 물건.
영애처럼 동양풍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와는 이미지가 달랐다.
“이젠 완전히 부족장이 되었군.”
“부족장이라니요. 모리스님.”
백설이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이리 두꺼운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어도. 저는 모리스님의 여자입니다.”
백설이 내 손을 잡았다.
“모리스님이 원하셨던 대로 수도까지 왔습니다. 이제…….”
그녀가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두근두근.
두꺼운 가죽 갑옷 너머로 백설의 심장이 뛰는 진동이 느껴졌다.
“약속을 지켜주시지요. 너무도 오래 참았사옵니다.”
백설의 하얀 얼굴에 홍조가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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