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2화 개전 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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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세리아와 격렬한 섹스를 이어갔다.
“하아, 하아앙! 주인니이이임!”
세리아의 신음이 저택을 울릴 정도로 요란했다.
마법으로 막지 않았다면 수도의 시민들이 모두 들었으리라.
나는 발가벗은 채로 헐떡거리던 세리아를 떠올렸다.
훌륭하고 보람찬 밤이었다.
‘나았어.’
망가졌던 서클이 대부분 나았다.
며칠, 아니 몇 달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상처였다.
서클을 이루는 막이 얇아져서 마나를 제대로 돌리지 못할 거라고 봤는데.
우우웅!
마나는 시원하게 돌아갔다.
세리아가 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팽팽 돌아가는 마나를 다시 한 번 회전시켰다.
깨끗한 마나가 몸을 돌아, 방금까지 가졌던 피로를 씻었다.
“후우.”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세리아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수도는 이전과 다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제국의 군대가 포위했다는 것.
그로 인해 오가던 수많은 물자들이 통제되었다는 것.
여러 이유 때문에 웅성거렸다.
또 다시 벌어진 내전.
제국민끼리 창을 겨누는 이 상황을 좋게 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등장하자.
그나마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모두 쏙 들어갔다.
지금 저들에겐 나는 전쟁을 부른 원흉이나 다름없었다.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는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군.’
나는 거리를 지나 병사들의 경계가 삼엄한 외성으로 향했다.
제국군의 포위로 떨어졌던 사기는 내가 어제 보여주었던 신위로 인해 떠오른 상태였다.
“와아아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병사들의 사기는 충만했다.
“적들의 분위기는 어떻지?”
나는 지크프리트 공작 밑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머스크에게 물었다.
소드 마스터의 기감은 저 멀리 사람들의 기세 또한 알 수 있으니까.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지. 상대 마법사 중에 자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들 거라고 봤는데 어제 보여준 마법은…….”
머스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법 한 번에 천이 넘는 정규군이 사라졌다.
그 덕에 수도를 포위한 적들의 배치가 훨씬 뒤로 물러났다.
제국 편에 선 마법사들은 절망적일 거다.
거대한 벽을 마주한 느낌일 테니.
“굉장했다.”
머스크는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그런가?”
“그 마법은 어디서 배운 거지?”
“비밀이다.”
나는 훨씬 더 밀려난 라인을 보았다.
내 마법이 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뒤로 친 거 같은데.
‘닿지.’
문제는.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적들의 침공을 늦추기 위한 마법이었던 것.
목적을 달성했는데 굳이?
“언제쯤 들어올 거라 예상하는가?”
“이 바람이 눈이 되기 전에는 들어올 거다.”
차가운 가을바람.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고 있었다.
“멀지 않았군.”
“그런데 방법이 정말 있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끄응……. 알았다.”
나는 북에서 내려오고 있을 백설의 군대를 떠올렸다.
그들이 도착하는 날.
그 날에 제국군이 성을 공격하는 날이 될 거다.
‘우리가 승리할 날이기도 하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웃으니 소름 돋는구먼.”
***
성벽에 올라 전황을 살핀 나는 감옥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바쁘다.
류클리드.
내기를 건지 하루.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가?”
“아무렇지도 않아.”
오늘도 류클리드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상처 입은 그녀의 몸을 회복했다.
“군대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미 사방팔방 깔린 것이 제국군이었지만.
류클리드는 몰랐다.
내가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걸.
바깥의 소리와 진동 하나 느끼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세상은 오로지 이 감옥 안 뿐.
“치잇!”
류클리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국군이 몰려온다면 밖이 보이지 않는 여기까지 함성이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오지 않은 것인가?
‘그럴 리가 없어.’
전부 제국에 충성하는 이들이었다.
솔라리온을 비롯한 황제파 귀족들 말이다.
자신을 따르고 제국에 충성하는, 제국 최고의 정예들.
지금은 오지 못했다지만 조만간 올 거다.
무슨 이유로 오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믿고 있나 보군.”
“뭐?”
“신하를 죽이고 패악질을 부린 미친 황제를 누가 따를까. 그리 생각하지 않나?”
“…….”
류클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쓸데없는 소리다.
자신을 혼란시키고 마음을 무너트리려는 모리스의 간계다.
유명하지 않은가.
고문과 괴롭힘으로.
그걸 알기에 세리아를 조교시키는 담당으로 뽑았고.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악독한 인물인지.
“나를 현혹시키지 마.”
저항하는 류클리드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완고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허나.”
모리스는 천천히 말을 씹어 뱉었다.
“너를 구할 제국군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거다.”
“흥!”
“고집이야 이미 알고 있지만, 알아서 잘 버티리라 믿지.”
모리스가 자리를 떠났다.
“그럼 오늘도 고생해라.”
그가 떠난 자리엔.
“흐윽,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근위대들이 있었다.
오늘도 이놈들이다.
매일 자신을 따 먹는 빌어먹을 놈들.
근위대들의 거친 손이 류클리드의 부드러운 팔을 잡았다.
“꺄아아악! 그만 해애액!”
류클리드는 몰랐다.
그녀는 벌써 그 누구보다 여성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걸 말이다.
***
“언제까지 황제를 보여주지 않을 셈이오?”
귀족 중 하나가 내게 시비를 걸었다.
망그레브.
지크프리트에 의해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내가 귀족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귀족이었다.
“황제?”
“그렇소! 지금 드미트리의 저택에 감금되어 있다고 들었소!”
“망그레브 후작이 왜 황제를 궁금해 하는 거지?”
“신하의 당연한 도리요!”
“이제 와서 황제를 챙기고 싶다는 건가? 일이 잘못됐을 때 살 길이라도 찾으려고?”
언짢았다.
어렵게 병력을 일으킬 때는 도움 하나 없던 놈들이.
지금 영향력이 조금 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덤비는 꼬락서니가.
지크프리트 공작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도 막을 명분이 없다는 뜻이겠지.
당장이라도 마법을 쏘고 싶은 마음 투성이었다.
그러나 참는 이유.
이들은 내전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카드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니외다. 그래도 제국의 황제요! 적어도 황성 근처에 구금하는 것이 맞지 않겠소?”
망그레브 후작의 말을 듣는 순간 코웃음이 나왔다.
‘첩자다.’
스파이.
황제를 다시 황궁 근처에 두자?
웃기는 소리.
마법사인 내가 황궁에서 힘을 못 쓰는 걸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수작이었다.
명분은 좋지만.
“그건 안 되겠군.”
“왜 그렇소?”
“황제가 황궁 안으로 들어가면 감당이 안 되거든.”
“모리스 장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로군?”
“뭐?”
“정녕 본인이 황제가 되고 싶은 것이오? 그렇지 않고선 어찌 황제를 보이지 않는 것이외까?”
그 한 마디에 주위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정말 내가 황제가 되려는 것인가 하는 의심.
그렇게 되면 제국은 어떻게 되냐는 추측.
어디에 줄을 설지 다시 시작된 고민.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건 로널드와 지크프리트 뿐이었다.
“망그레브가 멍청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뭐?”
“내가 황제가 된다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확신할 수 있소?”
“물론이지.”
나는 천천히 다음 말을 뱉었다.
“황제가 내게 왕관을 넘기지 않고서야 권좌에 오르지 않을 거다.”
망그레브는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지크프리트 공작님! 뭐라고 말 좀 해보십쇼!”
“…….”
지크프리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들 머저리뿐이군!”
망그레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따악!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림자 속에서 숨어있던 루이스가 나타났다.
“망그레브를 감시해라. 그가 배신할 기색을 보인다면 죽여.”
“알겠습니다.”
그림자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루이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황제는 잘 계시다. 그저 약간의 고문을 받고 계실 뿐.”
“고문이라니!”
장내가 술렁거렸다.
“걱정 마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황제군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걱정 마라.”
“…….”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감히 모리스에게 덤빌 깜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회의가 끝이 났다.
***
“오랜만이네요. 모리스님.”
회의를 마친 나는 백설의 진지에 텔레포트를 했다.
이번 내전에 중립을 표방한 마탑의 포탈은 사용이 불가능했기에.
저택 뒤편이 미리 설치했던 포탈을 이용했다.
“얼마나 남았지?”
“일주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 시간에 맞춰 공격하게 진행해야겠군.”
“가능하시옵니까?”
“물론이지.”
나는 망그레브 후작을 떠올렸다.
그를 잘 이용한다면.
적들의 공격 타이밍을 직접 조절할 수 있으리라.
“곧 얘기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라.”
“예, 알겠사옵니다. 헌데…….”
백설이 꼼지락거렸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쉬다 가지 않겠습니까?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어렵다. 알다시피 수도에 일이 많아서.”
“아,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이리 급박한 상황에.”
“수도에서 하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백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제 일주일.
일주일이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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