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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16화 (116/174)

〈 116화 〉 115화 개전 D­5

* * *

“이, 이게 대체?”

류클리드는 활기찬 수도를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도는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쳤다.

“황제가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아무도 슬퍼하는 이가 없다고?”

그녀는 함께 걷는 세리아를 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럴 리가 없잖아! 너희가 숨긴 거지? 제국민들에게 거짓 소문을 퍼트린 거잖아!”

아무리 소리쳐도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가시죠.”

사무적인 목소리에 류클리드가 흠칫 놀랐다.

류클리드는 세리아를 따라 성벽에 다가갔다.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메이드 복을 입은 세리아를 보자,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세리아, 너는 이 제국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모리스 주인님께서 제 신분을 다시 돌려놓아주셨습니다.”

“허, 감히 내 명령을 어기고 다시 신분을 돌려놨다고?”

“그렇습니다.”

“웃기지 마! 제국의 황제가 여기 있다고!”

“누가 믿을까요? 이리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제국의 황제라고. 저들이 아는 황제는 남자이신 류클리드 전하일 텐데요.”

“뭐……라고?”

“아닙니다. 계속 가시죠.”

세리아가 피식 웃으며 앞장섰다.

류클리드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세리아의 뒤를 따랐다.

성벽에 올라갈 때까지.

그리고 성벽 너머 넓은 평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그녀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어떠십니까?”

“뭘.”

“황제 폐하, 아니 류클리드가 사라진 지금을 보고 있는데요.”

“지금 나를……. 놀리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하, 하하…….”

류클리드가 힘없이 웃었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류클리드의 눈에 빛이 꺼졌다.

“그런가……. 그들에게 나는 이런 의미라는 건가?”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쥔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조금만 있게 해줘.”

류클리드는 혹시나 멀리서라도 뭔가 오지 않을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엔 그 어떤 먼지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성벽에 오른 여체화 된 류클리드를 본 수많은 제국군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을 볼 수 없었고.

그들은 그녀가 류클리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

“망그레브 후작.”

“무슨 일로 불렀소?”

망그레브 후작은 자신을 부른 모리스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떠올렸다.

수도에 이어져 있는 수로, 병사들의 매수, 실력이 뛰어난 기사를 통한 잠입.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자를 속일 수가 없어.’

제국 최고의 마법사였다.

감시를 위해 수도 주위에 무슨 짓을 했으리라.

그곳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모리스의 호출을 받아들였다.

“내 그대에게 임무를 주고 싶어서.”

“임무? 지크프리트 공작님의 신뢰를 받았다고 나까지 그대의 부하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나는 명령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럼?”

“부탁하는 거네.”

“…….”

망그레브는 모리스에게 다가갔다.

“뭘 원하는 거지? 병력을 더 차출하길 원하나? 아니면 바깥에 있는 귀족파 병력들과의 통신을 이어주길 바라나? 부탁이라면 뭐든 되는 줄 아는 장관님의 부탁이 궁금하군.”

“간단하네. 저 밖에 있는 솔라리온 공작과 회담을 주선해줬으면 하는군.”

“뭐, 뭐?”

“회담. 평화의 회담 그런 거 말이네.”

“…….”

망그레브의 눈이 굴러갔다.

언제 어떻게 성문 밖을 나갈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헌데 자신에게 성문 밖을 나갈 기회를 준다니.

‘함정인가?’

의심이 들었다.

너무 좋은 기회였기에.

“이유를 묻고 싶소. 우리가 수성하면 지지는 않을 거요. 아무리 많은 병력이 오더라도 저들을 이길 수는 없소.”

망그레브 후작의 말에 모리스가 눈을 감았다.

“중대한 임무를 맡아야 하는 그대이기에 나 역시 솔직해지도록 하지.”

잠깐의 침묵.

“내부에 배신자가 있네.”

“뭐, 뭐?”

망그레브 후작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홍련의 보고를 들었네. 황제파 측에 붙고자 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그, 그렇소?”

“주동자로 짐작되는 이가 누구요?”

“론든 백작이네.”

귀족파 중에서도 이번 혁명에 가장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작자였다.

“그자가 다인가?”

“백작을 중심으로 세력이 규합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네.”

“위험하군.”

“내부의 적이 세력을 키우기 전에 유리한 협상을 진행할 생각이야.”

“허나, 황제를 고문한다고 하지 않았나?”

“배신자를 골라내기 위한 속임수이지.”

“……그런가?”

망그레브 후작은 손이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배신자들이 활동하기 전에 협상을 진행한다……. 나쁘지 않은 거 같긴 한데. 저들이 잘 받아주겠나?”

“그러니 망그레브 후작이 필요한 걸세. 그나마 황제파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높지 않은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뜨거워졌다.

‘모리스는 지금 헛다리를 짚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그가 오해하고 있는 지금.

평화의 사절이라는 좋은 핑계를 대고 간다면 그가 원하는 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꿀꺽.

“그렇다면 내가 맡도록 하지.”

“아, 혼자 가는 것은 불안하니 호위를 붙여주겠네. 내일 함께 갔으면 좋겠군.”

“누구를……?”

“머스크가 함께할 거야.”

“아, 그라면 안심이지. 언제가 좋겠나?”

“내가 원하는 시일은 6일 뒤. 이왕이면 더 빨랐으면 좋겠군.”

“알겠네.”

충분히 속일 수 있다.

망그레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멍청한 노친네.’

모리스가 그런 망그레브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

“긴장이 풀렸군.”

나는 멀어지는 망그레브를 보며 중얼거렸다.

몰래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 거다.

그거 단순하게 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저것밖에 없었을 테니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보이는 유일한 탈출구.

그게 썩은 동앗줄인지 아닌지 살필 겨를은 없었을 거다.

“감시하지는 않으십니까?”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루이스가 물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 어차피 자기들의 작전 거행일을 내게 알려줄 텐데.”

망그레브는 모두가 안심할 때를 노릴 거다.

그 때가 언제겠는가.

귀족파와 황제파가 서로 평화 회동을 갖는 때.

바로.

‘6일 뒤겠지.’

보지 않아도 알았다.

끼이익.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주인님, 저 왔어요.”

류클리드와 함께 나갔던 세리아였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매혹향을 쓴 탓인지, 조금은 지쳐 보였다.

“류클리드 반응은 어떻지?”

“예상대로였어요. 성벽 위에서 한참을 밖을 보던데요.”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전혀요. 아마 나가려고 했다면 잡지 못했을 거예요.”

몸이 바뀌었지만, 류클리드에게 남아 있는 마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준급 기사였던 자신의 마나를 사용하기만 했다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을 거다.

물론 그런 시도를 했다면 내가 잡았겠지만.

“반은 넘어왔군.”

근위병들을 통해 그녀가 해왔던 짓을 그대로 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류클리드는 어쩌실 건가요?”

“한동안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근위병들은 전부 진지로 복귀시켜야겠군.”

류클리드와 있었던 기억은 지워야겠지.

쓸데없이 입을 놀리면 그것도 귀찮아지니까.

“알겠어요.”

세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

근위병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조심히 들어가게. 내가 보낸 소정의 수고비는 고생한 그대들을 위한 걸세.”

“……네, 알겠습니다…….”

근위병들이 흐느적거리며 집에 돌아갔다.

기억을 지운 후유증이었다.

며칠은 고생할 거다.

짧은 후유증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 걱정은 없다.

저들을 모두 돌려보냈을 때는.

“밤이군.”

이미 해가 떨어져있었다.

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모리스님.”

에미르였다.

그녀가 가을용 외출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에미르……?”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왜 여기에 있나? 저택으로 돌아간 걸로 알고 있었는데.”

“혼자 돌아가기 적적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같이 가지. 저택까지 데려다주겠네.”

나는 에미르를 마차에 태우려고 했다.

“저, 모리스님.”

“뭐지?”

“그…….”

꼼지락거리던 에미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은 같이 걸어가실래요? 오늘은 조금 걷고 싶어서요.”

“아…….”

나는 에미르를 보았다.

에미르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가을 옷이지만, 노출이 꽤 심한 옷이었다.

어깨선이 드러나 있는 활동성 좋은 드레스.

“그럼 그 전에.”

나는 외투를 벗어 에미르의 어깨에 둘렀다.

“밤공기가 차다.”

“아, 고마워요.”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어깨를 맞추며 함께 걸을 뿐.

“내가 할 말이…….”

“저…….”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해.”

“아, 아니에요. 그냥 오늘 어떻게 지내셨는지 물어보려고요.”

“저 성벽 너머에 있는 적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어. 바쁘게 지냈지.”

“맞네요.”

에미르가 멋쩍게 웃었다.

“솔라리온 영애……. 아니, 에미르.”

“아, 예! 모리스님.”

이름을 부르자, 에미르가 밝게 웃었다.

“에미르는 오늘 어떻게 보냈나?”

“아, 오늘은 다른 기사들과 수련을 했었어요. 지크프리트 가문에도 훌륭한 기사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분들 검이 솔라리온이랑은 조금 다른 게…….”

나는 신나게 말하는 에미르를 보며 웃었다.

“아름답구나.”

“예?”

“아름답다고 했다.”

“아…….”

그녀의 몸에서 열이 오르는 거 같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모리스님도……. 멋있으셔요.”

“그런가…….”

나는 에미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생각보다 부끄럽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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