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113화 개전 D6
* * *
“하아,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솔라리온 공작은 한숨을 퍽 내쉬었다.
남부와 동부의 병력이 모두 모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서부의 병력은 도무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부 병력을 막을 변수가 누구지?
솔라리온은 생각했다.
그 지역에 변수가 있다면 딱 하나.
‘지크프리트…….’
서부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지크프리트.
그 때문에 귀족파의 대부분 영지는 서부 쪽에 몰려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귀족파 귀족들은 서부를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서부의 도착이 늦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공격을 당한 건가?”
수도에서 지크프리트가 병상에서 일어나 귀족들을 규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크프리트가 일으킨 병력이 서부를 막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후우.”
한숨이 퍽 나왔다.
병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문제는.
“모리스 드미트리는 여전한가?”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 마법을 써놓고도 여전하다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솔라리온의 시선이 전방에 놓인 거대한 크레이터에 향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생긴 흔적.
저 안에 있던 수천 명이 사라졌다.
압도적인 위력에 모였던 군대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국 침공을 며칠 미룰 수밖에 없었다.
“쯧.”
이왕이면 병력을 더 모아서 가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황제폐하는 어떻게 계실까요?”
“그 모리스라도 황제폐하를 어쩌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모를 일입니다. 만약 그가 황제폐하를 살해라도 했다면…….”
“그 때는 전면전이지.”
제국이 둘로 갈라질 것이다.
“그런데 북부는 아직도 소식이 없나?”
“그렇습니다.”
“무슨 일인 거지?”
“파악하는 중입니다.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 쪽이 배신할 가능성은?”
“없지는 않습니다. 모리스가 북부에서 선두로 과거 반군을 제압한 전적이 있어서 북쪽의 여론이 매우 좋습니다.”
“위험하군.”
만약 북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그대로 뒤를 맞는다는 뜻이었다.
“북부를 대비해 보냈던 병력들에게 전하라. 무조건 골목을 사수하라고.”
북부에서 수도로 오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골목.
그곳만 지킨다면 북부 방위군이 배반하고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솔라리온 공작은 멀리 성곽을 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들에게 넘어간 적이 없는 제국의 성벽.
황제군이 이기기 위해선.
저 성벽을 어떻게든 넘겨야만 했다.
‘제국 최강의 마법사를 뚫고 말이지.’
가능할까?
그는 수많은 전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정면돌파, 병력의 정예를 몰고 성벽 일부를 들어가 쳐들어가는 일점 돌파.
전부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을 해도.
‘너무 변수가 커.’
모리스가 보여주었던 그 마법.
메테오.
다시 한 번 쓸 수 있는가?
쓴다면 얼마나 강한 위력을 가지는가.
모든 것이 물음표였다.
“하아.”
한숨이 더욱 커졌다.
자신은 무엇을 믿고 성을 공격해야 하는가.
***
“그러니까……. 황제가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망그레브 후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황제가 왜 쫓겨났는가.
황후를 고문해서 쫓겨난 거다.
제국의 태양이라는 이유로 제국의 달인 황후를 고문했기에.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이어진 고문들.
그것이 이유였고.
발단은 귀족들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감히 제국의 신하가 황제를 고문하는가.”
무슨 명분으로.
망그레브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뇌물을 받은 적이 없다.
귀족들이 병력을 일으킨 발단의 스위치엔 그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머저리들 그 마법사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를 갈았다.
지크프리트 공작마저 그에게 홀렸다.
황제를 폐위시키는 것에 동의하다니.
제국을 무너트리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멍청한 짓이야.’
모두가 돌아버린 것 같았다.
한참 고민하던 망그레브 후작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자신은 귀족이기 이전에 제국의 신하였다.
‘지금이라면.’
자신이 황제파로 돌아선다고 해서 견제할 인물들은 없을 거다.
황제파들에게도 수도를 함락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면?
그것은 반전의 계기였고.
승리의 열쇠였다.
‘최소한 내쳐지지는 않겠지.’
망그레브 후작의 기반 역시 탄탄했으니.
황제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오늘 밤 비밀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나간다.”
“……알겠습니다.”
해보자.
이대로는 안 된다.
***
“망그레브 후작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루이스의 보고를 들은 나는 지도에 올려진 장기말을 움직였다.
망그레브의 상징이 걸린 말.
그 말은 성 밖에 있는 황제군에 닿았다.
“막지 않으십니까?”
그 모습을 보던 로널드가 물었다.
“왜 막아야 하지?”
“황제파의 군대와 내통해서 성문을 열어줄 것이 뻔합니다.”
“뻔하지. 어떻게 할지 뻔해. 그런 거라면 우리가 이용할 수 있지 않겠나?”
“허나 그들의 타이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저들은 무조건 다음 주 주말에 일을 벌일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망그레브 후작이 그날이 아니고선 움직이지 않게 만들 것이니까.
“허나 위험합니다.”
“위험하나, 성공하면 승리가 확실해진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성공 가능성 때문에 고민이라면 나를 믿어라.”
나는 부복해 있는 루이스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관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녀의 눈빛은 멍한 상태였다.
이미 한 번 정신이 만져진 상태.
물론 그녀 본인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홍련단의 전부가 내 손아귀에 들어온 이유.
불감증이었던 루이스가 새로운 종류의 쾌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홍련단의 대장인 그녀가 자신의 부하들을 현혹시켰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웃으며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이익…….”
루이스가 소리를 죽이며 몸을 떨었다.
의식을 매만지는 감각에 중독된 듯.
마치 고양이처럼 내 손에 머리를 비벼댔다.
“하아, 알겠습니다. 홍련단을 감시로 더 보내실 생각이시군요.”
“그런 셈이지.”
잠시 말을 멎은 나는 로널드를 보았다.
“망그레브 후작이 황제파와 밀담을 하고 올 때 잠시 그를 찾아가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로널드 백작 역시 고개를 숙였다.
***
“이이익!”
류클리드가 족쇄에 묶인 채 버둥거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말 오지 않는 건가?
군사들이 왔다면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야 하는데.
‘솔라리온…….’
네놈들 설마 나를 배신한 거냐?
그렇지 않아도 이상했다.
분명 황궁에서 모리스의 침입을 막기로 했던 솔라리온이었다.
모리스가 최강의 마법사라고는 하나.
솔라리온과 그가 이끄는 기사단은 약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싸운다면 그들의 진입을 막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마법도 쓰지 못하는 황궁에서 마법사인 모리스에게 졌다니.’
류클리드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어찌 기사가 황궁에서 마법사에게 진단 말이냐.
전부 의도된 거라면?
그들도 모리스와 한패였다면?
“으으윽!”
알아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묶인 채로 지하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어찌 탈피할 수 있을까.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근위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를 범하고 유린했던 놈들.
외부의 소식을 가지고 올 사람은 이들이 전부였다.
그렇다는 건…….
어떻게 해서든 저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
지금은 그녀가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힘과 권력 모두를 잃은 상태.
미래의 권력을 주겠다고 말한다면?
통하지 않았다.
그녀를 범할 때 몇 번이고 말했으나 듣지 않은 놈들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 있는 유일한 카드패는.
그녀의 몸.
여자로 변한 류클리드는 매력적으로 생겼다.
수많은 여자를 품어 본 그였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렇다는 건.
이걸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것.
‘이……이 내가. 황제인 류클리드가 이딴 놈들에게 아양을 떨라고?’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어.’
까드득!
류클리드는 이를 갈았다.
숨을 고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기…….”
그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옆에 앉은 채 물을 마시고 있는 근위병에게 말했다.
“뭐야?”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하, 이년 목소리 봐라. 자기가 황제였다는 것도 전부 다 잊었나본데? 목소리 기어들어가는 거 보이냐?”
근위병들이 낄낄거렸다.
“우습네.”
참자.
어떻게든 참아서 알아내야만 했다.
“저 밖에 병사들이 오지 않았어?”
“하, 이거 봐라? 지금 우리한테 그걸 물어보는 거야?”
그녀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경비원.
오늘 류클리드를 범하기 위한 근위병은 총 4명.
그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 빨아 봐. 그럼 말해줄 수 있을지도?”
근위대 중 대장이 자신의 물건을 가리켰다.
늘 억지로 당해왔다.
이걸 내 의지로 빨라고?
“싫으면 말 못 하지.”
근위병들이 키득거렸다.
이 치욕.
잊지 않겠다.
네놈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해 놨다.
모든 것이 끝나고 네놈들을 모두 죽이고 말리라.
“아, 알았어.”
류클리드는 족쇄로 묶인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근위병들에게 다가갔다.
경비대의 빨딱 선 물건이 까딱거렸다.
그녀는 천천히 그 물건에 입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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