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3화 Dday
* * *
회담 당일.
솔라리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여전히 황제파 내부에선 망그레브 후작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싸워댔다.
“망그레브 후작을 정말 믿을 수 있습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는가?”
“물론입니다. 지크프리트의 수하입니다. 구 귀족파를 이끌던 원투펀치 아닙니까.”
“하지만 구 귀족파와 신 귀족파의 의견이 다르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허나 망그레브를 믿고 전군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귀족들의 의견은 완고했다.
귀족파의 귀족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
“그럼 더 좋은 방법이 있소?”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반대하는 그들도 마땅히 좋은 계책을 내진 못했다.
한참 이어진 침묵 끝에.
“차라리 회의장에 오는 모리스를 암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누군가 떠낸 아이디어였다.
“나쁘지 않군.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혼자서 수많은 기사들을 이길 순 없을 겁니다.”
“결국 회담장은 성 밖이지 않습니까. 소드마스터들이 손발을 묶는 동안 전군이 몰려들어 모리스를 죽이지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아이디어는 귀족들의 불을 지폈다.
그들은 마치 무조건 될 거라는 듯 확신을 가지고 외쳤다.
모리스를 죽이자고.
“뭐?”
솔라리온은 기가찼다.
오히려 더 얼척없는 계획이었다.
모리스가 그리 쉽게 당해 줄 위인인가.
소드마스터 셋은 덤벼야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상대 역시 소드마스터를 대동할 거다.
머스크와 레브르 백작.
그리고 자신의 딸인 에미르.
‘소드마스터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검사가 됐지.’
그렇다면 오히려 열세였다.
그들이 도망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했다.
맞서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수백 미터라고 하더라도 마스터급 검사에겐 코앞이나 다름없다.
만약 모리스가 누군가를 희생하고 자신만 살면 된다는 식으로 도망친다면?
지금의 2배가 되는 마스터들로도 불가능했다.
‘한심하군.’
솔라리온은 다른 귀족들을 보며 한숨을 삼켰다.
“우리 측 소드마스터가 훨씬 많으니 가능할 겁니다.”
“여섯이면 충분하죠!”
솔라리온은 자기들끼리 떠들며 외치는 귀족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불가하다. 그 의견은 기각하겠다.”
“왜 그러십니까? 혹여 겁을 먹은 건 아니십니까?”
“자네가 말한 대로 한다고 가정하지. 성공 확률은 몇으로 보는가?”
“무조건 백이지요!”
자신있게 외치는 젊은 귀족.
마스터 검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
“아니. 1프로도 되지 않는다. 그런 작전을 허용할 수는 없어.”
“허나 마스터가 여섯이라면.”
“마스터가 열이 넘어도 불가능하다.”
“공작님께서는 훌륭한 소드 마스터이십니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들은 인간을 벗어난 초인의 기준을 아는가?”
“…….”
“그들에게 저 성벽은 쉽게 오를 수 있는 쉬운 벽이야. 허나 일반 병사들에겐 다르지. 마스터가 많다고 해도 수천의 병사들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어. 일반 병사들과 기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그렇기 때문에 성문을 열어야 한다네.”
솔라리온은 다른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조곤하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성문을 열고 제국군을 집어넣을 수 있는 기회일세. 실패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병력을 잃을까. 3천? 5천? 그 정도 손해는 지금 우리로선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이야.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별하게 되겠지. 허나.”
솔라리온은 말을 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모리스가 다시 성벽으로 나올 일이 있을까? 망그레브라는 내부 첩자가 우리에게 협력을 할 타이밍이 있을까?”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말해보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기 위해 의견을 들었네. 헌데 어째서 그 누구도 이성적인 분석을 하지 못하는가. 내 정녕 독단으로 선택하길 바라나?”
“고, 공작님 그것이 아니오라. 저희는 저희의 생각을…….”
“시간이 없다. 탁상공론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렇다는 건…….”
“망그레브를 믿고 전진한다. 시기는 모리스가 회동을 위해 성벽 밖으로 나왔을 때. 병력 절반을 모아 동문을 친다.”
“……알겠습니다.”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일이 다가왔다.
***
“망그레브 후작.”
망그레브 후작은 숨이 턱턱 막혔다.
자신을 부르는 모리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째서 이리 아프게 들리는지.
당장이라도 그의 계획을 알았다며 목을 벨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회동을 위해 밖으로 나가있는 동안 성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러 왔네.”
“아, 그렇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동문을 잘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그가 동문을 맡은 건 천운이었다.
남문을 지크프리트 공작이.
서문은 로널드 백작이.
북문은 쟈르베 자작이.
동문은 자신이.
전부 지크프리트 공작의 인선이었다.
가장 중요한 동문.
그리고 자신이 솔라리온에게 열겠다고 했던 동문.
그 문을 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사병들이 동문에 잠복하고 있었다.
동문을 지키는 귀족파의 병사들을 죽이고 성문을 열기 위해서.
거사일은 모리스가 회동 장소인 성 밖으로 나가는 그 순간.
솔라리온 공작을 비롯한 마스터들이 시간을 끌어주리라.
모리스가 돌아왔을 때 이미 내성까지 전부 함락당한다.
그것이 망그레브의 계획이었다.
모리스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이번 회동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망그레브 자네의 공을 가장 크게 치하하도록 하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망그레브는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모리스를 비웃었다.
‘멍청한 놈. 회동이 시작되는 그 시간이 네놈의 제삿날이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망그레브는 보지 못했다.
그를 내려다보는 모리스의 눈이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는 것을.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무사히 돌아오소서.”
***
“정말 가려고?”
뒤따라오던 머스크가 물었다.
“물론이지.”
“고작 4명이다. 너랑 나 그리고 솔라리온 영애와 아가씨까지……. 네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상대는 마스터만 6명이야. 싸움이 될 거 같은가? 설마, 솔라리온 영애를 미끼로 협상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 하아, 네 생각을 전혀 모르겠다. 나도 한 팔이 없다. 솔직히 마스터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괜찮다. 버텨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여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지만, 후우……. 모르겠군.”
“믿어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 뿐이다.”
“그래야지. 그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스크를 다독인 나는 에미르와 세리아를 보았다.
“준비됐는가?”
“물론이에요.”
“예!”
에미르와 세리아가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에미르는 늘 사용하던 검을, 세리아는 세바스찬이 새로 제작해 준 마법서를.
저 마법서는 세리아의 매혹향을 증폭시켜 주리라.
“진짜 실전이다.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이라고 생각하도록. 잔뜩 긴장해야 한다.”
“몇 번이고 해봤어요. 자신 있어요.”
“저, 저도요!”
마스터의 싸움은 다르다고 주의를 주었다.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녀들에게 충분히 주의를 주어야겠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나는 하늘을 보았다.
중천에 뜬 해가 눈이 부셨다.
“이동하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문을 열어라!”
수도의 성문이 열리고 도개교가 내려졌다.
기기기긱!
쿵!
나와 세리아, 에미르 그리고 머스크는 각자 말을 몰고 성 밖으로 나왔다.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공기가 변했다.
싸늘했다.
성벽과 황제군의 진지 중앙에 세워진 작은 천막.
저곳이 오늘 내전의 승부를 결정지을 거대한 무대였다.
저 멀리서 솔라리온이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마스터급 검사 다섯이 함께 따라왔다.
“긴장되는군.”
머스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하지 마. 곧 잘 끝날 테니까.”
모두가 천막 앞에 도착했다.
“제 시간에 왔군.”
솔라리온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이라.”
내 대답에도 공작은 나를 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내 뒤에 있는 에미르에게 향해 있었다.
“자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세.”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누구처럼 폭군 밑에서 아양 떨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아양이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나는 제국을 위해 일할 뿐이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신경전이 오갔다.
“자세한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도록 하지.”
“좋네.”
두 남자는 각자의 의도를 숨긴 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파와 귀족파의 평화 협정이 시작되었다.
***
“모두 준비하라.”
망그레브 후작이 목소리를 낮췄다.
성벽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그는 목소리를 낮춘 채 그림자에 숨어있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곧 거사를 치를 거다. 다들 죽을 각오로 덤비도록. 우리의 목표는 성문을 여는 거다. 동문의 병사들에겐 모두 고해놓았다. 우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모두 베도록.”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그레브 후작은 다른 성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이들은 이미 멀리 있다.
지크프리트 공작도 로널드 백작도 모두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순조롭다.
너무 순조로워서 기분이 들떴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순간 망그레브 후작의 머릿속에 의심이 똬리를 틀었다.
‘혹시 이 모든게 모리스의 계책이면 어쩌지?’
그가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고, 자신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거라면?
최악의 가정이었다.
망그레브는 고개를 들어 동문의 구조를 보았다.
성문을 뚫기 어려우나, 한 번 뚫으면 내성까지 곧바로 진격할 수 있는 동문.
그와 동시에.
수비를 위해 남문과 북문과의 통로가 훤히 뚫려 있었다.
황제군이 재빠르게 진격해서 거점을 잡으면 남문과 북문도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구조지만.
‘상대가 더 빠르다면.’
오히려 동문에서 병력이 갇힐 수도 있는 구조였다.
그는 병력의 움직임을 보았다.
북문과 남문.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아무리 반응이 빨라도 동문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병력이 오는 건 어려울 것.
거기다가.
‘우리 사병들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마스터에 준한 기사가 없다면 말이다.
병력 대 병력 싸움에선 수가 많은 쪽이 승리한다.
그리고 황제군이 귀족의 군대보다 몇 배, 아니 열 배는 더 많았다.
20만의 황제군과 2만의 귀족군.
성문이 열리면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했다.
걱정하지 말자.
만약 알고 있었다면 최소한 머스크는 성 안에 남겼으리라.
‘모리스는 모른다.’
몰라야만 한다.
망그레브는 침을 꼴깍 삼킨 뒤, 성 밖을 보았다.
모리스가 솔라리온과 협상을 위해 들어간 지 벌써 1시간이 넘었다.
이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으리라.
그것을 확인한 후작은 병사들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사를 시행한다. 신호를 보내라.”
고개를 끄덕인 사병들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끄윽!”
“어억!”
“뭐, 뭐야? 네놈들 뭐야!”
병사들의 비명이 짧게 들렸고.
풀썩.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망그레브 후작이 선 동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사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