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103화 내전(5)
* * *
내 어깻죽지에 검이 꽂혔다.
어깨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피가 셔츠를 적셨다.
몸을 보호할 마나마저 없어, 류클리드의 공격을 그대로 혀용했다.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는 일 때문일까?
류클리드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크크크, 천하의 대마법사도 별 거 없군.”
류클리드는 검을 비틀었다.
고작 한 방이었다.
그리 강한 대마법사여도 황궁에서는 꼼짝 못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이 놈은 그런 상식을 부쉈다.
‘고작 마법사 주제에.’
감히 황제의 권력에 대항하다니.
그런 놈의 결말은 뻔했다.
죽음.
“네놈은 그 누구보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류클리드가 목청껏 소리쳤다.
“지랄이다.”
“뭐라?”
“아직도 모르겠나? 내가 네놈에게 공격을 허용한 이유.”
어깨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공격을 허용한 보람은 있었다.
류클리드의 움직임을 잠깐이라도 멈추는 것.
그게 내가 방어를 포기한 이유였다.
‘어깨에 꽂힌 건 예상 밖이지만.’
조금만 더 깊게 찔렸으면 중상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캐스팅한 마법을 떨어트렸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끄아아악!”
허공에서 생긴 거대한 아이스 스피어가 류클리드의 오른팔에 꽂혔다.
긴 얼음 창이 류클리드의 팔뚝을 뚫고 바닥을 뚫었다.
뚫린 팔에서 피가 뿜어졌다.
적중.
제대로 적중했다.
익숙하지 않은 마나라 걱정했으나.
성공했다.
“끄아아악! 이 개자시이이익!”
류클리드가 구멍 뚫린 팔을 붙잡고 버둥거렸으나.
굳건하게 박힌 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전투의 기본 전술이었다.
팔을 스스로 자르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못할 거다.
자르면?
검을 쥔 손을 자른 류클리드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전혀.’
“끄아악!”
류클리드가 비명을 지르며 내 어깨에 박은 검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허튼 짓이다.”
챙!
나는 어깨에 박힌 검을 뽑고는 검을 걷어찼다.
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류클리드의 마지막 희망이 저 멀리 사라졌다.
마나를 가능한 최대한 돌려 다친 어깨에 힐을 돌렸다.
울컥 나오던 피가 스르륵, 사라졌다.
“이제 끝났다.”
나는 한 걸음, 류클리드에게 다가갔다.
류클리드가 몸을 떨었다.
“지긋지긋했다.”
“네놈, 황궁을 점령한다고 다 끝날 거 같지? 크크크.”
류클리드가 발악하듯 키득거렸다.
“전혀!”
목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지방에서 제국군이 몰려오고 있다. 솔라리온 공작도 대피한 뒤에 병력을 끌고 오겠지. 귀족파가 다 네 편이 되어줄 거 같아? 이미 반역을 한 널 도와줄 마법사는 하나도 없을 거다.”
키키킥.
광기 서린 웃음소리를 뱉어댔다.
안다.
류클리드를 잡고 황궁을 점거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네놈은 결국 무너질 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이런 짓을 했을까.”
“뭐?”
“누구와는 달리 계획이 다 있다.”
백설의 병력을 데리고 온 것이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황궁 전투가 아닌.
그 이후를 생각한 한 수.
“그러니 지금은.”
류클리드를 구속한다.
***
“크아악! 네놈들! 당장 나를 구하지 못할까!”
류클리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으나.
그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빨리 짐을 구하란 말이다!”
내가 류클리드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 있는 누구라도 검을 허투루 휘둘렀다간, 이 목이 달아날 거다.”
그렇다면 네놈들이 지키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
“무기를 버려라.”
“버리지 마라! 그 누구도 버리지 마! 짐을 위협하는 이놈을 어서 공격하란 말이다!”
적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날뛰는 깡은 인정해주겠다.
허나, 류클리드의 바람과는 달리 근위대들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나를 보았다.
“결국 막지 못했단 말인가.”
“정예 중의 정예를 황궁 내성을 남겨놨는데.”
“어째서…….”
다들 넋을 놓은 목소리로 말할 뿐.
누구도 검을 들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황가에 충성하는 존재들.
황제의 안전이 그 누구보다 중요한 이들이었다.
“검을 들어라! 반역도들을 죽이란 말이다!”
“버려라. 차라리 황궁 밖에 제국 정규군이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근위대와 기사단들이 끝내 검을 놓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군.’
솔라리온과 그 기사단들.
언제 도망쳤는지,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후일을 도모하는 거겠지.
여기까진 예상대로다.
“전부 포박하라.”
“알겠습니다!”
로널드의 기사단이 의기양양하게 근위대와 기사단을 모두 묶었다.
“이 멍청한 놈들아악!!!”
류클리드가 악을 쓰며 외쳤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했다.
“정리 됐다.”
나는 황제를 이끌고 황궁 밖으로 나갔다.
이 빌어먹을 황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끄아아악!”
류클리드의 비명을 끝으로 드미트리의 난이 끝이 났다.
***
“끝내 성공하셨네요.”
에미르가 아래에 묶여 있는 류클리드를 보며 말했다.
“어려웠지.”
나는 회복된 마나를 이용해서 상처를 치료했다.
응급처치로 막았던 상처에 새살이 돋았다.
“후우.”
류클리드에게 당한 것 말고도 이곳저곳 잔부상이 많았다.
치료하며 느껴지는 고통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크으윽…….”
몸을 완전히 치료한 나는, 류클리드의 팔의 상처에도 치유 마법을 걸었다.
그래도.
적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만 했다.
“거래를 하자. 네놈의 자리와 권력을 보존해 줄 테니, 병력을 물러라. 앞으로 네놈을 괴롭힐 일은 없을 거다.”
“조용히 해라. 정신 사나우니.”
“마법부를 독립적인 기관으로 확장시켜주겠다. 이 정도면 너도 만족할…….”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꾸우욱!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처 부위를 꾸욱 눌렀다.
“끄으으윽!”
류클리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길이 있을 거라고 보는가?”
“네놈…….”
“황제라는 상징성은 필요하지. 때문에 너를 당장 죽이진 않을 거다.”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은 물론 선사할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저미는 고문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한 고통으로는 류클리드를 무너트릴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적개심만 더 부추길 뿐.
그래서 나는.
“네놈의 정신을 부수기로 했다.”
“크, 크크큭. 그게 가능할 거 같으냐? 그 어떤 고문도 나를 부수지 못한다!”
발악하는 류클리드.
나는 그런 그를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아무것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야.”
나는 뒤에 서 있는 세리아를 보며 말했다.
“세리아.”
“예, 주인님.”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세리아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또각또각, 류클리드에게 다가갔다.
“세리아.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거다. 저 간악한 놈이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닥쳐.”
싸늘한 목소리.
차가운 서리가 내리는 듯 했다.
“네놈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까드득!
“씹어 먹어도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세리아의 몸에서 분홍색 매혹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인님의 의견이 너를 훨씬 고통스럽게 만들 테니까. 따르는 거야.”
“세리아!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너를 사랑…….”
“그 사랑이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을.”
세리아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랑의 빠진 소녀의 얼굴을 본 류클리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모리스 드미트리이!! 이 개 같은 자시이이익!!”
허나 류클리드의 비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세리아의 매혹향이 류클리드의 몸을 바꾸기 시작했으니까.
우드득! 드득!
“끄아아악!”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재구성되었다.
내가 과거 알려주었던 변신 마법이었다.
맞다.
오늘을 위해 그녀에게 연습시킨 것이다.
만약 세리아가 마법을 써야 한다면, 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드미트리의 저택에서 류클리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주위를 장악한 세리아의 기세 때문이었다.
“흐음.”
나는 류클리드가 변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다 변할 때까지.
“하악, 하악.”
세리아의 마법이 끝나고.
완전히 변한 류클리드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헐떡거렸다.
원래는 딱 맞았던 류클리드의 옷이 완전히 헐렁거렸다.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져 있던 류클리드의 몸은 연약하디 연약한 여자로 변해 있었다.
부드럽고 봉긋한 가슴이 솟아 있는, 황가의 여자 말이다.
“이, 이게 무슨?”
여자로 변한 류클리드의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아니 그녀는 지금 변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지, 짐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장 원래대로 돌려 놔!”
나름대로 근엄하게 외친다고 외쳤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위압감을 주지 못했다.
“여자로 변해보니 어떤가? 느낌이 다르지 않나?”
“모리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물론이다. 오히려 네가 네 몸을 걱정해야지 않겠는가?”
“뭐, 뭐?”
류클리드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올리며 물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모르는 눈초리였다.
“네년이 저질렀던 짓을 되새겨봐야지.”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녀가 꿈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녀가 황후였던 세실리아에게 한 짓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 짓이 모두 끝난다면.
세리아에게 하려고 했던 짓도 되돌려줘야겠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평생 고통스러워 할 거다.
‘오히려 좋아하려나?’
그러면 곤란한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제가 처리할게요.”
세리아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안심이지.”
적어도 성에 관련된 건 세리아가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근위대 중, 네놈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을 뽑았다. 참고로 네놈이 죽인 근위대들의 가족이다.”
“뭐, 뭐?”
류클리드와 나와 병사들을 번갈아 보았다.
앞으로 닥칠 미래를 본 듯.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안돼. 오, 오지 마. 네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지금 네놈들의 얼굴을 다 기억해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대로 되진 않았다.
분노와 흥분으로 가득 찬 병사들의 표정이 전혀 풀리지 않았으므로.
여자로 변한 류클리드의 외모는 상당했다.
뭐, 방금 전까지 남자였던 이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용하군.
복수심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했으면 좋겠군.”
나는 류클리드와 병사들만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자, 잠깐만 모리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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