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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11화 (111/174)

〈 111화 〉 110화 2차 내전 발발

* * *

“많기도 하군.”

나는 성 밖에 주둔한 제국군의 규모를 보며 중얼거렸다.

“솔라리온 공작이 전부 끌어 모은 거 같습니다. 첩보로는 남부와 동부 정규군만 모집된 거라고 들었습니다. 서부의 정규군과 황제파 귀족들의 사병은 뒤늦게 도착할 거라는 소식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저기서 더 늘어날 거라는 건데.

‘많군.’

처음 드는 생각은 그거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제국군의 규모에 놀란 것도.

그런 국력을 지닌 제국의 힘에 감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순수한 감상.

“일반 병사들이 많다고 해도 이 성벽은 넘지 못한다.”

자신이 있었다.

황제파에도 소속 마법사는 많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사들의 존재가 내게 더 이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마법사는 아군에게 재앙과 같지.’

나는 가만히 적들을 내려보았다.

“개미떼 같지 않습니까?”

옆에 선 로널드가 말했다.

“긴장이 풀렸나 보군. 이 상황에서 농담할 기력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죽기 전에 웃으면서 죽으려고 그럽니다.”

“질 거라고 생각하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적의 숫자 때문이겠지?”

“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프리트 공작이 망그레브 후작을 설득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전부 아군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니까요.”

“맞는 말이다.”

귀족파는 부활해서 복귀한 지크프리트 공작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집결했다.

공작의 지지에 미적거렸던 귀족들이 우리 쪽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 귀족들도 있지만.

“이길 수 있을 거라 자신하던 병사들도 저 규모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군의 사기를 올려 줄 필요가 있겠군.”

“그렇죠. 비책이 있으십니까?”

“대단한 건 아니다.”

그러나 군사들의 사기 하나는 제대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모두에게 전해라. 남문을 똑똑히 보라고.”

“알겠습니다.”

나는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몸이 두둥실 하늘로 날았다.

병사들의 시선이 전부 하늘로 날아가는 내게 쏠렸다.

나를 따르는 이들도.

나를 적대하는 이들도.

“모리스다!”

“반역자 모리스다!”

“지금이 기회다! 전부 무기를 겨냥해 발사하라!”

저 아래에서 함성이 들림과 동시에.

후우웅!

쐐액!

셀 수 없이 많은 화살과 돌덩이 그리고 마법이 내게 쇄도했다.

대부분 사정거리에 닿지 않아 떨어졌지만.

간혹 내 지근거리까지 온 공격들은 전부.

콰광! 쾅!

내 배리어를 넘지 못하고 부서졌다.

바스라진 제국군의 마법.

나는 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8서클.

인간의 끝이라고 불리는 마법.

모두가 인간이 쓸 수 있는 마법은 8서클이라고 말했다.

9서클.

인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마법이었다.

그 경지는 인간을 초월했던 초월자 그리고 드래곤만이 닿을 수 있다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9서클이라는 경지를 아주 잠깐, 맛 볼 수 있었다.

릴리스의 수많은 마법 서적을 통해서.

‘완전하진 않지만.’

9서클을 흉내 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저들에게 선물한 9서클의 한 조각은.

‘메테오.’

지금까지 마법으로 썼던 것과는 종류가 달랐다.

나는 손을 위로 뻗었다.

후우웅!

마나가 휘몰아쳤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 흔들거렸다.

펄럭거리는 옷.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마나가 급격하게 빠지는 느낌이 선명했다.

‘탈진이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마법을 구동하는 엔진인 서클이 미친 듯이 돌아갔다.

우우웅!

서클의 작동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하늘로 손을 뻗은 나는 닿은 것이 느껴졌다.

‘됐다.’

가슴이 뜨거웠다.

찢어질 듯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울컥, 피가 올라오는 감각을 억눌렀다.

“끄으윽.”

나는 손을 움켜쥐고 아래로 당겼다.

드드드득!

거대한 힘에 공기가 흔들렸다.

온몸이 떨렸다.

거대한 물체를 당기는 동안에도 나에 대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아래에서 웅성거렸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공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어?”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메, 메테오?”

“뭐, 뭔가 다른데?”

이상함을 느낀 이들이 피하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늦었다.

콰아앙!

빛이 점멸했다.

***

“이, 이게 대체?”

로널드는 입을 쩍 벌렸다.

한 구석에 꽂힌 운석.

지금까지 수많은 메테오 마법을 보았지만,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닌 마법은 처음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메테오다.”

“위, 위력이 다릅니다. 기존 메테오는 끽해야 수백을 죽이는 것이 고작인데 이것은…….”

천 단위가 넘는 제국군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거대한 크레이터만을 남기고.

“어차피 이제 쓰지도 못 하는 마법이다.”

“왜……그렇습니까?”

“원래라면 내 수준에는 쓸 수 없는 마법이야.”

무리하게 마법을 썼다는 뜻.

“쿨럭!”

모리스가 기침을 했다.

입을 가린 손에는 피가 묻어나왔다.

“자, 장관님.”

“알리지 마라. 이건 백작과 나만의 비밀이다.”

“……알겠습니다.”

로널드가 보기에도 한계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모리스의 몸은 망가져 있었다.

메테오의 반동이었다.

“적들은 이제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다. 내가 어떤 마법을 더 준비하고 있을지 모를 테니까.”

“일부러였습니까?”

“그래. 전쟁은 기세 싸움이다. 그리고 적들의 기세를 꺾어놨다. 시간을 벌기엔 충분해.”

모리스가 입가를 닦았다.

“그러니 우리는 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원군이 있습니까?”

“물론이다.”

모리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대단하다.’

로널드는 감탄했다.

마법사에게 자신의 수준을 초월하는 마법을 쓴다는 건 그야말로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자칫하다간 마나가 폭주하여 죽을 수도 있는 일.

그걸 거리낌 없이 성공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몸이 이리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모두의 승리를 위해서.

제국의 지배자라면 이런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로널드는 생각했다.

“원군이 온다면 그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겠군요.”

“그래야겠지.”

쿨럭 쿨럭!

모리스가 입을 가렸다.

“잠시 쉴 테니, 적들의 동태를 확인 바란다.”

“알겠습니다.”

로널드는 멀어지는 모리스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저 남자라면, 황제가 되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

나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류클리드를 내려 보았다.

그, 아니 그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폭행이라도 당한 걸까.

얼굴과 몸 이곳저곳에 푸른 멍이 새겨져 있었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상의는 찢어져 가슴을 간신히 가린 채였으며 바지는 없고 과거 남자였을 때 입은 팬티만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가렸다.

“모, 모리스……?”

류클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가냘픈 목소리가 여자가 되었다는 걸 알렸다.

“꼴이 말이 아니군. 황후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당하니 기분이 어떤가?”

“이 개자식…….”

나를 보자마자 이를 아득바득 가는 류클리드.

무너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인한데?”

“죽여 버릴 거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거야. 내가 당했던 치욕보다 더한 고통을 너에게 선사해주겠어!”

“그런 꼴로 말하니 그리 무섭지는 않군.”

“이이익!”

그녀가 일어나 철장을 흔들었다.

“네놈이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거 같아? 지금 제국군이 황성을 되찾으려고 오고 있는 중이야. 네놈이 어떻게 버티든 소용없어. 결국 제국군에게 잡혀서 내 밑에 무릎 꿇겠지.”

광기로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초점이 흐리지는 않았다.

간헐적으로 웃던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황궁 밖, 내 저택의 감옥에 갇힌 지 벌써 2주에 가까웠다.

그런데 오히려 정신은 더욱 멀쩡해졌다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황궁에 있는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었다.

“차라리 지금 네가 제정신인 것이 내겐 희소식이니까.”

“뭐?”

“한 가지 제안을 하지.”

“…….”

“네 말대로 제국군이 쳐들어온다면 그리고 성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다면 패배를 선언하겠다.”

“뭐?”

“굳이 성문을 열지 않아도 말이다.”

“……거짓말.”

“내가 왜 거짓말을 하지? 내기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진실 되었다.”

“그걸 어떻게 믿지?”

“서로간의 신뢰가 없다면 내기는 이뤄질 수 없어. 그게 싫다면 끝이 없는 고문을 당하던가. 지금도 감옥 밖에는 너를 범하고 싶은 놈들 천지인데.”

“이 자식!”

류클리드가 이를 악물었다.

“어떤가? 내기를 하겠는가?”

“만약 내가 진다면 너는 뭘 원할건데?”

“네게 원하는 건 없다. 그저 네놈의 패악질이 싫어서 군사를 일으킨 거니까.”

입술을 깨물던 류클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 거라면. 알겠어.”

“잘 됐군. 거래 성립이다.”

진실 되었다고 했지만.

내가 류클리드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이미 제국군은 성문 밖에 도착해 있다는 것과.

지하 감옥의 주위엔 진동 방지와 소음과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이 걸려있다는 거다.

밖에서 제국군과 귀족군이 비명을 지르고 전투를 진행해도 그의 귀에는 절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거짓말은 아니니.’

상관 없지.

거기다가.

이미 폐위된 황제에게까지 솔직할 필요는 없었다.

‘재밌겠군.’

자신이 믿었던 신하들마저 오지 않는다고 착각할 류클리드의 모습이 말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자 세리아가 물었다.

“제가 마법을 걸면 전부 다 끝날 일인데.”

“그런 방식은 마법이 풀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마법이 아닌 마음을 부수는 것이 필요했다.

마음을 부순다면, 굳이 번거롭게 마법을 걸지 않아도 무너질 테니까.

“그런데 모리스님, 괜찮으신가요?”

이번엔 에미르가 물었다.

“뭐가 말이지?”

“안색이 창백해요.”

“괜찮다. 아까 마법을 쓰느라 조금 무리한 거 같군.”

내가 한숨을 내쉬자, 세리아가 답했다.

“아까 봤어요. 역시 주인님! 완전히 패닉에 빠졌던데요?”

“앞으로 그런 마법은 쓰지 못할 거다.”

“왜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마법이었다.”

쿨럭!

갑작스럽게 기침이 올라왔다.

나는 황급히 입을 가렸다.

이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괜찮아요?”

“모리스님! 피, 피가!”

나를 보는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걱정하지 마라. 별 거 아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미르가 내 손목을 잡았다.

“어서 의원을 불러야 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내가 약해졌다는 건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정보야. 그러니 괜찮다. 다들 편하게…….”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세리아가 말했다.

“네가?”

“한 번 해봐요.”

세리아의 눈이 빛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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