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19화 D3 류클리드 조교(1)
* * *
“진심……이십니까?”
“그래.”
로널드가 말도 안 된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황제가 정녕 갱생이 되리라 보시는 겁니까?”
“그건 모르지.”
“그리고 설사 갱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이런 분쟁이 없으리라 보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내가 황위를 가질까?”
“차라리 그게 낫지요!”
“내전이 커질 거야. 나라가 나뉘어지겠지.”
“그게 낫습니다. 제국 째로 멸망할 바에는 말입니다.”
로널드 백작이 책상을 내려쳤다.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마법부와 마탑의 힘이 강해진다고 황제가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정통성이 없는데 귀족들이 가만히 있겠나.”
최대한 싸움을 최소화 시키면서 이번 내전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은 황제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명분 때문입니까?”
“그래.”
“그럼 그 명분,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명분을 만든다?”
“예.”
“어떻게?”
“황제가 여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장관님이 황제를 품으면 됩니다. 황제가 장관님의 아이를 품고 있다면 다른 귀족들도 감히 말을 못할 겁니다.”
“뭐?”
로널드는 최선의 계책을 냈다며 으쓱거리고 있었다.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이 말고 더 좋은 계책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차라리 황제를 복권시키는 것보다 낫습니다.”
“곤란하군.”
남자였던 여자를 취할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황제가 내게 황위를 주겠다는 말이 더 현실성 있게 들리는군.”
허나 로널드의 눈빛은 결연했다.
“제겐 황제를 갱생시킨다는 말이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게 싫으시다면 황제를 폐위시키십시오. 그렇지 않으신다면…….”
쾅.
“저는 여기서 그만두겠습니다.”
“전쟁이 커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가.”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던 걸까.
어쩌면 류클리드가 주인공이었기에 희망을 갖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네가 보기에도 불가능하다는 건가?”
“예.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황제가 설사 갱생을 한다고 해도, 그 아래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소한의 믿음은 가지고 싶었다.
내가 보았던 작품의 주인공이니까.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다.
“그럼 내기 하나 하지.”
“무엇입니까.”
“황제가 진정으로 갱생한다면 내 의견으로 따르는 걸로 하자고.”
“기한은 얼마입니까.”
“회동이 일어나는 사흘 뒤.”
“그거면 되는 겁니까.”
“그 안에 갱생하지 못하면 어차피 무의미하다.”
“좋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제 뜻대로 하시죠.”
“알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로널드가 물었다.
“어떻게 갱생시킬 생각이십니까?”
나는 대답 대신 웃을 뿐이었다.
***
로널드가 나가고.
“하아.”
나는 의자에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로널드의 말이 이해된다.
‘갱생이라.’
가능할 거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조교 아니겠는가.
그녀가 황제였을 때 저질렀던 잘못을 깨우치게 할 생각이었다.
덮치지 않아도 방법은 많지.
이미 여러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녀가 저질렀던 수많은 일들을.
문제는.
‘그게 어떻게 발현되느냐.’
적어도 긍정적이었으면 좋겠군.
“주인님?”
어느새 방에 들어온 세리아가 물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걱정이라. 있긴 하지.”
“아까 로널드 경이 화를 내면서 나갔어요. 혹시 고민이 있으신 거라면 말씀해주세요. 저라도 괜찮으면 들어드릴게요.”
“화낼 텐데.”
세리아라면 무조건 화를 낼 거다.
분명.
“괜찮아요.”
그러나 류클리드를 조교 하기 위해선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간결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일명 류클리드 조교.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세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주인님, 혹시 미치셨어요?”
“세리아, 네가 말하니 데미지가 좀 크군.”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예요?”
“한 번은 믿어보려고 한다.”
“뭘 믿으시려는 건데요.”
“내 실력을 말이다. 너 또한 바뀌지 않았나.”
“이거랑은 다르죠. 그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괜찮을 거다.”
악녀로 불렸던 세리아가 이성적으로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뭐죠?”
“저 방에 뿌린 매혹향을 더 짙게 드리워라.”
“지금 보다 독하게요? 류클리드는 버티지 못할 거예요.”
“의식만 흐려지게 만들면 된다.”
“정말이죠?”
“그동안 나는 황궁에 다녀오도록 하지.”
“황궁엔 왜……?”
“확인할 게 있어서.”
“알겠어요.”
조교 전에 황제가 지금까지 황궁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의 행적을 트라우마처럼 떠올리게 할 것이니.
한 번은 가야겠지.
세리아를 보내고.
나는 짐을 챙겼다.
마나가 균열이 난 곳에서 마법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아티팩트를 충분히 챙겼다.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황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콜록콜록.”
황성의 공기는 언제 맡아도 불쾌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마나 한 줌 없는 땅.
내전에 승리한 뒤부터는 이곳을 관리하는 하녀들마저 전부 내쫓았다.
그야말로 아무도 없는 비어 있는 땅.
죽은 땅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황제가 바뀐다면 그 누구도 찾지 않으리라.
“여기부터는 나 혼자 들어가겠다.”
“알겠습니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황제가 업무를 보던 집무실과 알현실 그리고 대전까지.
오늘은 이곳에서 류클리드가 저질렀던 만행을 살필 생각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아티팩트를 설치했다.
미리 마법수식을 새겨두었다.
과거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홀로그램처럼 보여주는 영사기.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말이다.
나는 영사기를 틀었다.
지지직.
약간의 노이즈를 시작으로 선명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 죽어어어!
류클리드가 검을 들고 하인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쯧.”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광기와 살기.
사람이 어쩌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인지 놀랄 정도로 짙었다.
나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솔라리온이 옆에서 소리치지만, 류클리드는 듣지 않았다.
‘얘가 정말 남자 주인공이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갱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믿었던 나마저 답이 없다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바꿀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
막연한 자신감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넌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거냐.”
생각보다 심했다.
갱생이 가능할까?
……여.
그때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죽여.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
다 죽여 버려.
“넌 누구냐?”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형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귀신인가?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놈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티팩트로 마나를 일으키려던 나는 손을 거뒀다.
크크, 네놈도 내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 또한 지배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구나. 이곳에 어울리는 남자야. 헌데…….
녀석의 눈이 내게 향했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로군.
“정체가 뭐냐?”
네놈은 나를 알고 있을 텐데.
녀석이 씨익 웃었다.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제인이 내게 말했던 그 이름.
흡수의 초월자.
마공을 배웠다는 광인.
“흡수의 초월자인가?”
크크크, 잘 알고 있군. 제인이 알려주던가?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었다.
“저건 네놈이 저지른 짓인가?”
뭐가? 저놈? 크하하하하핫!
광인이 류클리드의 과거를 보며 웃었다.
내가 그랬다. 헌데 나 때문에 저렇게 되었다고? 재미있어 보여서 부추기긴 했지만, 내가 시작은 아니지. 나는 이미 미쳐 있던 놈을 밀었을 뿐이야.
“결국 류클리드의 본성이라는 뜻이군.”
그래.
더욱 심란해졌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곳은 나 때문에 생긴 공간이니까.
“세상을 갈랐다는 초월자가 너인가.”
그래. 그 부작용으로 육체를 잃어 버렸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때문인가.
나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광인이 혀를 찼다.
“왜 내게 보이는 거지?”
네게 자격이 있는 뜻이지. 나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놈은 이곳을 지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놈들만 가능하니까.
광인이 손가락으로 황좌를 가리켰다.
“그 자격이란 건 황가의 핏줄인가?”
아니. 다른 이들의 위에 오르는 것이 익숙한 놈들. 수많은 사람에게 경외를 받는 놈들 그런 놈들에게만 보인다.
그런 조건이라면 보일만 하군.
나는 그런 시시한 생각하며 놈을 보았다.
네놈이라면 이 자리를 가질만한 자격이 되겠군.
광인이 황좌를 두드렸다.
황제가 여자가 됐는데 탐나지 않는가?
“뭐?”
어차피 암컷들은 물건 박으면 꼼짝 못하지 않던가.
“그놈은 여자가 아니다.”
보지 달렸으면 다 암컷이지.
녀석이 허리를 앞뒤로 왕복했다.
그놈도 다 똑같은 년이야. 자지 박아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면 네놈한테만 안절부절못할 거다. 그럼 어떻게 될까?
광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제 손으로 네게 왕관을 건넬 거다. 자지 박아 달라면서 말이지.
“황제의 손으로 왕관을 받아라?”
싫은가?
“왜 류클리드가 네 말을 들었는지 알겠군.”
크크, 욕망에 솔직한 거지.
황제, 류클리드가 자기 스스로 왕관을 넘기게 한다.
정통성은 물론이고 힘까지 얻을 수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꽤 솔깃했다.
처음 생각했던 모든 계획을 수정할 정도로.
“위험한 존재였군.”
크크, 그게 내 매력이지. 역대 황제들이 이곳을 수도로 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흡수의 초월체.
힘을 흡수한다는 뜻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욕망을 자신대로 마음껏 요리하며 그 사람 자체를 흡수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할 거야? 따 먹을 건가?
광인이 허리를 까딱거렸다.
“고민해 봐야겠지.”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류클리드의 방 밖에서 매혹향을 뿌리고 있는 세리아를 보았다.
“어? 주인님,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복귀한 나를 본 세리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매혹향은 얼마나 되고 있지?”
“거의 다 뿌렸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예요? 황궁에서 조사할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굳이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말을 마친 나는 문고리를 쳤다.
“조교를 시작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