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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악녀를 조교하게 되었다-110화 (110/174)

〈 110화 〉 109화 솔라리온의 사정

* * *

쾅!

“아직도 병력이 모이지 않았다고?”

“죄송합니다.”

솔라리온은 답답했다.

자신의 근거지인 동부에 위치한 제국군과 솔라리온 공작의 사병들은 모았으나.

서부와 남부 그리고 북부의 병력은 아직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서부의 병력은 도착해야 했는데.’

아직 도착하려면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상황.

중간 길목에 위치한 귀족파 영지를 공격했다는 이유였다.

“머저리들. 큰 걸 보지 못하고 영지나 털어먹다니.”

귀족파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고 있을 지금이었다.

그런데 괜히 귀족들을 건드려 일을 키우다니.

제정신인가.

“앞으로 귀족들의 영지는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솔라리온은 전략 지도를 살폈다.

‘남부 병력이 올 때까진 사흘.’

그들이 도착하면 병력을 모아 수도로 전진한다.

최대한 빨리.

수도 주위를 압박해 귀족들에게 무력시위를 보이고, 그들이 겁에 질려 항복하게 만드는 것.

굳이 싸움을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귀족파들끼리 분열이 심해야겠지.’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 모리스가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테니까.

“망그레브 후작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돌려라.”

“알겠습니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내부에 배신자를 만들면 그만이니까.

‘잘 되겠지.’

될 거다.

“황제 폐하.”

솔라리온은 모리스에게 잡혀 있을 류클리드 황제를 되뇌었다.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어서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황제는 어떻게 됐을까.

끔찍하고 잔혹한 황제여도 그만이 제국의 정통성 있는 지배자였다.

만약 황제가 죽어서 그 자리가 빈다면?

제국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과거 있던 암흑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황제가 잡힌 이번 일을 극복한다면.

솔라리온은 명실상부 제국 최고의 가문이 될 수도 있었다.

‘황제의 뒤에서 암약도 가능하지.’

에미르가 새로운 황후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수도에 잠입해 있던 신호가 전부 끊겼다.

홍련이라고 했다.

원래라면 황제의 뒤에서 움직이는 제국 최고의 암살단.

그녀들이 모리스에게 붙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언제부터 제국 내부에서 황제의 그림자를 더럽혔던 걸까.

그로선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수도를 점령해야 한다.’

지금 황성에서, 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빌어먹을 놈…….”

솔라리온 공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딸인 에미르.

다른 자식들에 비해 유독 공작이 아꼈던 딸이었다.

재능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족했으나, 그 누구보다 자신을 닮은 아이.

외모, 성품 그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모리스에게 붙어 자신에게 검을 겨누다니.

그보다 공작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흥분하고 있었어.’

에미르의 검을 맞댈 때마다 알 수 없는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에게!

딸에게 성욕을 느끼다니, 이 어떤 미친 이야기란 말인가.

제멋대로 발기하는 아랫도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모리스……. 대체 내 딸에게 무슨 사술을 가르친 것이냐.”

바트람과 자신을 전부 이길 정도로 강해진 에미르.

다음 번에 만났을 때, 과연 그 때는 이길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저, 공작님.”

전술 장교가 물었다.

“무슨 일이지?”

“북부 병력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예상하지 않았나. 그들이 빠진다면 야만족들이 쳐들어 올 수도 있네.”

“그게 아니라…….”

말을 더듬던 장교가 입을 열었다.

“연락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뭐?”

“답신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답신이 없다니.

북쪽에서 대체 왜?

“설마 귀족들에게 넘어간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곤란했다.

뒤에 적이 남은 채로 싸워야 한다는 뜻인데.

“일부 병력을 돌려 북부 군대가 올 수 있는 길목을 지키라 지시하라.”

“알겠습니다.”

병력 일부가 빠진다고 해도 황궁은 점령할 수 있으리라.

“북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서두르라는 서신을 각 부대 사령관에게 보내라.”

“알겠습니다.”

전령이 나가고.

솔라리온은 다시 한 번 지도를 보았다.

황궁에 위치한 귀족파의 군대.

‘모리스, 네놈은 무슨 생각인 거지?’

지도를 노려보던 솔라리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

지크프리트 저택에서 나온 나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마차에 함께 타 있던 에미르가 말했다.

“많이 망가져 있더군.”

지크프리트 정신을 원래대로 고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만한 시간을 쏟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요.”

다그닥. 다그닥.

에미르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탓에 말발굽 소리만이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몸은 어떤가?”

“괜찮아요.”

어색하게 먼저 꺼낸 말에 에미르가 대답했다.

“그리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었는걸요.”

다시 또 침묵.

평소라면 말을 꺼낼 에미르가 웬일인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 고민이 있는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사레치는 에미르.

나는 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깃든 묘한 아쉬움을.

“설마 세리아 때문인가.”

“예, 옛?”

“맞는 거 같군. 무슨 일이지? 둘이 싸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 그, 그게요.”

“말해줬으면 좋겠군. 싸움 전에 내부에서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건 좋지 않아.”

“사, 사실 말이에요.”

잠시 머뭇거리던 에미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리아 씨,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건가요? 그러니까 지크프리트의 공녀로……. 돌아가는 거 맞죠?”

“맞다. 이번 전투가 우리의 승리로 끝나면 공식적으로 선언할 생각이다.”

“그, 그럼……. 세리아 씨도 정당한 결혼의 대상이겠네요?”

에미르가 고개를 내리깔며 말했다.

한참이나 나와 얼굴을 마주치지 못했다.

“설마 그거 때문에 시무룩했던 건가?”

“그, 그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그녀는 딴청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에미르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솔라리온의 아가씨는 솔직하지 못하군.”

“저도 부끄러워 한답니다.”

“그런가?”

나는 슬그머니 에미르의 손을 잡았다.

“세리아의 복권은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거 때문에 내가 세리아를 더 아낀다는 건 아니야.”

“그럼 저를 더 아끼신다는 건가요?”

“글쎄. 둘 다 아낀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가?”

“너무하시네요.”

“나를 독점하고 싶었던 건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나는 에미르의 머리칼을 쓸어 내렸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네. 내 몸도 마음도 그대를 볼 때마다 요동쳐. 하지만.”

“하지만?”

“나는 누구 한 명에게 귀속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나는 다른 손가락으로 에미르의 턱을 치켜올렸다.

“그게 싫은가?”

나는 에미르와 시선을 교차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에미르가 눈을 피했다.

“그런 모리스님도 좋아요.”

“다행이군.”

나는 에미르의 얼굴을 천천히 매만졌다.

부드러운 촉감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잠시 눈을 마주친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붉어진 얼굴과 달아오른 숨소리.

나는 에미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으음…….”

혀와 혀가 교차하며.

에미르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에미르의 머리를 잡고 고정시켰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는 보내주지 않겠다는 의지.

촉촉하고 보드라운 혀의 교차.

한참의 키스.

마차가 저택 앞에 도착하고 정지한 뒤에도 나는 에미르와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

“하아, 하아.”

거칠게 내게 안기며 입술을 탐하던 에미르의 옷이 약간 풀어헤쳐졌다.

몽롱한 눈빛과 헤쳐진 옷.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에미르가 내게 손을 뻗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그녀의 욕망.

“조금 더 해요.”

“기사가 기다릴 텐데?”

“괜찮잖아요.”

“알았다.”

나는 에미르의 옷깃을 풀어헤쳤다.

부드러운 속옷에 가려진 에미르의 탐스러운 가슴이 보였다.

“모리스님이 원하시는대로 해주세요.”

“욕심이 많아졌군.”

나는 에미르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우리는 정차한 마차 안에서.

몸을 섞었다.

“하앙, 하으응, 하아아앙!”

저택의 사용인들은 에미르의 신음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았다고 하더라.

***

“하아, 하아.”

헐떡이던 에미르가 내 품에 안긴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시트도 우리들의 땀과 채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거……. 어쩌죠?”

뒤늦게 제정신으로 돌아온 에미르가 말했다.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손을 튕겼다.

완벽하진 않지만 시트가 깔끔해졌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나?”

나는 품에 안긴 에미르의 몸을 천천히 쓸어 내리며 물었다.

“네 아버지와 싸워야 하는 일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전장이야.”

“…….”

한동안 말이 없었다.

쾌락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죄책감에 고민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괜찮아요. 이미 두 번이나 검을 맞댔어요. 못 싸울 건 없어요.”

“그렇다면 만약에 솔라리온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어쩔 생각인가? 죽음만이 저항을 끝낸다면.”

“그건…….”

잠시 고민하던 에미르가 입을 열었다.

“모리스님의 선택에 맡길게요. 정말 방법이 없다면……. 멸문시켜도 좋아요. 어차피 결혼하게 된다면 저는 솔라리온의 성을 쓰지 못할 테니까요.”

굳은 의지를 다진 에미르의 말이었다.

“그런가? 알았다.”

나는 에미르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멸문은 시키지 않을 거다. 공작이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미래의 장인이 될 사람을 내 손으로 죽일 순 없지.

내가 지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을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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