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2화 내전(4)
* * *
지크프리트의 저택.
“드디어 미친 건가?”
“당연히 제정신이다.”
“공작님을 이렇게 만든 널 도우라고?”
지크프리트의 기사, 머스크가 방 안을 힐끗거렸다.
방 안엔 야윈 지크프리트 공작이 누워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군.”
“그날 이후로 계속 저 상태이시다.”
그날이라는 건 내가 세리아를 데리고 왔던 그 때일 거다.
“그래서 화가 나는가? 네 주인을 저리 만들어서?”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래.”
하아.
머스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뻔뻔하군.”
“그럼 계속 이런 꼴로 있을 건가? 이제 세리아를 다시 제국민으로 만들어야지.”
“뭐?”
머스크의 눈가가 좁혀졌다.
그건 뒤에 선 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다. 신분까지 없어진, 제국에서 없어진 사람으로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잖은가.”
머스크의 눈이 빛났다.
“황제가 내린 명은 황제밖에 취소할 수 있어. 그 말은 설마?”
“저런 황제가 언제까지 권좌에 있어서는 안 되겠지.”
머스크는 지크프리트의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팔을 잃고 패배하는 그 순간에도 가문에 충성하지 못했다는 슬픔에 갑옷을 검게 염색할 정도였으니.
그 충성심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세리아 지크프리트의 복귀로 지크프리트 공작이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희망 하나만으로도 나를 도와줄 남자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겠지?”
“물론이지.”
잠시 고민한 머스크가 남은 오른손으로 검을 쥐었다.
“계약 체결이군.”
***
세리아가 내게 착 달라 붙으며 물었다.
“진심이신 거예요?”
“뭐가 말이지?”
“저를 다시 지크프리트로 복귀하겠다는 약속 말이에요.”
“물론이다.”
“왜죠? 제가 부족했나요? 혹시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그렁거렸다.
“왜 저를 버리시려는 거죠?”
“버리다니?”
“전 주인님의 하녀인데 대체 왜 다시 지크프리트로 돌려보내신다는 말을 하시는 건가요?”
흠, 오해한 건가?
“나는 너보고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예?”
“신분만 돌려놓을 뿐, 네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돌려보내지 않을 거다.”
“그런……건가요?”
“그래. 다만 돌아가길 원한다면 언제든 가도 좋다.”
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알았다. 그렇게 믿고 있겠다.”
“헤헤, 네.”
세리아가 해맑에 웃었다.
황궁 공략의 준비는 다 끝이 났다.
로널드 백작의 휘하 기사단을 포함한 믿을만한 귀족파 기사단 300.
그리고 세리아, 에미르, 릴리스, 세바스찬에 머스크까지.
이들이라면.
내가 구상한대로 잘 움직여 주리라.
“시작하도록 하지.”
나는 모인 병력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
“막아! 절대 궁 안으로 못들어오게 하라!”
“반역이다!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끝까지 항전하라!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이곳까진 닿지 않는다!”
“근위대 모두 죽여!”
“최대한 빨리 돌파한다!”
“목표는 황제다! 이곳에서 질질 끌리지 마라!”
황제를 지키는 근위대와 귀족파 기사단의 대결.
수도 기사단까지 합류한 상태.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흐읍!”
세바스찬이 검을 휘둘렀고, 병사 셋이 동시에 쓰러졌다.
“이거 오랜만에 움직이니 허리가 쑤시는군요. 저도 갈 때가 다 됐나 봅니다.”
허리를 매만지던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덤비는 적들을 베어 넘겼다.
“멍멍!”
릴리스가 세차게 짖으며 매혹향을 흩뿌렸다.
“어, 어?”
그녀에게 현혹당한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새끼 뭐하는 거야? 아군한테 검을 겨눈다고?”
“저년이야! 마법을 막아!”
근위대들이 릴리스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서걱!
릴리스가 만든 칼날에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
에미르와 세리아는 호흡을 맞추며 눈앞의 적들을 쓰러트렸다.
두 사람 모두 낯선 전장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낸 길을 따라 앞으로 걸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 때.
“에미르 솔라리온!”
솔라리온 공작과 바트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수도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보단도 함께였다.
황제에게 가기 위해 남은 가장 최악의 벽.
“속전속결로 제압한다. 시간이 더 끌린다면 남은 병사들이 전멸당할 테니까.”
우리 쪽은 병사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했다.
지체한다면 얼마 남지 않은 승기가 사라질 것이 분명.
“바트람은 내가 상대하지.”
머스크가 앞으로 나섰다.
“솔라리온 공작은 에미르가 상대해라.”
“예.”
그리고 릴리스와 세바스찬은 보단 앞에 섰다.
쾅! 쾅! 쾅!
마스터 급 기사들이 부딪치는 기세에 공기가 진동했다.
일반인들은 감히 덤비지 못할 싸움이었다.
“반역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
나와 세리아를 막기 위해 기사단이 몰렸다.
마스터 급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하나하나가 일개 대대는 상대할 수 있는 제국의 정예였다.
마스터는 어렵더라도.
“너희는 상대할 수 있다.”
나는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황궁 주위에 쳐진 마나의 균열.
일그러진 마나 사이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나를 중심으로 퍼지는 마나.
지지직!
순간 균열이 찢어지며 마나가 몰아쳤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메테오가.
찢어진 균열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앙!
“끄아아악!”
“끝까지 자리를 지켜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울려퍼졌다.
세리아 역시 매혹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마나의 균열이 옅기 때문에.
그녀의 매혹향이 충분히 통했다.
물론 릴리스와는 달리.
“허, 허어억…….”
침을 질질 흘리고 주저앉게 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매혹향을 맡은 병사들의 동공이 풀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지는 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들썩거렸다.
절정이라도 느끼는 걸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끝이 없군.’
병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결국 버티는 병력들도 한계가 올 거다.
최대한 빠르게.
여기를 통과한다.
“세리아.”
“예, 주인님.”
“여기 병사들을 너에게 맡겨도 되겠지?”
“네!”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말을 들고 안으로 향했다.
세리아의 도움을 받아, 성문을 막고 있는 병사들을 뚫고 지나쳤다.
이제 입구를 지키는 이들이 오래 버티길 바랄 뿐.
‘안에 병사들은 오로지 나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각오를 다진 나는 빠르게 황궁 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일그러진 마나 탓에 피부가 저릿거렸다.
“죽어엇!”
곳곳에서 숨어 있던 기사단과 병사들이 내 앞을 막았다.
아티팩트로 마나를 일으켜 앞을 막는 병사들의 처리했다.
가슴이 뚫리고 머리가 터지고.
쾅! 퍼억!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럴 여유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황제를 만나는 것.
그게 내 목적이었다.
색색의 꽃으로 아름다웠던 황궁의 정원이 피로 물들었다.
수십 명이 넘는 병사들이 길을 막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했다.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할 거라는 안일함.
자신들의 기습이 완벽하다고 믿어 생긴 빈틈.
그리고 생각보다 강했던 내 마법까지.
나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갔다.
“하, 진짜 왔군.”
넓은 대전.
거대한 황궁 안에서.
황제 류클리드가 권자에 앉은 채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이미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였다.
“나를 폐위시키러 온 건가?”
“굳이 말로 해야겠습니까?”
“크크크. 그래, 지금 그대에겐 말은 사치지.”
“차라리 포기하지 그러셨습니까?”
“내가 왜? 나는 황제고, 이 제국의 것들은 모두 내 것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는 내가 왜 이리 피를 묻히고 있는지 묻지 않는군.”
“지금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크크, 늘 그랬어. 너는 늘 그런 태도였어. 마치 자신 말고는 궁금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야. 그래서 나와 같은 부류일 거라고 봤는데…….”
황제가 새빨간 피로 가득한 검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내가 잘못 봤더라고.”
크크크.
황제가 낮게 웃었다.
“그게 내 패착이지. 네놈을 마법부 장관에 앉힌 것.”
“저 역시 실수였습니다.”
“뭐가 말이지?”
“류클리드, 너를 황제로 만든 거 말이야.”
“하!”
류클리드가 비웃듯 소리쳤다.
“그래서 네놈이 황제가 되겠다는 건가? 황제인 나를 죽이고? 그래선 네가 나와 다를 게 뭐지?”
나는 마법을 캐스팅하며 답했다.
“최소한 나는 너처럼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죽이진 않아.”
대전에 쓰러진 수많은 시체들.
류클리드가 죽인 시녀와 하인들이었다.
항상 류클리드 옆에서 시중을 들던 집사까지도.
전부 그의 손에 죽었다.
완전히 수축된 동공.
류클리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역시 네놈을 죽여야겠어. 네놈을 죽여서 이 머릿속에 울리는 이명부터 어떻게 해결해야겠다.”
죽인다. 죽인다.
류클리드는 작게 중얼거리며 권좌에서 일어났다.
“그 때 네놈을 장관에 앉히지 말고 죽였어야 했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세리아 그년은 내 아래에서 헐떡이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내 자지가 좋다면서 아양까지 떨었겠지.”
쾅!
“크윽!”
황제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급히 몸을 숙였다.
그 옆에서 터진 폭발.
가만히 있었다면 머리가 으깨졌으리라.
“이젠 막나가기로 했나보군? 아니, 네놈도 그년에게 홀린 건가? 하긴, 그년의 몸뚱이는 탐스러워 보이긴 했지. 나도 그 년의 몸을 보고…….”
보자보자하니 선 넘네.
방금 이놈은 내 심기를 건드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진 어떻게든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었다.
황제가 없어야 정치적으로 유리해질 테니.
하지만.
“차라리 죽여달라고 울부짖게 만들어주지.”
오히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편히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균열에선 힘도 못 쓰는 마법사 나부랭이가!”
류클리드가 검을 치켜들고 내게 덤볐다.
나 역시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티팩트의 마나는 이미 황궁 곳곳에 숨은 기사들을 죽이느라 다 썼다.
결국 남은 건.
균열이 생긴 마나 뿐.
치지직!
“크으윽!”
균열이 생긴 마나를 사용한 탓에.
온몸이 전기를 맞은 듯 파르르 떨렸다.
나는 류클리드를 보며 떨리는 손을 튕겼다.
따악!
동시에.
푸욱!
날카로운 물건이 살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 * *