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4화 Dday 승부의 갈림처
* * *
연기와 함께 동문이 열렸다.
“신호다! 전원 동문으로 전진하라!”
황제파 귀족의 신호와 함께 병사들이 움직였다.
황제파 병사들이 동문으로 몰려오는 것을 막을 이들은 없었다.
이미 동문은 망그레브 후작이 지휘하고 있는 상황.
“전원 무기를 내려놔라!”
그의 지시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싸울 의지를 잃은 병사들과 열린 성문.
제국군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 무사히 동문을 통과했다.
“역시 망그레브 후작, 믿고 있었소.”
“어서 빨리 내성으로 갑시다.”
망그레브 후작과 마주친 그들은 귀족 특유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귀족들이 성에 돌입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와아아아아!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함성이 들려왔을 때도 말이다.
“무슨 소리요?”
“귀족군이 오고 있소. 병력을 정비한 뒤, 저들을 막고 전진하면 해결될 일이요.”
“하하! 당연한 말을 하시는구려!”
황제파 귀족들이 병력을 이끌고 북쪽과 남쪽에서 몰려오는 적을 상대하러 출격했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황제파의 군세는 그만큼 많고 강력했으니까.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크아아악!”
“뭐, 뭐야?”
“괴물이다! 괴물이야!”
전황이 심상치 않았다.
수로 귀족파의 군세를 밀어내야 할 황제파 군사들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왜?
망그레브는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는 뒤늦게 알아챘다.
북쪽과 남쪽에서 몰려오는 귀족파의 군대의 선두에 선 노인과 여자를.
세바스찬과 릴리스.
모리스가 망그레브와 함께 들어올 황제군을 막기 위해 배치한 이들이었다.
초월체의 힘을 잃었다지만, 마스터와 감히 겨뤄볼 수 있는 강자들.
그들이 선두에 선 채로 적들을 베어 넘겼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마스터들은 이미 밖으로 나간 거 아니었던 건가?”
선두에 선 적들은 망그레브 후작도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망그레브! 우리를 속인 건가?”
황제파 귀족들이 얼굴을 붉혔다.
“그것이 아니오! 무슨 득을 보자고 열었겠소!”
“이이익! 기사단!”
황제군의 기사단들이 방진을 펼쳤다.
기사단 백 명이면 마스터와 호각을 겨룰 수 있다.
그래.
평범한 마스터라면.
***
“무슨 소란이지?”
나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모른 척 중얼거렸다.
시작된 거다.
황제군의 습격이.
“나는 모르겠군.”
솔라리온이 시치미를 뗐다.
“공작, 나를 바보로 아는가?”
“후후.”
“망그레브와 손을 잡았군?”
“미안하지만, 전쟁엔 규칙이 없잖은가.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할 뿐이지.”
시야를 교차한 우리는 동시에 무기를 꺼냈다.
나는 마나를 시전했고.
솔라리온 공작은 검기를 펼쳤다.
“네놈들 협정을 무시할 생각이냐!”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황제 폐하를 멋대로 구금한 놈들이 어딜 잘 났다고 나대느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무기를 꺼냈다.
서슬 퍼런 살기가 천막 안에서 오갔다.
“흐음.”
나는 손을 휘저었다.
돌풍이 불며 천막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확 뚫린 주위가 보였다.
황제군이 동문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
그것을 신호로 남문 서문 할 것 없이 돌격하는 제국군들.
수많은 병력들이 우리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치사한 수를 쓰는군 솔라리온.”
“치사하다니, 말을 잘 골라주게. 똑똑한 거라고.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라는 걸 모르는 가?”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솔라리온 공작.
그의 검에서 검기가 치솟았다.
“네놈의 그 안일함을 후회하고 죽어라.”
내 시선은 솔라리온이 아닌 저 멀리 몰려오는 제국군에게 향했다.
아직 멀었다.
목표로 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기엔.
“안일함이라…….”
나는 가만히 솔라리온을 지켜보았다.
“협정을 어겨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수많은 병력들이 몰려오고 있음에도 내 얼굴은 태연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지?”
머스크가 무기를 쥐었다.
에미르와 세리아도 온몸에 힘을 주었다.
“물론이지. 그러니 너희들도 걱정하지 마라.”
나는 세리아와 에미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우웅.
내 손 끝에서 피어오른 하얀 빛이 불안에 떠는 두 사람을 안정시켰다.
“에미르 솔라리온은 무조건 생포해라. 다른 놈들은 죽여도 된다.”
“알겠습니다.”
소드마스터 여섯이 검을 뽑은 채로 걸어왔다.
나는 아군들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싸우면서 뒤로 후퇴한다. 우리가 마치 지고 있는 것처럼 연출하도록.”
“연출……이요?”
“그래, 연출. 저들이 신나게 우리를 압박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스터간의 대결이 시작됐다.
머스크의 검이 땅을 갈랐고, 솔라리온의 검이 공기를 갈랐다.
마스터의 기운끼리 부딪치는 충격에 폭풍이 일었고.
“죽어어엇!”
외침 한 번에 번개가 내리쳤다.
천외천의 싸움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지형이 바뀌었다.
이것이 진짜 마스터간의 싸움이었다.
나?
나는 마스터를 상대하는 세리아와 에미르를 보조하면서.
쾅! 콰과광!
“감히 우리 앞에서 한눈을 파는 것이냐!”
“드디어 오늘 네놈을 죽일 수 있겠구나.”
3명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했다.
“마나가 충만한 이곳에서 네놈들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나는 손가락을 틀어 내 가슴을 찌르려는 소드마스터의 검을 비틀었다.
두 번째로는 번개를 내리쳐 연격을 준비하는 다른 마스터의 검로를 막았다.
세 번째로는 땅을 뒤엎어 세 번째 마스터의 중심을 무너트렸다.
전부 세리아로 인해 생긴 새로운 서클 덕이었다.
아니었다면 이보다 더 고전했으리라.
전부 이런 수작으로만 저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우린 네놈을 막기만 하면 된다.”
내 눈에도 보였다.
동문을 뚫고 들어가는 제국군들을.
“정말 네놈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끝까지 오만하구나! 모리스!”
“마탑의 보조가 없이 네놈이 정녕 우리를 이길 수 있으리라 보는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검이 쏘아졌다.
나는 서둘러 배리어를 펼쳤다.
콰아앙!
“크윽!”
폭음과 함께 마스터 3명이 하늘 높이 날았다.
순간 나를 중심으로 마나가 끊어졌다.
휘몰아치는 마나의 폭풍.
이걸 모르지 않았다.
손톱보다 작은 균열이었지만, 마나의 흐름이 끊어져 생긴 균열이었다.
나 역시 그 충격에서 온전하지 못했다.
“쿨럭!”
입에서 피가 흘렀다.
순간적인 마나의 충돌로 인해 생긴 충격에 의한 데미지가 누적된 것이다.
“와아아아!”
챙! 챙! 쾅!
성 안에서도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듯 소란스러웠다.
나는 다시금 전황을 살폈다.
제국군이 공성탑과 공성추, 사다리를 동원하며 성벽을 기어올랐다.
동문은 이미 뚫린 채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이라도 감히 마스터간의 결투에 끼어 들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나는 손을 들어 불꽃을 쏘아 올렸다.
피이이잉.
펑!
노란 불꽃이 하늘에서 터졌다.
“뭘 한 거지?”
나와 싸우던 마스터들이 미간을 좁혔다.
“네놈들이 그걸 알 이유가 있을까? 나랑 싸우기도 바쁠 텐데.”
나는 입가를 비틀며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했다.
“서클에 상처 입은 마법사가 무슨 건방…….”
말을 뱉던 소드마스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는 내 손에서 총 1024개의 매직미사일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 장기 마법.
매직미사일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귀가 어두워서 잘 듣질 못했군.”
“제, 젠장.”
총탄보다 빠르게 쏘아지는 매직미사일에 마스터가 검을 들어 막았다.
“방심하지 마라아!!”
나는 손을 들어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그물이 뒤이어 오는 마스터의 검을 휘감았다.
검로가 틀어지며 엉뚱한 곳에 검이 박혔다.
그때였다.
“커헉!”
솔라리온 공작이 머스크의 복부에 검을 꽂았고.
“주인님!”
“모리스님!”
세리아와 에미르가 무사히 성벽 안으로 대피했다.
“모리스 드미트리이!”
솔라리온 공작이 검을 들고 내게 덤빈 순간이었다.
뿌우우우.
뿔피리 소리와 함께.
구릉 너머에서 위에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때 왔군.’
갑작스러운 소리에 솔라리온 공작이 고개를 틀었다.
“이, 이게 대체…….”
저 병력들은 어디서 온 누구란 말인가.
북부?
그들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북부를 지켜야 할 병사들이 대체 왜 여기에?
눈에 힘을 집중해 구릉에 보이는 기병대를 보았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솔라리온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북방 야만족이 어째서! 제국의 땅에 있느냔 말이다!”
그의 눈이 모리스에게 향했다.
범인이 누군지 뻔히 보였다.
야만족을 끌어들여 수세에 몰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자.
야만족의 여인을 선물로 받아 유일하게 북방 야만족과 접점을 지닌 자.
“모리스 드미트리!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지 아느냐! 감히 신성한 제국 땅에 야만족을 들이다니!”
솔라리온 공작의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목에 핏대가 선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까 공작이 말한 거 같은데 전쟁엔 규칙이 없다고. 나 역시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한 거야.”
아까 솔라리온이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나는 그 때 솔라리온이 지었던 것처럼 여유롭게 웃어주었다.
“공작, 자네처럼 말이지.”
“이 빌어먹을 자식!”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솔라리온은 안다.
지금 자신이 여기서 흥분하고 모리스에게 들이박는다면, 전쟁은 대패할 것이라는 것.
어떻게든 이성을 찾고 파훼법을 찾아야 한다.
‘망치와 모루 전략.’
지금 모리스가 노리는 전술은 간단하다.
성이라는 거대한 모루에 제국군을 몰아넣고 야만족 기병이라는 가장 단단하고 매서운 망치로 내리친다.
몸이 앞으로 쏠린 제국군은 뒤를 제대로 방비하지 못해 적들에게 휩쓸릴 것이다.
북쪽의 기병대가 말을 타고 돌격했다.
와아아아!
그 소리가 솔라리온에겐 패망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들렸다.
“후퇴……. 후퇴한다. 병력을 정비하고 어서 물러나라.”
“고, 공작님?”
“말을 못 들었느냐! 전원 후퇴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이겼습니다.”
“머저리들!”
솔라리온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공작, 뭔가 단단히 오해하는 게 있는 거 같군.”
“뭐?”
“내가 언제 보내준다고 했지?”
공작은 처음으로.
사람의 눈빛을 보며 겁에 질렸다.
‘이 내가……. 나 솔라리온이……. 겁을 먹었다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착각이리라.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상황에 의해 겪는 일시적인 착란.
허나.
“자네는 내 허락 없이는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어.”
자신을 보며 웃는 모리스 얼굴을 본 솔라리온 공작은.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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